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10월 2011-10-05   1734

안건모의 사는 이야기-‘전태일이 누구야?”

 

“전태일이 누구야?”

 

 

안건모 <작은책> 발행인

 

9월 7일 이소선 어머니 노제에 참석하려고 혜화동 가는 버스를 탔다. 어? 버스 기사가 아는 사람이다. 옛날 333번 삼화교통에서 같이 일하던 선배 기사다.

  “어디 가?”

  “네, 오늘 이소선 어머니 노제에 참석하려고 혜화동 가요. 여전히 버스 운전하고 계시네요.”

  “그럼, 내가 다른 거 할 게 있나? 근데 이소선 어머니가 누구야?”

  “아, 전태일 열사 어머니요. 이번에 돌아가셨잖아요.”

  “전태일은 누구야?”

  헉! 말문이 막힌다. 뭐 이 정도면 전태일이 누군지 설명을 해 줘도 별 소득이 없다. 그저 안전운전하시라고 하면서 자리를 찾아 앉을 수밖에.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소선 어머니는 몰라도 전태일은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모르는 이들이 많다.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알아도 무엇을 한 사람인지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다. 지난 추석 때 큰집을 가서 작은형님을 만나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형님이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네. 난 전태일 이름은 알지” 하고 웃었다. 그 형님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그나마 많은 분인데도 그렇다.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고발하면서 분신 항거한 전태일은 1948년생이다. 전태일이 분신한 해 당시 나이는 22살이었다. 나보다 10년 위였기 때문에 계산을 해 보면 내가 12살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이었다. 나는 일곱 살 때 학교를 들어가 그 나이에 초등학교 졸업을 하면서 공장을 들어갔다. 그리고 두 살 아래인 내 여동생도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고 공장을 들어갔다.

  나는 나무 의자를 만드는 공장 노동자였고, 내 여동생은 피복 공장 시다였다. 여동생은 몇 년 뒤 미싱사가 된다. 전태일이 그렇게 안타깝게 생각했던 여공 가운데 한 사람도 내 여동생인 셈이다. 아마 그때까지 전태일이 살아 있었다면 내 여동생도 전태일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았겠지.

  배 다른 큰형님을 빼고 2남 2녀인 우리 형제들은 모두 현장 노동자 출신이다. 같은 현장노동자 출신들인데 ‘전태일’과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다르다. 이를테면 ‘전태일이 그렇게 분신했어도 지금 달라진 게 있냐’와 ‘전태일 때문에 우리나라 노동자들과 지식인들이 사회에 눈을 떴고 노예 의식을 던져 버리고 일어날 수 있었다’ 차이다. 또 ‘박정희 정권이 독재이지만 그래도 그 사람 덕분에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하는 것과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 재벌 독재 사회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차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주권이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다’와 ‘대한민국은 제국주의 미국에 예속된 식민지와 마찬가지다’의 차이다. 이렇게 똑같은 집안에서 똑같은 현장 노동자로 살아와도 생각의 차이는 크다. 사실 지금 우리 형제들 이야기를 하지만 다른 노동자들도 같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학벌(?)로 똑같이 노동자로 자란 형제들조차 이렇게 사회를 다르게 바라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책이었다. 책을 읽었는가 안 읽었는가 하는 차이다. 그리고 어떤 책을 읽었는가 하는 차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나 또한, 우리 형제들, 그리고 평범한 대다수의 ‘근로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저 나만 열심히 일하면 돈도 벌고 집도 사고 가족들과 잘살 줄 알았다. 공장과 건축 현장과 화물차와 자가용 운전사 일을 하면서 이 사회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뛰어오르는 전세비를 내가 버는 돈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걸 알고는 처음으로 이 사회 구조를 의심했다. 그러다 어느 날 좬쿠바혁명과 카스트로좭라는 책을 보게 됐다. 쿠바가 혁명에 성공한 뒤  미국을 쫓아내는 과정을 보면서 나는 내가 배운 역사를 의심했다. 그 뒤 나는 우리나라 역사가 궁금해 박세길이 쓴 좬다시쓰는 한국현대사좭를 봤다.

  그 책을 보고 나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해방됐는지, 내가 ‘대한민국 초대대통령’, ‘건국의 아버지’로만 기억하고 있던 이승만이 어떻게 친일파와 손잡고 권력을 잡았는지, 미 제국주의의 하수인인 맥아더가 우리나라를 어떻게 점령했는지 알았다. 그리고 친일파 후손들과 박정희 독재 세력에게 우리 현대사가 어떻게 왜곡되고 은폐되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뒤 나는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알고 싶어 인문학 책을 보기 시작했다.

  전태일 열사 책을 본 것도 그때였다. 그 책을 보고 청계천 피복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현실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나와 우리 형제들, 그리고 내 또래 노동자들이 그렇게 지독하게 일을 하고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고, 전태일이 자신과 함께 불사른 근로기준법이 내 자신과 우리 노동자들과 직접 연관이 있는 법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런 책 한 권을 보면 사회를 보는 눈이 트이고 삶의 질이 달라질 텐데 우리 노동자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전태일 알아요?” 하면 “아뇨, 내용은 알아요” 한다. 노동자들이 책을 읽지 않는 핑계는 시간이 없다는 것. 하지만 책 읽기는 시간이 없으면 안 해도 되는 취미 활동이 아니다. 밥 먹고 잠자고 일하듯이 책도, 읽어야 하는 필수 활동이다. 밥 먹고 잠자고 일하는 건 소도 한다. 그 소가 사람하고 다른 건 책을 읽느냐 안 읽느냐 차이다. 책을 읽어야 인간으로서 소양이 갖춰진다.

  전태일이 바라던 세상을 대신 꿈꿨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한 세대를 이어 투쟁한 전태일과 어머니.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태일’ 책 한 권은 읽었으면 좋겠다. 비록 나온 지 오래된 책이지만 현재 우리나라 노동 현장과 노동자의 현실을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다. 단순히 과거를 지난 추억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랬기 때문에 현재 이렇게 역사가 흘러왔고 내가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어’ 하는 역사의식이 생긴다. 역사의식은 이 사회의 핍박받는 서민들의 처지를 구경꾼처럼 바라보지 않고 내 일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사회 참여 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 서민들이 사회 참여 의식이 있어야 내 후손들에게 살기 좋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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