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9월 2004-08-27   1432

[인터뷰] 민간인 학살 문제에 꾸준한 관심 갖고 활동해온 김동춘 교수

“지금 시기 놓치면 과거청산은 영원한 미궁에 빠지게 된다”

우리 역사의 오랜 염원이자 과제였던 ‘과거청산과 진상규명’이 현실로 다가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포괄적 과거청산”을 언급한 이후로 정치권을 중심으로 과거청산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최근 부친의 친일 경력으로 인해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원이 의장직을 사퇴하는 것을 계기로 사실상 과거청산에 대한 정치권의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실질적인 과거청산과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일제 강점 시기부터 시작될 광범위한 과거청산의 범위부터가 그렇고 아직도 현존하고 있으며 상당수가 우리사회 권력층으로 자리잡고 있는 가해자 그룹의 거센 저항도 상당한 시련으로 작용할 것이다.

바로 지금, 왜 우리가 과거청산을 해야만 하는지, 근원적인 당위성을 비롯해 과거청산의 원칙과 방향은 어떻게 가야할 것인지, 성공회대 사회학과 김동춘 교수를 만나 들어봤다. 김 교수는 국가폭력에 의한 학살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으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과 과거청산을 촉구하는 활동을 해 왔다. 우선 과거청산이 시작되는 것에 대한 소감부터 물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5.18광주, 제주4.3, 의문사 등 문민정부 이후 계속 제기되어 온 과거청산 문제가 노무현 정부가 집권하면서 밀린 과제가 한꺼번에 다 제기된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과거청산의 문제를 제대로 제기한 적이 없다. 딱 한번의 예외가 수지김 사건이다. 이 사건만 유일하게 가해사실이 확인됐다. 그것도 정부가 나서서 한 것이 아니라 <신동아>기자의 용기와 끈질긴 추적으로 됐다. 이를 제외하고는 우리 사회에서 과거사에서 어느 것도 진상규명이 이뤄진 것이 없다.

예를 들면 5.18광주도 보상은 되었지만 총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 즉 명령권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렇게 어느 하나도 제대로 진상규명을 하지 않고 왔기 때문에 언젠가 한번은 반드시 거쳐야할 것들이 이번에 터진 것이다.”

김 교수는 동시에 우려도 표명한다. 우리의 근대 100년은 너무 많은 이들이 한을 품고 살아온 세월. 이것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채 무차별적인 한풀이로만 흘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처벌과 보상은 별개로 진상규명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처벌과 보상은 가능한 빼자는 것이 바로 중론이다. 이들을 빼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만 촛점을 두면 훨씬 부담이 덜하다는 것이다. 처벌과 보상까지 모두 끌어안으면 문제는 너무 복잡해질 뿐더러, 이 작업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들은 개별사안으로 다루고 큰 줄기는 진상규명으로 가야 여러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피해자 측면에서도 진상규명을 통해 용서와 화해를 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들은 기본적으로는 표를 의식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욕심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이걸 통해 국면전환이나 정치적 입지를 탈피하려 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그래도 대통령은 비교적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정치적 계산에 좀더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처럼 보인다. 열린우리당은 별로 의지는 없지만, 밀려서 가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거부해오다가 박근혜 대표가 수용하되 맞불을 놓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이것이 한나라당 전체 입장은 아닌 것 같다. 내부에서는 이걸 받아서는 안된다는 입장도 있고 논란도 있다고 알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경우도 내키지 않아하는 이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군 경찰 출신들이 그러하다고 들었다.”

“박근혜 대표, 아직 과거청산의 기본적 의미도 이해 못했다”

19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과거청산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정치권은 과거청산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한 상태다. 하지만 그렇다고 본격적인 과거청산 작업이 시작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근혜 대표는 합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사범위를 ‘친북, 용공’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해 새로운 공방이 시작됐다. 박대표의 발언이 나오기가 무섭게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보수언론들은 과거청산을 두고 엄청난 이견과 격론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도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김동춘 교수는 박근혜 대표가 아직 과거청산의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 발언은 박근혜 대표가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드러낸 것이다. 박대표는 5.16도 평가해야 한다, 6.25 때 싸운 이들도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건 과거청산이 아니라 역사적 정리의 문제다. 또 의문사위 조사에서도 보았듯이 어느 정도의 법적 규제력 없이는 자료에 접근할 수도 없다. 지금 현재 상황에서는 학자들이 역사적으로 정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진실이 공권력에 의해 은폐되었기 때문에, 그동안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피해의 문제를 규명하자는 것이 지금 말하는 과거청산이다. 역사에 대해 어떤 것을 인정하자 말자는 것과는 별개다. 박근혜 대표는 기본적으로 과거청산의 기본적 성격조차 이해하지 못한 상태가 아닌가 싶다.”

“좌익으로 몰려 희생당한 것 밝히자는 것인데, 또다시 좌우로 몰아가자니”

또한 김 교수는 친북과 좌익도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의 실제적 의미는 과거청산을 하지 말자는 맞불놓기라고 진단한다. 그는 세계에서 친북, 좌익, 또는 좌익이념을 가진 이들이 그토록 철저하게 탄압받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충고한다. 좌익 근처만 가도 혹은 그러한 의심을 받기만 해도 따라왔던 잔혹한 탄압을 떠올려 보라고 말한다. 당사자는 물론 연좌제로 몰려 가족들까지 대대로 탄압받고 가정은 풍비박산되고 재산 빼앗기고 정신병자 되거나 죽고, 이런 이들이 수백만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좌익이 아닌 사람까지 포함해 좌익이 그토록 철저하게 탄압받았던 나라가 없다. 그런데 좌익조사를 하자는 것은 기본적으로 맞불놓기고 별 가치가 없는 주장이다. 즉 과거청산을 좌절시켜려는 의도다.

동시에 이 운동을 하는 이들은 좌익이라는 전제를 갖고 출발한 발상이다. 이들은 이 문제를 또다시 이데올로기로 몰아가려고 한다. 과거청산은 이념적 잣대가 아니라 극우반공 속에서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피해받은 인권탄압을 밝혀내려는 것이다. 민주화의 지향과 연장선상에 놓인 것이다. 그런데 이걸 또다시 좌우로 몰아가면 과거청산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친북이나 좌익 이데올로기 때문에 희생당했고 그걸 밝히자는 측면으로 제기된 것인데, 친북과 좌익 전면을 조사하겠다는 것은 진상규명을 안하겠다 또는 하지 말라는 소리와 같은 것이다.”

지금 <조선일보>주장, “49년 반민특위 좌절시킨 논리와 동일하다”

하지만 보수언론들은 이미 박근혜 대표의 주장에 날개를 달아주기 시작했다. 좌익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기로 과거청산을 둘러싼 대소용돌이가 시작되어 엄청난 국가적 혼란이 야기될 것처럼 보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보수언론인 <조선일보>는 좀더 분명하고 강한 어조로 과거청산과 진상규명은 절대 안된다고 외치고 있다. 정치권이 포괄적 과거청산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다음날인 20일 “대한민국을 부끄러운 나라로 만들겠다 작정했는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구한말이래 조상들의 온갖 부끄러운 이야기, 어두운 과거를 집대성하는 ‘수치(羞恥)의 역사’를 다시 써서 세계에 고(告)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일을 벌”이는 “국가적 자해(自害)행위”라고 주장한다.

또한 “여당은 역대 우파정권들의 약점을 캐자는 것이고 야당은 집권세력의 기반인 좌파들의 죄상을 함께 드러내”기 위해 “조상을 감추고 조상을 부끄러워하고 조상을 원망하는 대한민국 국가 프로젝트가 펼쳐지는 것”, “노무현 대통령의 진두지휘아래 서로 남의 조상의 묘를 파헤치는 사업을 벌이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더불어 일제시대, 6.25, 군사정권을 지나오면서 가족사 어느 집도 상처없는 집이 없다는 말로 과거청산은 무의미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김동춘 교수는 한마디로 반박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한다.

“가장 구린 구석이 많은 집단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친일, 6.25전쟁, 군사정권 등 이 시기의 진상이 규명되면 추악한 전력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날 집단이 바로 <조선일보>다. 그러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과거청산을 좌절시키고 싶을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49년 반민특위를 좌절시켰던 논리와 동일하다. 지금이 과거를 따질 때인가, 반공전선에 이상있다는 등으로 과거청산을 가로막았던 논리가 2004년 8월 20일 <조선일보>사설에 똑같이 반복되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청산해야 후대에 부끄러움이 반복되지 않는다”

어차피 차기 대선을 준비해야 할 한나라당으로서는 과거사 청산은 어차피 한번은 건너야 할 강. 김 교수는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이 진정한 개혁보수세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 문제를 한번은 정면으로 부딪쳐 넘어서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하더라도 또다시 발목을 잡힐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표의 과거청산에 대한 원칙적 동의는 정치적으로 의미있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과거청산은 한나라당보다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에게 더 위협적일 수 있다. 그러한 두려움이 강경한 논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김 교수의 생각이다. <조선일보>는 “우리가 조상을 부끄러워해야겠느냐”는 말로 직접적으로 과거청산을 해서는 안된다고 외친다. 그에 대해 김 교수는 부끄러워해야 할 이들과 아닌 이들을 동일하게 취급하며 과거청산이 무의미하다며 왜곡하는 짓은 그만 두라고 반박한다.

“우리 조상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우리 조상이 모두 다 잘못한 것도 아니고 모두 잘 한 것도 아니다. 그중에 잘 한 사람과 못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부끄러워할 이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아 과거청산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부끄러움이 있는지 없는지를 다 덮어버리자고 주장한다. 부끄러움을 청산해야, 조상이 잘못한 일들을 청산해야 후대에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청산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 부끄러움은 계속 반복되어 왔다. 친일파들이 청산이 안되서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학살을 하고, 4.19 때 총을 쏴 어린 학생들을 죽이고, 이들이 청산이 안돼 5.18 때 군인들이 사람들을 죽였다. 부끄러움을 도려내고 공개를 해야 반복이 안되는데, 덮어두자 덮어두자 하면서 지금까지 온 것 아닌가.

그럼 앞으로는 부끄러울 일이 없다는 보장이 있나. 없다. 부끄러운 일을 저지른 사람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공개되지 않고 처벌되지도 않는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은 왜 어떻게 억울하게 되었는지조차 밝혀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반복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나.”

과거청산이 분열과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달리 전망한다. 오히려 과거청산을 저지하려는 일부 보수언론의 왜곡보도가 분열과 혼란을 만들어 낸다고 지적한다.

“진상규명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에 달려있겠지만, 예전에 공권력에 의해 이런 심각한 피해가 있었다는 식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친일이나 6.25 때 가해부분이 공개되더라도 지금에 와서 후대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방식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처벌보다는 진상규명으로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본다. 그래서 과거청산 작업으로 우리사회가 뒤집어지고 이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등의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 사회가 그 정도 수준은 넘었다.

다만 80년대의 경우는 좀 다르다. 예를 들면 정형근 의원을 비롯해 80년대 각종 공안기구, 공안검찰 등의 전력이 드러날 이들이 상당수 있다. 지금 한창 현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80년대 고문전력이 들춰지면 파장이 있을 것이다. 왜나면 가해자가 현직에, 그것도 권력층에 있으니 파장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일각의 우려만큼 엄청난 파장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진상규명을 한다니 가해자 집단이 저항하고 위기의식을 갖는 것은 당연”

과거청산을 막고 싶어하는 이들이 지닌 공포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에 대해 김 교수는 자신들의 부와 권력의 기원과 형성과정이 추적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좀더 직접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은 가까운 과거, 즉 유신 이후의 가해자들일 것이라고 말한다.

“신기남 의원 같은 경우도 물론 본인이 똑똑해서 변호사 되고 국회의원 되고 의장까지 되었다라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후광이 있어 가능한 측면도 있다. 아버지가 친일인사였고 군에 있었고 그래서 자식교육 잘 시키고 출세도 시키고 그럴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자신들의 부와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가 적나라하게 공개되고 추적당하는 것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본다. <조선일보>가 이른바 1등 신문이 된 것도 전두환정권 때다. 전두환정권에 대한 협력이 <조선일보>를 1등 신문으로 만든 가장 중요한 뿌리이기 때문에 이것이 들춰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이 뿌리들이 굉장히 긴, 즉 옛날 것이라면 법적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측면이 많다. 지금 과거청산에 대해 가장 두려워하는 이들은 주로 가까운 과거에 관련된 이들이라고 본다. 즉 유신 이후 정도다. 유신 이후에 정권에 협력을 했거나 간첩조작, 각종 조작과 고문, 의문사 등에 관련된 경찰과 검찰, 안기부 등에 종사한 이들, 이들 중 현재 국회의원이나 상당한 재산을 갖고 있는 이들의 위기감은 상당할 것이다. 이들의 위기의식이 <조선일보>의 논조로 표현된다고 본다.”

김동춘 교수는 이러한 가해자 집단의 저항과 위기의식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다른 나라를 보더라도 과거청산이 깔끔하게 이뤄진 예가 없으며, 강력한 저항이 뒤따랐다고 설명한다.피해 당사자인 만델라가 곧 권력을 잡았으며,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든 남아프리카공화국조차 만족스럽게 과거청산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이미 거대한 기득권층을 형성한 가해자들의 저항으로 꼽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제대로된 과거청산을 할 수 있을까.

“결국 이 문제의 승패는 시민사회의 힘에 있다. 피해자들의 힘만으로는 안된다. 시민사회의 여론의 힘, 과거청산의 절실한 필요성에 대한 공감정도 등 전 국민들이 과거청산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느냐에 이후 향방이 좌우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거사실이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교육된 적이 없어 사실관계를 몰라 결국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다. 예를 들면 박정희정권을 미화하는 논리가 먹혀 들어가는 것도 그런 이유다. 박정권에겐 경제성장 만이 다라고 듣고 그 뒤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판단자체가 없거나 왜곡된 경우가 많고, 그 결과로 과거청산 무용론이 나오는 것이다. 안 보았으니 모르고 모르니 필요성에 공감을 못하는 것, 한마디로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을 탈피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다.”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통합적 기구 필요, 국회 안에 있어서는 안돼”

20일 과거청산 관련 피해자단체 및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거청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들의 주장의 핵심은 두가지다. 먼저 현재 각 검찰과 안기부에서 조사위를 꾸린다, 시민단체를 참여시킨다 하면서 자체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 이들의 자체 진상규명은 본격적인 진행될 과거청산 대한 물타기나 방어용, 생색용 성격이 짙다고 지적한 것이다. 두번째는 “과거청산의 문제를 개별사안으로 다룰 것이 아니라 통합적 사안으로 다뤄야 한다.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할 수 있는 통합적 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필요하다면 통합법, 하나의 단일법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개인적 의견을 내놓는다.

“과거청산 문제를 통합적 사안으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통합법, 하나의 단일법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는 아직 논의를 거치지 않아 하나의 가능성이다. 통합위원회나 통합법의 핵심정신은 민원처리가 아닌 역사정리다. 미래지향적인 화합을 지향하는 것이고 진상규명에 촛점을 둔다.

또한 통합위원회의 위상도 좀더 논의를 해봐야겠지만, 일단 국회 안에 두는 것은 반대하고 있다. 국회에 법안을 만들기 위해 각당이 협의를 하기 위한 기구를 둘 수는 있지만, 진상규명을 처리, 집행하는 기관이 국회에 있으면 의원 선임을 비롯해 매번 싸우다가 볼 일 못 볼 것이다.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할 수 있는 통합적 기구가 필요하다. 법적근거를 가져야하니까, 정부기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들 과거청산 관련 단체들은 20일 기자회견을 통해 민간차원의 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9월 3일 열릴 심포지엄을 통해 이 민간위원회를 공식으로 발족한 후, 민간위원회 실무대표가 중심이 되어 정치권과 서로 협의하자는 제안도 함께 내놓았다. 사실상 이 제안에는 정치권 만의 과거청산 작업을 일단 중단하라는 요구가 포함되어 있다.

“정치인들의 작업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쪽에 대한 신뢰는 없다. 이 문제는 단순히 정치적 사건이 아니다.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민간에서 주도하는 것이 맞다. 또 국회 만이 아니라 정부의 역할도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권위있는 민간위원회를 구성해 압력집단의 역할도 맡겨야 한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과거청산을 한꺼번에 해내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어떤 과제들이 있을까. 김 교수는 시기별로 구분해 설명한다.

“친일이나 강제동원, 동학 등 오래된 과거사 문제는 좀더 학술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너무 오래된 과거이기도 하고, 한국이 정부가 아닌 체계도 있어 학자들이 많이 개입해 학술조사로 하는 수위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 일본 측에 자료를 요청하는 것도 필요한데, 여기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일협정에서 한국정부가 맺은 조약 등이 있을텐데,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국민에게 비밀로 부쳤던 각종 조약 등을 국민에게 공개부터 해야한다. 그리고 위원회가 요구하면 정부가 앞장서서 일본에게 자료를 요청하고 또 보상을 받아내는 것까지 나서야 한다. 이런 것들이 일제시대 이전의 과거사 부분의 의미다.”

해방과 6.25 전후의 시기는 노근리학살처럼 미국도 포함되지만 우선은 한국정부, 특히 군과 경찰에 대한 자료를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억울한 민간인 희생에 대해서 진상규명을 엄중하게 해내는 것이 이 시기의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60년대 이후의 군사정권 시기의 과거청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시기의 공권력 피해부분은 두가지 범주가 있다. 우선 민주화보상법 등 보상차원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 삼청교육대 피해자처럼 이미 보상작업에 들어간 것, 이런 경우는 추가적 진상규명 작업 없이 계속 진행하면 되는 것이라, 이번의 전체 진상규명 작업에는 포함이 안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들과 아직 협의한 것은 아니다.

이걸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진상규명에 걸려있다. 의문사의 나머지 부분이나 유신정권, 전두환정권 하에서의 각종 조작사건과 간첩사건 등은 몇가지 보상문제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진상규명에 걸려있기 때문에 대부분 공권력의 충실한 협조 하에 충실한 사실공개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적 구속력없이 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피해자들 인터뷰 뿐”

일각에서는 과거청산은 정치인이나 시민단체가 아니라 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한다. 한국전쟁을 비롯해 국가권력의 폭력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당사자로서 그는 공권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은폐되거나 폐기된 증거자료에 일개 학자들은 접근할 수 없는 현실을 증언한다.

“문서공개의 일정한 연한도 없고, 공무원들이 자기 마음대로 문서를 파기할 수 있고, 임기가 끝난 대통령이 문서를 자기 집에 가져가는 등, 이런 상황에서는 도대체 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싶어도 자료를 구할 수가 없다. 법에 근거한 공권력, 조사권을 가진 조사력의 뒷받침이 없는 한 학자들은 피해자들의 인터뷰 밖에 못한다.

정부의 공식자료부터 접근가능해야 한다. 또 공권력을 집행한 사람들의 솔직한 증언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일정한 정도의 법적 강제력을 지닌 기구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의 미진한 부분은 학술연구자의 몫으로 남겨질 수 있다. 또 과거청산이 10년, 20년 이렇게 계속 갈 수도 없으니 몇 년 안에 정리를 한 후 과거사 재단 등을 만들어 여기에서 학자들이 미진한 부분을 연구해 좀더 공정하게 정리하면 된다. 그런데 앞 단계를 생략하고 학자에게 맡기자는 것은 과거청산을 하지 말자와 똑같은 말이다.”

“피해자도 살아있고 자료와 증언도 있는 지금 시기를 놓쳐서는 안돼”

왜 지금이냐는 지적도 있다. 그에 대해 김동춘 교수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는 두가지 측면에서 과거청산을 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시점이라고 강변한다.

“우선 피해자가 살아있다. 6.25부터 일제시대까지의 피해자들이 상당히 살아있지만, 10년 안에 다 운명을 달리할 것이다. 피해자가 살아있을 때,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다. 또 하나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할 일들이 산적해 있는데, 과거사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질 수 없다. 어느 정도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살아있고 자료와 증언도 있는 지금의 시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사실 지금이 마지막 시점이라고 본다.”

왜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이에 대해서도 역시 단호하다. 과거청산은 과거의 문제가 아닌 현재, 바로 우리들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자기가 어떤 나쁜 짓을 해도 처벌도, 공개도 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그 피해에 대한 억울함을 풀 수가 없다면? 그럼 어떻게 되겠나. 공권력에 대한 신뢰는 물론 사회정의의 기준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잘못은 언젠가는 들춰진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공권력을 집행자들이 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위치로 갈 수 있다. 그것이 안되면 공권력을 가진 이들은 언제나 민에게 군림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과거청산이란 공권력을 지닌 이들에게는 그 권력에 대한 남용을 자제시키고, 보통 시민들에게는 어떤 것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게 만들 수 있는 일종의 국민적 학습이다. 이런 과정이 없이는 나쁜 짓을 해도 괜찮다는 관행 속에서 가게 된다. 그래서 과거청산은 현실정치적, 사회운동적 의미가 있다.”

그는 다시한번 강조한다. 지금의 시기를 놓친다면 가해자, 피해자들이 없어져 한을 풀수도 없고 자료도 인멸되어 과거사 문제는 결국 영원한 미궁에 빠지게 된다. 영원한 미궁이라, 신화에서는 낭만일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또다른 비극일 뿐이다.

“영원한 미궁에 빠진다는 것은 우리사회가 계속 불신사회로 간다는 것이다. 가해자, 피해자가 있고 과거의 자료가 남아있는 지금이 마지막 시점이다. 올 연말 정도가 현실적인 시한이라고 본다. 올 연말 안에 국민적인 힘을 모아 포괄적인 과거청산을 시작하는 것이 시급하다.

일각에서는 경제나 살리지 뭐하러 과거청산을 하느냐며 좌절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과거청산을 함으로써 경제에 마이너스가 된다는 인과관계가 있다면 또 몰라도 현재 제기되는 경제살리기 논리는 과거청산을 좌절시키려는 공격적 성격이 크다. 무엇보다 본질적으로 과거 문제가 정리되고 사회가 투명해지고 공직자들이 책임을 져야 우리 사회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과거청산은 결국 공직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 아닌가. 공권력을 잘못 행사해 피해자가 생겼다면, 이 역시 범죄다. 국가범죄. 개인이 진 범죄는 민사든 형사든 소송하면서 책임을 지는데, 국가가 저지른 범죄는 책임을 안 진다면 어느 국민이 국가를 신뢰하겠나.

과거청산없이 이 상태로 계속 가면 또 약자들만 당하게 된다. 옛날처럼 공권력에 의한 학살과 고문은 없다손 치더라도 힘센 자는 마음대로 잘못을 저지르고 억울한 일을 당한 약자는 구제도 못 받는 상황이 계속 된다는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 바로 지금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과거청산이란 과거사를 끄집어 낸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사회를 어떻게 책임있게 만들 것인가, 우리사회 투명화와 공권력의 책임을 높이는 작업인 것이다. 이는 국민들의 공감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나는 피해자가 아닌데 무슨 관계가 있나 하면서 왜 저들이 저렇게 떠들까 하면서 무관심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피해자가 되고 나서 그제서야 알면 늦은 것이다. 바로 지금을 놓쳐서는 안된다.”

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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