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1월 2012-11-05   1649

[역사] 항일과 반일 사이

항일과 반일 사이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제목 없음
                         2012년 8월 16일 상하이 일본 영사관 앞에서 열린 항일
                                     집회에서 시위 참가자가 슬로건을 외치고 있다.

항일, 전쟁 경험이 낳은 적대 의식 

 

만주사변의 발단이 된 야나기죠코 사건이 발발한 지 81주년이 되는 지난 9월 18일 중국에서는 50개가 넘는 도시에서 대대적인 반일 시위가 벌어졌다. 야나기죠코 사건이란 당시 일본이 소유하고 있던 남만주 철도를 일본군 스스로 폭파한 뒤 중국군에게 뒤집어씌운 사건을 가리킨다. 중국인에게 이날은 국치일이다. 일본 정부의 센카쿠 열도 국유화가 촉발한 중국인의 반일 행동은 일회성 시위를 넘어 일본 기업에 대한 공격과 약탈, 나아가 일본 상품 불매운동으로 번졌다. 실제 지난 9월 일본 자동차의 중국 시장 매출이 급감했고 항공업계도 큰 타격을 입었다.  

 

  중국인은 일상 속에서 늘 항일의 기억을 곱씹으며 살고 있다. 중국 드라마의 최대 화두는 사랑이 아니라 항일이다. 대개의 드라마가 일본 침략에 맞서 싸우는 공산당의 활약을 음모와 배신, 액션을 곁들인 프레임으로 그려내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황금시간대를 차지하고 있다. 그 드라마 속의 일본은 난징대학살, 일본군위안부, 731부대의 인체 실험 등 온갖 만행을 서슴지 않는 흉악한 적이다. 이렇게 중국인의 반일 정서는 일본과의 전쟁 경험에 대한 기억 속에서 극대화된다.  

 

 

 

두 개의 기념일 

 

1995년 8월 15일, 한국은 대대적으로 광복 50주년을 기념했다. 이 날의 키워드는 민족대화합이었다. 남북공동으로 8·15 대축전이 열렸고 통일축구가 열리는 경기장에는 한반도기가 물결을 이뤘다. 36년 간 일본 치하에서 받았던 고통을 상기하거나 일본을 경계하는 일은 부차적인 관심사였던 광복 50주년이었다.

 

  중국은 한국과 달리 일본 천황이 항복 선언을 한 8월 15일을 그저 종전일로 기념할 뿐이다. 이보다는 일본군을 중국 대륙에서 완전 축출한 9월 3일을 항일승전 기념일로 기념하며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기념 행사를 치른다. 2005년 9월 3일에는 후진타오 주석의 주재로 1,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항일승전 6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 기념식에는 항일전쟁에서 싸웠던 한국, 북한, 러시아, 미국 등 20여 개국의 참전용사들과 200여 명의 유족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그렇게 아직도 항일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면하며 오늘을 산다. 

  전쟁을 겪으며 일본과 적으로 맞섰고 항일승전을 기념하는 중국인, 식민을 겪으며 일본의 지배를 당했고 광복을 기념하는 한국인. 양자 모두 일본 침략 야욕의 피해자이지만, 반일 정서의 결은 전쟁과 식민의 경험의 차이 만큼이나 다르다. 중국인은 지금도 일본군에 의해 가족과 동족이 무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기억하고 치를 떤다. 중국인에게는 일본이 아직 ‘적’이라는 정서가 남아 있다.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선진 문물을 전해 받고도 노략질을 일삼고 왜란을 일으킨 일본을 배은망덕한 오랑캐로 여겨왔다. 근대 이후에는 일본이 근대화에 앞서면서 한일 간의 역관계와 선진 문물의 전달 통로가 역전되었다. 그로 인해 식민 경험은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과 저항 의식이 결합된 반일 정서를 낳았다. 그렇게 한국인은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반일 정서를 갖고 있다면, 중국인은 일본에 대한 적대 의식으로 충만한 ‘항일’ 정서를 갖고 있다. 그래서 외견상 중국인의 반일 정서가 더 격렬하고 과격하게 표출되는 것이다.

 

 

                             제목 없음        제목 없음
                           중국의 항일집회에 등장한 피켓                            

전쟁과 식민, 과거 청산은 다르다.   

 

 

일본이 패망한 직후 중국과 한국의 최대 현안은 친일파(중국에서는 ‘한간’이라 칭함) 청산이었다. 중국의 친일파 청산에서는 그 당위성을 놓고 개인과 집단, 계급과 계층에 따른 이견이 존재하기 어려웠다. 내 눈앞에서 가족과 동족을 죽인 적국 일본에 협조한 반역자는 응당 처단해야 마땅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공감대에서 공산당과 국민당 모두 적극적으로 친일파 처벌과 재산 몰수에 나섰다. 반면 식민으로부터 해방된 한반도에서 북한은 정권 수립 이전에 친일파를 청산했고 남한은 결국 실패했다. 친일파 청산은 친일 행위에 대한 단죄와 함께 재산 몰수를 전제로 한 것이기에 아무리 인민의 친일파 처단 요구가 높다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식민 경험 속에서 성장한 지주·자본가 계급과의 계급투쟁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주의화를 추구한 북한은 토지개혁과 산업국유화 조치 등을 통해 친일파의 물적 토대를 일소했다. 남한에서는 반공 이념으로 무장하며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했던 친일파를 미군정과 이승만 대통령이 비호하면서 계급혁명은 무산되고 말았다.     

 

  우리는 친일파 청산의 좌절을 탓하며 곧잘 프랑스의 철저한 과거 청산 사례를 거론한다. 그것은 프랑스 역시 중국처럼 전쟁 경험에 기원하는 과거 청산이었으므로 철저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간과한 단순비교다. 경험이 다르고 그에 대한 기억 방식이 다르면 경험과 기억의 청산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중국과 한국의 반일 정서가 다르게 표출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김정인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