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2월 2011-02-01   1383

문강의 문화강좌-‘스마트’한 인간의 탄생

‘스마트’한 인간의 탄생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스마트’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인기 있는 교복 브랜드를 떠올렸다. 하지만, 아이폰이나 구글폰과 같은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 사람들은 ‘스마트’라는 단어에서 미끈한 LCD 액정에 색색의 ‘어플’이 떠있는 스마트폰을 떠올릴 것이다. 출퇴근 시간 서울 지하철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쉴 새 없이 손가락을 놀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라. 스마트폰이 크게 유행하자 <남자의 자격>이라는 연예프로그램에서는 스마트폰 활용을 통해서만 성공 가능한 미션을 제시함으로써 신기술에 어두운 아저씨 출연자들의 소동에서 웃음을 찾는 에피소드를 반영하기도 했고, 언제나 ‘얼리 어댑터’인 TV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어김없이 최신 스마트폰을 쓴다.
 
  스마트폰은 휴대폰에 인터넷 통신과 정보검색 등 컴퓨터 기능을 추가한 지능형 단말기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하여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고, 필요한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해서 쓸 수 있다. <남자의 자격>에서 제작진이 출연자들에게 ‘미션’을 주고 이를 스마트폰으로 해결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스마트폰은 대개 ‘미션 수행’에 가장 적합한 기기다. 가령, 낯선 도시의 길거리에서 내가 도달해야 하는 지점을 찾아야 할 때, 영화를 보려고 출발하기 전에 시간표를 검색할 때, 내가 사고 싶은 상품을 더 싸게 제공하는 곳을 찾고 싶을 때 스마트폰은 이전의 핸드폰이 해 줄 수 없었던 역할을 한다. 스마트폰은 어떤 목적의 달성에 필요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용자의 노력을 최소화한다. 비록 그 ‘목적’이라는 것이 길 찾기나 싼 상품 찾기, 버스 도착시간 찾기, 나아가서는 닮은 연예인 찾기 같은 수준에서 그칠 때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용자들은 지하철 안과 길거리 등 어디에서나 스마트폰을 통해 일상의 여러 사안들을 효율적으로 해결하는데, 바로 그 ‘효율적 해결’에 스마트폰의 ‘스마트함’ 뿐 아니라 스마트폰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사용자의 ‘스마트함’이 담겨 있다.

‘스마트’하다는 환상

문제는 스마트폰과 스마트폰 이용자들의 ‘스마트함’, 곧 ‘영리하다’는 것이 수동적 소비의 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보면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되어 내 삶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내가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 같은 환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문제의 해결책은 인터넷을 검색해 찾아오는 것일 뿐이고, 어플리케이션과 같은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다. 컴퓨터가 작아져서 내 손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멍청했던 사람이 갑자기 스마트해지는 것은 아니고, 소비자가 갑자기 생산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스마트폰이라는 기술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환경은 실제로는 철저히 수동적 소비자인 존재들에게 마치 자기 삶의 콘텐츠를 자신이 만들어내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스마트하다 한들, 자본이 제공하는 네트워크 안에서 갖가지 소비를 경제적으로 하고, 갖가지 엔터테인먼트를 마음껏 즐기고, 갖가지 검색을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상품의 소비자’를 ‘삶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스마트’의 레토릭은 달라진 것 없는 본질을 가리면서 과거의 산업 자본주의를 대체하고 있는 정보, 통신, 지식 중심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자본주의가 가장 필요로 하는 인간은 어떤 이들일까? 산업 자본주의가 기계처럼 일만 열심히 하는 육체노동자를 필요로 했다면, 오늘의 정보/인지 자본주의는 스스로 정보를 만들고, 유통시키고, 가치를 생산하는 1인 기업가형 인간들을 필요로 한다. 대규모 공장생산이 한계에 부딪힌 자리를 정보와 지식, 관계, 감정, 감각 등을 이용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인지산업이 이어받게 되었고, 이 때 필요한 것은 개인으로 존재하면서 자신의 욕망과 정보와 지식을 표출하면서 똑똑하게 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 인간들이다. 과거의 자본주의가 ‘성실한 노동자’를 필요로 했던 데 반해, 오늘의 자본주의가 ‘스마트한 유저들’을 필요로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상표가 크게 찍힌 옷을 쉬크하게 입고 다니는 패셔니스타가 거꾸로 그 상표의 살아 있는 광고판이기도 한 것처럼, 오늘의 자본주의는 정보와 지식과 감각과 관계를 만들고 표출하면서 욕망을 충족하는 스마트한 유저들을 통해 ‘젊은 피’를 수혈 받으며 생명을 유지한다.

체제의 표면만을 살짝 터치할 것

이 스마트한 인간들은 결코 체제의 근본문제에 의문을 품어서는 안 된다. 이들의 ‘스마트함’은 일상의 자잘한 문제해결, 가벼운 엔터테인먼트, 차별화된 소비의 욕망, 깔끔한 사교 관계를 해결할 딱 그 만큼의 영리함만을 갖추어야 한다. 스마트 산업을 선도하는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핵심기술 이면에 담긴 ‘직관적 유저 인터페이스’가 말하는 바가 이것이다. 근본적인 성찰 대신 스쳐가는 직관을 믿을 것. 체제의 ‘속으로’ 들어가 꾸욱 누르는 대신 체제의 매끄러운 ‘표면을’ 살짝 터치할 것.

  어떤 문제에 봉착하거나, 어떤 질문이 주어졌을 때 효율적으로 갈 길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하고 해답을 구하는 영리한 이들을 이르는 영어단어인 ‘스마트’(smart)의 기본적 의미는 ‘재빠르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속도가 날마다 배가되는 오늘날 그 속도에 맞춰 가치의 생산과 욕망의 소비를 함께 해 줄 인간들이 ‘스마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재빠르게 자기의 이익을 챙기고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지만 비판적 사고와는 거리가 먼 스마트한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 스마트폰의 표면처럼 마냥 매끈할 수만은 없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스마트’의 환상적 레토릭으로 가득 찬 세상의 표면 아래는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풀 수 없는 실제적 모순들이 낳은 끔찍한 고통으로 가득 차 있게 마련이다. 스마트폰을 든 채 퇴근 후에도 스마트하게 업무처리를 하는 스마트한 회사원이 버린 쓰레기를 한 달에 80만 원 받으며 화장실에서 식사를 하는 비정규직 청소부 아주머니들이 치우는 그런 세상 말이다. 형용사 ‘스마트’를 파생시킨 동사 ‘스마트’의 어원이 ‘고통을 주다’를 뜻하는 고대 독일어 ‘smerzan’(현대형은 ‘schmerzen’)에서 온 것은 그래서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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