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0월 2012-10-08   2253

[만남] 별 일 없이 잘 산다! 이 여자가 사는 법

 

별 일 없이 잘 산다!   이 여자가 사는 법 

황미정 회원

 

김수 영화인    사진 박영록 사진가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각본가 아론 소킨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미국 HBO의 드라마 <뉴스룸>은 자막 작업하는 사람들이 치를 떨 정도의 방대한 대사량이 특징이다. 갑자기 미국 드라마 이야기를 왜 꺼내느냐고? 이번 인터뷰이 황미정 회원의 녹취를 푸는데, 내가 아론 소킨이 된 기분이었으니까. 황미정 회원은 <뉴스룸>에 등장하는 캐릭터처럼 거침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녀의 화술은 솔직하고, 막힘이 없었다. 거기에 제스처까지 곁들여져 금상첨화. 누구라도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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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말 행복합니다!”

“여성이어서 행복하다기보다 그냥 행복해요. 물론 여성이어서도 그렇지만, 그것뿐만은 아니거든요.”

 

인터뷰의 첫 챕터를 ‘여성’으로 잡은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렇게 빗나가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본인 스스로 집단에 종속되고 규정된 룰을 따르는 걸 싫어한다고 밝혔듯이, 인터뷰 내용은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깔로 뻗어나갔다. 그녀의 달변을 따라잡기가 녹록지 않았지만, 재미는 두 배.  

“사실 요즘 친구들 만나면 약간 미안해요. 애들이 너무 힘든 거예요. 하소연 폭탄을 맞아요. 예전에는 ‘너 이만큼 힘들었니, 나 이만큼 힘들었어’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했는데 요샌 일방적으로 들어요. 별 일 없이 잘 사는 게 미안할 정도로 우리 나이 때가 참 힘든 것 같아요.”

 

충만한 행복감을 자신감 있게 내비치면서 동시에 친구들을 배려하는 마음 씀이 인상적이다. 그녀는 자신이 행복한 만큼 미안함도 가질 줄 아는 사람이다. 행복이란 혼자만의 노력으로 얻어지지 않음을 그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마냥 밝고 행복해 보이는 그녀에게도 치열한 사유의 시간은 있었다.  

 

“30대 후반까지 저를 지배한 단어는 유능함이었어요. 학생이면 1등을 해야 되고, 직장인으로서도 유능해야 하고, 시집 가서도 잘 살아야 하고. 뭐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컸던 거죠. 어렸을 땐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잖아요.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안 죽을 것 같은.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내 마음과 달리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비난도 하고. 그게 싫어서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지에 대해 골몰했어요.”

 

유능함이 ‘자랑’이 될 순 있지만, ‘사랑’이 되는 건 아니다. 그녀는 그렇게 유능함에 집착할수록 삶이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되고 싶은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 때문에 괴로워했던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억겁으로 바위를 굴리는 시시포스의 모습이 겹쳤다. 욕망은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미끄러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녀는 두 번의 계기를 통해 그 악순환의 틀을 깨고 행복으로 가는 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논술 지도자 과정 강의를 할 때였어요. 30대 초반이었는데, 그때는 스스로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고 생각했어요. 집도 없고, 커리어도 얕고. 근데 첫 강의를 들어갔는데, 그 당시 나이가 마흔 넷인 분들이 네다섯 명 앉아계셨어요. 그분들이 큰 충격을 받았었어요. 어린데다 심지어 동안이어서 더 어려보이는 애가 선생이라고 앞에서 깝치니까.(웃음) 그래서 그 중 한 분은 두 번째 시간부터 안나오기도 하셨고요. 그런데 나머지 분들이 어찌나 열심히 수업을 들으셨는지, 그 분들을 보면서 제가 부끄러웠어요. 이분들의 용기에 비하면, 내가 갖춰야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너무 볼품없는 거예요.” 

그녀는 돌연 울먹였다. 아주 잠시였지만, 삶의 전환점이 된 즐거운 충격에서 받았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사랑받기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로워졌어요. 예전엔 사랑을 받는 데에만 의미를 두었어요. 사랑을 하는 행위도 사랑을 받기 위해서만 전투적으로 했고. 그런데 ‘사랑을 꼭 받아야 하나? 내가 그냥 사랑하면 되지!’로, 인정욕구에 대해서도 ‘인정 꼭 받아야 해?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지!’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렇게 생각이 바뀐 이후에 삶이 훨씬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고, 여유로워졌어요. 예전엔 돈을 많이 벌었어요. 지금은 옛날보다 훨씬 못 벌거든요. 근데 오히려 지금이 더 부자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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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말이 결혼 안식년이지, 좋으면 별거했겠어요? 멋있게 포장한 표현이죠.(웃음)”

예전 아카데미 느티나무 백인보 인터뷰에서 결혼 안식년 중이라 말했길래 흥미로워 질문을 던졌더니 돌아온 답변. 돌직구다. 이렇게까지 솔직하다니. 

 

“나는 남편이 남자였으면 좋겠는데, 남자가 아니라 아기 같은 거예요. 내가 무슨 남편의 도깨비 방망이 같았어요. 원하면 뭐든지 제공하는. 물론 서로가 좋을 때는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요. 근데 내가 경제적으로 쪼들리니까 정신적 여유도 없어지고, 그러다보니 뭔가를 요구하는 남편이 너무 부당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예전엔 큰 기쁨이었던 일들이, 이제는 나를 해치고 갉아먹는 드라큘라 같이 느껴지는 거죠.” 

꽤나 심각했던 상황. 하지만 두 부부는 결국 다시 합쳐서 잘 살고 있다. 이번엔 또 어떤 사유의 시간들이 있었을까. 

“우리는 분명 주어진 상황 속에 살고 있잖아요. 그 속에서 적어도 눙치거나 적당히 둘러치지 않고 서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노력하는 모습 자체가 참 좋아요.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고,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애쓰며 사랑하는 것,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런 모습을 남편과 대화로 확인하는 게 저한테는 되게 중요해요.”

 

무엇보다도 그녀는 과정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다. 목적에 종속되면 어느 순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왜, 무엇 때문에 하는지 잊는 경우가 많다. 유능함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하고 싶은 걸 하며, 남편에 대한 불만이나 이별을 생각하는 대신 지금 눈앞에 놓인 사랑을 열심히 고민하는 것. 그 과정 하나 하나에서 그녀는 행복을 느낀다. ‘결혼 안식년’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자기만의 공간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그런 과정의 즐거움을 지키는 한 방법으로 보인다. 홍대에 있는 그녀의 원룸은 사무실, 침소, 놀이터 등 필요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한다고. 그녀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해요. 반드시 공간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어떤 것’이 꼭 있어야 ‘나’라는 주체를 지킬 수 있는 것 같아요. ‘내 것’의 결핍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어요. ‘나는 부유해!’, ‘우리 애는 공부를 잘해!’ 이런 건 결코 스스로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아요. 자신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서 오롯이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내 공간, 내 시간, 나만의 어떤 것을 갖추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나누고 풀어내는 삶의 화두

그렇게 매 순간 삶의 화두를 고민하던 그녀가 느티나무 강좌를 듣게 된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강좌 기획은 물론, 모니터링과 종강파티까지 함께 준비하는 ‘느티나무 지기’이기도 한 그녀에게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는 단순한 시민 강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참여연대 강좌의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아는 걸 남한테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는 거예요. 대개의 강좌들은 강사 중심이에요. 자기가 아는 걸 쉽게 전달하는 것, 혹은 시험이 요구하는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죠. 하지만 참여연대 강좌의 목적은 우리 삶의 문제들을 주제로 만들어서 같이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이에요.”

 

그녀는 자신이 당면한 인생의 화두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가, 운 좋게 그 고민에 도움이 되는 강좌들을 만났다고 했다.  배움을 찾으려는 스스로의 노력 없이는 결코 따르지 않는 행운이었다. 

 

“우리가 삶의 자리에서 느끼는 힘듦이나 욕망, 이런 것들에 대해서 스스로 주인이 돼서 고민하고 변화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참여연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느티나무 강좌는 그것을 가장 치열하게 토론하고 출구를 모색하는 장이죠. 느티나무 강좌는 강사가 만든 커리큘럼을 따르지 않아요. 강사에게 ‘저희는 이런 강좌를 기획하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이런 부분을 준비해주실 수 있나요?’라는 식으로 묻고 논의해서 만들어요. 그렇게 일반 강좌들과 출발이 다르고, 그게 우리가 지켜야 하는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속도가 빨라졌다. 느티나무 강좌에 대한 애정이 물씬 느껴지는 열변이었다. 일찍이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공허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했다. 그녀의 주장대로면, 느티나무 강좌는 공자의 가르침을 해소할 수 있는 최적의 장이다.

 

사람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욕망한다. 여기서 불행이 시작된다. 자신이 가진 걸 남과 비교하는 순간, 눈앞에 지옥이 펼쳐진다. 하지만 황미정 회원은 다른 길을 택했다. 사회가 만들어낸, ‘1등만이 살아남는다!’ 같은 실체 없는 굴레가 자신의 삶을 흔들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통제 대신 자유, 목적 대신 과정, 외면 대신 내면을 파고들기 시작한 그녀는 ‘마음의 여유’의 참의미를 깨달은 것 같았다.

 

인터뷰 말미, 여러 이야기 가운데 그녀 스스로의 다짐 하나를 부연 없이 남긴다. 행복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격려가 되길 바라며. 

 

“두렵지 않아요” 

김수

합리적 낭만주의자. 10년 넘게 영화에 대한 외사랑을 지키고 있는 나름 순정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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