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2월 2011-02-01   1507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문민통제 실종된 국방, 군국주의형 대결 초래

문민통제 실종된 국방, 군국주의형 대결 초래

김종대
외교안보지 D&D Focus 편집장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경 보수’, 또는 ‘대북 압박’ 정책으로 부르지만 필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러한 표현이 성립하려면 그 최종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미국이 북한의 ‘정권 교체’나 ‘체제 전환’을 목표로 두고 강압적인 정책을 폈기 때문에 이는 당연히 ‘강경 보수’도 되고 ‘대북 봉쇄’와 압박정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정책이 뚜렷했고 논란도 많았다. 그러나 북한에 대하여 강경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와 같은 목표가 없고, 장기적 안목의 국가 대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나와 그것의 관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난 지 얼마 안 되는 2008년 1월 당시 이명박 당선자는 한나라당 정책자문위원들과의 회동에서 “나는 북한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왜 내가 북한을 잘 알아야 하느냐”는 말로 들릴 만큼 매우 냉담한 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인식은 과거 대통령과 분명히 차별화되는 분위기였다. 과거 대통령과 이 대통령이 다른 점이라면 남북한의 관계가 ‘나(I)와 너(you)의 관계’로 인식되던 데서 ‘나와 그것(it)의 관계’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나-너 관계’는 얼굴을 붉히며 싸울 수도 있고 친해질 수도 있는 부부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그것 관계’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이혼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북한에 대한 관심이 가끔 강조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들’이라는 전제 위에서다.

  그러한 이명박 정부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도발로부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의 정체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들’이 대한민국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을 게다. 웬만하면 무시하고 지내고 싶은 ‘그것들’이 대통령의 위기관리 능력을 수시로 시험하고 있고, 지지율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은가?
안보문제는 이명박 정부에게 있어 아킬레스의 건이다.

  현 정부가 출범하고 우리의 많은 장병들과 민간인들이 사상되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거치면서 북한의 실제적인 군사위협과 그로 인한 위기구조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우라늄 농축과 미사일 개발은 한국이 감당하기 어려운 새로운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의 군사위협은 3대 세습을 거치는 북한이라는 존재는 비정상적이고 혐오스러운 ‘그것들’의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핵을 포기할 리가 없는 북한은 우리의 ‘선의’와 관계없이 계속 자신의 길을 갈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북한에 대해 마땅한 대책이 없는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 또 다시 안보 위기가 불거질 경우 무엇을 해야 할 지 스스로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제재도 소용이 없고 단호한 대응에도 한계가 있다.

  어떤 전략적 실수가 있었던 것일까? 무엇이 우리 국민들을 사지에 내몰았나?

문민통제에서의 실패

단순히 대북 인식이 과거 대통령과 달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나라 서북 해역에서 경천동지할 위기가 시작 된 것은 아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함에 있어 가장 우선시해야 할 중요한 과업을 빠뜨리고 있었다.

  그 첫 번째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civil control’의 부재였다.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무관심한 것까지는 이해한다 하더라도 정부 내에는 여러 종류의 부류들이 있다. 특히 군부는 대통령과 달리 북한에 대한 적극적인 군사행동을 촉구하는 강압적 군사교리를 신봉하고 있다. 어느 나라 군대든 마찬가지겠지만 “싸워서 이기는 것”이야 말로 야전군이 신봉하는 최고의 덕목이다. 특히 지난 햇빛 정부에서 제1, 제2 연평해전을 거치면서 확실한 ‘전승’을 갈망하는 공명심 강한 야전 지휘관들의 갈증은 더욱 깊어져 왔다. 이런 야전군의 전투의지는 그 자체로 이상할 것이 없으나 정치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야전군의 전투의지와 국가정책이 동일시되면 군국주위와 같은 아주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 헌법은 이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2009년 1월 17일 북한의 총참모부가 “대남 전면대결태세”라는 초강경 성명을 발표했고, 뒤이어 1월 30일 또다시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또다시 “남북 간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된 모든 합의를 무효화 한다”고 선언했다. 이 당시 이상희 국방장관은 지난정부 시절의 ‘국지도발 대비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그 중 핵심인 ‘NLL(북방한계선) 대비계획’을 새로 만들었다. 이를 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시점이 2월 13일이다. 지난 10년 간 서해에서 지켜 온 교전수칙을 비롯한 국가의 위기관리 정책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이었다. 지난 정부에서 이 계획들은 남북한 간의 우발적 충돌이 더 큰 분쟁으로 확전되지 않도록 하는 군사대비태세의 골격으로 짜여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정치적 제한’을 철폐하고 야전군의 요구에 맞게 완벽한 ‘전승’을 보장하는 군사적 요구에 충실하게 수정된 것이다.

  당연히 이런 정책의 전환은 국방부 차원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검토되었어야 한다. 그럴 기회가 있긴 있었다. 두 번의 북한 성명이 발표될 때마다 외교안보 관계 장관들이 대통령과 대북정책을 협의하는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통일부와 외교부는 북한을 ‘무시하자’고 의견을 낸 반면 국방부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자’며 의견대립이 있었다. 회의에서 공개된 ‘NLL 대비계획’에 대해 통일부와 외교부가 난색을 표명하자 이상희 장관은 대통령을 단독으로 만나 이를 보고하고 그 즉시 국가정책으로 채택했다.

비극의 출발점, 대청해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비밀문서가 언론에 공개되는 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예전까지는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북한의 경비정이 NLL을 월선하면 우리 고속정이 대응하되, 그 방식이 매우 신중했다. 그러나 이제는 F-15K, F-16 전투기와 K-9 자주포, 76·120미리 함포 등 입체적인 지·해·공 전력으로 북한을 제압하겠다는 것이 모조리 언론에 보도되었다. 특히 이 무렵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지들이 일제히 이 기사를 부각시킨 것은 국방부가 북한에 “압도적 무력을 과시하겠다”는 정치적 의도로 언론 플레이를 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서해에 해안포가 100문 이상 증강되고 미그기 출격이 6배 늘었다. 그러자 국방부는 각군 총장들을 더욱더 독려했다. 해군 참모총장은 “적이 방아쇠를 당기면 그 손목을 잘라 버려라”고 해군 장병의 전투의지를 고취했다. 공군 참모총장은 F-15K 훈련 장면을 공개하며 “이것이 바로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전력이다”라고 말했다. 국가의 위기관리 정책이 있던 자리에 야전군의 함성이 들이닥쳤다. ‘북한 급변사태 대비계획’, 코드명 ‘부흥’도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그리고 2009년 11월 10일.

  NLL을 2.2km 남하한 북한 함정에 대해 우리 함정이 ‘NLL 이북으로 도주하는’ 북한 함정을 추적하여 약 3분 이내에 4,960발의 총포탄을 퍼붓고, 최소 8명을 사망케 하고 나서 이를 ‘대청해전’이라고 명명했다. 이 작전은 현장 지휘관의 판단이 아니라 해군 작전사령부 이상의 단위에서 직접 통제했다. 그리고 이어진 ‘승전’의 분위기에 한껏 고취된 군부는 “북한이 곧 고개 숙이고 들어올 것”이라는 달콤한 환상에 취했다. 사실 이런 식으로 북한을 다루면 북이 굴복할 것이라고 누누이 말해오던 국방부였다. 역설적으로 이명박 정부 집권 초에 남북관계를 가장 낙관한 당사자가 국방부였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가장 결정적 실수

전쟁 시에도 적장을 예우해야 한다. 중국 내전 당시 홍군은 포로로 잡힌 장개석 군대의 사단장을 깍듯이 예우했다. 그 목적은 단 하나. “패장이 패장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보복할 의지를 감소시킬 수 있다. 전투에서 승리했으면 그 다음으로 북한군에 대한 정서를 살폈어야 한다. 북한 4군단장 김격식이 확실한 ‘패장’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구태여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면전에서 약 올리고 조롱하는 일이 반복됨으로써 북으로 하여금 절치부심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을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단서다. 이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계속 문민통제의 실패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 대통령의 두 번째 실수.

  우리 군의 능력을 과대평가했다는 사실이다. 이상희 전 장관이 지·해·공 합동전력을 동원하겠다고 하니까 마치 우리 군이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단독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실상은 그러한 방향과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주한미군은 재래식 전투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북한 급변사태에 관심을 이동했다. 틈나는 대로 주한미군사령관은 ‘작전계획 5029’를 강조하며 한국 군부와 언쟁을 벌였다. 반면 우리 국방부와 합참은 지난 정부에서 수립된 ‘국방개혁 2020’을 수정하여 해·공군 예산을 삭감하고 국방재원을 육군 기동군단 창설에 쏟아 부으려 했다. 당연히 ‘국지도발 대비계획’은 한미 양국으로부터 사각지대로 내몰렸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이러한 국방계획의 허구성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지상전이 아닌 해역에서 우리 군의 정보·작전의 허점이 크게 부각된 것이다. 압도적 전력을 동원한다는 이상희 전 국방 장관의 허장성세는 그가 잘 아는 지상 작전에서나 통할 일이고 북한이 의표를 찌르는 해역에서의 ‘특수작전’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2시 34분과 3시 11분에 북한 해안포가 발사되어 우리 장병과 민간인들이 사상되었다. 포격이 벌어질 무렵 우리 F-15K 전투기가 출동하였으나 북한의 포격 ‘원점’을 정밀타격하는 데는 정보감시 장비가 없었고, 미사일을 유도할 수단도 없었다. 오로지 현장의 포병 전력으로 힘겹게 대응하는 동안 서북도서는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가장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 군은 미국의 도움 없이는 사실상 북한 해안포에 대한 억제력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불편한 진실’에 도달했다.

국방이 스포츠가 되다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놀란 이명박 대통령은 ‘안보 무능’이라는 오명에 시달렸다. 특히 보수층으로부터 ‘단호한 대응’에 대한 요구에 심한 압박감을 느꼈을 법하다. 전투에서 전과를 갈망하는 야전군의 바이러스가 이명박 대통령을 감염시켰다. 연일 실현 가능성 없는 조급한 군사대책이 남발되기 시작했다. ‘서북 5도 요새화’, ‘서북도서에 치명적 공격무기 배치’, ‘교전규칙 수정’ 등등, 지금 와서 보면 전혀 실현될 가능성도 없고 논리적이지도 않은 이 대통령 지시들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천안함 이후 대북 군사조치를 발표해 놓고도 실현하지 않던 공수표 남발이 또 재현되었다.

  무언가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은 해적이 활개 치는 아덴만으로 향했다. 해군의 눈부신 과감한 작전으로 해적을 퇴치하는데 성공하자 정부는 온갖 홍보에 열을 올렸다. 일견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했다. 작전 기밀까지 모조리 공개했다. 여기에 열광하는 국민들에게 이제 군사작전이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적어도 지고이기는 것만 따지자면 군사작전이 스포츠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군사작전은 스포츠와 달리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이고, 전후 맥락과 이후 영향까지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할 중차대한 문제다. 비록 칭찬 받아야 할 군사작전이라도 과잉 홍보 열풍과 열광적 군중심리에 휩싸인다면 로마의 콜로세움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는 국방이 스포츠가 되고 있다는 현실을 매우 불편하게 느낀다.

  이것이 바로 이 대통령이 저지른 세 번째 실수다.

  난마처럼 얽힌 이명박 시대의 국방.

  무엇이 이렇게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매우 일관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나오는 대전략가의 부재다. 비록 보수라도 상관없다. 장기적 안목에서 보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생존의 문제는 치열한 고뇌와 전략적 지혜가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이고, 여기에 보수와 진보가 서로 대화를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거의 망상에 가까운 혐오와 대결, 그리고 국내정치 논리가 대전략을 보는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을진대 우리 국방이 과연 제자리를 찾을 날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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