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0월 2012-10-08   4132

[통인] 대형마트 과일이 맛없는 이유

 

대형마트 과일이 맛없는 이유

박종석 마포상인연합회장 

 

황지희 현대도시여성   사진 Nina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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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석씨는 25년 동안 공덕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해왔다.  

 

최근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1990년대를 복기하는 훌륭한 문화 보고서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대한민국 경제사를 이해 할 수 있는 한 권의 교과서가 될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구멍가게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나눠먹던 소꿉친구 성시원과 윤윤제, 아이돌 그룹 HOT 테이프를 사려고 음반 가게 앞에서 새벽부터 줄을 서던 팬들의 모습,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성시원의 에피소드 등에는 결코 낭만으로만 단정지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숨어있다. 

드라마에서는 모두 담지 않았지만, 부부가 된 성시원과 윤윤제는 주말이면 마트에 가서 장을 볼테고, 성시원은 인터넷으로 토니 오빠를 위한 선물을 주문할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엑스트라 역할을 했던 구멍가게 주인과 음반가게 사장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구멍가게 대신 편의점, 그리고 시장 대신 마트가 일상이 된 성시원과 윤윤제의 대한민국에는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 

지난 9월 21일, 25년 동안 재래시장에서 과일을 팔아온 박종석 마포상인연합회장을 참여연대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 1월 오픈한 마포구 공덕동 이마트를 비롯해, 현재 건축을 완료하고도 지역 상인들의 반대로 개점을 미루고 있는 마포구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그는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운동의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했지만, 이 문제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만이 해결의 열쇠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박 회장은 골목상권 문제가 한국 경제의 문제들이 총집결된 하나의 상징임을 강조하고, 시민들이 이를 인식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역할은 나누고 경쟁은 공정해야

 

박종석 씨는 인터뷰 내내 답답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또한 서민 경제가 벼랑끝에 몰려있지만, 정부와 기업, 소비자 모두가 책임을 서로 떠밀고 눈앞의 이익만을 따진다며 분개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와 눈빛에는 분노보다 공포가 더 컸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두렵게 만들까?

“재래시장? 요즘 많이 깨끗해지고, 상품권도 생기고 좋아졌잖아? 뭐가 그렇게 힘들어? 이게 요즘 시민들이 이 문제를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다. 그렇다. 정부 지원을 받아서 재래시장에도 지붕 생기고 변한 걸 보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큰 오해다. 그런 겉모습은 폐허가 된 재래시장의 아주 일부일 뿐이며, 사람들은 그것만 보고 외면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지역 경제의 악순환의 구조를 설명했다. 그리고 서민을 위한 선순환을 강조했다. 

“예전에는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 대학까지 보냈다는 식의 이야기가 가능했다. 지역 경제 안에서 선순환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돈을 벌고, 동네에서 소비했다. 규모는 적더라도 다 같이 먹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그 구도가 깨졌다. 대기업 자본으로 세운 마트는 돈만 가져갈 뿐, 지역 안에서 다시 순환하지 않는다.”  

박종석 씨는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가장 큰 요인은 대형마트보다 오히려 24시간 편의점이라는 현실도 지적했다. 

“과거에는 구멍가게, 재래시장, 백화점이 각각 지역 경제 내에서 역할을 분담하고 있었다. 소비자와의 거리가 다르고, 판매 품목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구도가 파괴된 것은 골목마다 무분별하게 24시간 편의점이 들어서면서다. 구멍가게가 편의점과 싸우고, 재래시장이 대형마트랑 싸우면서 골목 경제가 무너졌다.” 

아울러 박 씨는 소시민들의 경쟁력을 키우도록 하기는커녕 대기업을 더 지원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카드 수수료율의 차이 역시 골목 경제가 살아남지 못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다. 똑같은 물건을 팔아도 대형마트와 작은 가게들이 내는 카드 수수료율이 다르다. 작은 가게들이 오히려 더 많이 낸다. 이게 과연 공정한가?”라고 되물었다. 대형마트는 온라인과 함께 와서 더 위협적이다. 

“대형마트가 오프라인으로만 존재한다면 단골손님을 대상으로 그럭저럭 살아남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형마트들은 온라인 매장을 함께 운영하면서 재래시장과 경쟁한다. 대형마트에 사람이 없는 것과 재래시장에 손님이 적은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박종석 마포상인연합회장

           각종 상인회 대표들은 2012년 8월 19일 홈플러스 합정점 개점에항의하며 단체로 
           삭발을 하였다.
박종석 마포상인연합회장의 삭발한 머리는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

 

 

소비의 또 다른 기준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편리한 대형마트 대신 재래시장을 이용하라는 메시지는 과연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까? 박종석 씨는 이 문제를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달라고 주문했다. 먼저 대형마트의 불합리성에 대해 말했다. 

“가격은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조정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산다. 그런데 지금 대형마트는 가격 결정에 있어 소비자를 배제하고 있다.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아 팔리지 않으면 가격을 내리고, 잘 팔리면 가격을 유지하거나 올리는 시스템이 아니다. 대형마트가 가격을 정해버리면 소비자는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형마트는 중간 규모 이상의 전문 상가들도 무너뜨리고 있다. 박 씨는 “과거에는 낙원상가나 가구 골목처럼, 전문 분야가 있는 중간 규모 이상의 전문 상가들이 있었고, 그래서 중소기업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형마트에서 모든 제품을 다 팔고, 전국 어디에든 쉽게 대형마트의 문을 열 수 있는 상황에서 부는 대기업에 몰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무분별하게 허가해온 대형마트들이 장기적으로 서민 경제를 어떤 식으로 몰락시키고 있는지를 이해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유통 과정을 줄여 가격을 획기적으로 내린 상품들에 대해서도, 소비자들이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통 과정을 줄여 가격을 내렸다고 하면 언뜻 소비자들에게 이익으로 느껴지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위험한 선택이다. 이는 결국 대기업만 살릴 뿐이다. 지갑을 여는 기준이 ‘가격’ 밖에 없는 것은 위험하다. 공정한 경쟁을 통하지 않고 독점적으로 나온 제품들은 그 품질과 안전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더구나 그 유통 과정에서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배제된다. 우월적 지위를 가진 기업이 시장을 독식해 간다면, 결국 소비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하고 지역 경제를 돕는 방식의 소비를 하는 것이 소비를 하는 데에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 습관을 바꾸고 눈을 떠요

 

과연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 것일까? 몇 년 전부터 유행처럼 말해왔듯 마트에 가면 카트 대신 장바구니 들고, 장바구니 대신 손으로 들 수 있는 만큼만 구입하면 되는 것일까? 그리고 가끔 재래시장에 가면 윤리적인 소비자로 살고 있다며 자위할 수 있을까? 

박종석 씨의 답은 간단했다. 재래시장의 모든 물건이 더 좋다는 식의 환상도 심어주지 않았다. 구분해서 합리적으로 소비하라고 말했다. 습관을 바꾸면, 새로운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차 상품은 재래시장이 훨씬 좋다고 자부한다. 야채나 과일, 쌀, 반찬과 같은 1차 상품을 재래시장에서 사고, 나머지 제품을 마트에서 구입해봐라. 가격 면에서도, 품질 면에서도 훨씬 좋은 경험을 할 것이다. 그런 소비 방식이 결국 모두를 살리는 방법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집 주변에 있는 마트에서 파는 과일이 왜 맛이 없는 줄 아는가? 맛을 관리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쌓여있는 과일을 담거나, 포장되어 있는 과일을 그냥 사면 된다. 소비자가 생산자나 중간 상인에게 맛에 대해 따질 수 없는 구조다. 그냥 계산대에서 계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재래시장은 어떤가? ‘김 사장, 저번에 사간 사과 정말 맛없더라’, ‘아이고, 미안해, 비가 많이 와서 그런가봐, 오늘은 당도가 끝내줘’ 식의 대화를 한다. 품질에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다.” 

소비자와 상인이 맛과 맛에 적합한 가격을 조정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 역할을 대형마트를 소유한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정하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박 씨는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소비 경험이 소비자들의 삶을 훨씬 풍성하게 만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것은 단순하게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차원을 떠나, 마트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해줄 것이다. 재래시장은 엄격히 말해 소비만 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는 사람이 있고, 동네의 이야기가 있다. 같이 웃을 수 있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물건을 고르고 계산만 하는 대형마트와 다른 느낌을 체험 할 수 있다. 그것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부탁한다. 딱, 한번만 그 벽을 깨달라.”

 

                         박종석 마포상인연합회장
                           합정동 메세나폴리스 앞 홈플러스 입점 저지를 위한 농성장 풍경
 

 

쓰나미 앞에서 헤엄을 치라고?

 

두 시간 가깝게 이어진 인터뷰 후에야 박종석 씨의 눈에서 느껴진 공포를 이해할 수 있었다. 25년 동안 재래시장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그는 우리 경제가 현재의 구조를 유지하거나 강화할 때 어떤 참극을 맞을지 예감하고 있었다.   

2010년 사회를 들썩였던 이른바 ‘통큰치킨’ 논란은 골목상권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사건이었다. 대기업이 대형마트에서 치킨을 헐값에 판매할 때의 노림수가 무엇인지를 소비자들은 바로 알아차렸다. 조금 더 돌아가면, 과거 우리 사회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각각 다루는 분야에 차이가 있었다. 박종석 씨의 표현에 의하면 ‘같은 체급끼리 싸우지 않았다’. 대기업은 대자본이 필요한 사회적 기반을 쌓는 일이나 자동차와 같은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품목에 집중했고, 중소기업은 그들의 역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경계가 사라졌다. 중소기업이 경쟁해야 할 품목에 거대 자본을 가진 대기업이 끼어들면서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 중소기업이 죽고, 중소상인도 차례로 죽어간다. 골목상권이 죽는 건 당연한 결과다. 

우리는 한치 앞도 보지 못했다. 대기업이 도로를 만드는 대신 두부를 팔기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사건들이 쌓여 불과 십여 년 만에 이런 결과를 낳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혹은, 애써 외면했다. 국가 경제규모는 커진다는데, 동네는 가난해지고 있다. 동네에서 돈을 쓰는데, 동네 사람들은 모두 가난하다. 

박종석 씨는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 기사를 읽은 독자나 정부의 ‘뻔한’ 반응도 미리 예상했다. 

“대형마트 문제를 이야기하면 가장 많은 반응은 ‘재래시장도 변해야 하는데, 너희는 너무 게으르다. 재래시장의 특성을 살려라’는 식의 태도다. 그런 식의 대안은 너무나 순진하거나 무책임하다.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데, 우리더러 수영을 배우라는 말과 같다” 

 

황지희

전 참여사회 기자. 현재 모 회사 수석PR컨설턴트로 근무 중. 나라 걱정을 겸업하고 있으며, 클라이언트를 위해 모든 영화를 포기하고 소처럼 일할 각오가 되어있는 현대 도시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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