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2월 2011-02-01   1389

칼럼-나목(裸木)

 

나목裸木

 

이태호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1.
올 겨울은 눈이 많이 오고 또 추웠습니다.
집 앞 불암산에도 겨우내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고스란히 쌓여 있습니다.
맑고 차가운 겨울의 대기 때문일까요?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겨울산 뒤로 새파랗게 펼쳐진 겨울 하늘이
마치 색종이를 오려붙여 놓은 듯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2.
겨울 산을 다른 계절의 산과 구분 짓는 것은 아무래도 겨울나무들입니다.
무성했던 이파리들을 모두 떨어뜨리어낸 겨울나무들로 인해 산은 덩달아 처연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겨울 금강산을 개골산皆骨山이라고 한다지요?
요즘 표현대로 하자면 ‘미친 존재감’이랄까요?

겨울산은 마치 하얀 캔버스 위에 잿빛 목탄 그림을 그려 놓은 것 같이 섬세하면서도 선 굵은 평면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이즈음 한계령 같은 곳에 가면 끝도 없이 이어진 잿빛 삼각형의 장한 행렬을 만날 수 있습니다.
벌거벗은 겨울나무 가지들이 빼곡히 겹쳐져 눈 덮인 산등성이들과 파란 겨울 하늘을 가르는 강렬한 윤곽선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계곡의 품 안으로 들어서면, 산과 겨울나무들은 또 다른 명암의 변주를 보여줍니다. 겨울 계곡을 따라 한 구비 돌면, 여린 활엽수 가지들이 짧은 겨울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양지바른 산기슭이 나타나곤 하지요. 그 황금의 가지들은 갓 태어난 누렁 강아지 솜털처럼 따뜻하고 보드랍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또 한 구비를 돌아 설산의 푸른 그림자 속으로 들어서면, 얼어붙은 듯 응달 속에 서있는 잿빛의 나목裸木들이 이내 가슴을 서늘하게 쓸어내립니다. 

3.
겨울나무들이 서있는 풍경은 춥고도 따뜻합니다.

4. 
화가 박수근은 겨울나무들을 즐겨 그렸습니다. 거칠게 덧칠한 화강암 같은 화폭에 아스라이, 하지만 단단한 윤곽으로그려진 잿빛의 겨울나무들은 나무 자신인 것 같기도 하고,
때론 나무의 그림자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 나목裸木의 이미지들은 시리기도 하고 포근하기도 하며,
한없이 처연하다가도 늠름하게 느껴집니다.
그림 속 벌거벗은 나뭇가지들은 무언가 부족하고 일그러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도리어 절묘한 균형감으로 공간 속에 조화롭고 견고하게 자리 잡습니다.  

벌거벗은 나무 아래로 무언가를 이고 진, 혹은 아이를 업은 조선의 아낙들이 걸어갑니다. 박수근의 그림 속 촌부들은 옆을 보거나 시선을 등지고 있습니다. 더러 아이들의 순진무구하고 무심한 얼굴이 화폭에 정면으로 담기기도 했지만,
대개의 경우 그의 그림 속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국전쟁 전후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야했던 화가의 자의식이  기름진 원색의 남성 얼굴 대신 조선아낙의 무채색 뒷모습을 묘사하는데 집착하도록 작용한 것일까요?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이 화면에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헐벗은 겨울나무가 봄을 준비할 수분을 지켜내기 위해 두껍고 메마른 잿빛 외피로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연유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5.
수개월 전 시인 박노해의 사진전시회 ‘나 거기 그들처럼’을 보러 갔었습니다. 거기서 대다수의 인물사진들이 빛을 등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작가에게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작가가 대답하기를, 잘나가는 이들의 기름진 얼굴에는 역광이 어울리지 않는데 반해, 가난한 사람들의 아름다움은 도리어 빛을등진 채로 혹은 새벽녘과 저녁의 어스름한 빛 속에서 더 잘 드러나더라는 것입니다.

6.  
지난 1월 22일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작고하셨습니다. 우리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전쟁세대셨지요.
대학 입학 직후 전란을 당해 우여곡절 끝에 미군 PX에 일자리를 얻은 그이는 거기서 미군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 박수근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일화를 소설로 엮은 『나목裸木』으로 우리나이 마흔에 등단하셨습니다.

중년을 넘어 등단한 까닭일까요? 故 박완서 선생의 글에는 기름기가 없습니다. 그 이는 어떤 허영이나 허세도 용납하지 않고, 때로는 자의식으로 배배꼬인 사람처럼 집요하게, 당대의 일상과 세태가 던지는 삶의 문제들에 천착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은 제겐 늘 불편하고 까칠한 도전이었습니다.
몇 해 전, 어머니 병상을 지키면서 故 박완서 선생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와,
『너무도 쓸쓸한 당신』2) 같은 작품들을 읽고 또 읽었지요. 그 덕분에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삶에 한발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해한 게 아니라 이해한 척 하는 건 아니구? 그러면서 자네 세대의 속물근성에도 은근슬쩍 눈감으려는 건 아닐 테지?”
어디선가 고인이 깐깐하게 되묻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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