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12월 2002-11-02   858

세상에 대한 지치지 않는 물음표를 던진다-만화가 강도영

아래 글은 참여사회 10월호 ‘피플 세상속으로’에 실린 기사임을 알려드립니다.(편집자 주)

강도영을 이해하는 데 박재동은 필수다. 그건 현재 20대 중후반을 이해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그의 말처럼 『한겨레』 박재동은 ‘만화가 단지 보고 즐거운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때’ 다가와 ‘한 뼘도 안 되는 공간에서 세상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당시 청소년 시기였거나 막 대학에 들어온 세대들은 그의 만화를 보며 세상에 눈을 떴다. 박재동의 만평을 보기 위해 『한겨레』를 읽었고, 박재동을 아는 것은 세상에 대한 관심이 있는지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됐다. 강도영의 만화에 웃고 우는 20대와 30대의 숨어있는 공통분모는 그래서 박재동이다.

네티즌이 만든 스타

몇 달 전부터 네티즌 사이에서 유행하던 만화가 있다. 벽에 걸쳐 있는 똥에 대한 분석, 내 인생의 또라이짓에 대한 솔직한 고백, 나의 월드컵 이야기,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을 담은 그땐 그랬지, 첫사랑에 대한 기억, 결혼식장 축가로 ‘사랑의 서약’ 대신 ‘사랑의 미로’를 불러버린 친구 이야기 등 생활 속에 숨어있는 에피소드들은 네티즌들의 입소문을 타며 단숨에 그를 스타로 만들었다.

또 한 명의 엽기만화가가 탄생했겠거니 여기며 강도영의 홈페이지(www.kangfull.com)에 들어간 기자는 큰 오해를 했다는 걸 알았다. 메인 화면에서 세상에 대한 지치지 않는 물음표를 던지며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봤고 강철 풀잎의 준말인 ‘강풀’이란 또 하나의 이름을 걸고 살아온 이야기도 훔쳐봤다.

“안치환과 윤도현을 비교해 봐라. 누구나 사회적인 발언을 하지만 그 여파는 다르다. 안치환은 민중가수이기 때문에 그런 발언을 들어도 별다른 느낌은 없다. 그저 민중가수니까 그런 말을 하겠지 한다. 그렇지만 윤도현이 그런 말을 한다면 일반 사람들에게 다르게 다가온다. 나는 요즘 미선이 효순이 사건에 관심이 많다. 그 만화를 이현세나 허영만이 그렸다고 생각해 봐라. 나는 그런 만화가가 되고 싶다. 알리는 방식이 중요하다. 만화를 통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박재동식 만화는 그리지 않을 것이다. 좀더 가볍게 웃음을 주면서 생각하게 하고 싶다. 내 만화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내가 많이 알려져야 한다.”

그는 만화를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았다. 디자인은 물론이고 미술학원조차 다닌 적 없다. 상지대를 다니며 학내문제를 대자보 대신 만화로 그린 게 그의 만화의 시작이다. 몇백 군데의 출판사에 그의 이력서를 만화로 그려서 보냈다. 막무가내로 찾아간 출판사에 그의 그림을 쓸 것을 강요했고 몇 군데 잡지에 일러스트를 그리며 ‘그림쟁이’로 첫 삽을 뜬다. 참여연대와는 지난해부터 인연을 맺었다. 팔자에 없을 줄 알았던 회사원 생활도 해봤지만 결국 1년 만에 사표를 내고 작업실 ‘선따라’를 만들었다.

그동안 그는 기본기가 없다는 강박관념에 힘들었고 만화의 한계가 드러날 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렇지만 요즘 내린 결론은 ‘다시 미술공부를 할 생각은 없다’이다.

“나의 만화의 특징은 글이 많다는 거다. 그림책 같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컷도 구분하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 미술을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만화를 그리는 데도 한계에 봉착하게 마련이다. 고민을 많이 하다가 그냥 내 스타일로 그리기로 했다. 단점도 있지만 대신 신선하다는 장점도 있지 않은가.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작업실에서 하루종일 연습을 하고 그림을 그린다. 잠자는 시간 빼놓고는 그림을 그리거나 독자들에게 온 이메일에 답변을 해주는 게 내 생활의 전부다. 10대가 읽는 만화와 20대가 보는 만화에는 차이가 있다. 나는 그들에게 재미난 만화를 그리고 싶다. 만화와 함께 늙고 싶다.”

▲ 연재중인 참여연대의 회원 월간소식지<아름다운 사람들>11월호에 실린 ‘강도영의 만화로 본 세상 이야기’

바이러스에 빠져라

그에게 꿈이 하나 있다. 만화 바이러스를 유포하는 것.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면 그의 만화를 편하게 받을 수 있다. 그는 홈페이지를 통해 바이러스 만평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건의 규모는 작을지라도 꼭 알려져야 할 것이 목소리가 너무 작기 때문에 묻혀버리는 것들을 만평으로 그리려고 한다. 또한 어떤 사건에 있어서 다수의 의견에 휩싸여 자신도 모르게 이미 같은 의견이 되어버리는 현재의 세태에 반기를 든다.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상에 한번 더 생각할 의문점을 찍고자 한다. 도전적 의문을 담은 많은 물음표들이 바이러스처럼 이 사회에 퍼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주류사회 속에서 작지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꿈꾼다.”

꼭 알려야 할 만평이라고 판단되면 독자들이 이메일로 유포시켜 달라는 당부이다. 생기발랄하기만 한 그의 만화에 그런 속내가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다. 90년에 박재동식 만화가 세상을 바꿨다면 그의 만화를 본 강도영은 강도영식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보인다. 그가 더 고민을 하는 것은 만화 자체보다 소재다.

“사회문제에 대한 혜안이 아직 없다는 게 늘 고민이다. 나는 그냥 사건을 보고 기분 나쁘고 열 받으면 그것만큼 그린다. 국민경선 때 만평사건을 기억한다. 모 대통령 후보의 출신학교 문제를 들어 엉뚱한 사건으로 부풀려버린 것을 보고 매우 잘못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더 많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게 고민이다. 작업실을 만들면서 세상을 알 수 있는 것은 인터넷뿐이다. 20대와 30대가 고민할 수 있는 생활만화도 그리고 싶다. 네티즌들이 보내준 많은 에피소드를 그렸는데 나중에 유머란에서 퍼온 게 많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요즘은 내 주변사람들이 직접 겪은 일을 주로 그리려고 하는데 쉬운 게 아니다.”

그는 요즘 매우 바빠졌다. 수백 군데 보내던 이력서는 이제 추억이다. 청탁이 들어와도 거절하기 바쁘다. 오프라인에서도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인터넷도 물론이다. 조만간 책도 나오고 ‘딴지일보’와 ‘다음’과도 계약했다. ‘엑스뉴스’에서는 시사만평을 그린다. 그럼에도 강도영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가장 우선에 두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약속한다.

그는 “이제 만화 몇 군데 그린다고 개폼이나 잡는 인간 안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지치지 않을 물음표를 안고 살겠습니다”라고 솔직한 표현방식으로 독자와 손가락을 걸었다. 그가 요즘 가장 아끼는 만화는 아버지 생신 선물로 그린 ‘아버지와 나’와 미선이 효순이 사건을 그린 ‘2002년 장마, 종로에서(2002년 대한민국)’ 그리고 시각장애인 소년의 마음을 그린 ‘추석’이다.

박재동 화백은 몇 년째 ‘오돌또기’를 그리고 있다고 들었다. 그가 그동안 그린 만평에 대한 신뢰와 애정으로 독자들은 그를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 준다. 강도영과 박재동을 비교하는 것은 아직 성급한 판단이지만 그의 말에서 또 다른 신뢰감을 느꼈다.

그림 그리는 실력은 노력하면 늘 수 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나 고민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만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황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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