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2월 2011-02-01   2578

나라살림 흥망사-미국 부흥의 비밀 ‘홈스테드’

미국 부흥의 비밀 ‘홈스테드’

정창수
좋은예산센터 부소장

 

토지 소유 문제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특히나 국가흥망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 중의 하나가 된다. 토지를 가진 중산층의 존재가 국가의 생명력을 유지시킨다. 잃을 것이 있고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고 생산 활동에 적극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노예들이 일의 의욕을 갖기 힘들다.

  하지만 토지가 완전한 사적 소유의 개념으로 정착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철저하게 진행된 시기는 유럽에서도 1848년부터 시작하여 1875년 세계공황까지의 3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기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폐해가 가장 심각했고 『자본론』이 발간된 것도 그런 이유이다. 토지를 철저한 자유시장경제의 시각으로 바라본 것도 이때에 국한된다.

링컨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그 이전에는 물론 왕이나 봉건적 질서에 의한 토지소유 개념이었다. 공황 이후에는 시장경제의 모순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지의 사적 소유에 제한을 두었다. 그러므로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가 아주 오래 전부터 즉 원래부터 확고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이런 역사적 과정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이 초기에 발전할 수 있었던 강력한 동력은 토지 문제였다. 기회의 땅이라는 것은 ‘토지를 가질 기회의 땅’을 말했다. 기회의 땅이 된 것은 미국이 미개척지가 많기도 했지만 제퍼슨이나 페인 등 미국 건국세력이 토지의 평등권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이 사상을 링컨이 홈스테드법(Homestead Act, 자작농법, 택지법)을 통해 구체화시켰다. 

  토지 문제는 이미 정착한 자신들 내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었다. 아무도 서부에 가지 않았을 때 먼저 탐험하고 깃발을 꽂은 후 자기 땅이라고 주장한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의 몇 배 또는 몇 십 배의 땅을 소수가 소유했던 것이다. 이 문제는 골드러시 때문에 더 심각해졌다.

  대표적인 사람이 아우구스 수터라는 사람이다. 뉴욕에서 큰돈을 벌어 샌프란시코 등 캘리포니아의 절반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골드러시가 일어났다. 인구가 골드러시 이전인 1843년에 1만 5천 명이었던 캘리포니아는 1860년에는 38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땅을 무단으로 점유하게 된다. 수터는 법질서가 없는 무법 시대였기 때문에 아무 말 못하고 있다가 법질서가 정착한 20여 년 후에야 법원에 소송을 내고 땅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법원은 사적 소유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이 사람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이미 오랫동안 살아온 주민들은 도저히 이를 납득할 수 없었다.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아들 셋을 포함하여 전 가족은 몰살당하고 만다. 그리고 그도 폐인이 되어 죽게 된다. 개인적으로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미국 사람들이 땅 문제에 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따라서 링컨은 1862년 홈스테드법을 공포한다. 이 법에 의해 가족 당 160에이커(약 20만 평)의 공유지를 분배하고 거기에 집을 짓고 5년간 농사를 지으면 토지 소유권을 주었다. 등기 등 제반 비용도 18달러면 되었다. 물론 그 돈이 없어서 땅을 못 얻는 사람도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2백만 여 가구가 이렇게 배분 받은 땅으로 중산층을 형성했다. 이들이 아직도 미국의 농촌에서 미국의 중심을 잡고 있는 중산층들이다. 물론 그 땅은 인디언들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약 3억 에이커(121만 평방킬로미터)의 땅이 분배되었다. 우리나라의 면적이 10만 평방킬로미터 정도이니 12배나 되고 미국 전체의 12%에 해당한다. 이 드넓은 땅이 서부개척 농민들에게 돌아갔다. 골드러시에 모여든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서부로 개척농민이 되어 떠났다. 그들이 처음부터 개척정신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땅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개척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이전에는 동부의 도시지역에 거주했던 사람들이다. 아무튼 이미 링컨 때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이 진행된 것이다. 링컨에 대한 미국 사람들의 향수는 바로 이러한 정책에 기반을 둔 것이다.


토지문제는 개인과 지역문제만이 아니다

니콜키드먼과 톰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파 앤드 어웨이(Far and Away)>를 보면, 마차들이 동시에 신호에 맞추어 달려 나가 깃발을 꼽아 땅을 나눠 받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거저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이벤트도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초기 세원은 토지세가 중심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국도 이 시스템이 파괴되면서 폐해를 드러낸다.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토지 가치의 주기적 상승이 생산을 압박하고 그것이 공급과 수요를 연쇄적으로 유발함으로써 불황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민중당이라는 정치세력까지 형성해서 저항하기도 한다.

  토지문제로 가장 피해를 본 나라는 일본이다. 메이지유신 초기인 1873년 지조개정地租改正을 통해 토지개혁을 했지만 이후 대지주이며 대자본가인 재벌들 때문에 지가 폭등에 대한 대책을 거의 세우지 않았다. 따라서 동경에서는 1년에 70% 이상 오르기도 하면서 경제를 왜곡시켰다가 최근 10년 동안 1/4 정도까지 폭락했다.

  우리나라에는 토지는 왕의 것이라는 왕토사상王土思想이 있었다. 하지만 역으로 이런 관념적인 생각 때문에 토지의 사적 소유는 발전했다. 토지개혁은 곧 체제개혁이었다. 조선이 망하는 날까지 이 논의는 계속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지금 우리나라의 땅값이 어찌 될지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우리의 토지숭배자들은 종부세에 저주를 퍼붓더니, 강남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지방세를 인하하기도 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좋아하면서도, 바로 그 미국이 현재 걷고 있는 세금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세금도 거부하는 그들의 나라는 어떤 미래일까? 토지문제는 결코 개인적이거나 지역적인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살 길을 찾자는 것이다. 그들은 다만 강남공화국민들일 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참고도서-

『미국사산책』 2권 3권,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0
<토지공개념의 역사와 현실> 역사문제연구소. 역사비평 2004 봄호. 역사비평사. 2004
『진보와 빈곤』 헨리조지. 김윤상 옮김. 비봉출판사. 1997
『명치유신의 토지 세제개혁』 김용덕. 일조각. 1989
『세계의 토지제도와 식량』 전문성지음. 한울.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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