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1월 2012-11-05   2044

[만남] 초보 엄마 펭귄부인의 우당탕탕 육아일기


초보 엄마 펭귄부인의 우당탕탕 육아일기  

최현주 참여연대 간사 가족                    

호모아줌마데스 애엄마   사진 이병렬 사진가 

 

녹음기의 전원을 켰는데도 자리가 수습되지 않는다. 아이는 돌아다니고 어른들은 수다를 떨고 서로의 이름을 묻고……. 아, 오늘은 정말이지 정신줄을 꽉 잡고 있어야겠다. 

 

  “어휴, 빗질도 못하고 세수만 하고 나왔어요. 이런 옷다운 옷을 입어본 지도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예쁘게 차려입고 내 앞에 앉은 그녀의 이름은 최현주, 나이는 나랑 같은 마흔. 

 

  이번 인터뷰이가 정해지고 제일 처음 한 일은 페이스북에 들어가 그녀에게 친구 신청을 한 것이었다. 돌이 갓 지난 남자아이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있는 그녀의 페이스북 담벼락. 어린 자식을 둔 부모들의 일상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에는 반전이 있다. 그녀는 참여연대 회원이 아니라는 점! 그럼 자격 미달이 아니냐고? 아니다. 그녀는 충분하고도 넘치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참여연대 ‘간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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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 첫 월급 27만 원
 

“제가 왜 이 인터뷰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전 회원도 아닌데.” 

 

  그건 모두 제 덕분이랍니다, 호호호. 『참여사회』의 편집 간사에게, 왜 만날 회원만 인터뷰 하냐고, 간사나 처장은 안 되냐고, 참여연대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이야기도 궁금하고 듣고 싶다고 격한(?) 항의를 했었거든요.

 

  “참여연대 간사가 된 계기요? 음, 안국역 덕분이라고나 할까요? 호호.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는 참여연대가, 3번 출구에는 현대건설이 있었죠. 공대를 졸업하고 엔지니어로 현대건설에서 3년 넘게 일했어요. 늘 3번 출구로 다니다 하루는 1번 출구로 나가보니 참여연대가 있어 회원으로 가입했죠. 그러다 대학 시절부터 알던 선배가 참여연대 간사가 되었다며 안국동 근처에서 일하던 선후배들에게 술마시자고 연락을 했죠. 그 술자리에서 참여연대 공채에 지원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어요.”

 

  그 선배가 바로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 참여연대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다. 너무 유명해서 심지어 네이버 인물검색에도 나오는 그가 말했다. “원서 접수는 이번 주까지야.” 생각할 시간은 며칠 남짓. 고민이 많았겠어요.

 

  “마침 회사 일이 점점 시큰둥해지고 있던 때였어요. 학교처럼 반복되는 일상, 매일매일 비슷한 업무들. 그리고 그때 제가 25살이었거든요. 한참 피가 끓을 때였죠.”

 

  회사 이름만 바뀐 게 아니라 통장에 찍히는 숫자도 엄청 바뀌었죠?

 

  “현대건설은 보통의 대기업 수준 정도였구요, 1999년 당시 간사 월급이 54만원이었는데, 견습이 두 달 있었어요. 견습 때는 월급의 50%만 나와요, 27만원이죠. 만 원짜리 27장이 든 하얀 봉투를 받던 날, 전 그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너무 강렬해서 지금까지도 그녀는 월급을 받을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 내가 이렇게 많이 받아도 되나. 미안해하는 그녀의 마음이 나는 더 미안하다. 참여연대 회원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을까. 더 주고 싶고 당연히 더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만이 덩그러니 남을 뿐.

 

  “그래도 이런 직장 없어요. 제가 지금 2년 3개월 째 쉬고 있는데, 안식년으로 1년, 출산휴가 3개월 그리고 육아휴직으로 1년. 사람들이 들으면 모두들 놀래요, 정말 좋은 직장에 다닌다면서…….” 

 

  게다가 모두 유급이다. 안식년은 참여연대에서, 나머지는 고용보험에서 급여가 나온다. 입이 딱 벌어져서 듣고 있는 내게 그녀가 흐뭇해하며 말한다. 

 

  “그러니까 참여연대 와서 일하라고 꼭 써 주세요.” 

 

  넵!

 

  피 끓는 나이에 시작해 장장 12년을 일한 그녀의 직장, 참여연대. 지겹지는 않았어요?

 

  “그게 참여연대의 장점이죠. 지루할 틈이 없어요. 매일같이 사건이 터지니까요. 돈 없이 사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바쁘게 지내니까……. 12년 일하고 나니 만날 친구가 없어지더라구요.”

 

  지금 참여연대에 일하러 오라고 말씀하시는 거 맞죠? 쓰면서도 어째 슬쩍 걱정이 되네요.

 

  “아기 때문에 텔레비전을 없애면서, 미디어 단식도 하고 있어요. 늘 뉴스에 예민한 참여연대에서 오래 일하다가 쉬게 되니, TV나 신문도 피곤하게 느껴지더라구요.”

 

  바뀐 건 이것만이 아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니 목소리도 커졌고 무엇보다 전화는 업무와 관련된 일 외에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소액주주운동, 총선연대 활동 등을 포함해 당시에 참여연대에는 정말 전화가 쏟아졌어요. 이해당사자들의 욕설 담긴 항의에서부터 각종 피해자들의 억울한 사연까지.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동시에 다시 벨이 울리곤 했어요. 그러니 일이 끝나면 전화
기는 쳐다보기도 싫었죠. 아, 남편이랑 연애할 때, 그때만 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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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그녀의 미모에 반했어요”
 

그녀에게 다시 전화기를 들게 한 남자, 이승용. 돌쟁이 아들을 참여연대에 회원으로 가입시키며 정작 본인은 후원금만 내고 회원 가입을 거부한 문제적 남편(?).

 

  “참여연대의 활동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에요. 요즘 들어 집단, 조직, 공동체 문화가 부담스러워서 아이만 가입시켰어요. 저도 결혼 전에는 그런 운동을 나름 열심히 했던 터라 좀 지친 것도 사실이구요.” 

 

남편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최현주 간사는 남편이 자신보다 더 열심히 빡세게 운동했던 사람이라며 역성을 든다. 역시 공대를 나와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엔지니어로 선박을 설계하며 노조 활동을 했던 그. 근데 울산 남자와 서울 여자가 대체 어떻게 만난 거래요?

 

  “참여연대 덕분이죠. 홍영기, 명광복과 송영민, 이승희, 황지희 등, 전현직 간사 5명이나 도와줬네요. 울산에 문상 갈 일이 있었는데, 초행이라 걱정을 하니 선배가 현지에 아는 사람을 소개해줬어요. 사실 저는 간 김에 여행도 좀 하고 올 요량으로 버릴 옷을 챙겨 입고 갔었어요. 그런데 그게 소개팅이었어요. 남편은 알고 나왔다는데, 전 몰랐었거든요.”  

 

  아하, 그럼 입고 버릴 옷을 걸치고 나온 여자에게 반해서 결혼까지 했으니 순전히 미모에 반했다는 거네요? 그러자 그녀의 남편이 그렇다고 해두자며 큰 소리로 웃어젖힌다. 이후 끈질긴 질문과 설왕설래 끝에 그녀의 외모에 반한 그가 먼저 대시를 한 것으로 최종확인, 이런 것일수록 분명하게 해야 한다니까요. ^^

 

  참여연대의 통인동 보금자리 마련을 위한 ‘베이스캠프 프로젝트’ 모금 당시 지인들에게 ‘난 결혼 안할 테니까 축의금 대신 후원해 달라’고 했다던 그녀. 근데 그 공약을 깨고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낳았다는……. 대체 아내의 어디가 그렇게 맘에 드셨나요?

 

  “저도 노조 운동하면서 고민이 많았고 아내도 간사 생활하면서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실제로 그런 고민들을 진지하게 나눌 사람들은 많지 않거든요. 아내와는 그런 깊은 소통이 가능했어요.” 

 

  근데 이분들, 너무 좋았던 건지 아님 급했던 건지 만난 지 200일 만에 결혼을 하고, 안식년 중에 임신까지 했다. 그 아이가 커서 지금 참여연대 사무실을 걸어 다니고 있다.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다니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간사가 아닌 엄마로서의 일상은 어떤지가 새삼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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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한 아이의 엄마와 간사 중 어느 게 더 힘드나요?

 

  “당연히 애엄마가 훨씬 힘들죠. 노동 강도가 겪어본 것 중 최고예요. 제정신으로 사는 시간은 하루 5분도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아이 때문에 행복할 때가 더 많잖아요?

 

  “아이가 집안일을 거들어 줄 때요. 어제는 빨래 걷는 걸 도와주더라구요. 너무 행복했어요.” 

  엥? 이제 15개월인데 너무하다. 

 

  “전 아이에게 일찍 살림을 가르쳐줄 거예요. 겪어보니 독립하고 나서 일상에 필요한 것들을 제 손으로 직접 하면서 철이 든 것 같아요.” 

 

  아들에게만 집안일을 시켰던 가풍 덕에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그녀는 임신 이후 요리를 배워 『채소가 좋아지는 에코 레시피-부엌 새내기를 위한 실속 친환경 요리법』이란 책을 떡하니 내놓았다. 하지만 그러고도 여지껏 밥을 하고나서는 곧바로 뒤집어줘야 떡이 안 된다는 사실을 몰랐단다. 요리보다 더 자신 없는 건 정리정돈. 나름 정리하고 사무실을 떠났는데도 사람들은 그녀의 어지러운 책상을 보고 어디 잠깐 나갔겠거니 했다니, 이쯤에서 슬쩍 남편을 바라보았다. 괜찮으세요? 남편은, 그저 웃지요…, 다.

 

  “아이 낳기 전까지 전 아무것도 안했어요. 결혼 초기에 출근할 때는 남편이 도시락까지 싸 주었는걸요.” 

 

  멸치육수 내는 장면을 보고 ‘아, 멸치국을 끊이는 거구나’ 했다는 우리의 부엌 새내기 펭귄부인, 남편 복은 타고났다. 근데, 요즘 내 주위에 남편 복 많은 여자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소화제가 어디 있더라?

 

  임신했을 때 걷는 게 펭귄같다고 남편이 지어준 별명, 펭귄부인. 그런 펭귄 손으로 하는 살림이니 어찌 보면 집안일에 서투른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위손은 아니니 희망 잃지 마셔요…….

 

  “근데 요즘 남편이 바빠져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죠. 게다가 아들 녀석이 입맛이 까다로워서 밥도 갓 지은 것만 먹으려 하고….” 

 

  초보 엄마의 하소연이 길다. 이제 시작입니다. 펭귄부인,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그나저나 아이 낳고 세상이 좀 달라 보이지 않던가요?

 

  “참여연대에 있을 때는 거대한 담론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봤죠. 근데 아이를 낳고는 작은 것들이 눈에 보이더라구요. 아이의 발톱이 부러지지는 않았나, 밥풀에 뭐가 달라붙은 건 아닌가…….”

 

  참여연대에서 망원경으로 바라보던 세상을 아이를 낳고는 현미경으로 보아야 했다. 간사 시절 전혀 중요하지 않던 먹고 자는 문제가 아이를 낳고는 최고의 난제가 되었다. 

 

  “아이 엄마가 되고나니 참여연대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돼요. 보고 들리는 것은 아이와 나누고 싶잖아요. 참여연대 활동 자료를 보며 어떻게 아이에게 설명할까부터 떠올리게 되더라구요. 아마 『참여사회』를 받아보는 많은 부모 회원들도 그러실 거예요. 그래서 『참여사회』나 <활동보고서>부터 가족용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 달에 한 번이나 일 년에 한두 번, 참여연대를 통해 가족이 소통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맞춰가는 거죠. 미래의 민주시민이 쑥쑥 자라는 소리가 들리죠? 호호. 그뿐 아니라 지난 활동에 대해서도 달리 보여요. 일례로 참여연대는 주부 자원활동가를 활성화시키려고 여러 노력을 해왔는데 크게 성공하지 못했어요. 지금보니 그들의 현실에 대한 이해부터 부족했던 것 같아요. 저부터도 아기와 몇 번 참여연대를 방문하고 나서야 수유할 곳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주부들의 활동을 위해서는 아이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했던 것이죠.”

 

  아이를 낳으면서 엄마가 된 그녀는 동시에 일하는 여성으로서도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여성은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여전히 서글픈 약자로 남아있다. 

 

못 다한 이야기

 

그녀가 들려준 소중한 이야기들을 모두 적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신입간사 시절 일했던 안국동 사무실의 열악한 근무 환경, 오랜 인연을 맺어 간사, 회원의 관계를 뛰어넘어 가족처럼 느껴지는 회원들과의 추억, 만 명 째 회원이 가입하던 날 그 주인공을 만나러 인천까지 찾아갔던 일. 때론 밤을 새워가며 치열하게 일하며 참여연대와 함께 울고 웃었던 지난 12년이 그녀에겐 모두가 축제 같던 나날이었다.   

 

  그리고 그 축제 끝에 펼쳐진 또 하나의 세상, ‘아이.’ 정작 본인의 머리는 빗질도 못했으면서 아이의 수저와 물통, 간식으로 먹일 과자는 꼼꼼히 챙겨왔던 그녀. 하나의 생명을 온전하게 길러내는 일, 다른 이들의 평온한 일상을 위해 그 뒤의 자질구레한 것들을 도맡아주는 일, 그러나 너무 쉽게 잊히고 기억되지 않는 노력들.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정치, 역사, 이데올로기 이런 틀은 때로 너무 크고 먼 관점만을 제공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알게 되는 세상과 삶이 있다는 걸, 그녀는 한 아이의 엄마가 돼서야 그렇게 깨닫는다.

 

  자신의 직장을 “정치적으로 크게 각성된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 아니라 그저 오늘보다 내일이 좀 더 낫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그런 사람들이 간사가 되고 회원이 되는 곳”이라 소개하는 그녀는 요즘 복직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의 온기가 고스란히 담긴 손으로 다시 돌아올 그녀. 그 따스한 손길로 보듬는 세상은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훈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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