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2월 2012-02-06   2012

칼럼-황금가지

황금가지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월간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
올 겨울엔 눈이 많지 않습니다. 아파트 뒤편 불암산 자락의 나뭇가지들이 파란 겨울하늘 아래서 황금빛으로 반짝입니다.

 

이즈음 겨울산 깊은 곳을 걷다보면 참나무 위에 무성하게 자란 겨우살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낙엽을 떨군 교목 위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겨우살이의 황록색 잎사귀들은 소나무와 전나무같이 사철 푸른 나무들을 대하는 것과는 또 다른 신비한 느낌을 안겨줍니다.

 

 

2.
겨우살이는 참나무나 떡갈나무, 자작나무 등에 기생하는 여러해살이 식물로 깊은 숲에서 발견됩니다. 겨우살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특별한 생명체로 대접받아 왔습니다. 특히 고대 유라시아인들은 겨우살이를 나무의 영혼, 풍요와 생명의 순환을 관장하는 숲의 정수라고 믿었습니다.

 

고대 유럽의 흑림黑林, Schwarzwald 지대에 살았던 켈트족은 겨우살이가 질병이나 독을 막고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영험한 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켈트족은 겨우살이를 집의 추녀 밑이나 마구간의 천장에 매달아 두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사람이나 집짐승들이 병에 걸리지 않을 뿐더러 못된 귀신이 얼씬하지 못한다고 믿은 것이지요. 하지만, 겨울살이는 나무의 영혼으로서 함부로 채취해서는 안되는 신성한 식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1년 중 하지와 동지에 오직 제사장만이 황금낫으로 겨우살이를 채취했고, 그 경우 흰 소 두 마리를 제물로 바쳤다고 합니다.

 

그리스나 로마신화에서 신성한 힘을 지닌 것으로 묘사되는 ‘황금가지’는 겨우살이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의 네미 호수 주변 디아나라 불리는 신성한 숲에는 풍요의 여신 디아나와 그녀의 남편 비르비우스를 섬기는 신전이 있었답니다. 부족의 남자 중 누구든지 이 신전의 사제가 될 수 있고 숲의 왕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는데, 숲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숲속의 황금가지를 꺾어 그 가지로 전임자를 죽여야 했습니다. 황금가지는 숲의 왕이 지닌 힘의 원천입니다. 풍요의 여신이 지배하는 신성한 숲은 숲의 왕의 죽음을 통해 영속합니다.

 

북구신화에도 겨우살이가 등장합니다. 겨우살이는 사랑과 풍요의 여신인 프리가의 신성한 식물입니다. 프리가에게는 여름의 신 발데르와 겨울의 신 호데르,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발데르가 자신이 죽어 지구의 모든 생명이 사라지는 꿈을 꾸었다고 프리가에게 말합니다. 프리가는 사랑하는 아들이 죽는 것을 염려해 불, 물, 공기, 그리고 땅 위와 땅 아래에 사는 모든 동식물들에게 그의 아들에게 해를 미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그런데 겨우살이에게는 미처 약속을 받아내지 못합니다. 겨우살이는 땅 위나 땅 아래에 살지 않고 참나무 위에 살아서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악마의 신 로키는 겨우살이로 화살을 만든 후 눈 먼 겨울의 신 오데르에게 쏘아 보라고 합니다. 오데르가 쏜 화살은 발데르에게 꽂히고 발데르는 죽음을 맞게 되죠. 여름과 겨울, 생명 순환의 균형이 깨어지자 이때부터 세계는 어두워지고 라그나뢰크(신들의 황혼)의 날을 맞게 됩니다. 그 후 발데르가 부활하여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까지 세계에는 전쟁과 여름 없는 겨울의 시간이 계속됩니다.

 

겨울살이에 관한 다양한 전승들은 동서양에 공통적으로 존재해온 수목신앙을 보여줍니다. 세계의 중심에 거대한 나무가 있고, 이 나무가 지하세계와 지상세계, 그리고 하늘을 연결함으로써 우주를 구성하고 생명의 순환을 관장한다는 믿음은 전세계 고대신앙에서 흔히 발견됩니다. 유라시아 지역에서 고대인들은 우주목이 자작나무나 참나무 혹은 떡깔나무일 거라고 믿었습니다. 숲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나무여서이죠. 이들 나무에서 주로 겨우살이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겨우살이가 신성한 식물로 간주된 것은 땅위나 지하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2012년에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는 종말론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마야달력이 종종 언급됩니다. 마야인들은 우주 만물이 13박툰(1박툰은 약 394년 3개월)으로 구성된 5125년을 주기로 순환한다고 믿었답니다. 마야달력에 의하면 현우주의 기원이 서양력 BC 3114년에 시작되었고, 13박툰의 마지막 날 즉, 종말의 날은 2012년 12월 21일 동지로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야 달력에서 언급된 2012년은 ‘종말에 대한 묵시록적 암시’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 주기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마야인들이 자연계의 순환을 신봉하는 수목신앙을 가졌었다는 점이 그 단서입니다. 수목신앙에서 죽음과 생명, 종말과 창조는 사실 동일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마야인들은 세계의 중심에 약스체라는 거대한 생명의 나무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약스체는 지하와 지상 그리고 하늘을 연결해주는 우주의 배꼽이라 여겨졌습니다. 심지어 마야인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후에도 예수의 십자가와 약스체 사이에 큰 구분을 두지 않았습니다.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생명의 나무라는 점에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4.

 2012년, 흑룡의 해인 임진년은 세계의 종말까지는 아닐지라도 크나큰 격동의 해가 될 거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세계 경제의 위기,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의 변화, 국내 총대선… 여야 정치권의 정책 경쟁도 치열합니다. 기왕 변화를 모색하는 김에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우주의 순환질서를 파괴하는-에 대해서도 다양한 각도에서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너무 한가한 소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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