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9월 2012-09-05   1652

[만남] 어른의 탄생

어른의 탄생
도시 한가운데서 쓰는 시골 청년의 청춘 일기, 윤원재 회원

호모아줌마데스 애엄마   사진 Nina Ah

고등학교 때 일이다. 친구가 불쑥 잡지 한 권을 내밀었다. 친하기도 했지만 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녀석이라 그가 하는 건 뭐든 무한 신뢰가 가는 친구였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얇고 투박한 잡지 한 권, 월간 『참여사회』. 그의 시작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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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는 안 배웁니다

9월호 인터뷰 대상에 대한 자료를 훑는다.

‘윤원재, 전남대 지리학과 09학번, 현재 참여연대 인턴 활동 중.’

나이라는 숫자에 엄청 집착 중인 중년의 나에게 이번 인터뷰 상대는 과하게 젊다. 고등학교 때 ‘삼지’를 했다? 이건 또 뭔 말? 아, 한국지리, 세계지리, 경제지리를 공부했다는 말이군. ‘버카충(버스카드 충전)’ 같은 말들이 난무하는 이 시대야말로 나 같은 아줌마에겐 진정한 암흑의 시대다. 멀쩡하게 눈 뜨고 살아도 어느 순간 문맹으로 만들어 버리니……. 궁시렁거리며 다음 줄을 읽는다. 전공이 매우 잘 맞음? 푸하하하! 이번에 만날 인터뷰이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고등학교 때 지리 과목만 재밌었어요. 그래서 전공도 지리학을 택한 거구요. 졸업하고 나서도 대학원에 진학해 도시 지리에 관한 공부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크고 작은 전쟁들로 점철된 세계사를 읽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건지 무척 궁금했던 적이 있다. 그 책에서는 지정학적인 요인을 가장 중요하게 꼽고 있었다. 그때부터 난 지리학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지리학을 파고드는 이유는 나와는 또 다를 것이다.

“인턴 활동 중에 동자동 쪽방촌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 열악한 공간에서 어떻게 삶을 이어나가는 것인지……. 그런 쪽방촌을 높은 건물들이 빙 둘러싸고 있더군요. 도시를 개발하고 가꾸어나가는 데 사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잘못된 도시개발 정책의 결과인 거죠.

”동자동 쪽방촌에 있는 집들은 보통 0.7평에서 1.5평 정도다. 집이라 부르기 어려운 그 공간에 삶이라 말하기엔 너무 가슴 아린 나날들이 이어진다. 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 폭염에 시달리는 그들의 삶이 뉴스에 간간이 나왔다. 더위는 대부분의 도시인들에게는 버텨내야하는 무엇이지만 감옥의 독방과 같은 삶터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겐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는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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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개발이나 도시공동체에 관심이 많아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계획하고 싶습니다. 파리 같은 경우를 보면, 도시 중심에 자리한 에펠탑을 중심으로 스카이라인이 완만하게 내려오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그렇게 도시를 계획하면 동자동처럼 어느 한 지역이 높은 건물들에 가려 완전히 고립돼 버리는 일은 없는 거죠.

”그는 동자동 주민들이 겪는 고립감이 단순히 물리적인 수준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말한다. 함께 살아가는 지역 안에서 서로 확연히 구별되는 삶터는 정서적 고립을 낳고, 사람들은 그렇게 분리되고 소외된다.

“공부해서 남을 주고 싶어요. 사람다운 삶과 공동체적인 가치가 지켜지는 도시를 만들고도 싶고, 아예 22대 국회의원이 돼 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도시계획학을 전공한 민주당 김진애 전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활동하는 걸 지켜봤어요. 4대강 사업 저지도 하고, 도시 안의 마을 만들기 사업에도 동참하고, 그런 모습을 보며 솔직히 처음엔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같은 과 친구들을 보면 기사자격증을 딴다거나 공기업에 취직한다거나, 다들 그 정도의 꿈밖에는 없거든요. 근데 김진애 전 의원을 보면서 지리학을 공부해서 저렇게 정부 정책이라던가 도시계획에 관여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더 큰 꿈을 꾸게 된 거죠.

”더위로 이글거렸던 쪽방촌에도 곧 겨울이 올 것이다. 추위는 더위와 다름없이 매섭게 가난한 삶을 몰아친다. 지리 선생님이 예뻐서 지리 공부를 열심히 했던 소년. 이제 그 소년이 자라 ‘가난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도시’라는 커다란 꿈을 꾸고 있다.

“참, 지리학과에서 풍수지리 같은 건 안 배워요. 자꾸 저보고 땅 보러 다니냐고 묻는 분들이 많아서요.

”숙연했던 인터뷰 자리를 한순간에 웃음으로 반전시키는 멘트. 지리학과에서는 풍수지리 안 배운다네요. 그럼 풍수지리는 어떤 과에서 배우나……, 궁금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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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때’ 똑똑했었다

이렇게 재밌는 친구가 한때(?)는 무척 똑똑하기까지 했었단다. 그러면 참여연대 인턴 생활을 하면서 바보가 되었다는 얘기?

“아무래도 다양한 전공을 가진 사람들과 인턴 생활을 하다보니까 전에 제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평소에 갖지 못했던,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된 거죠. 학교에서 경제나 다른 분야에 대한 세미나를 많이 했고, 주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서 나름 똑똑하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참여연대 인턴 생활을 하면서 와장창 깨졌어요. 원래는 주로 말을 하는 쪽이었는데 인턴을 하면서는 주로 듣기만 하는 입장이 되더라고요. 내 논리를 뒷받침해줄 지식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제 다시 돌아가면 더 열심히 공부하려구요.

” 깨진 건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저 좋아서 시작했던 지리학 공부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꼭 지리학이 아니더라도 내가 원하는 바를 이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내 미래는 지리학이다’였다면, 이젠 내가 변화시키고 만들어나가고 싶은 세상에 대해 여러 갈래로 생각이 많아지고 고민이 더 깊어졌습니다.

” 전에는 단순하고 명료한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알게 되고, 그렇게 세상에 대한 경험치가 늘어갈수록 인생이 복잡한 루트를 타기 시작한다. 참여연대 인턴 프로그램이 이 땅의 청년들을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참여연대 인턴 프로그램은 교육이 반이고 팀 업무가 반이에요. 그게 너무 맘에 들어서 지원했어요. 교육도 외부 강사들이 와서 하는 경우가 많구요. 집이 지방이라 서울에서 지낼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지만 일단 지원부터 했어요. 붙기만 하면 무조건 간다, 그러면서.

“기대만큼 좋던가요?

“일단 교육이 너무 좋았구요, 전 평화국제팀에서 일했는데, 외부 활동이 많은 부서더라구요. 난생 처음 기자회견장에도 따라 가보고, 토론회에도 참석해보고, 쌍용자동차 집회 현장에도 가고……, 암튼 정말 재밌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참여연대에 가입했다. 당시 회비 3000원. ‘참여사회를 꼬박꼬박 챙겨 읽고 싶어서’가 가입 동기다. 정말이요? 아, 마구 샘솟는 이 책임감…….

“신문은 믿음이 안 가서 잘 안 봐요. 그러다보니 주간지 <시사인>하고 월간 『참여사회』, 이렇게 두 개만 보고 있죠. 참여사회 같은 경우는 평소 다른 매체에서 접할 수 없는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아요.

”참여연대에 대해 너무 좋은 얘기만 하면 제 글의 신뢰성이 떨어집니다. 불만도 있으시죠?

“인턴들 사이에서 참여연대가 너무 몸 사리는 거 아니냐하는 얘기들이 있었어요. 천안함 사건 이후로는 너무 중도를 지키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 저희 기수가 ‘인턴 노조’를 만들었어요. 진짜 노조는 아니고 조 이름이 ‘인턴 노’인 건데, 인턴들이 하루 식대로 6000원 받거든요, 조금이라도 인상을 해 주셨으면 좋겠구요, 그리고, 음…, 저같이 지방에 사는 회원들을 위해 느티나무 강의들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강의들이 너무 많은데 들을 방법이 없네요.”

동석했던 편집팀 간사는 참여연대에 대한 불만이 그렇게 꼭 듣고 싶냐며 내게 눈을 흘겼지만, 안 물어봤으면 어쩔 뻔 했냐구요, 이렇게 청산유수인데 말이지. 덕분에 제 인터뷰 글의 신뢰성은 건졌잖아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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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빤 어디 스타일?

앞으로 도시에 관해 계속 공부하고 계획할 사람으로서, 서울에 올라와보니 어떻던가요?

“서울이요? 싫어요.

”왜요, 물가가 비싸서?

“아뇨, 사람도 너무 많고 복잡해서 싫어요. 출퇴근 시간이 아닌데도 전철 타면 무슨 사람이 그리 많은지, 속이 답답해지면서 토하고 싶어져요. 건물도 너무 많고 암튼 인간적인 도시는 아니에요.

”그럼 인간적인 도시는 어딘가요?

“일본의 교토 정도가 딱 좋은 것 같아요. 처음부터 도시계획이 잘 된 것 같고, 옛 건물들도 많이 남아있어서 특유의 정취도 있구요.

”아, 오빤 강남 스타일이 아니라 교토 스타일이구나.

“정치적인 신념은 진보라 할 수 있는데 생활적인 면에서 보면 보수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이 지점에서 동석하고 있던 뭇 여인들의 지적질이 시작되었다. 그런 식이라면 여자 친구 만나기 힘들 텐데……. 그러자 이 청년, 그 즉시 자신의 태도를 버리겠다고 선언하는 순발력까지 보인다. 그럼 지금 한창 청춘이신데, 자신의 청춘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면?

“청춘이라…, 지금까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아왔거든요. 음…(평가 중),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호불호가 강한 성격인데 아직까지는 내가 내린 선택들이 남들한테 해를 끼친 것 같지도 않구요. 아파서 청춘인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서 청춘이라고 생각해요.

”타인과 깊지 않은 무난한 관계만 맺고, 가능한 위험한 건 피하려 하며, 세상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 행동하는 건 젊음이긴 하되 청춘은 아니다. 청춘은, 미숙하고 서툴더라도 진지하게 무언가를 찾아서 계속 방황하는 마음이라고, 그렇게 고민하는 힘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여전히 청춘인 거라고, 『고민하는 힘』에서 강상중은 말했다. 고민의 함량과 방황의 진정성, 청춘에서 문제되는 건 그것뿐이다. 지금은 참여연대 10기라는 이름으로 가까운 미래엔 22대 국회의원을 꿈꾸는 그의 청춘에 외친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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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탄생

대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받은 돈. 태어나 처음 번 돈이라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싶었다. 『참여사회』를 읽다 마우스와 키보드가 필요하다는 글을 보고 그 돈으로 물건을 사서 보냈다. 큰 돈은 아니었으나 학생의 신분인 그가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참여연대가 정부보조금 없이 잘 버텨나갈 수 있는 마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작지만 한곳을 향해 모여 드는 마음들, 그 조각들이 모여 이루어가는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꿈.

대학생이 되면서 회비를 5000원으로 증액한 그는 이번 인턴 활동을 마치고 나면 다시 두 배로 늘릴 생각이란다. 그동안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셨나 봐요, 하고 농담을 건넸지만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부채감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거란 걸, 이미 한참 전에 어른이 된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쌍용이나 용산 문제를 접할 때마다 무거워져만 가던 마음. 집회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나도 저기 함께 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들로 괴롭던 나날들. 그런 마음을 끝내 떨칠 수 없어 용기를 내어 희망버스에 처음으로 오르던 날.

이 어지러운 세상에 대한 책임을 함께 나눌 또 한 명의 어른은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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