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0월 2012-10-08   1122

[기획] 투표는 졌지만, 우리는 주민과 함께 이겼다!

투표는 졌지만, 우리는 주민과 함께 이겼다!
We lost the vote but we won with people!
백가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

 

 

세계자연보전총회란?
WCC, World Conservation Congress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에서 4년마다 개최하는 회의. 사회적, 경제적 발전을 위한 인류의 천연자원 관리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여, 각국 정부 대표, 공공기관, NGO, 기업, 유엔 등이 참가해 전세계가 직면한 환경 및 개발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해결책을 강구한다. WCC는 세계 환경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포럼과 IUCN의 의사결정 기구인 회원 총회로 나뉜다. WCC 총회에서는 모션Motion이라고 불리는 결의안이 투표를 통해 채택되는데, 채택된 모션은 IUCN을 통해 회원 단체들이 세계 환경 문제에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작용한다. 

 

 

정당한 비판의 목소리 막은 한국 정부, 뭐가 두렵나?
9월 6일부터 15일까지 제주에서는 전세계인들의 환경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세계자연보전총회(World Conservation Conference, WCC)가 열렸다. 이번 WCC에는 매일같이 인권침해와 환경파괴가 일어나고 있는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을 중단하고 독립적인 환경 평가를 재실시할 것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 <모션Motion 181:강정마을 주민, 자연, 문화와 유산 보호>가 제출되었다. 그러나 WCC가 시작되기 전부터, 그리고 결의안이 논의되는 내내 세계자연보전연맹(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IUCN) 사무국과 한국 위원회, 그리고 한국 정부는 끊임없이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강정 해군기지 건설의 문제점을 알리는 목소리를 막았다. 

 

WCC가 시작되기 전, 강정마을회는 홍보 부스를 절차에 따라 신청했다. 홍보 부스는 참가자들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달여의 오랜 기다림 끝에 돌아온 답신은 “우리는 불행하게도 강정마을회의 전시부스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라는 단 한 줄짜리 통보였다. 한국 정부는 환경단체가 아닌 단체에 부스를 허가할 수 없다고 했고, IUCN은 주최국인 한국 정부의 결정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WCC에 등록된 해외 참가자들은 정당한 이유 없이 공항에서 입국을 금지당했다. WCC 기간에만 입국 금지된 해외 활동가들은 파악된 것만 해도 9명에 달하는데, 이들은 직접적, 간접적으로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 운동에 관여했거나 이전에 강정마을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WCC 기간 중 독립적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 제목에 ‘강정’이라는 이름을 넣지 않도록 요구하는 압력이 IUCN 한국 위원회로부터 들어왔다. 이때에도 어김없이 한국 위원회는 IUCN 사무국 핑계를 댔고, IUCN 사무국은 한국 위원회로 책임을 떠넘겼다.

 

이에 한국 인권환경시민사회단체와 강정마을회는 쥴리아 마르통 르페브르Julia Marton-Lefevre IUCN 총재를 만나고싶다는 공개 서한을 보내고 수차례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바쁘다는 이유로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오히려 IUCN 사무국은 WCC 참가자들과 함께 강정마을을 방문하겠으니 그 기회를 잘 활용해보라고 강정마을 주민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방문 날짜는 한국 위원회가 일방적으로 정한 날짜였다. 게다가 계속 정부 입장을 대변해 온 한국 위원회가 주관한 방문이어서 그 의도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과 강정마을회는 마을을 방문할 해외 참가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해군기지 건설의 문제점을 알리고자 마을 곳곳에 안내 표지판을 붙이고 밤새 영어 발표 자료를 준비했다. 그러나 강정마을 방문 이후 강정마을 결의안 논의 및 투표 과정에서 보인 IUCN 사무국과 한국 위원회의 태도는 강정마을 방문이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줬다.

 

           장현우-1
             WCC 회의장 앞의 강정 지킴이들

 

해군기지 건설, 주민들이 합의했다고?
IUCN 회원 단체는 WCC에 긴급하고 새로운 환경 이슈에 대한 긴급 결의안을 제출할 수 있다. 이번 WCC에는 미국의 인간과 자연을 위한 모임(Center for Humans and Nature, CHN)이라는 회원 단체가 34개의 다른 단체들과 연명하며 <강정마을 주민, 자연, 문화와 유산 보호>라는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다. IUCN 결의안 위원회는 제출된 결의안이 조건에 부합하는지 검토하는데, 다행히 강정마을 관련 결의안은 조건에 부합한다는 판정을 받고 공식 결의안 번호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이처럼 논란이 많은 결의안의 경우 총회에 상정해 채택 여부를 투표하기 전, ‘콘택트 그룹’이라는 조정 회의를 열어 결의안의 구체적인 문구 등을 수정하는 작업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첫 번째 콘택트 그룹 회의에서부터 IUCN 사무국과 한국 위원회 및 한국 정부는 강정마을 주민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며 편파적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이를테면 CHN이 제출한 초안이 아닌, 결의안 위원회에서 자의적으로 수정한 문서가 논의 안건으로 올라왔다. CHN의 초안은 해군기지 건설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결의안 위원회의 수정안은 민군복합항 프로젝트 건설로 인해 야기되는 환경적, 사회문화적인 부정적 결과들을 막기 위해 적합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수정안은 해군기지 건설을 전제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강정 주민들은 이 권고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또한 한국 정부와 IUCN 한국 위원회는 해군기지 건설의 환경적 문제점을 차치하고 안보 논리를 내세워 해군기지 건설의 정당성만을 이야기하며 정치적 사안으로 몰고 갔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99%가 보상금을 받았다는 주장, 주민들과의 충분한 협의 끝에 해군기지 건설을 결정했다는 주장 등은 거짓일 뿐만 아니라 5년이 넘는 동안 평화 투쟁을 지속해온 강정마을 주민들의 진정성을 모욕하는 발언이었다.

 

게다가 콘택트 그룹 회의에 참석한 IUCN 회장 및 한국 위원회 위원장은 이 결의안을 제안한 연명 단체 중 한국 단체들이 거의 없음을 지적하며 마치 해군기지 건설 반대가 한국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닌,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의 목소리인 것처럼 몰아갔다. 125개 한국 인권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제주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 26개 제주도 인권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제주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 대책위, 36개 환경단체가 연대한 한국환경회의 그리고 강정마을회의 목소리는 그들에게 전혀 들리지 않는 듯 했다. 

 

구속자석방_장현우-1

            강정마을 해군기지 저지를 위한 활동으로 인해 구속된 이들의 속방을 축구하는 사람들


국제회의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 정부의 꼼수
결국 1차 콘택트 그룹 회의에서는 아무런 합의도 내리지 못한 채 결의안 찬성 측 두 명, 반대 측 두 명 이렇게 네 명만이 참가해서 문구를 수정하는 2차 콘택트 그룹 회의를 이틀 후에 다시 열기로 했다. 1차 콘택트 그룹 회의에서 보인 한국 정부와 한국 위원회, IUCN 사무국의 편파적인 태도에 실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의안을 지지하는 단체들과 강정마을 주민들은 함께 2차 콘택트 그룹 회의 전략을 논의하고 제출했던 결의안 초안 문구를 수정하는 등 정부와 협의하기 위해 충실히 노력했다. 

그러나 2차 콘택트 그룹 회의는 시작 전부터 실망스러웠다. 정확한 시간과 장소는 결의안을 발의한 CHN 측에조차 제대로 공지되지 않았다. 일시와 장소는 회의장 내 공개 게시판에서야 겨우 확인할 수 있었는데, 게시판에는 네 명만 참가할 수 있다고 했던 것과는 달리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된 회의라고 적혀있었다. 정부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만이 대거 참석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IUCN 사무국이 회의 일정 및 참여 범위를 예고 없이 변경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지된 장소에서 2차 콘택트 그룹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IUCN 사무국과 정부 측이 약속한 시간이 다 되도록 나타나지 않아 의아해 하는데, 갑자기 다른 층에서 열리고 있던 총회에 참석 중이던 사람이 급하게 뛰어내려왔다. 한국 위원회가 강정 결의안 자체의 철회를 요청하는 안건을 총회에 기습 상정했다는 것이다. 황급히 뛰어올라간 총회에서는 한국 위원회가 강정 결의안이 ‘새롭고 긴급한 이슈’여야 한다는 긴급 결의안 조건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는 내용의 안건을 발의하고 있었다. 또 IUCN 회장의 편파적 진행으로 발언권을 부여받지 못한 많은 NGO 참가자들은 손을 들고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다행히 많은 NGO 회원들의 반발로 결의안 철회는 부결되었으나 이후 열린 3차 콘택트 그룹 회의에서도 한국 정부는 어떠한 협의안도 받아들일 수 없으며 결의안은 어떤 형태로든 통과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평화를 위한 ‘진심’의 연대 
결국 총회에는 CHN이 처음 제출한 결의안 초안이나 합의에 이르기 위해 콘택트 그룹에서 제출한 수정안이 아닌, 결의안 위원회가 자의적으로 수정한 강정 결의안이 상정되어 표결에 부쳐졌다. 결과는 부결. 결의안이 통과되려면 정부 회원의 51% 이상, NGO 회원의 51% 이상의 득표가 이뤄져야 하는데, NGO 회원들의 표는 얻었으나 정부 회원들의 표를 충분히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각국 정부와 NGO의 표를 합산하면 결의안 찬성이 289표(정부 20표, NGO 269표), 반대 188표(정부 68표, NGO 120표), 기권 188표(정부 60표, NGO 128표)로 압도적인 승리였다.

비록 결의안은 통과되지 못했으나 이번 WCC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한 국제연대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직접 강정마을을 방문하고 주민들을 만난 수많은 환경 활동가 및 전문가들이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것을 약속했으며 국제적 차원에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논의해나갈 것인지 의견을 모았다. 5년 6개월여 동안 평화적인 방법으로 꾸준히 해군기지 건설의 인권적, 안보적, 환경적 문제점을 제기해왔던 강정 마을 주민들, WCC 총회 당일 이른 아침부터 쉬지 않고 천배를 올리며 제주 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해 마음을 모으던 주민들과 강정 지킴이들, 지나가는 단 한 사람에게라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이미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끊임없이 목청을 높이던 사람들, 그리고 제주에 직접 오지는 못했지만 저 멀리 외국에서, 서울에서 밤새 잠 못 이루고 마음을 졸이며 WCC 결과를 기다리던 사람들, 이 모두의 진심이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리라 믿는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확인한 연대의 힘과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심이 모여 결국 해군기지 건설을 막아내고 강정의 평화를, 동북아의 평화를, 그리고 전 지구의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백가윤
단기간사로 살짝 들르러 왔다가 참여연대의 평화 사랑에 매료되어 눌러앉음. 그래서 6시에 퇴근하는 간사를 보면 부럽고, 9시에 퇴근하는 간사를 보면 부럽고, 12시에 퇴근하는 간사를 보면 서운해 하면서 연일 야근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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