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9월 2011-09-02   1932

참여사회가 눈여겨 본 일-소박한 삶, 넉넉한 행복

 

생의 무거운짐 내려놓고 대안찾는 사람들

 

욕심은 적어도 행복은 충분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나무 생협 실무자

 

뜨거운 혁명을 품었던 노동운동가… 귀농으로 채운 내면의 삶

 

파주에 사는 김기석 씨(43세 가명)는 귀농한 지 10년 된 젊은 농부다. 경기도 부천에서 10여 년 가량 노동운동을 하다가 2001년, 빌려서 농사지을 땅이 있다는 이유로 휴전선 접경지역인 파평면으로 이주했다. 갖은 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6천여 평 유기농 배 과수원을 가꾸고, 감자와 콩을 돌려짓기하고 단호박과 배추도 기르는 한편 유기농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생물다양성농법’을 실천하는 논농사를 짓고 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혁명이 실패한 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던’ 1990년대 중반, 그 무렵 출간 된 『월든』이나, 니어링 부부의『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오래 된 미래』같은 책들을 읽고 생각의 전환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탓에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제과점에 들어가 새벽 다섯 시부터 자정 무렵까지 하루 열아홉 시간 가까이 혹독한 노동을 견뎌야 했다. 연중무휴로 특별히 정해진 휴일도 없었다고 한다. 그 시절의 노동에 대해 그는 ‘누구나 다 그렇게 살겠거니’ 생각했지 남들에 비해 자신이 더 불행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던 중 스무 살 무렵 1987년 6월 항쟁을 겪으면서 스스로 <말>지 같은 잡지를 찾아 읽게 되고, 서울민중연합이 연 ‘민족학교’같은 민중강좌를 찾아가 ‘인간의 역사’나 ‘정치경제학’ 같은 강좌를 들었다.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이 모두 당연하지만은 않은가보다. 세상을 움직이는 내가 모르는 큰 힘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부천지역에서 10여 년 넘게 노동자조직에서 헌신하던 그는 앞서 말한 대로 혁명에 대한 기대가 무망해지자 세상의 모순을 구조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내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 당시 알려지기 시작한 민족고유의 심신수련법이라는 ‘기천문’을 시작했다. 원불교 교당에 다니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벌써 15,6년도 더 된 일이다. 

  그는 요즘 특별한 일이 없으면 새벽 4시 50분경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잠시 심고(心告) 등 마음 수행을 하고 기천무 수련을 하면 한 시간 반 가량이 지난다. 정 피곤한 날은 그냥 늦도록 자지만 어지간하면 하루 중 이만큼만이라도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그는 아내와 함께 딸 둘을 키우고 있다. 큰아이는 원불교에서 운영하는 대안중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다. 어릴 때 떼어 놓고 자라게 한 일도 마음에 걸리고, 아이도 이제는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싶다고 해서 고등학교는 집 가까이 있는 일반학교로 진학하게 할 생각이다. 대신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는 둘째는 언니처럼 또 다른 대안학교로 진학하고 싶어 한단다.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내기는 했지만 사교육을 따로 시키지는 않았다. 전부터 아이들의 삶에 크게 개입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과 절실하게 깨닫는 것은 달랐다고 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스승을 찾아갈 때까지 다치지만 않게 돌보면서 지켜봐 주자’는 생각을 줄곧 해 왔는데, 요즘은 그 말이 조금 더 절실하다고 했다. 대안학교나 대안교육에 대해서도 요즘 드는 생각은 어디 멀리서 대안을 찾을 게 아니라, 부모의 삶 자체가 대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는 고통을 마지못해 견디는 식으로 살면서 자식에게는 ‘너는 다른 삶을 살라’고 하면 과연 설득력이 있겠는가 싶다고 했다. 부모의 삶이 괜찮아 보이면 아이는 자연스레 그 삶을 따라 갈 텐데 말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무슨 이유인지,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나는 엄마 아빠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겠다. 돈도 주체할 수 없이 많이 벌고 화려하고 폼 나게 살겠다.’는 말을 해 가슴이 허전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소를 키울 때도 묻을 때도, 자연의 흐름 속에 행복을 찾는 사람들

 

경북 의성 쌍호리에 사는 김정상 씨는 예순이 넘은 농부다. 그는 군대에 갔던 잠시를 빼놓고는 평생 나고 자란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다. 그가 사는 마을 쌍호리는 1978년부터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쌍호분회를 결성해 지금도 매월 모든 회원이 부부동반으로 모이는 총회를 열고 있다.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김정상 씨는 스물여덟 아홉 살 때부터 주로 총무를 맡아왔고 지금은 공동체의 대표다. 그가 펼쳐 보여주는 회의록에는 2011년 4월에 389차 회의를 진행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매월 5일마다 월례회의를 하고 해마다 1월에는 총회를 연다. 지난 1월에 32차 총회를 했다. 이렇게 시작한 마을공동체는 우리 농민운동사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가농뿐만 아니라 의성군 농민회의 주축이기도 했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한살림 생산자공동체로 참여하고 있다.

  1970년대 말부터 이 마을은 오원춘 사건이나 수세반대투쟁처럼 농민운동사에 굵은 흔적으로 남은 사건들에 앞장서 왔었고, 최근에는 도시와 결합해 농사와 축산을 완전 순환하는 유기축산 시행으로 이름을 알렸다.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 때문에 촛불집회가 일어난 때나 지난겨울 구제역 파동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공장형 축산과 고기를 달아놓고 먹는 일에 대해 성찰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쌍호공동체 모델은 우리 농업과 축산이 지향해야 할 대안으로 주목을 받았다. 시중의 국내산 한우나 돼지가 대부분 수입곡물 사료로 키워지는데 비해 유기농업에서 나오는 농사부산물 등으로만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오래된 미래’식의 유기축산은 이 마을 공동체의 학습과 각성뿐만 아니라 서울 양천구의 목3동성당, 양천성당 신도 등 도시소비자들의 응원으로 탄생했다. 2001년부터 가톨릭 서울대교구 목동 성당과 안동교구 쌍호공동체는 도시소비자들의 출자금으로 송아지 값을 350만 원으로 정해 재래식 축사, 유기농산물 사료만 먹이는 원칙을 지키며 소를 키워왔다. 다 자란 소가 낳는 두 번째 송아지까지는 사육비 명목으로 농민이 소유하고 새끼를 낳고 비육기간을 거쳐 소가 470kg 이상이 되면 설과 추석 때 잡아서 성당에서 직거래하는 방식으로 1kg당 1만3천 원을 기준으로 소비자들과 나눈다. 소 한 마리를 잡으면 800~900만 원 정도의 고기가 나와 남는 돈은 또 다른 송아지 입식기금 등으로 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소비자는 안심하고 먹을 고기를 구하고, 마을의 논밭은 건강한 생태순환이 가능해진다. 이 방식은 서울지역 75개 본당과 안동교구의 12개 공동체들과 한살림 성남용인과 제주도 한울공동체 등 다른 생협들로도 확산이 되었다.

  그러나 지난 겨울 이웃마을에 번진 구제역 때문에 이 마을도 소를 모두 매장시켜야 했다. 이름까지 지어서 부르며 가족처럼 함께 살던 소들이라 농민들이 받은 상처는 컸다. 그러나 이듬해 봄에 그들을 만나러 갔을 때 그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속상했지요. 말로 다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세상에는 마냥 괴롭기만 한 일도 마냥 슬프기만 한 일도 없는 것 같아요. 소가 없으니 빈 우사를 쳐다보는 것도 괴롭고, 그래서 외지에 나가 있는 아이들한테 가서 모처럼 가족끼리 오붓하게 지냈어요. 마을사람들하고는 그 때부터 아침마다 마을 뒷산에 오르고 있어요. 수십 년 살았어도 옛날에 나무 할 때나 올라갔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산인데 이제는 마을 공동체 식구들이 아침마다 산에서 만나요. 다들 참 재미있어요. 행복하지요. 만날 농사일에 쫓기며 살았는데 이제는 좀 달라질 것 같아요.”

  그는 잘 자라 성인이 된 자식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한 번도 아이들한테 공부하라는 말은 해본 적 없어요. 일 할 때 데리고 나가서 같이 일을 시켰어요. 일 하러 가자고 하면 다들 군소리 없이 따라나서긴 했어요. 그러나 일이 고되니까 다들 공부하겠다고 해요. 고등학교는 안동에서 자취하며 다녔는데, 밥 지어먹고 학교 다니는 게 힘드니까 하숙을 시켜달라고 해요. 안된다 했어요. 밥 먹는 수고를 알아야 밥 귀한 줄 안다. 너희들 엄마 아버지가 농사짓는데 어떻게 그만한 일도 힘들어 못한다고 할 수 있나, 했더니 자기들 생각이 짧았다고 해요.”

  공부하는 아이들 피곤할 세라 밥도 씹어서 입에 넣어줄 태세인 요즘 부모들이 귀담아 들을 만한 이야기지 싶었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이들이 높은 성적을 성취한들 무슨 대단히 보람찬 일을 하겠는가. 어지간한 이들은 간이 떨려서 감히 나서지도 못할 4대강 사업이나 뒷감당도 못할 파괴적인 개발의 길로 세상을 몰아가는 짓이 다들 소위 일류대학을 나와 경쟁력 갖췄다는 파리한 손들이 저지르는 짓 아닌가.

 

‘행복한 삶’의 전제조건은?

 

우리나라에도 브르더호프 공동체에 다녀온 사람들이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다벨 공동체도 영국과 미국,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이 공동체 가운데 하나다. 런던에서 한 시간 반가량 떨어진 로버트 브리지에 있다는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원충연 씨로부터 지난 봄 편지를 받았다. 당나귀로 수레 끄는 법을 배운 일, 거의 온종일 맨발로 뛰어노는 아들 동경이, 아내 아일린이 둘째를 낳았다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출발한 이들은 평화의 가치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무소유 공동체로 이 마을 사람들은 주로 유아용 목재 완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함께 일하며 수익과 재산은 모두 공동소유하고 필요한 물건이나 비용은 담당자에게 신청해서 받는다고 한다. 아침은 각자의 집에서 먹고 점심과 저녁은 함께 모여 먹는데, 자신들이 직접 기른 것들이거나 공동구매한 재료로 소박하게 먹는다고 한다. 원충연 씨가 한국에 와있을 때 들은 바에 의하면, 밤 10시까지는 어느 집이든 불쑥 찾아들어가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여서 합창하는 일을 즐기는 이들은 또 ‘남의 험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다고 해 인상적이었다.

 

  종종 ‘가장 행복한 나라’로 소개되고 있는 중미의 코스타리카. 1949년 군대를 없애면서 국방비에 들어가는 돈을 독서진흥에 쏟아 부었고, 1980년대 이후 열심히 나무를 심어 지금은 국토의 절반 이상이 나무로 덮여 있다고 한다. 에너지 공급원의 90% 이상이 재생가능한 자원이고, 춤과 노래, 맛있는 커피를 즐기면서, 도달하지 못한 미래 때문에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감사하게 여길 줄 안다는 그 나라 국민들 가운데 85%가 지금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한다.

  멀리 있는 나라의 사례들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귀농자들이 주축이 돼 일군 마을공동체들이 경쟁과 소비를 향해 무한 질주하는 요즘 세태와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북 부안의 산들바다공동체는 원래 그 마을에 살고 있는 농민들과 이웃의 변산공동체를 거쳐 온 귀농자들이 함께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도시소비자들과의 빈번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고 마을 폐교는 도시에서 방문하는 이들에게 개방돼 있다. 이들은 유기농 농산물을 한살림에 내는 것뿐만 아니라 품앗이와 두레에 기반 해 마을 문화를 이어가고 있고, 단순히 팔기 위한 작물만 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급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마을 텃밭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사례는 앞서 말한 경북의성 쌍호리도 마찬가지였다. 대개의 농촌마을이 ‘생산물 출하처’로 전락하면서 농촌마을에도 채소를 팔러 다니는 트럭 행상이 돌아다니고 있는 요즘 현실에 대해 이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괴산에 있는 솔뫼농장이나 문경의 가은, 제주도 같은 곳에 있는 마을에도 다양한 사례가 있다.  

  생태적인 대안공동체, 저소비 자급자족의 소박한 삶만이 행복이고 이것을 위해 세상의 큰 흐름을 당장에 바꿀 수 있다는 말은 차마 못하겠다. 행복은 주관적인 관념일 수밖에 없으니 사람마다 만족감을 느끼는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 뻔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며칠 단식 끝에 핥아먹는 미음이 산해진미가 넘쳐나는 음식상보다 더 감동적인 것에 떠올려 봐도, 행복은 더 추구할 것이 없게 욕망이 충족된 상태에서가 아니라 절제와 금욕을 통해 그나마 도달할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그리고 균형 잡힌 섭생과 건강한 노동, 그것이 어렵다면 꾸준한 운동을 하면서 몸과 의식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 그러나 말이 쉽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소박한 밥을 규칙적으로 즐겁게 먹으면서 이웃들과 즐거운 노동을 하기란 공중부양을 하는 일 만큼이나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군들 모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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