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2월 2011-02-01   5937

김용민이 만난 사람-‘브로콜리 너마저’ 덕원

‘브로콜리 너마저’,
보편적이지 않은 세상에 말걸다

‘브로콜리 너마저’ 덕원

글    김용민 시사평론가 
사진 김은진 작가


 

2005년 민중가요 동아리에서 만난 윤덕원과 잔디가 대학가요제에 응모하는 것이 발단이었다. 녹음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줄 알고 악기 없이 예선에 나갔다가 뒤늦은 상황 파악 끝에 기타를 허공에 흔들고 빈 페트병으로 드럼을 치는 곡예를 펼쳤다. 세상은 그 창의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2008년 1집 발매 이후 보컬 계피와 결별하게 된다. 활동 중단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KBS로부터 방송 부적격 곡 판정을 받는 비운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자양분이었다. 음악성을 최우선적 변수로 삼는 한국대중음악상의 올해 최종 후보자 명단에 이들은 올해의 음반·노래·음악인 등 최다 분야 후보에 자기 이름을 올렸다. 장르분야에서는 최우수 모던록 음반·노래 후보로 선정됐다. 조건과 환경을 탓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온 6년. 그들은 소리 소문 없이 국민밴드로 우뚝 섰다. 패배를 스펙 삼아온 이들의 여정,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소리없이 우뚝 선 인디계의 국민밴드

고백할 게 있다. 나는 원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주의主義이다. 그러나 ‘브로콜리 너마저’마저 모른다고 했을 때에 받은 눈총은 대단했다. 인터뷰이를 ‘공부’하고 질문안을 만들었다. 모든 곡을 작사 작곡하는 리더 윤덕원 씨에게 퍽 미안한 마음을 안고 1월 18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지하 음악연주실에서 마주했다.

  뻔한 질문부터 나간다. “왜 이름이 ‘브로콜리 너마저’인가?”로. 왜냐. 솔직히 궁금하니까. “이런 질문 정말 많이 받습니다. 이름 지을 때엔 몰랐습니다. 그래서 좀 그럴 듯한 해석도 준비해둘 걸 그랬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우문현답이다. “식상한 이름을 짓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데 성과가 있었네요.” 너스레에 긴장이 풀어진다. 사연을 듣고 보니 매력이 용출되듯 터져 나온다. ‘구파발 물미역’, ‘덩기덕 쿵덕’, ‘엄마 쟤 흙먹어’, ‘저 여자 눈 좀 봐’를 팀 이름으로 정할 생각을 했었다니까. 이 사람들 정말 멋지다.

  이러한 창의력을 가능케 한 감성의 원천을 물었다.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평범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생기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걸 작품으로 만든 거고. 사실 음악도 공교육의 도움으로 익혔지요. 책이나 학원에서 살짝 배운 정도의 기타실력 정도가 예외였지요.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 기타를 제대로 손에 익혔습니다.” 사는 대로 살았다? 이게 답이다. 서울대 수석 입학생 입에서 자주 나온다는 “교과서로만 공부했어요.”라는 ‘조선 3대 구라’가 떠오른다. 하지만 ‘당신은 천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꽤 나은 학벌의 소유자니까. 윤덕원 씨를 비롯해 멤버 구성원 다수가 서울대 출신이다. ‘학벌 타파’를 외치는 입장에 섰지만 솔직히 말해 위축된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좌절의 구름은 빗겨가지 않았다.

  “원래 하나의 과정이 끝난 다음에 다른 한 장을 여는 부분은 누구나 쉽지 않잖아요. 적응하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고……. 그런 과정에서 정작 힘들게 했던 것은 ‘강요’였어요. 모두들 뭔가에 쫓기듯 시궁창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느낌. 저나 주변을 보면서 그런 것들을 느꼈고 그걸 곡으로 만들고 싶어졌죠.”

이십대의 좌절과 불안 그리고 노래로 소통하기

그는 실제 방송사 취업에 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노래 <졸업>과 이 과정은 잘 연결된다. 가사를 살펴보자.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희망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청년들은 쫓기듯 어학연수를 떠나고
꿈에서 아직 덜 깬 아이들은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날 듯 짝짓기에 몰두했지.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

한 오디션 TV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이 ‘사랑’을 주제로 노래 부른 응시자에게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사랑해봤어요?”라고. ‘아닌데요’라는 답에 곧 “그럴 줄 알았어. 깊이가 없어!”라고 일침을 가했다. 만약 덕원 씨 일생이 승승장구의 연속이었다면 이 노래에 ‘맛’이 실렸을까. 이 음악에 직면한 20대 팬들은 “마음이 거시기 했다” 또는 “묘했다”라고 반응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네들 정서 그대로의 반응이다. 노래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다 알기는 어렵지만 긍정적인 반응들을 접하며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이 그리 고까웠던지 KBS는 방송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방송에서 많이 틀어주기를 바라는 절실한 마음은 없지만 부당한 재단裁斷에 침묵할 수만은 없었다. “전혀 손 안 댄 채 재심을 요청했어요.” 그리고 현재 상태 그대로이다. 그러나 KBS의 결정은 <졸업>을 더욱 부각시켰다.)

  ‘20대를 위로하는 음악’으로 들린다고 물으니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연령대를 나눠 각기 다른 성격이 있다는 식의 분리 해석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위로를 주고받는 세대’라, 이건 20대에게 뭔가 결핍됐다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 아닌가요?”

  이 때 나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금의 20대는 다른 시대의 그 세대와는 다른 면모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사실 아니냐’고 반문했다. 자연스럽게 ‘20대 보수화’ 논란으로 화두가 이어졌다.

  “20대가 보수의 길이 아닌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지지 않는 전략을 택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다시 이야기해 의식적인 보수의 길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처한 상황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지 않는 전략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취직이 안 되고 나이는 먹어가고 이 와중에 나를 지탱할 경제적 토대는 사라지고. 그래서 지지 않는 방법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브로콜리 너마저’ 우리도 2005년 생긴 이래 안심한 적이 없습니다.”

  ‘보수화’보다는 ‘패배기피 경향’이라고 해야 할까. 20대 관련 논란을 그는 이렇게 ‘종결’했다. 온당한 합리화일까.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홍익대학교 총학생회 이야기로 이어갔다. 연초, 학교는 용역업체 소속 청소노동자를 대거 해고했다. 이들 사전辭典에 없던 ‘투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됐고, 학교 공간 일부를 점해 해고 무효를 목청껏 외치는 양태로 번져갔다. 동조할 것으로 기대했던 총학은 뜻밖에 “외부세력은 나가고, 학습권 침해를 피해달라”며 외면했다. 퍽 간명한 명분이었다. ‘우리는 비운동권이니까.’

  “안 좋습니다. 지지 않는 전략의 일환이겠으나 염치가 없는 것입니다. 패배를 피하는 정도를 넘어 그건 보신주의에 가깝다고 봅니다. 비겁합니다.” 60여 분 진행된 인터뷰 중 가장 표현이 격했던 부분이었다. “학습권 침해라고 했나요? ‘현장에서 삶의 모습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등 교훈을 얻을 수 있었는데 마다했네요. 학습권 포기입니다.” 홍대 청소노동자를 위한 지지방문 또는 위문 공연, 후원 콘서트에 대한 의향도 물었다. “물론”이라는 흔쾌한 답도 얻었다.

  논의의 무대가 어느새 홍대 쪽으로 옮겨졌다. 홍대는 인디밴드의 ‘서식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디밴드에게 아직 어울리는 이미지는 ‘배고픔’이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고 이진원 씨)’의 요절을 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10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는 “동시대에 그 분의 음악을 듣고 또 동시대에 함께 활동했던 뮤지션으로서 나는 너무 행운아고, 이걸 관객들과 함께 듣고 기억하면서 당신을 행운아로 만들어드리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런 언급을 만났다. “그 분이 앨범 냈을 때 구입했던 사람 중 하나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음원수익배분의 부조리를 이야기합니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 아닙니까? 기본적으로 음반을 안 사고 음악을 안 듣는다는 건데 이건 여러 가지 상황이 얽힌 복잡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명확해 보이는 음원수입이나 유통의 문제가 더 부각이 되는 것 같은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좀 더 진중한 진전된 메시지였다.

모던한 인디밴드의 할말하기

‘일각에서는 ‘브로콜리 너마저’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보다는 좀 더 잘 갖춰진 환경 속에서 음악을 한다는 평가가 있다’라고 물었다. “용돈 받아 음반 만든 것 아닙니다. 유복한 환경, 아닙니다.”라며 잘라 말한다. 이런 논의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런 풍문은 혹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에 비해 세상을 향한 외침이 자제된 듯한 느낌의 일단은 아닐까. 사회적 발언과 역할에 대한 아쉬움 말이다. 그러나 덕원 씨는 비교적 소상하게 정치적 스탠스를 밝힌다.

  “제 정치성향이요? 대체로 진보 성향을 선택하는 편이지만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 데 주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정당의 문제라기보다 저 자신의 지향이나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치적 소신을 함께 하기엔 온전한 만족감을 주는 정당을 찾기 어려웠고. 그러나 정당 활동에 대한 의지는 있습니다.”

  “이 사회 구조가 상당히 권위적입니다. 특히 이 정권 들어 더욱 노골화됐습니다. 그러나 특정 정권의 문제만일까요. 사회 체질 문제입니다. 권력이 바뀐 뒤에 이 억압의 구조가 끝날 것으로 여긴다? 글쎄요. 참 나이브한 발상 아닐까요?”

  시국 인식이 다소 관조적인 듯하다. 물론 선명성은 강요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감성과 실천은 공존할 수 없을까 하는 기대감은 잔존한다. 실천에 대한 의지를 물었다. 시민운동 참여 여부로 말이다.

  “어떤 단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가게가 주최한 공정무역을 위한 후원 공연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참여연대를 통해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시민운동의 지평이 더욱 넓어졌으면 해요.”

  아티스트에게 사회 현안에 대해 꼬치꼬치 물었다. 하지만 덕원 씨는 내내 ‘부담스럽다’라고 하면서도 조금의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할 말을 다 했다. 누가 평한 ‘개념 아티스트’! 나도 인증이다. 인터뷰를 갈음하려 하자 『참여사회』 팀장이 음악가에게 음악에 대해 묻지 않았다며 타박이다. ‘안 물어봐도 이 정도 세계관이 있는 아티스트라면 음악을 통해 스스로 느껴야 옳다’고 말하고 싶었다만 다시 판을 펼쳤다.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세계를 물었다. 사회 현안에 관한 답보다 더 간략했다. “밴드 형태로 만들어지는 노래정도라고 할까요. 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아직 저희 음악의 특징을 충분히 납득할만하게 (귀납적으로) 요약하기에는 해 온 작업이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떤 방향으로 하겠다고 선언하고 가고자 하는 부분도 아직은 없습니다.” 앞으로 앨범 발표할 때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달라질 것이다.

  ‘음악은 소통의 도구인가’라고 물었다. 대화식의 노래가 많아서이다.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심은 항상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음악이 소통의 매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일방적 화법으로도 소통이라고 우기는 파란 집 어떤 분과는 참 차별된다. 겸양의 미덕일까. 아니다. ‘소통’에 대한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가사와 제목 짓기를 통해 그 내용을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노래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도 일종의 소통으로 보이겠지요. 하지만 아무래도 우선은 읽는 이의 생각과 느낌에 많이 좌우 되지 않을까요. 노랫말은 하나의 촉매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그도 팬들의 반향이 싫지 않다. 이들의 노래가 ‘소통’이 되려면 향유하는 이들의 적극적인 반응이 뒤 따라야 할 것이다.

  ‘10년 후 하고 싶은 음악, 해야 할 음악’을 묻는 건 과할까. 꽤 긴 문장의 답이 돌아왔다. “장르나 스타일의 경우, 바뀔 수 있고, 활동방식도 다양할 수 있습니다.” ‘트로트를 해 볼 생각은 없느냐’라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장기적으로 성인 취향의 음악을 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운도 씨가 좋은 모델입니다. 그 분의 음악은 싸지 않습니다.” 아, 무한한 상상력의 힘이여! 이에 강림하시다니. 반짝이 옷을 입고 ‘삼바의 여인’을 힘차게 ‘터는’ 덕원 씨의 모습을 차제에 상상해 본다. “팀이 될지 개인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팀을 오래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노래가 우선시되는 음악을 해보고 싶습니다.” 인생은 백지이다. 미리부터 프레임 워크를 해서 이 틀 저 구도에 맞게 살겠다는 각박함을 버리는데서 ‘브로콜리 너마저’식의 창의적 감성이 발현된다. 앨범마다 넓어질 네 사람의 꿈이여, 부디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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