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0월 2012-10-08   1413

[역사] 역사관, 개인의 취향이 아니다

역사관, 개인의 취향이 아니다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마침내 5·16군사쿠데타와 유신체제가 헌법 가치를 훼손시켰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과오에 대해 사과했다. 그녀의 사과는 개인의 전향적인 선택인만큼 환영할 만하지만, 2주 만에 돌변한 역사관에 대한 진정성 논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역사관이 아니라 그녀의 ‘진정한’ 역사관은 뉴라이트라는 집단의 역사 인식과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history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논쟁, 아직도 소송 중 

뉴라이트는 언제 등장했는가? 신자유주의 광풍이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밀려들던 2004년 가을이었다. 탄핵 국면을 돌파한 노무현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과거 청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직후였다. 보수·우파 세력은 과거 청산 작업이 자신들의 정체성 혹은 헤게모니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것이라며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이때 그들의 구원투수로 뉴라이트가 등장한 것이다. 뉴라이트는 기존의 보수·우익, 즉 올드라이트의 대대적인 환영 속에 2005년 1월 교과서포럼을 결성하여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집중 공격하고 자학사관에 친북좌파적인 역사 교육을 바로잡겠다며 역사 내전의 포문을 열었다. 일제 강점기 이래 경제성장과 건국과 부국의 아버지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찬양이 그들이 말하는 올바른 역사였다.   

  뉴라이트에 의해 대안교과서가 발간된 2008년에 다시 불붙은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파동의 주동자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부였다. 교육부가 정부 차원에서 자신들이 검정 승인했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내용을 새삼 문제삼아 법령과 절차를 무시한 채 수정을 지시하고 교육청 차원에서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의 교과서 채택을 저지하는 소동은 결국 교육부 대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저자들 간의 소송으로 번졌다.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대처와 레이건도 역사 전쟁에 직접 나섰다 

신자유주의가 태동하여 기운을 확장할 무렵, 미국과 영국에서도 역사 전쟁이 일어났다. 영국과 미국에서 신우익의 이념적 공세로 역사 교육이 쟁점화된 것은 1980년대 대처와 레이건 집권기였다. 신우익은 1960년대 이후 풍미했던 비판적 역사학, 즉 ‘밑으로부터의 역사’의 득세를 우려했다. 영국에서는 대처가 나서서 “모든 세대가 우리 민족사를 그릇되게 이해하고 평가절하하는 교육을 받아왔다.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학자와 저술가들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진보가 이루어진 바로 그 시기를, 영국이 다른 국가보다 가장 앞서 나갔던 바로 그 시기를 가장 암울한 시기로 묘사했다”고 비판했다.  

  영국과 미국에 들어선 보수 정권과 신우익은 역사 교육을 쇄신한다는 명분으로 역사 수정주의 운동을 전개하고 그것의 제도화를 꾀했다. 일단, 역사 교육에서 자국사의 비중을 높여 조국과 조국의 번영에 대한 자부심을 함양하는 애국주의를 강조했다. 또한 노예무역, 제국주의, 외국에서 저지른 악행 등을 서술하는 것은 자학사관이라고 하여 배격했다. 

 

한일 양국의 보수·우익, 서로 힘을 보태다  

일본에서 자민당 의원 등 보수·우익세력이 역사의 우경화를 모색하며 역사 전쟁을 준비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자유주의사관연구회를 결성한 때부터였다. 이들은 기존의 역사 교과서가 반일적·암흑적·자학적이고 나아가 사회주의 환상 사관에 입각했다고 비판하며 이들 사실을 교과서에서 삭제하거나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발간한 『국민의 역사』를 저본으로 2006년에 『새로운 역사 교과서』라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검정을 통과했다. 우익을 중심으로 역사의 정치화를 도모하며 기존의 역사 교과서를 비판하고 자신들의 교과서를 만드는 행태는 한국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한나라당이 역사 내전을 국회 안으로 끌어 들였고 뉴라이트는 교과서포럼을 결성한 뒤 대안교과서를 출판했다.  

 

주목할 것은 2002년 이후 불거진 북핵문제와 소위 ‘납치사건’의 쟁점화로 한일 양국의 보수·우익세력이 반북 이념을 바탕으로 상호 소통할 길이 열렸다는 사실이다. 즉 반일 감정을 놓고는 상호 적대시했던 한일의 보수·우익세력에게 반북 기류는 새로운 만남의 기회를 제공했다. 일본 보수·우익 세력도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는 세력이야말로 친북좌파이며 한일 양국 보수·우익세력 공통의 적이라는 주장을 당당히 펼치기 시작했다. 그 연장선에서 양국의 보수·우익세력은 자학사관론을 무기로 교과서를 정치 쟁점화하면서 공감의 정도를 더욱 높여나갔다. 

 

뉴라이트의 등장과 역사 내전은 신자유주의가 풍미하는 가운데 새로운 우익 혹은 보수 세력이 등장하고, 그들의 반사회주의·경제성장지상주의 이념과 이에 기반한 군국주의·국가주의 노선을 구현하기 위한 정쟁의 수단으로 역사 교과서·역사 교육이 간택되었던 세계사적 공통 현상의 일환이었다. 지금 유신시대를 둘러싼 논란이 대통령 후보 한 사람의 유훈통치사관 혹은 효도사관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 새삼 상기해야 할 것이다. 

 

 

김정인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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