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10월 2011-10-05   1703

김재명의 평화이야기-‘피 묻은 석유’ 둘러싼 21세기 석유전쟁

 

피 묻은 석유’둘러싼 21세기 석유전쟁

 

 

글·사진 김재명 <프레시안>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중동의 20대, 30대 젊은 세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오직 한 사람의 대통령만 보고 자랐다. 이집트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1981년 집권),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1969년 집권)의 집권 기간이 30년 넘겼으니 그럴 만도 했다.  2011년 봄부터 불어 닥친 중동 민주화 바람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죽어서야 권좌에서 물러날 것 같던 독재자들이 민주화 바람에 쓸려나갔다. 리비아의 40년 독재자 카다피의 몰락에 결정타를 가한 세력이 누구일까. 반정부군이란 대답은 절반은 맞는 얘기지만 정답은 아니다. 카다피를 몰락시킨 결정적인 힘은 지중해 건너편에서 왔다. 유럽의 안보를 책임진다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였다. 나토의 공습만 없었더라면, 카다피에 충성스런 정부군이 그렇게 호락호락 궤멸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카다피-알아사드의 운명 가른 변수

나토군의 공습은 “카다피의 독재로부터 신음하는 리비아 국민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뭔가 석연찮은 점이 보인다. 중동의 또 다른 독재국가인 시리아와 관련해서다. 그곳 시민들도 민주화를 요구하며 날마다 거리에 나서왔다. “카다피 물러나라!”를 외치다가 정부군의 총격에 죽은 사람만도 3천명에 이르렀다. 유엔이 지난 9월 중순에 추정한 사망자 숫자만도 2천 6백 명을 넘어섰다. 그런 엄청난 희생만 치렀는데도 국제사회의 개입은 매우 느슨한 편이다. 나토의 무력개입 움직임도 없다.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는 권력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나토는 리비아 인들의 인권을 지켜준다는 명분으로 공습을 가했지만, 시리아는 나 몰라라 하고 못 본 체 하고 있다. 왜 그럴까. 시리아의 인권은 리비아의 인권보다 소중하지 못해서일까.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는 아버지 하페즈로부터 정권을 이어받아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은 독재자다. 2대에 걸쳐 많은 사람들을 죽였기에, 카다피보다 더 악랄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도 알아사드는 다마스쿠스의 대통령궁 안에 멀쩡히 살아 있고, 카다피는 트리폴리에서 쫓겨나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 그들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석유라는 변수를 빼면 설명이 안 된다. 세계적 석유메이저인 브리티시 페트롤리움BP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리비아는 원유매장량에서 세계 8위(2010년 기준)이고 하루에 16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왔다. 시리아에서 나오는 석유는 보잘 것이 없다. 석유를 수출하기는커녕, 국내 수요에도 모자라 동쪽에 국경을 맞댄 이라크로부터 석유를 들여오는 형편이다.

  이익이 있으면 개입하고 없으면 안하는 게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다. 카다피에 충성하는 리비아 정부군을 폭격하는데 열심이었던 국가들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였다. 미국은 무력 개입에서 한발 뒤로 빠져 있었다. 유럽국들은 리비아의 석유를 많이 수입해 왔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리비아 혼란은 리비아로부터 석유를 들여오는 유럽의 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빨리 개입해서 안정시켜야 한다. 이 점에서 미국과 서유럽은 이해관계에서 달랐고 군사행동에서 차이가 났다. 시리아는 아예 군사개입 대상에서 빠졌다. 석유 때문에 카다피는 고단한 처지가 됐지만, 알아사드에겐 석유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복이 됐다.

  유럽국가들이 내걸었던 리비아 군사개입 명분은 ‘인권보호를 위한 인도주의적 개입’이었다. 지난 2003년 미국이 사담 후세인의 독재로부터 신음하는 이라크 국민들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며 이라크를 침공했던 명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과 유럽의 강대국들은 하필 이라크와 리비아의 인권만 걱정해줄까.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처럼 절대왕정이 다스리는 나라의 인권침해에는 왜 침묵할까. 미국은 이슬람 독재자들 가운데 친미 노선을 걷는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같은 나라들의 독재에 대해선 먼 산 보듯 해왔다. 여기에서 미국의 허구적인 중동민주화론과 이중잣대가 드러난다. 안정적인 석유 공급을 약속하는 나라는 독재라도 상관없고, 반미 성향을 보이는 산유국의 지도자는 인권과 민주화 잣대를 들이대며 이른바 체제변혁regime change을 꾀하려 해왔다.

 

전쟁으로 ‘피 묻은 석유’의 갈증 푼다?

브리티시 페트롤리움 2011년도 자료집에 따르면, 지구에는 약 1조3천8백억 배럴쯤의 원유가 묻혀 있다. 매장량이 많은 나라를 꼽아보면 1위 사우디아라비아(전체 매장량의 19.1%), 2위 베네수엘라(15.3%), 3위 이란(9.9%), 4위 이라크(8.3%), 5위 쿠웨이트(7.3%), 6위 아랍에미리트(7.1%), 7위 러시아(5.6%),  8위 리비아(3.4%) 순이다. 중동지역에만 전 세계 원유매장량의 54.4%가 묻혀 있다. 이 BP 통계에는 아프리카의 중동국가인 리비아, 알제리가 ‘중동’ 범위에서 빠져있는데, 이들 두 나라까지 합치면 중동지역의 매장량은 거의 60%에 이른다.

  미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5%이지만 석유 소비는 21%에 이른다. 에어컨을 마구 켜대고 자동차도 큰 것을 좋아해 석유 소비가 헤픈 편이다. 그래서 “미국은 석유에 중독됐다”는 비판마저 받는다. 미국은 이미 1970년대 초에 석유 생산량이 정점을 찍었고, 이제 앞으로 2020년이면 국내산 석유도 바닥이 난다. 다른 나라로부터 석유공급이 끊어진다면 커다란 경제위기에 빠질 것이다. 서유럽국가들도 사정이 절박하기로는 마찬가지다. 값싸고 안정적인 석유 공급선을 확보하려는 데 강대국들의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석유 소비에서 세계 10위권(2010년의 경우 9위) 안에 있는 한국으로서도 석유 파동이 터진다면 경제에 치명적이다.

  문제는 전쟁을 통해서라도 석유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강대국들의 패권적 야망이다. 석유 생산량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소비는 줄지 않는다면, 석유 이권을 차지하려는 강대국들의 패권야욕이 또 다른 전쟁을 부를 수도 있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2006년 작)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캐내는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잘 드러냈다. ‘블러드 오일’도 마찬가지다. 갈수록 줄어드는 석유 자원의 유한성과 맞물려 ‘피 묻은 석유’를 둘러싼 강대국의 갈증이 지구촌 평화를 위태롭게 만들 가능성은 커져 간다. 바로 이것이 21세기 지구촌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걱정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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