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2월 2011-02-01   1711

경제, 알면 보인다-신용카드를 과감히 잘라야 할 때

신용카드를 과감히 잘라야 할 때

제윤경
(주)에듀머니 대표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정말 초라할 정도로 작다. 이렇게 작은 나라가 글로벌 일등을 차지하는 것이 많다. 그것도 유쾌하거나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살율과 같은 다소 끔찍한 것에서 일등을 거머쥐고 있다. 최근에는 신용카드 결제 비중 또한 미국을 제치고 1등에 등극했다. 그것도 우리나라 카드 사용률이 49.7%로 34.6%를 기록하고 있는 2등 미국을 저 멀리 따돌렸다. 역동적인 대한민국 국민들은 카드 사용에 있어서도 화끈하게 몰아주기를 실천하는 중이다. 비교적 보수적이고 검소한 사람들조차, 심지어 좌파 지식인들조차 지갑 속에 여러 장의 카드를 들고 카드사에 충성한다. 그 카드의 주인 행세를 잘 하면서 카드사가 제공하는 단물들만 골라 챙기고 있다는 자부심도 갖고 있다. 그 단물이 알고 보면 과학적으로 설계된 미끼였다는 뻔한 사실도 자신에게만은 예외로 적용한다. 큰 그림을 그릴 때는 저항정신이 최고조로 꽃을 피우지만 그 저항정신, 아름다운 시대정신이 지갑 속에까지 스며들지 않는다. 그만큼 금융회사가 광고와 마케팅으로 의식을 조작하고 통제하는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대를 고민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방심하는 사이 약탈을 목적으로 하는 시장주의는 우리의 취약점을 눈치채고 지갑을 채가는 전략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금융자본의 속성은 평등과 불평등의 문제, 사회정의와 같은 숭고한 가치보다 사람들의 지갑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가. 불평등하지 않게 지갑을 훔칠 수 있다면,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평화 속에서 지갑을 갖다 바치는 사람들이 많다면 이보다 훌륭한 전략은 없을 터이다.

카드가 지시하는대로 소비 동선도 따라

“나는 지금 직장을 절대로 그만둘 수 없습니다.”

  어느 인터넷 매체의 경제부 기자의 말이다. 이 말까지만 들으면 대단히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결연한 마음으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을 들으면 30대 초반의 미혼 여성 기자의 말을 기특하게 여기는 것이 얼마나 순진한 것인지 금세 깨닫는다.

  “카드 값 때문에 한 달도 월급이 중단되면 안 돼요. 그간 질러놓은 게 많아서…”

  물론 이 말에 그녀를 한심하게 여기거나 별종으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듣고 있는 모두가 비슷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저 공감의 표시로 가볍게 미소 지을 뿐이다. 한 달간 열심히 일해서 받는 월급의 존재가치는 전자 결제 시스템 안에서 스쳐지나가는 허탈한 숫자일 뿐이다. 일의 목적이 카드사의 연체 고객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한 쳇바퀴로 전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어이없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의지조차 갖지 않는다. 신용에 의한 결제 수단이라고는 하지만 단 한 달의 연체조차 용납되지 않고 행여나 실수로 하루 이틀 연체를 하게 되면 어김없이 고리의 수수료를 부담한다. 신용이라면 믿음이 전제되어 있는 것으로 연체 시에도 그 믿음이 유효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신용카드 회사에서는 연체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며 최고 20%가 넘는 고리 수수료를 가차없이 부가한다. 카드에 붙어 있는 신용이라는 말은 결국 ‘믿을 만하다’의 사전적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반드시 갚는다. 반드시 갚아야만 한다. 그 무엇보다 카드 결제를 먼저 챙기고 중요시 여긴다.’라는 충성을 요하는 강도 높은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이 깊은 믿음에 연체로 배신을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엄청난 이자율은 그 배신에 따른 징벌이라고 카드사는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결국 우리는 카드를 통해 사소하고 일상적인 소비를 조금 편리하게 하면서 징벌과 손해배상의 위험을 실시간 껴안고 살고 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소비의 동선도 철저히 카드의 부가서비스 내용과 맞춰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 커피를 한잔 마셔도, 간단한 찬거리를 사기 위해서도, 주유등이 깜빡거려도 우리는 지갑 속에서 우리를 무의식적으로 지배하는 카드의 지시에 따른다. 포인트 적립, 할인, 캐시백 등의 값싼 미끼들이 수백만 원짜리 명품을 사기 위해 카드를 긁을 때의 호기와 다르게 우리를 쪼잔하게 만든다. 월 2만 원의 할인 혜택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는 상담자를 만나는 것은 재무 상담 과정에서 너무 흔한 일이다. 지난 칼럼에서도 소개했듯이 손실회피 심리 즉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한 인간의 나약한 심리는 신용카드 사용에서도 강력한 마케팅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월급 노예가 아니라 신용카드 노예로 살고 있는 것이다.

카드 노예에서 벗어나… 유쾌한 가난뱅이가 되어

이제 카드사들의 뻔뻔한 마케팅은 우리나라 중산층들을 채무불이행자로 만들기로 작정한 듯 거침없다. 신용등급 3, 4 등급의 비교적 양호한 소비자들이 최근 카드 대출을 크게 늘리고 있다고 한다. 소비자들이 갑자기 미쳐서 그런 것이 아니다. 수요가 늘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카드사들의 공급이 늘어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카드사들의 카드론 시장 선점을 위한 공격경영이 지난 한해만 카드론 이용자를 40%나 증가 시켰다고 한다.

  광고를 보면 카드사가 소비자의 지갑에 침투하기 위해 얼마나 혈안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문자 메시지로 하루에도 몇 개씩 친구가 보낸 듯한 카드 대출 서비스 안내가 줄을 잇는다. 이쯤 되면 빚 권하는 사회 정도가 아니라 신용불량자 양산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산층마저 신용대란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어도 괜찮다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금융의 이용에 있어 우리 소비자에게는 안전장치가 없다. 이미 신용카드 사용으로 인해 한 차례 큰 고통을 겪었음에도 카드사에게 어찌 그리 관대한지 소비자를 속이는 온갖 편법 마케팅도 모두 허하는 세상이다. 규제의 공백을 문제 삼고 금융의 약탈적 영업을 제어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절실한 때이다. 그리고 그 전에 먼저 과감히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잘라야 한다.

  통장에 잔액이 없어서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몇 달 궁색하게 산다고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마쓰모토 하지메(일본의 아마추어의 반란-재활용가게 5호점 점장)처럼 스스로 유쾌한 가난뱅이가 되어보는 것도 좋다. ‘격차 사회의 승자 반인 우등반을 향하느라 평생 시시껄렁한 일을 해야 하는 노예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공짜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몸에 익히는 데 도움을 줄 거야’ 『가난뱅이의 역습』이라는 책을 통해 그는 노예가 아닌 가난뱅이로서의 유쾌한 반란, 축제와 같은 데모의 기술을 가르친다.

  카드 노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달간 궁색해지는 불편을 하나의 의식처럼 받아들이자. 카드사에 뺏긴 내 월급날의 보람과 소비의 자유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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