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0월 2012-10-08   1582

[기획] 두 개의 판결, 그러나 더 맣은 민주주의!

두 개의 판결, 그러나 더 많은 민주주의!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판결 하나,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인터넷 악성댓글 막을 ‘최소 제동장치’ 사라졌다 (조선일보)

‘인터넷 실명제 위헌’ 이후 사이버언어폭력 누가 막나 (조선일보)

익명성 뒤에 숨은 흑색선전 무방비… 보완장치 서둘러야 (동아일보)

실명제 족쇄 풀린 인터넷 12월 대선 악성댓글 비상 (중앙일보)

헌재 위헌 결정으로 ‘인터넷 실명제’ 폐지,

익명에 숨은 악성 댓글 더 판칠 텐데…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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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3일 헌법재판소가 8명의 재판관 전원 일치로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을 하자 소위 보수 언론들이 다음날 내놓은 머리기사 제목들이다. 연말 대통령 선거도 있는데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나 악성댓글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사라졌으니 큰일이라는 것이다. 흑색선전과 음란물, 명예훼손, 자살이나 도박을 부추기는 불법적 게시물이 넘쳐날 것이니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듣고보니 그럴듯해 보인다. 이제 인터넷은 무법천지가 되는 것일까?

그러나 기사를 읽다보니 과연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헌재의 결정문을 제대로 읽어보기나 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이번에 헌재가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은 법률상 ‘제한적 본인확인제’로 표기되어 있다. 이 제도는 하루 10만 명 이상의 이용자가 접속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쓰려면 게시물 주인이 본인 확인 정보를 제공하도록 국가가 법으로 강제한 것이다. 물론 실명으로 글을 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 사이트 사업자는 게시자가 글을 삭제한 후에도 6개월까지 본인 인증 정보를 보관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필요할 땐 언제든 추적 당할 각오를 하고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제한적’이라는 용어가 붙었으나 실질적으로 실명제의 본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터넷 실명제’라 부른다. 

 

간단히 말해, 헌재는 인터넷을 악용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대다수 이용자의 정당한 의사표현을 제한하는 것은 익명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 만약 표현이 문제가 되는 인터넷 게시물이 있다면, 수사기관은 인터넷주소(IP주소) 추적 및 확인을 통해 불법적인 정보를 게시한 당사자를 찾을 수 있고, 해당 정보 삭제, 임시조치(일정 기간 안보이게 하는 조치), 게시판 관리 운영자에게 불법 정보 취급거부·정지 명령을 내리는 등의 조치를 취해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다. 글쓴이 추적은 기존의 제도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사전에 자신의 신상 정보를 밝히도록 하는 것은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다. ‘만약의 경우’ 국가로부터 소환을 당할 수 있다고 겁을 주는 셈인 것이다. 이쯤 되면 인터넷에 글을 쓰려면 소위 ‘각오’ 정도는 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나 민간인 불법사찰의 피해자 김용익 씨의 ‘검거’는 인터넷 실명제로 제공된 본인 정보를 포털이 수사기관에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헌법재판소는 불법 행위를 하려는 이용자건 선량한 시민이건 간에 무차별적으로 본인 인증을 한 후 글을 쓰도록 하는 제도는 익명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여 결국 글을 쓰려는 자들의 위축 효과와 자기 검열을 가져오며 이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판결하였다. 그리고 악성댓글 등 불법적인 정보를 막아보고자 하는 취지는 인정되나,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출한 자료도 인터넷 실명제가 악성댓글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지는 입증하지 못했다고 했다. 관련 학자들도 실명인증 이후 전체 댓글 수가 줄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악성댓글의 수도 줄었을 뿐이라며 둘 사이에 별 상관관계가 없음을 지적했다.

 

나의 이야기를 막지 말라 (flickr by db photographs)-1

 

인터넷 실명제는 이제 겨우 제자리를 찾았지만…

 

몇 년 전, 미국의 인터넷 종합 쇼핑몰 아마존에서 CD를 구매하면서 꽤 놀랐던 경험이 있다. 이메일 하나면 회원가입이 가능했고, 신용카드 번호만 입력하면 결제가 되었다. 인터넷 쇼핑 사이트라도 가입하려면 대개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국내 사정과 비교해 충격이라 할 만 했다. 외국에서는 경제적 신용 문제에서조차 이런데 우리의 경우는 실질적인 해악을 미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표현 행위에 대해서도 일일이 본인 인증을 해야 한다. 그러니 인터넷 실명제가 폐지된 것은 인터넷상의 여러 불합리한 제도 중 하나가 이제 겨우 제자리를 찾은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아직 인터넷 실명제의 흔적은 도처에 남아있다. 예컨대 현행 공직선거법(제82조의 6)에 따르면 선거운동 기간에 언론사 홈페이지에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 정보를 게시하도록 할 경우, 이용자들의 실명을 확인 받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시에는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이는 정치 참여와 정치 표현이 가장 활발해야 할 시기에 무언가 말하려면 실명을 대라고 강제함으로써 오히려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과태료 처분을 받은 인터넷 언론사도 있다. 그나마 이와 관련해서는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이 실명 확인을 강제하는 내용을 삭제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9월 5일 발의하였으니, 이제 국회가 답할 차례다. 헌재가 익명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결정한 상황에서 “선거법 하나만을 위해서 인터넷의 익명성을 없애버린다는 것은 어느 법원의 형량을 통해서도 합헌 결과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박경신 공익법센터 소장의 지적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선거법상의 실명제는 폐지하는 것이 순리이다.   

 

인터넷사진-1

 

판결 둘. SNS 선거 운동 상시허용

 

선거관리위원회는 2007년 당시 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UCC 등을 이용해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를 올리거나 찬반을 논하는 행위가 공직선거법 제93조 1항을 위반한 것이라며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그 결과 선관위는 9만 여 건에 달하는 게시물에 대해 삭제를 요청했고 수많은 네티즌을 고발해 검찰과 경찰의 조사를 받게 했다.

 

  참여연대는 진보네트워크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등 시민단체들, 네티즌 192명과 함께 2007년 9월 4일 선거법 93조 1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요지는 이렇다. 우선 선거법에서 금지한 탈법 방법에 과연 UCC를 포함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다. 뿐만 아니라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라는 문구가 너무 모호하다. 또 지방선거·보궐선거·총선 등 한 해에 두 번 이상씩 선거가 치러지기도 하는 상황에서, 선거일 전 180일은 사실상 거의 일 년 내내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법조문은 헌법에서 천명하고 있는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선거법 제93조 1항
(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보궐선거 등에 있어서는 그 선거의 실시사유가 확정된 때)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이 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당(창당준비위원회와 정당의 정강·정책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 또는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도화, 인쇄물이나 녹음·녹화테이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무려 4년여 만인 2011년 12월 29일 선거법 93조 1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단서를 달았다. 이 조항을 인터넷에 적용할 때에만 위헌이라는 것이다. 헌재는 이 조항이 입법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되나, 이 조항으로 인터넷을 규제하는 것은 수단의 적절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균형성 모두에 위반된다는 판단을 했다. 인터넷은 선거운동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수단이며, 180일이라는 규제 기간은 지나치게 길어 침해가 크고, 인터넷 정치 표현을 규제하는 경우 불이익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글쓰기, 동영상 올리기, 블로그나 SNS 운영 등의 각종 표현 행위를 이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위헌이다. 

 

07-10-2011 14.59.40 사본-1

 

인터넷은 “움직이며 들끓으며 권력과 갈등 중!”

 

프랑스의 최첨단 기술 분야 전문기자 플로랑 라트리브는 『검열에 관한 검은 책』에서 인터넷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움직이고 들끓으며 국가, 법, 독재 권력 및 경제 권력과 갈등 중이다. 인터넷은 이론적으로 중심부가 없는 망이다. 모든 네트워크를 통합하고 모두에게 개방된 네트워크이다. 누구나 발신자와 수신자가 될 수 있다.”

  일찍이 인터넷만큼 장소와 금력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발표할 수 있는 매체는 없었다. 일부에게만 허용되었던 표현과 출판의 자유가 수백만의 ‘아무에게나’ 허용되는 현실은 독재정권은 물론이고 민주주의 국가에서조차 인터넷에 대한 규제를 시도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이들이 법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 이념에 가장 근접한 매체를 규제하려는 시도는 따라서 반민주주의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가장 참여를 촉진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매체의 특성을 인정하여 인터넷상 선거운동이 다소 과열된다고 해서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라는 헌재의 판단은, 그래서 되새겨 볼 말이다.

  SNS를 포함하여 인터넷상의 선거운동은 허용되었으니 이전보다 표현의 자유가 확장된 것은 틀림없다. 또 이제 인터넷상에 글을 쓸 때 강제로 본인 인증을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여전히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위한 과제는 남아 있다. 사업자들이 수집 보관하고 있는 주민등록번호 등 통신 자료를 수사기관이 요청만 하면 정보주체의 동의도 없이 넘겨주는 관행과 선거법상의 인터넷 실명제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에는 총량이 없다. 우리는 보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에서 7년째 붙박이로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공익변호사를 만나고 함께 일한 것이야말로 여기까지 온 동력이라고 여기며 더 많은 공익변호사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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