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3월 2012-03-06   1462

안건모의 사는 이야기-귀농, 할까?

귀농, 할까?

 

 

안건모 《작은책》 발행인

 

오늘 아침 <한겨레>에 ‘이계삼 선생 퇴직 소감’이라는 글이 실렸다. 드디어…….

  지난 달 《작은책》에서 강연을 부탁할 때부터 이계삼 선생은 학교를 퇴직할 거라고 강연조차 사양했다. 하지만 지난 1월 26일 《작은책》 강연은 예정대로 했다. 그 강연에서 이번 강의가 아마 학교 교사로서 마지막 강연이 될 거라고 하더니 결국 퇴직을 하는구나.

  이계삼 선생이 학교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월급이었다. 아니, 다달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포기한단 말이야?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비용은 좀 모아두었을까? 앞으로 뭘 해서 먹고살까? 내가 학교 교사였어도 그런 월급을 마다하고 학교를 그만둘 수 있을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안 그렇다고? 고상한 분들이라 그렇다. 그런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있더라도 이계삼 선생의 결심은 확고한 듯했다. 지난 번에 《작은책》에서 강연한 내용을 잠깐 되짚어본다.

  이계삼 선생은 학교 폭력 문제, 한국 교육 문제에 관해 한마디로 현재는 ‘교육 불가능의 시대’라고 결론을 내렸다. 공교육은 물론 대안학교도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자식만은 좀 안전한 곳으로 도피시키겠다는 욕심이 오늘날 교육 개혁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또 동시대성의 한 요소를 아이들이 겪어야 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학교 현장에서 11년 동안 경험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게 결론을 내릴 만했다.

 

 

  이계삼 선생 강연 내용 중 기억에 남는 또 한 가지는 석유와 연관된 경제 문제였다. 자본주의의 그 엄청난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석유는 이제 우리 한 세대가 지나면 거의 사라지게 된다. 어느 날 이계삼 선생이 휘황찬란한 울산의 밤거리를 보면서 ‘50년 뒤에 사라지고 없을 것을’ 하고 중얼거렸다는데,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내게는 그 때 그 말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나도 이젠 정말로 귀농을 준비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마 이계삼 선생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이계삼 선생은 아이들이 이젠 교육을 통해 몸을 놀릴 줄 아는 연습, 농사 짓는 연습, 시골에서 사는 연습, 적은 에너지로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제야 알겠다. 이계삼 선생이 학교를 그만두게 된 까닭이 교육의 불가능도 불가능이지만 이젠 결론은 농업이라는 걸 몸으로 실천하려는 것이렷다. 참 대단한 분이다.

 
  이계삼 선생은 그동안 한겨레 칼럼을 쓰고 교육 공동체 <벗>의 편집위원을 맡는 등, 여기 저기 활동도 많이 하고 《변방의 사색》,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교육 불가능의 시대》 같은 책도 냈다. 그만큼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교육을 바로잡아 보려고 애를 썼는데 결국 제도 교육이 해답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나도 사실 늘 귀농을 꿈꿔 왔다. 그런데 정말 막연했다. 농사를 지어 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돈도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늘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계삼 선생이 과감히 교사 생활까지 접는 걸 보고는 나도 귀농한다는 결정에 한 걸음 바짝 더 다가섰다. 아, 나랑 좀 다른가? 난 돈이 한 푼도 없잖아. 있기는 있는데 아내가 꽉 쥐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구체적으로 생각해 봤다. 일단 아내의 동의를 얻을 생각은 접었다. 혼자 귀농해야겠다. 아내는 귀농은 꿈도 꾸지 않는다. 내 입에서 귀농의 ‘귀’자만 나와도 난 세상 물정 모르고 철없는 남편이 된다. 정년 퇴직하고 가란다. 그러면 되지 않느냐고 글 읽는 분들이 수긍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우리 아내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안 가겠다는 말과 똑같다.

  일단 그렇게 결정하니 마음이 편하다. 그 다음 어느 시골에 가도 잘 곳과 먹을 것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잠 잘 곳과 어디서 한 50만 원 벌이는 할 곳을 찾아야 한다.

 
  구하라 얻을 것이요.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한두 군데 갈 곳이 나온다. 지난 번 전주 옆 고산에 글쓰기 모임을 하러 갔다가 그곳이 마음에 팍 꽂혔다. 그러고는 서너 번 다니면서 누군가가 내놓은 폐가도 들러봤다. 물론 폐가라도 공짜는 아니다. 천만 원에서 2천5백만 원 정도 하는 폐가가 한두 군데 나온다. 그런 정도는 내 통장에서 빼낼 수 있겠지. 지금 열심히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 다음 중요한 건 먼저 《작은책》부터 정리하는 일이다. 물론 회사를 접을 수는 없다. 독자가 원투 명도 아니고 수천 명인데 그 독자들과 약속을 지켜야 한다. 누구한테 넘기고 가는가. 물론 이 《작은책》을 만드신 윤구병 선생님과 의논해 봐야 하지만 언뜻 봐도 맡을 사람이 없다. 아니, 그것보다 솔직히 다달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아깝다. 일단 한 1년만 안식년 휴가가 주어진다면 그 동안 이것저것 시골에서 실험을 할 수 있을 터인데. 기본급만 받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안식년 휴가를 가면 《작은책》은 누가 만드나.

 
  자, 일단 말 나온 김에 생태귀농학교 강좌부터 신청해 보자.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다. 보자. 헉! 귀농운동본부에서 하는 봄 강좌 수강료가 25만 원이다. 천만 원은커녕 일단 25만 원이 있어야 하네. 이 돈도 없으면 아예 귀농할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모르는 거 아닌가?  그런데 시민단체는 17만 원에 해 준단다. 우리 《작은책》도 시민단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일단 신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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