월간참여사회 2011년 02월 2011-02-01   1945

김재명의 평화 이야기-전쟁영화로 되새기는 반전평화의 소중함

전쟁영화로 되새기는 반전평화의 소중함

글 사진 김재명 <프레시안>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오늘 새벽 무서운 꿈을 꾼 끝에 잠이 깼다. 어제 저녁에 본 전쟁영화의 살벌한 현장 한 복판에서 죽지 않으려고 이를 악무는 꿈이었다. 영화의 무대는 1990년대 전반기 발칸반도의 한 도시에서 벌어졌던 인종청소와 대량학살의 현장. 꿈속의 나는 빨리 그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를 써도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겁에 질린 한 무리의 민간인들과 함께 건물 속에 숨었다. 세르비아 민병대원 하나가 우리를 발견하고 수류탄을 던지려는 순간, 외마디와 함께 잠이 깼다. 지난밤을 악몽에 시달리도록 만든 문제의 영화 제목은 <해리슨의 꽃>. 프랑스의 엘리 슈라키 감독이 2000년에 만든 전쟁영화로 내전에서 저질러지는 전쟁범죄를 고발한다.

  실제로 1990년대 초 발칸반도에선 유고연방의 해체과정에서 동방정교를 믿는 세르비아계,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계, 그리고 보스니아 무슬림(이른바 ‘보스니악’)이 서로 패를 갈라 피가 피를 부르는 무자비한 살상행위를 저질렀다. 보스니아에서만 적어도 20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 영화 속 미국 사진기자는 이렇게 한탄한다. “이것은 전투가 아니라 (종교와 언어가 다른 민족을 겨냥한) 말살이야”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 하나는 한창 학살이 벌어지는 한복판에 한 여인이 꿇어앉아 “나는 세르비아계 아이를 배고 있다”고 쓴 팻말을 목에 걸고 목숨을 구걸한다. 세르비아계 민병대원들로부터 성폭력을 당해 임신한 여인이었다. 실제로 1990년대 전반기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내전에서는 인종청소를 목적으로 의도적인 성폭력이 널리 행해졌다. 6만 명의 여성이 성폭력에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전쟁영화로 전쟁을 간접 체험한다

여기서 생겨나는 의문점. 사람들은 왜 스크린 곳곳에 피가 튀는 끔찍한 전쟁영화들을 보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전쟁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전쟁이 과연 어떠한 것일까?”라는 강한 호기심을 품는다. 그렇다고 누구라도 전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전쟁영화들은 우리로 하여금 전쟁을 간접 체험하도록 만든다. 문제는 같은 전쟁영화라 해도 수준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마구잡이로 총질을 해대는 람보 시리즈 같은 3류 전쟁영화들은 그저 ‘타임 킬링’을 위한 쓰레기나 다름없다. 잘 만들어진 전쟁영화들을 통해 우리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본질과 평화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는 “전쟁이란 미치광이 짓이다. 마지막까지 모든 노력을 기울여 전쟁이 터지는 것을 막아야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지금까지 전 세계를 통틀어 전쟁영화가 몇 편이나 만들어졌을까. 자료를 뒤져보니 지금껏 3,500개 전쟁 관련영화들이 상영됐다고 한다. 전쟁영화는 전쟁에 관한 다큐멘터리(기록영화)는 아니지만, 영화감독 나름의 시각과 해석을 담은 전쟁기록이다. 전쟁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실제로 있었을 법한 갖가지 인간 존재방식들을 스크린으로 보여준다. 전쟁을 피하고 싶어 하는 평화주의자, 전쟁이 터지기만을 바라는 무기상인, 전선의 참호 속에서 죽음의 공포에 질려 머리를 감싸고 흐느끼는 앳된 병사, “무조건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무책임한 사령관… 전쟁과 관련된 다양한 인간 군상이 영화 속에 나타난다.

  전쟁의 광풍에 희생되는 ‘가해자’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잘 드러낸 영화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87년도 작품 <풀 메탈 자켓>이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을 무대로 한 이 영화에서 큐브릭 감독은 미국의 평범한 젊은이들이 살인병기로 변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영화는 베트남전쟁이 한창일 때인 1960년대 후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패리스 섬에 있는 해병대 훈련소에서 시작한다. 머리를 박박 깎고 긴장해 서 있는 신참 훈련병들에게 교관은 이렇게 외친다. “너희들은 무기가 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기도하는 ‘전쟁목사’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는 날이 오기 전까지 너희는 토해낸 오물에 지나지 않는다. 해병은 로봇을 원하지 않는다. 두려움 없는 킬러를 원한다.”

  취침에 앞서 훈련병들은 1인용 침대에 누운 채 ‘받들어 총’ 자세로 이렇게 기도문을 함께 외친다. “나의 총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다. 이것은 나의 목숨이다. 내가 없으면 총은 쓸모가 없다. 총이 없으면 나도 쓸모가 없다. 나를 죽이려는 적을 내가 먼저 죽여야 한다. 나와 나의 총은 조국(미국)을 지킨다. 우리는 우리들의 적을 지배하는 주인이다” 8주간 훈련과정이 끝날 무렵, 훈련병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눈빛부터 달라졌다. 훈련조교는 말한다. “너희는 다시 태어났다” 무엇으로? ‘살인병기’로서다. 베트남 전쟁 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베트남에 개입해선 안 되는데도 잘못 개입해 큰 상처를 입었다고 여겼다. 큐브릭 감독은 그런 반전 메시지를 영화 속에 잘 담아냈다.

장군들의 ‘폭력적 정치놀음’

무려 1천 5백만 명이 희생된 제1차 세계대전(1914-18년) 뒤 전쟁이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터무니없는 것이라는 반전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죽어, 전쟁 자체가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에리히 레마르크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의 1930년도 흑백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대표적인 보기다. 이 영화는 고교 선생님의 애국심 가득한 연설을 듣고 지원병으로 나선 독일 소년병 파울은 곧 선생님의 애국주의적 선동 연설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다. 파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죽지 않으려고 싸울 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한 큐브릭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영광의 길>(1957년)은 장군들의 ‘폭력적 정치놀음’에 희생된 병사들의 실제 이야기를 다루었다. 영화는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장군의 돌격명령이 커다란 병력손실을 가져오자, 그 책임을 병사들이 지고 총살형을 받는다. 따지고 보면, 병사들이 무슨 죄가 있으랴. 전선에서 총알받이가 될 가능성 0%인 상황에서 ‘전쟁놀이’를 즐기던 장군들이 유죄를 받아 마땅했다. 이 영화는 강한 반전(反戰) 메시지를 담은 까닭에 프랑스에서 1970년대까지도 상영이 금지됐었다.

  19세기 프러시아의 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폭력이라는 물리적) 수단을 동원한 정치적 관계의 연장”이라고 규정했다. 클라우제비츠에게 전쟁이란 국가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정치’에 다름 아니다. 21세기 한반도에서도 장군들의 ‘폭력적 정치놀이’에 젊은이들이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겨울철 긴긴밤 잠이 오지 않는다면, 반전평화 메시지를 담은 고전적인 전쟁명화를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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