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3월 2012-03-06   2257

참여사회가 만난 사람-함께, 작은 것부터, 높은 산을 오르듯

함께, 작은 것부터, 높은 산을 오르듯

 

김균 참여연대 신임 공동대표

김균 참여연대 신임 공동대표 인터뷰

 

박영선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 연구실장 
사진 김은진 작가

 

지난 2월 25일, 참여연대 제18차 정기총회가 열렸다. 아주 특별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면 응당 재미없는 자리라고 치부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 관심이 있는 누군가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참여연대 총회는 새로운 인연과 깊은 인연이 무대 위에 들고 나며 설렘과 회한, 기대와 감사,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장이다. 무대 위에서 등장과 퇴장이 반복되며 참여연대 역사의 한 장이 매듭지어지기도, 새로이 펼쳐지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교직이 무대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낯섦과 긴장, 호기심과 궁금함, 친밀함과 배려의 조합이 다이나믹하다. 숱한 망설임 끝에 참석을 감행한 새내기 회원들은 참여연대 10년지기들이 풍기는 은근한 자부심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참여연대와의 오랜 인연으로 총회에 정례적으로 참여하던 성실회원이라면 작년 이맘때쯤 마주쳤던 이들과 정겨운 눈인사를 주고받으면서도 초면의 회원들에게 작은 배려라도 선사하려 애쓴다. 눈이 밝은 회원은 매년 작은 공연을 선보이는 신입 간사들의 표정과 동작으로 참여연대의 한 해 사업의 결실을 점칠 수도 있겠다. 사업 보고와 예산안에만 코를 박고 있다면야 모르겠지만, 눈동자를 부지런히 굴리고 귀를 쫑긋 세운다면 참여연대 총회는 한마디로 재밌다.

  올해는 특히 그 재미가 예년의 두 배쯤 되었다. 새로운 공동대표가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신임 공동대표로 선출된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김균 교수가 이번 달 참여사회 인터뷰의 주인공이다.

 

‘의외로’ 단번에 대표직 수락한 사연은

먼저 공동대표를 수락한 이유를 물었다.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많은 이들이 삼고초려 운운하며 한결같이 모시기 어려울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이번 총회에서 고백했듯, 그는 예상 외로 단번에 수락했다.

  “부채의식이예요. 학교 일 때문에 참여사회연구소 소장 임기가 3년인데 2년 하고 그만두었거든요. 1년을 다 못 채웠다는 데 대한 미안함이 너무 많았어요. 요즘 나도 이 정권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었고. 그러던 중에 1세대 간사들이 정치 영역으로 여럿 나갔잖아요. 그런 상황이 참여연대와 같이 해야겠단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그리고 대표직 제안하는 전화를 이태호 사무처장이 했는데, 내가 참여연대 왔을 때 제일 먼저 호흡을 맞춘 사람이었어요.”

 
  참여연대는 1999년 1월, 외환위기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열린 청문회 기간 내내 ‘청문회를 청문한다’는 제목의 일일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그 때 이태호 처장과 함께 청문회를 모니터 했다고 한다.

 
  “그렇게 손발 맞는 사람과 재밌게 하니 좋았었죠. 그 사람이 전화를 한 것도 영향이 있어요.”

 
  쬐끄만한 브라운관을 앞에 두고 증인들의 발언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운 채, 청문회 하루 일정이 끝나자마자 바로 논평을 내야 하는 그 과정을 재미있다고 기억하다니, 참여연대 대표가 될 준비를 일찌감치 하고 있었다고 봐야 하는 걸까. 무엇보다 그는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가치 ‘참여’와 ‘연대’를 말하는 곳에서, 도덕적인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쉽게 수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수락 후에, 고민이 깊어졌다고 한다.

  “우선 대표가 의례적으로 소화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나는 전혀 사람 앞에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런 게 싫고, 부끄럽고 그래요. 그게 당장 눈앞에 걱정이고요. 둘째는 일을 하고 책임을 져야 할텐데, 그걸 어떻게 잘 할 수 있을지. 세 번째는 아무래도 상근자들과 세대 차이가 날텐데 어떻게 호흡을 맞춰서 시너지를 낼 건가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재벌개혁의 본질은 법대로 하자는 것”

간사들과의 세대 차이까지 가늠할 정도라면, 참여연대 사정에 꽤 밝은 편이다. 참여연대 창립 발기인부터 시작하여 참여사회연구소 소장직을 비롯, 지난 10여년 간 참여연대 중요 임원직을 줄곧 수행해왔던 덕이다. 때문에 참여연대로서는 그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다.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가 빅 이슈로 떠오른 올 정치 환경에서 그간 재벌개혁운동 등에 큰 힘을 쏟아왔던 그가 공동대표에 합류하여 힘을 실어주리란 믿음 때문이다. 내친 김에 재벌개혁운동의 방향에 대해 물었다.

 
  “총선 끝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정책화가 이루어질 텐데, 그걸 전담해서 모니터할 필요가 있어요. 재벌개혁의 본질은 법대로 하자는 겁니다. 죄 안 짓고 기업 활동 하고, 세금 낼 것 내고, 지분을 10% 가지고 있으면 10% 만큼의 발언권만 발휘하자는 거지요. 법대로 하자, 탈법·불법은 하지 말자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나아가 그는 참여연대의 활동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 중 하나가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의 사이의 균형이에요. 공동체성이 너무 약하죠. 전부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다보니 경쟁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경쟁에 의해서 나온 결과는 다 승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이런 현실에서 참여연대가 사회 공공 이익을 지키고 가꿔 나가는 사업을 많이 해야 한다고 봐요. 그런 면에서 ‘참여’와 ‘연대’라는 말, 기가 차게 뽑았어요.” 더불어 “시민사회에서 참여연대에 요구하는 역할이 많다 보니 큰 이슈를 많이 다루게 되는데, 다른 한편으로 작은권리찾기운동처럼 풀뿌리로 가는 운동도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김균 참여연대 신임 공동대표 인터뷰


세상이 궁금해서 시작한 경제 공부

참여연대 신임대표를 인터뷰이로 모셨다고 하더라도 참여연대에 대해서만 물을 수는 없는 터. 개인적인 질문을 던져도 좋은지 운을 띄었다. 부산 사투리를 쓰는 고려대 교수에게 갖게 되는 편견을 쉽게 떨치기 어려워 ‘참여연대 관련 질문만 하십시오’라는 답변이 나올까 살짝 긴장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그는 여유있게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경제학에 무지한 나는 경제학이라면 그저 해독 불가능한 경제 수식과 통계만이 연상될 뿐이다. 그렇기에 경제학을 전공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잠시 대화를 멈추게 했다. “세상이 궁금하잖아요. 내가 고등학생이던 70~71년 당시 한국 경제가 고속 성장했는데, 그걸 보면서 경제를 알아야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국문학을 하고 싶었는데, 그건 집에서 못가게 했구.” ‘세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경제학을 공부해야겠다’와 ‘국문과에 가고 싶었다’는 답변의 두 가지 요지 모두 흥미로웠다. 하지만 언뜻 난데없어 보이는 그의 대답은 팩트, 그 자체였다. 사실 우리 삶의 기본 조건이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그가 하이에크를 전공했다는 의외의 사실도 자연스레 받아들여졌다. “연구를 하다 보면 연구자가 연구 대상을 보통 좋아하잖아요. 이 사람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싫어져. 나로선 불행이었지요.”라는 그의 불가피한 고뇌까지도 말이다. 국문학은 왜 하고 싶었을까. <평균율> 동인이었던 황동규, 마종기, 김영태 시인을 좋아했다고 한다. 비록 ‘단체에 속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체질이라 문예반에 가입하지 않고 혼자서 시를 읽으며 지냈지만, 만약 그가 사람들과 섞이는 걸 기꺼워하였다면 그의 미래는 달라졌을지도. 

  

  아직도 시를 가까이 하고 있지만, 아마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산일 것이다. 작년이었던가. 그가 산을 가까이 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무심결에 산에 같이 가면 좋겠다는 말을 건넸을 때, “좋죠.” 하며 갑자기 가벼워진 그의 목소리와 반짝이던 눈이 생각난다.

 
  “안나푸르나를 두 번 다녀왔어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가는 게 있고, 안나푸르나를 한 바퀴 도는 라운딩이 있어요. 둘 다 다녀왔어요. 산은 90년쯤부터 다녔어요. 처음엔 허리가 아파 다녔는데, 나중엔 산이 좋아서 가게 되더라고요.” 그의 낯빛이 환해진다.

 
  해발 5416m까지 올라가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산소가 평지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곳에서도 고산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고산병은 젊은 사람이 걸리지, 나이든 사람은 잘 안 걸려요. 자기 컨트롤이거든요. 천천히 가고, 먹으라면 맛없어도 먹고, 마시라면 계속 물마시고, 시키는 대로 하면 돼요.”라고 무심히 그 비결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은 일임을, 나이든 사람이라고 모두 그렇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연대로 같이 만들어내기

아마도 그는 참여연대 대표직도 높은 산을 오르듯이 해낼 것이다. 호흡을 맞추되, 무리하지 않을 것이다. 함께 오르되, 홀로 앞장서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처지는 사람이 나타나더라도 왜 빨리 가지 않느냐고 재촉하지 않을 것이다. 힘겨워 하는 기색이면 말없이 그 곁을 지키고 서 있을 것이다. 어쩜 산에 익숙한 사람들만의 비법을 넌지시 알려줄지도 모른다. 혹여 산행을 방해하는 이가 나타난다면, 그는 함께 등정한 우리들을 무조건 믿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우리가 오른 산이 얼마나 높은지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정상에 올라 기쁨을 만끽할 것이다. 그는 여전히 말을 아낀 채, ‘함께 산에 오르니 참 좋았다’고 한 마디만 할 것이다. 그는 회원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작은 것이라도 같이 만들어내는 그 과정이 즐겁고, 해내면 기분 좋고. 사회적으로 위대한 일이라고 심각한 의미 부여할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같이 만들어 내고 이뤘을 적의 즐거움을 높이 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즐겁게 지내요.” 2012년 참여연대가 더욱 재미나고 신나는 곳이 될 것 같다. 우리도 그도 모두 신명나게 ‘시민의 힘으로 CHANGE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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