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0월 2012-10-08   1092

[경제] 대선 단상②: 박근혜가 모든 국민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박근혜가 모든 국민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박근혜의 경제정책?

‘박근혜’ 하면 어떤 낱말이 떠오를까? 경제 공부를 업으로 삼는 나에겐 단연 ‘줄푸세’이다. 5년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내세웠던 이 구호는 아직도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맛이 있다. ‘세금과 정부는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와 사회 제도를 바로 세우겠다’. 감세, 작은정부, 규제완화, 그리고 재산권 중심의 법질서 확립은 두말할 나위 없이 신자유주의의 금과옥조이며 이명박 정부가 실천한 정책 기조이기도 하다. 

  5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와중에 “세계적으로 경기(를) 침체”(박근혜 대선 출마선언)에 빠뜨린 세계 금융위기가 진행되고 있으니 물론 정책 기조를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는 여전히 시장 만능의 세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한미 FTA 문제로 민주당을 맹공한 사실(한미 FTA야말로 미국 시장만능론의 총화이다), 그리고 최근에 ‘줄푸세’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 것을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이제 와서 줄푸세의 ‘줄’이란 중소기업의 세금을 줄이자는 얘기였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그가 걱정하는 ‘경제적 약자’들은 대부분 면세 대상인데 무슨 세금을 또 줄여줄 것인가? 정말 그런 생각이었다면 2010년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을 전부 합쳐도 삼성 하나에 못 미치는 상황을 맹공격했어야 하지 않는가. 

  복지도 ‘시장에 맡기자’던 주장에서 ‘맞춤형 복지’로 돌아섰지만,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으로 몰아가다 서울시장을 빼앗기고 나서야 말을 바꾼 것이 아닌가? “아버지의 최종 목표가 복지”였던 것은 5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을텐데 그때는 왜 그리 주장하지 않았을까? 불행하게도 그가 애지중지하는 한미 FTA는 그의 맞춤형 복지가 민간 기업의 이익을 침해한다면(예컨대 그도 강조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민간 실손형 보험의 대량 해지 사태가 일어난다면) 투자자국가제소라는 강철검을 빼어들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통해 중소기업인을 비롯한 경제적 약자들의 꿈이 다시 샘솟게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기자회견에서 “자기가 투자한 것 이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불합리한 면”을 언급해, 소유권과 지배권이 일치하지 않는 기업지배구조의 개혁(현재 1표를 가진 지배권자가 55.3표의 권한을 행사한다)도 내비친 셈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김종인과 이한구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해 자신의 경제민주화를 다시 안갯속으로 밀어 넣었다. 도대체 그 ‘본질’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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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경제위기에 가장 잘 대응할 것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은 박근혜 의원이 작금의 경제위기를 가장 잘 헤쳐 나갈 후보라고 믿는다. 아마도 한나라당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구해낸 ‘선거의 여왕’ 이미지, 말한 것은 지킨다는 ‘신뢰의 정치인’ 이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이 이런 결과를 낳은 듯하다.

  과연 그럴까? 우선 ‘재벌개혁’에 관해 짚어 보자. 내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읽고 쓴 서평으로 인해 촉발되었으니 뭐라 할 말이 없지만 저간의 이른바 ‘경제민주화 논쟁’, 또는 ‘재벌개혁 논쟁’은 헤어나오기 어려운 샛길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재벌, 즉 기업 집단만 떼어서 경제적 효율성을 문제로 삼을 경우, 몇몇 수치로 간단하게 증명하기 어렵다. 적어도 일반인이 보기에 삼성이나 현대는 내셔널 챔피언으로 세계 순위를 올리고 있다. 계량경제학을 동원한다면 어떤 전제로 어떤 지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뭇 엇갈리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재벌의 문제는 국민경제 차원에서 드러난다. 재벌의 몸집은 이미 너무 커서 대마불사의 경지에 이르렀고 은행까지 소유하게 된다면 시스템 위기는 시간문제가 된다. 또한 하청업체에 압력을 넣어 수시로 납품 단가를 인하한 결과는 재벌의 수익률이 높아지는 바로 그만큼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는 것으로 나타난다. 재벌 체제는 ‘이익은 전유하고 비용은 사회화하는 시스템’이다. 주주이론 관점의 정책(예컨대 주식시장에 의한 통제)이든 이해당사자이론에서 나온 정책(예컨대 이익공유제와 노조의 강화)이든 뭐든지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 논리적 일관성은 학자의 머릿속에서나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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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겐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경제민주화 

이에 더해 나는 역사적 관점을 강조하고 싶다. 재벌의 형성 이후 성장기까지, 즉 1980년대까지 재벌이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재벌은 관료와 언론, 그리고 정치와 사법부까지 장악했다. 그리고 20년이 더 흘렀다. 동서고금의 어떤 체제라도 지배동맹이 강고해지고 사회가 이를 견제할 힘을 잃을 때 성장과 분배는 동시에 후퇴한다. 개혁이란 이런 지배 체제를 뒤흔드는 것이고 새로운 세력을 등장시켜 사회의 균형을 되찾는 것이다. 근대 한국의 경제성장은 단연코 농지개혁과 6·25전쟁에 의한 지주계급의 와해로부터 시작되었다.

  박근혜 후보가 강조한 ‘모든 국민의 꿈’이란 지배동맹이 붕괴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 박정희는 운이 좋았다. 지주계급의 와해 이후, 재벌이라는 신흥 산업자본가계급을 경제적 파트너로 삼았기 때문이다. 반면 그 딸의 역사적 사명은 현재의 지배세력, 즉 재벌-관료-언론의 3자 동맹을 와해시키는 것이다. 옛날에 비유하자면 ‘농지개혁’과 같은 ‘자본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보편복지, 경제민주화, 사회적 경제가 모두 그런 변화에 대한 요구이며 유일한 위기 탈출의 길이다. 과연 박근혜 후보가 지배동맹 체제를 와해, 아니 견제라도 할 수 있을까? 여태까지의 발언에 비추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스스로 지배 세력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나는 “아니오”라고 단언한다. 박근혜 후보가 지금껏 해온 말을 모두 합해도 간장 종지 하나를 채우지 못할 정도이고, 경제에 관해선 더더욱 그러하니 설령 억울하다 해도 자업자득이다. 

 

정태인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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