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0월 2012-10-08   1019

[살림] 사람과 사랑은 꽃보다 소중해 ♪

사람과 사랑은 꽃보다 소중해 ♪
원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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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곳은 영국 남동부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1800년대에 지은 집들이 세월의 무게 때문에 기울어 서있고, 완만한 언덕에는 밀과 보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며칠 전 농부가 밀을 모두 거둬서 그런지 가을이 더 깊어갑니다. 제가 사는 집에서 십오 분쯤 걸어가면 런던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는 역이 있는데 그 옆에는 한국산 쌍용자동차를 파는 대리점이 있습니다. 거리를 나서면 한국인은 저 혼자뿐인 마을에 모국의 자동차가 어엿하게 서있는 걸 보고 저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하곤 했습니다. 왠지 반갑기도 하고, 자랑스러웠던 거 같아요.

  그런데 요즘 이곳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씁쓸해서 참을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배달된 시사 잡지에 실린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소식을 읽고 난 뒤부터입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2천 명이 넘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고, 회사 주인이 거듭 바뀌면서 이 분들의 고통은 더해가고, 그 사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이 스무 명이 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왠지 사람보다 돈이 더 중요해진 세태를 날것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경영이 어려워질 때 회사의 돈 값어치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강요 당하는 건 늘 꿋꿋이 일 해온 분들이니까요. 그런 분들에게 사람을 사서 폭력을 휘두르고, 회사 동료까지 그런 일에 동원하고, 결국에는 경찰 특공대를 공장에 들여보내 마구 때리고 잡아갔다니요.

  이 소식을 아내에게 들려주니 “세상에 정말 사랑이 식어버린 것 같아.”라고 말하더군요. 자기의 이익보다는 이웃의 어려움을 살피고, 좋은 일에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은 함께 지는 그런 형제애가 사라졌다고요.

 

세상에 사랑이 다 식으면

마음이 답답해 아내의 삼촌 제라미를 찾아갔습니다. 목수 일을 하는 제라미는 대학 공부는 안했지만 세상을 보는 깊은 눈을 가졌습니다. 핸드폰이나 텔레비전은 누가 준다고 해도 쓰지 않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 세상일에 대해 토론하는 것, 그리고 집에 아이들을 불러 놓고 기타나 반조를 하나씩 들고 연주하는 걸 좋아합니다. 컴맹이지만 손재주가 좋아서 이웃 노인을 위한 작은 가구나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을 뚝딱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가장 즐기는 일은 별이 빛나는 날 침낭 속에 들어가 밖에서 잠을 자는 겁니다.

  저의 이야기를 들은 제라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습니다. “뭐라고,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이? 정말 우리는 오래 전에 잘못된 길로 들어서서 계속 그 길로 가고 있는 거야. 모두가 빠른 성공과 돈, 더 편한 생활만을 좇아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지 오래야. 곧 모두 이 기술과 돈의 욕심을 다 버려야 할 날이 올 거야. 그래도 답은 있어. 우리 모두 좀 더 불편하게 살고, 덜 벌고, 덜 쓰고, 그리고 나누면 문제는 해결 돼. 내 것 네 것 없이 말이야.”

  이런 생각에는 아이들도 동감을 합니다. 며칠 전 3, 4학년 아이들이 마을 식구들을 모아 놓고 <낙원섬의 비밀>이라는 노래극을 공연했습니다. 왕, 신하, 해적 등이 등장하는데 아이들이 분장한 모습만 봐도 ‘큭!’ 하고 웃음이 나오는 웃기는 연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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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섬의 비밀은?

줄거리는 이래요. 왕의 생일을 맞아 높은 신하는 궁중 요리사를 시켜 칠면조, 닭, 돼지 다리, 구운 쇠고기 요리로 생일상을 차리고 값비싼 술, 칼, 비단, 금 같은 선물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왕은 음식과 선물을 물리치며 고개를 젓고 맙니다. “으이그, 아니야! 원하는 걸 다 가져도 행복하지 않아! 낙원섬으로 가서 행복의 비밀을 알아오라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 소식이 없어?” 왕의 등쌀에 못 이긴 신하는 다시 해군을 보냅니다. 겨우 해적을 따돌리고 섬에 내린 해군은 낙원섬의 여왕과 딸을 찾아 왕에게 데리고 옵니다. “어서 낙원섬의 비밀을 털어 놓으시오.”라고 왕이 다그치니까 여왕은 나지막한 소리로 독한 술 대신 깨끗한 물을 마시고 칼과 비단, 금 따위를 던져버리라고 말하고, 이렇게 외칩니다. “칼은 전쟁과 증오를 상징합니다. 비단은 오만과 허영, 금은 부와 탐욕을요. 이것들을 버리고, 친절과 자비, 돌봄과 사랑, 그리고 삶에서 고결하고 단순한 것을 즐기세요. 그게 바로 행복의 비밀입니다. 그게 바로 낙원섬의 비밀입니다.”

  칼과 비단, 금을 하나씩 들며 증오와 욕심이라고 말하는 데 저도 모르게 마음이 찔렸습니다. 제 자신과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거 같아서 낯이 뜨거워졌습니다. 하지만 친절과 자비, 단순한 삶이 행복의 비밀이라는 말을 듣고는 울컥했습니다. 많은 이가 고통 받는 문제의 답이 거창한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소중한 쌍용차 식구들 힘내세요!

아이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노래도 가르쳤습니다. 반전과 평화 노래로 잘 알려진 미국의 통기타 가수 피트 시거의 노래입니다. 할아버지인데도 여전히 힘차게 노래하시는 이 분은 우리 공동체의 친구이기도 한데 얼마 전에 공동체에 오셔서 불러준 노래랍니다. 노랫말은 이런 식입니다. “그릇된 일을 보면, 바로 잡아야 해, 하느님은 우리가 행동하길 바라셔∼ 포기하지 마, 함께라면 우린 이길 수 있어, 하느님은 우리가 행동하길 바라셔∼ 젊은이들과 노래할 수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어, 하느님은 우리가 행동하길 바라셔∼” 기타 연주에 맞춰 함께 흥겹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매기고 받는 식의 노래인데 누군가 즉흥적으로 노랫말을 만들어 부르면 모두 함께 따라 부르면서 한참을 신나게 불렀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불러봤습니다. 

“쌍용차 식구들 힘내세요, 사람이 돈보다 더 소중하니까요, 하느님은 우리가 행동하길 바라세요∼” 

 

 

마루
영국 다벨 브루더호프(www.bruderhof.com)에 살며 어린이 장난감 만드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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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은 네 명의 필자가 번갈아 연재합니다. 원마루 님의 글은 2013년 1월호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의 고료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 치유 공간 <와락>에 기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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