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9월 2011-09-02   2259

아주 특별한 만남-이옥수 회원

 

“여럿은 하나를, 하나는 여럿을 위해…
더 이상 시민이 거리에서 울지 않는 세상을

그립니다”

 

이옥수 회원

 

 

이경휴 수필가, 『참여사회』 시민기자 

이옥수 회원

유난히 비가 잦고 많았던 여름이었다. 초여름 사정없이 내리쬐던 햇살은 한여름이 되자 빗줄기로 변하여 시원함과 눅눅함으로 여름을 마무리했다. 천재, 인재 공방 속에 하늘은 더  없이 높아만 가고 아침저녁 불어오는 선들선들한 바람은 물난리의 악몽을 잊게 한다. 지나고 나면 한순간이라 우리들은 쉽게 잊어버리는 걸까. 생활의 터전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설움과 고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 몇이나 될까.

  추석이 내일모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던 찬탄의 문구는 빛바랜 흑백사진이 되어 서민들의 시름을 깊게만 한다. 당장 차례상에 과일 한 접시나마 풍성하게 올리기 어렵게 물가는 뛰었으니 친서민정책이라던 말은 너덜너덜 해진 천 쪼가리다.

  문득 시사만평의 한 컷이 생각났다. ‘공사’로 시작하여 ‘공갈? 공안’으로 협박하며, ‘공정·공생·공존’으로 덧칠을 했지만 결국은 ‘공룡’들만 살아남은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것. 하지만 공룡은 화석으로만 남아있다는 사실을 이 시대의 공룡들은 깨달아야만 한다. 참으로 팍팍한 세상살이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공룡들의 각성을 요구하며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200여 일 넘게 고공 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이는 ‘소금꽃’ 김진숙님을 비롯하여,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논란, 최저임금현실화…. 민생과 관련된 집회와 시위로 서울광장은 주말마다 희망의 꽃송이가 피어오른다. 지난 주말, 그곳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늘 낮은 자리에서 연약한 듯하면서도 끈질기게 무수히 많은 꽃을 피워내는 풀꽃 같은 사람, 이옥수 회원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어느 시인의 시구가 떠오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는 바람에 ‘삼고초려’의 수준까지 갔었다. 나름의 이유는 분명했다. 자칭 자신과 같은 ‘진성회원’보다는 새로운 인물을 찾아 그들을 인터뷰함으로써 그들에게 참여연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하라고. 의미 깊은 그 뜻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참여사회 편집진 역시 9월호에는 나름의 회원 선정 기준이 있었다. 창립 17주년 기념 후원의 밤 행사를 앞두고 참여연대와 함께 거리에서 비바람을 맞아온 ‘맞춤형 회원’을 원했다. ‘주례사’같은 이야기보다는 달고 쓴 소리로 회원의 뜻을 대신할 것을 예상하면서.

 

그녀의 작은 미용실에선 소박한 사람 냄새가 났다

퇴근 시간에 맞춰 종로 3가에 있는 그의 직장인 미용실로 갔다. 대로변 큰 빌딩 뒤에는 작고, 초라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이마를 맞대고 정겹게 늘어져있었다. 몸을 움직여서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들의 땀 냄새가 물씬 나는 풍경이었다. 어렵잖게 찾아간 한 상가 2층에는 삼십 여 년 가깝게 꾸려온 그의 세계가 한눈에 보였다. 6평 남짓한 공간이라지만 한 벽면 가득 장식된 거울은 훨씬 넓은 분위기를 자아냈고, 여러 종류의 가발과 미용 기기들은 흡사 분장실로 착각할 정도였다. 테이블 위에는 기다리는 손님을 위한 배려로 건강 관련 책들이 놓여있었다. 세태를 좇아가는 상업성 짙은 헤어숍이 아니라 그녀답게 소박하고 사람 냄새나는 미용실이었다.

  혹시나 싶어 직장을 소개할 때, 미용실이나 헤어숍 중 어떤 걸로 표기하기 게 좋겠느냐 했더니, 당연히 미용실로 써달라고 했다. 하도 언어사대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 조심스럽게 한 질문이었는데, 역시나 그녀다운 답변이었다.

  또 하나 더, 생각지도 않게 곤혹스러웠던 제재가 있었다. 나이를 굳이 밝히지 말라고 하니 예상 밖이었다. 여태껏 나이를 밝히는 걸 당연하게 여겼고 그보다 훨씬 더 연로하신 분들도 그런 요구가 전혀 없었는데 순간 당황스러웠다. 한편 상대를 배려하지 않았던 나 자신의 무심함에 섬뜩 놀랐다. 이유인 즉, 인터뷰이가 갖고 있는 고갱이가 중요할 뿐 겉모양새들을  굳이 전달할 필요가 있느냐면서 가벼운 설전이 있었다. 서로 웃으며 어쨌든 그럼 고갱이를 캐기로 하자며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왼쪽, 이옥수 회원

 살맛나는 세상? 사람이 중심인,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 세상!

‘따뜻한 연대로, 살맛나는 세상을!’ 꿈꾸는 후원의 밤 행사가 첫 번째 화제였지만, 먼저 회원 가입 동기부터 간략하게 듣고 싶었다.

  “낙천·낙선운동으로 정치개혁을 꿈꿨던 2003년 말로 기억합니다. 몇 군데 진보단체에 회비만 내는 회원으로 가입해있었죠. 그런데 참여연대는 에너지와 역동성이 넘치는 단체라는 생각이 들어 선뜻 회원 가입을 했죠.”

  초심의 열정 그대로, 지금도 주말이면 대부분의 시간을 집회나 농성장에서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곳에서 그녀가 키워왔던 ‘살맛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간단하죠. 인격을 존중해주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 세상이죠. 가치 중심이 물질에서 사람으로 옮겨와야지, 구조조정, 정리해고, 비정규직… 이런 말들의 중심에 뭐가 숨어있어요?”

  아주 노련한 솜씨는 서툰 것 같이 보인다는 대교약졸大巧若拙의 말뜻처럼, 간단명료하게 내린 한마디가 그녀의 철학이요, 우리 모두가 염원하는 평화로운 세상이지 싶다. 허나 그 길이 요원하기에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으로 향하고, 곳곳에서는 1인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녀 역시 그 버스를 타고 부산엘 다녀왔다고 하며, 쓸쓸한 표정이 잠시 스쳐갔다.

  ‘따뜻한 연대’를 위한 특별한 묘안이라도 있는지 슬쩍 질문을 건넸다.

  “그야말로 개개인의 따뜻한 성품을 바탕으로 하나는 여럿을 위해, 여럿은 하나를 위해 소통함은 기본이요, 이기기 위해서 질 수도 있다는 아량도 있어야겠죠. 지난 시절 김영삼, 김대중이 연대하지 못해 역사에 끼친 오점은 두고두고 회자 되지 않습니까. 지금도 그 역사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만, 더 이상 시민들을 길거리에서 울게 하지 않아야 할 텐데……”

  흥분의 수위를 조절하며 이야기는 이어져갔다. 결코 수직적 통합이 아닌 수평적 연대가, ‘통統’이 아닌 ‘통通’의 연대가 절실하리라.

 

‘뜻은 나누고 행동은 함께’그래서 그녀는 길 위에 선다

길 위에서 보낸 많은 시간의 시원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던 친정 오빠의 영향이 컸죠. 때문에 20대 초반부터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소리』를 읽고 민중신학에 관심을 가졌고, 청계천을 다 뒤져 『사상계』 전권을 구해 읽었죠. 그 책 모두가 내 손에 들어왔을 때의 뿌듯함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민중신학 관련 책들을 많이 읽긴 했지만 종교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어요. 책들을 통해 실천의 힘을 키웠다고 할까요? 이젠 시간적으로 여유도 있고 집회에 가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만나 반갑고. 때로는 머릿수 하나라도 더 채워준다는 의미로 자주 나갑니다. 어차피 뭔가에 빠지고 사는 게 열정적인 삶 아닙니까?”

  가장 인상적이었던 집회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2002년 효순·미선이 사건과 2004년 노대통령 탄핵 촛불집회를 잊을 수 없어요. 효선·미선이 땐 의정부를 오가며 온몸을 던져 했던 촛불집회였죠. 소파 개정을 위해 범국민서명운동에 무려 140만 국민이 동참하여 국제적 관심사가 되었잖아요.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교훈이었는데 지금도 나아진 건 없는 현실이네요. 해방이 되었다고 하지만 어디 우리가 해방된 겁니까. 일본 대신 미국이 들어온 거죠. 미국이 재채기하면 우리는 감기 걸리는 나라잖아요.”

  정곡을 찌르는 대침이다. 얼얼하고 쓰라렸지만 반론을 제기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가 감지하기조차 어려운 예속적인 관계가 얼마나 많을까. 깊숙이 뿌리를 내린 무감각한 일상이 점철되어 가며 역사를 이뤄간다. 대책 없는 낙관이 늘 시대의 고통과 절망을 역사를 설득해 왔듯이. 울분과 비탄에 잠긴 목소리가 잔잔하다 폭포를 만난 듯 소용돌이치며 흘러갔다.

 

“참여연대 17년. 쓴소리 귀담아 듣고 회원을 아끼길”

‘가위손’에 얽힌 개인 ‘신상’을 잠시 털어봤다.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보람에 대하여 짧게나마 얘기를 부탁 드렸다. 웃음으로 시간을 벌자는 계산인 듯하여 독자들의 ‘알권리’라고 협박(?)을 하니 ‘재미’ 아니라며 맞받아쳤다.

  “결혼 전에는 직장생활을 했죠. 그러다 아들이 유치원에 들어가자 여유가 좀 생겨 뭔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게 이 일이 되어 지금껏 하고 있어요. 머리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으니 수입도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고, 요즘 자영업자들 모두 힘들어 하지만 전 욕심 버리고 그럭저럭 꾸려나가고 있어요. 보람이라면? 80년대부터 수배자들의 머리를 깎아주면서 잠시나마 그들에게 피난처가 되었다는 건 외에 별로 없네요.”

  무지막지 했던 공안시절의 일을 태평성대에 있었던 일화처럼 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때문에 그녀 곁에는 언제나 어제, 오늘의 사람들이 끓고 있으며 내일도 변함없으리라 싶다.

  예정된 시간이 가까워지자 참여연대에 대한 자유로운 발언을 청했다. 창립 17주년을 맞아 비상하는 참여연대를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밖에서 참여연대가 매너리즘에 빠진 단체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동안 낙천·낙선운동, 한미FTA반대운동, 광우병쇠고기수입반대운동 등 사회 큰 현안이 터질때마다 현장에서 시민과 함께 했다는 건 잘 알지요.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참여연대가 더 낮은 곳에서 더 어려운 시민들과 함께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2000년, 2004년 정치개혁을 위해 다 바꾸자면서 낙천·낙선운동에 뛰어든 간사들의 열정은 정말 감동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현장이나 집회에서 간사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요. 항상 나오던 몇몇 사람 빼고는…”

  고개만 끄덕이며 경청할 뿐이었다. 섣불리 변화된 세태와 개인주의적 흐름을 논하며 반론을 제기하기엔 그녀의 의지가 단호했다.

  “간사들의 열정적인 활동을 바라는 마음에 쓴소리를 했지만, 간사 복지에 대해서도 사무처가 더 신경써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간사 이직률이 높은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활동하고 기본 생활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야지요.”

  회원 관리에 대한 발언이 이어졌다.

  “회원들과 종종 이야기 했던 게, 신규 회원을 늘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회원 관리도 부탁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탈퇴한 회원에게도 가끔 전화도 하고 문자나 소식도 보내면서 계속 관리를 하면 다시 참여연대 식구가 될 분들이 있을 거에요.”

  “시민참여 팀은 회원들의 창구예요. 그래서 이왕이면 시민참여팀 간사들은 친절하고 친화력 있고 소명감 있는 간사들이 있어주면 좋겠어요.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소통이 더 활발해졌으면 해요. 회원 서비스 차원에서 이러저러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말을 했지만 듣기만 할 뿐 답변이 없더라고요. 못하고 안된다면 어떤 이유가 있는 건지, 묵묵부답일때는 때론 무지 섭섭해요. 이거 원, 회비만 내라는 건지…하하하”

  쓰디 쓴 말이라 생각했는지 그는 시원하고 호탕한 웃음으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회원들의 쓴소리가 달게 들렸으면 좋겠어요. 물론 회원 대부분이 참여연대를 신뢰해서 알아서 잘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응원하지만, 세심하게 신경쓰고 잔소리하는 회원들도 있어야 서로 긴장감을 놓지 않고 오래 활동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관심과 애정을 가진 사람들의 당연한 의사 표현이지 싶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좋아하는 시인이나 작가를 물었다.

  “도종환 시인입니다. 한겨레신문에 연재될 때 감명 깊게 읽었어요. ‘담쟁이’라는 시도 좋고, 이번에 새로 나온 ‘삶 이야기’라는 에세이도 좋더라고요. 아마 아픔이 있는 사람이라 자신의 깊은 속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시를 쓰는 것 같아요.”

  마무리를 하면서 서두에 펼치는 글이 떠올라 마음이 가뿐했다. 하나는 여럿을 위하여, 여럿은 하나를 위해 살 수 있는 세상이 참여연대가 지향하는 방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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