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10월 2011-10-05   1665

경제, 알면 보인다-빚쟁이 만드는 탁월한 실력

 

빚쟁이 만드는 탁월한 실력

 

 

제윤경 (주)에듀머니 대표

 

부동산에 대한 투기 열풍이 거세던 2006년, 세상이 집 때문에 시끌시끌했다. 외환위기 이후 불안한 노동이 일상이 된 서민 중산층은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달픈 삶을 살았다. 오늘 보다 못한 내일을 살게 될 것이란 불안함, 그 불안과 더불어 재테크의 환상은 ‘당신도 노력하면 일확천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으로 사람들을 비이성적으로 몰아갔다.

  고달픈 삶의 상처와 일확천금의 욕망이 한데 뒤섞여 집에 대한 탐욕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전세 계약이 끝날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전세금 인상의 공포, 특히 저소득층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사 다닐 때마다 지금 집보다 더 나쁜 상태의 집으로 쫓겨날 비극에 내몰렸다. 갖고 있는 전세금으로는 더 나은 집은커녕 현재 수준의 집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 집을 가질 수만 있으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집 값으로 부자가 된다는 환상이 순식간에 사람들의 탐욕을 부추겼다. 상실감과 탐욕이 뒤섞인 집에 대한 욕망, 이런 환경에서 어느 주부는 그 당시 아직 어린 초등학생 딸에게 ‘너는 집 한 칸이라도 있는 남자와 결혼하라’는 말을 주문처럼 반복했다고 한다.

  사는 동네와 평수,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삶의 수준과 인격까지 평가받는 이상한 세상에서, 서울시의 2006년 장기전세주택 정책은 그야말로 주거복지의 새로운 상을 제시하기 충분해 보였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구호와 더불어 주변 시세 80% 수준의 전세금으로 20년 동안 주거 안정이 보장된다. 전세금 폭탄을 맞지 않아도 되는 시프트는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심만 없을 뿐 내 집이나 다름없는 새로운 주거 복지개념이다. 그러나 이런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장기전세주택의 현실은 극복해야 할 결정적인 오류를 몇 가지 갖고 있다.

 

저소득층, 그림의 떡 먹고 체해

굳이 적정 수준의 전세금을 결정하는 방식이 아닌 주변 시세에 연동하는 전세가 설정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저 ‘와, 주변과 비교해 싸다. 참 좋은 서울시다’라는 반응을 기대했던 것이 아닐까. 주변시세 연동은 이미 폭탄에 가까운 전세금 환경을 그대로 쫓아가는 이상한 정책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미 주거 복지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이지 시민의 실질 구매능력에 적절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115㎡형을 제외하고는 소득 제한이 있어 저소득층이 당첨 접근성이 높은 편이다. 문제는 저소득층이 장기전세주택에 당첨이 될 경우 현실적으로 빚폭탄을 안게 된다는 것이다. 은평 뉴타운 단지의 장기전세주택 33평에 입주하게 된 유 모 씨가 바로 그러한 사례에 해당된다. 보증금 3500만 원짜리 전세에 거주하고 있던 유 씨는 자녀가 셋이다. 대다수 서민들이 그러하듯 쾌적한 환경의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이 꿈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유 씨는 부인의 적극적인 시프트 청약에 혼자 속앓이를 했다. 1억 5천만 원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1억이 넘는 빚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당첨이 되고도 기쁘기만 하지 않았던 유 씨는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장기전세주택의 경우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전세가의 80%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결국 1억 2천만 원 대출을 받았다. 2천만 원은 연 4% 이자 부담에 국민주택기금 대출이고 1억은 SH협약 은행 대출로 이자율이 5.5%나 되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전세금의 4배 가까운 빚을 지게 되면서 이제 매월 이자 비용으로만 53만 원 가량을 꼬박꼬박 지출하게 생겼다. 그 뿐 아니다. 평수가 적지 않다보니 매월 관리비부담도 만만치 않다. 최대한 아껴 쓴다고 해도 10만 원 이상은 관리비로 써야 한다. 땅값이 비싼 지역이라서 그런지 물가도 이전 거주 지역에 비해 10%나 비싼 듯하다는 하소연도 한다. 입주를 앞두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부인과 아이들 앞에서 이자 비용과 관리 비용으로 63만 원이나 부담해야 할 것 때문에 한숨만 늘지만 차마 입주를 포기하자는 말도 꺼내지 못한다. 심지어 부인은 대출 받은 돈에서 이사 비용을 쓰고도 약간의 돈이 남는다며 신용카드 한도까지 전부 소진해 새 아파트에 맞는 새 가구와 가전제품을 구매했다. 그 돈이 무려 300만 원이나 된다. 소득은 240만 원인데 그 중 30% 가량이 고스란히 집 때문에 고정적으로 빠져나가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민주택보증에서 대출받은 2000만 원에 대해서는 2년마다 원금의 20%인 400만 원을 상환해야 한다. 부채 상환을 위한 적금까지 감안하면 주거비용으로만 매월 80여 만 원을 지출해야 한다. 중산층 즉 이미 전세자금을 1억 이상 쥐고 있고 매월 현금흐름이 원활한 계층에게는 이만큼 좋은 정책은 없다. 주변 시세에 연동한다고는 하지만 20년 동안 주거 불안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전세금 폭탄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이미 국민임대주택이나 공공임대주택에 중산층의 접근성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장기전세 주택은 임대료 부담도 없이 가지고 있는 전세자금으로 주거 안정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매력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하철, TV 등 온갖 매체에 홍보했던 것에 비해 공급량도 1만 호가 채 안 되는 수준으로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2020년까지 11만 호를 공급할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최근 SH공사의 누적 적자가 심각해 실제 공급에 대해 여러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만약 이전 서울시장의 공약대로 한강르네상스니 예술섬과 같은 전시성 사업이 계속 추진된다면 아마도 공급물량이 불가피하게 크게 축소되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행이 오세훈 시장의 사퇴로 서울시 여러 정책을 전면 재검토 해 서울시민의 민의를 반영한 선택을 기다리게 되었다. 중산층의 주거 복지와 저소득층의 주거 복지가 한데 혼합되고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신용이 제공되는 정책은 복지정책이 될 수 없다. 소득 수준을 고려한 복지정책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림의 떡을 먹고 체하게 되는 우를 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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