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3월 2012-03-06   1192

김재명의 평화이야기

시리아와 이스라엘이 외국인을 반기지 않는 까닭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지난 2월 말, 12일 일정으로 중동에 다녀왔다. 처음 가고자 했던 곳은 시리아였다. 2011년 초부터 중동 지역에 불어 닥친 민주화 바람이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예멘의 오~랜 철권 통치자들을 권좌에서 끌어내렸지만, 알 아사드 부자가 2대를 이어 40년을 다스려온 시리아는 그렇지 못했다. 30년 독재자였던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아 2000년부터 12년째 시리아를 통치해온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는 지금껏 7천 명이 넘는 시민들을 포격과 총격으로 죽였다. 1980년 광주에서의 항쟁과 죽음을 기억하는 한국의 민주 시민들에겐 시리아의 상황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시리아 민중의 투쟁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한국에 생생히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 쓰리게도 시리아 입국을 거부당하고 말았다. 시리아 정부는 알 아사드 독재정권의 퇴진과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모습이 외부 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 외국 기자의 입국을 철저히 막아왔다.

 

만만찮은 시리아 가는 길

한국에서 시리아를 가려면 길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두바이나 도하 등 중동의 기착지에 내려 비행기를 갈아타고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공항에 닿는 길이다. 둘째는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 국가(터키, 이라크, 레바논, 요르단)를 거쳐 육로로 들어가는 길이다. 첫 번 경우는 편하게 시리아로 들어갈 수 있지만, 입국을 거부당할 경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난감한 처지가 된다. 그래서 시리아 국경을 육로로 넘어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혹시나 입국을 거부당하면 대안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상황을 취재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인천공항에서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를 거쳐 요르단 암만공항에 내렸다. 그곳에서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시리아 국경으로 가는 길을 떠났다. 암만에서 시리아 국경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이면 넉넉히 닿는다. 잡풀 정도나 겨우 자라는 불모의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일직선으로 뚫린 도로를 달리는 택시는 거침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시리아를 넘어가고픈 마음을 요르단 택시 기사가 읽었을까, 20년 됐다는 고물 벤츠 택시의 속도계를 보니 시속 200km. 여행자 보험을 들고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는데 눈앞에 국경 출입국관리소가 나타났다. 시리아에 두 번 다녀온 기록이 여권에 찍혀 있고, 육로의 경우는 공항보다는 느슨하겠지, 시리아 유적지를 보러왔다고 하면 들여보내주겠지… 이런 나름의 기대감을 품고 입국 심사대로 들어섰다.

 

독재 시리아의 입국 방침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동북쪽으로 200km 거리에 있는 ‘팔미라’ 지역에는 서기 3세기 무렵에 세워진,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질 어마어마한 크기의 역사 유적지들이 있다. 겸임교수로 있는 대학의 명함을 내밀며 “내 전공이 역사라서 자료 수집 차 그곳에 가려 한다”고 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여권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이란, 레바논 등을 다녀온 기록을 보며 역사 탐방이나 관광이 목적이 아니라 여기는 것 같았다. 결국엔 출입국 관리소 간부의 방으로 불려갔다. 줄담배를 피워대던 그 간부는 “당신의 노트북에 뭐가 담겨있냐. 노트북을 열어봐라”고 요구했다. 사정도 해보고 항의도 해보았지만 돌아온 대꾸는 “요르단 암만으로 돌아가서 그 곳 시리아 대사관에 정식으로 비자를 신청하라”는 것이었다.

 
  맥이 풀려 돌아서는데 그가 “보안 검색을 거쳐야 하니 비자 받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다”라고 덧붙인다. “공연히 시간 버리지 말고 신청을 하지 않는 게 나을 거다”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 말에서 “외국인 누구라도 시리아 상황을 직접 보고 듣고 바깥 세상에 알릴 가능성이 있다면 아예 입국을 막겠다”는 시리아 정부의 완고한 방침이 세워져있음이 짐작됐다. 반나절을 시리아 관리들과 입씨름을 하고 다시 요르단 쪽으로 발길을 돌리며 그래도 미련이 남아 뒤를 돌아보니 “시리아 입국을 환영합니다”라는 대형 영어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요르단 암만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1년 전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못된 짓 숨기기,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려는 두 정권

 
다음날 요르단 강 건너편 이스라엘 출입국 관리소에서 또 다시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다. 무엇하러 왔느냐, 누굴 만나려느냐, 어디 묵을 거냐, (태어나 얼굴조차 마주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 이름을 써봐라는 식이다. 그리고는 무작정 기다리게 만든다. 저희들끼리 시시덕거리며 농담을 하는 관리소 직원들에게 여권은 언제 돌려주느냐 물어보면 어깨를 으쓱하며 “나도 몰라. 기다려봐”라고 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취재하러 갈 때마다 이렇듯 첫 관문부터 사람을 지치고 짜증나게 한다. ‘테러리스트가 아닌 사람도 테러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팔레스타인을 군사적으로 억압 통치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그들이 현장에서 저지르는 못된 짓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시리아 아사드 독재정권과 강경파들이 장악한 이스라엘의 극우 정권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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