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9월 2011-09-02   2753

[칼럼] 고등어자반과 어버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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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자반과 어버이 연합

 

이태호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참여연대 사무처장

1. 저는 고등어자반을 좋아합니다. 그 비릿하고 짜디짠, 그러면서도 말할 수 없이 쫄깃하고 고소한 육질은 상상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굅니다.

 

자반에 가장 열광했던 시절은 아마도 대학에 진학하여 서울서 자취할 때였던 것 같습니다. 가난한 자취생을 위해 고등어자반 같이 환상적인 맛과 합리적인 가격의 단백질 공급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행복하기까지 했습니다. 찬밥을 물에 말아 자반 한 점 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마음이 푸근해지곤 했습니다.

 

언젠가 전우익 선생과 권정생 선생간의 일화를 읽은 적이 있는데, 유독 고등어자반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만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권정생 선생이 전우익 선생을 찾아갈 때면 늘 안동 자반을 챙겨 가셨다는 대목에 이르러 비로소 두 분의 소박한 우정이 오감으로 느껴진 것이지요.

 

그런데, 좋아하는 음식을 멀리 계신 부모님이 아시도록 하는 건 결코 현명한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모처럼 찾아간 고향집에서 혹은 처갓집에서 수십 년간 매번 똑같은 요리만, 그것도 배가 터지도록 먹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 경우에는 대학진학으로 집을 떠난 이래 귀향할 때마다 고등어자반 구이와 돼지고기-김치 두루치기로 이루어진 밥상을 받아야 했습니다. 요즘은 장모님에게서 명절마다 찜통 하나 분량의 고등어조림을 얻어먹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가셨지만 고등어자반의 기억은, 한결 같았던 내리사랑, 안온하기 그지없던 그이들의 보살핌의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2. 요즘 대형 집회가 잦은데, 어김없이 어버이연합 어르신들이 출몰하십니다. 그 분들이 오시면 언쟁이 시작되고 종종 드잡이로 이어져 시위 행렬의 젊은 축들이 낭패를 보기 일쑤지요. 일설에는 용돈을 받고 동원된 분들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그 분들의 왕성한 열정을 볼 때 정확한 주장인지 의문입니다. 다른 시위 참여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신념에 따라 자발적으로 참여하신 경우라고 믿고 있습니다.

3차 희망버스 때였던가요? 어느 방송사 기자가 어버이 연합의 일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니 ‘자녀들이 볼까봐 걱정된다’면서 거절하시더라는 얘기가 어버이 연합에 대한 냉소와 더불어 풍문처럼 떠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추측컨대, 그 분 스스로의 행동이 부끄러워서 자녀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한 것은 아닐 듯 싶습니다. 도리어 모든 부모에게 자식이란 원래 그렇게 어렵고도 조심스러운 존재라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 방송 인터뷰를 거절했다던 그 분도 타지에 나가 사는, 생각을 알 수 없는 다 자란 자식들을 위해서 명절마다 고등어자반이나 돼지고기 두루치기 따위의 음식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우리시대의 ‘어버이’중 한 분일 테지요.

 

몸에 배인 근면, 절약, 저축, 재활용, 자녀 교육을 위한 투자… 우리시대의 ‘어버이 세대’들은 어느 세대보다도 강한 사회적 책임감과 후대와의 연대의식을 지닌 윤리적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들이 살아내야 했던 혹독한 분단과 개발의 연대 동안 이 세대에 각인된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요.

 

우리나라 7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10만 명당 160명으로 세계 1위, OECD 평균의 8배라고 합니다. 복지대책 없이 급격히 고령사회로 진입했다는 말로도 설명하기 힘든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입니다. 우리시대의 모든 어버이들은 자녀들에게는 아낌없이 다 내주고 자신들의 노후대책은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고령사회를 맞았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았던 우리 어버이 세대들, 사회안전망을 제공할 국가의 의무를 불가피하게 대행해 왔던 그 헌신적인 세대들이 이제 뼈만 남은 자반고등어처럼 남루한 처지로 전락하여 자살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 세대의 몰락과 더불어 우리사회의 지속가능성에도 붉은 경고등이 켜지고 있습니다.

 

자녀 세대들은 그들대로 줄어든 일자리, 긴 노동시간, 늘어난 사교육비와 생계비, 그리고 한 치도 내다볼 수 없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한가운데서 어쩔 수 없이 ‘캥거루족’으로 내몰리는 손자들과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시대의 ‘어버이들’이 더러 ‘종북좌익 척결’에 앞장서면서도 정작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연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더구나 모든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안전한 밥 한 끼 제공하자는 전통적이고도 소박한 아이디어가 온 사회를 뒤흔드는 극렬한 정치적 사상적 논쟁으로 비화하는 것도 부조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평생을 유보해왔던 행복할 권리를 뒤늦게나마 회복하기 위한 어버이연합이  본격화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즐거운 자중자애의 혁명만이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 파국으로 치닫는 우리사회를 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새로운 어버이연합과 더불어 우리 모두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세상을 향해 담대하고도 겸허하게, 어깨에 힘을 빼고 즐겁게, 따뜻한 연대를 만들어나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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