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1월 2012-11-05   1599

[기획] 21세기, 참정권 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21세기, 참정권 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누구를 선택하더라도 투표권은 보장되어야 합니다

황영민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
 

 

“선거일에도 택배는 쉬지 않아요. 새벽 5시에 출근해 12시간 이상, 하루 종일 물건을 배송하다보면 투표할 엄두도 나지 않죠. 배달해야 할 택배 물량이 많아 대선에도 일할 수밖에 없을 거에요. 배달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제가 수수료를 물어내야 하거든요.” (고OO, 29세)

 

“운수업에 근무한지 21년 됐는데 대선, 총선, 지방선거 모두 투표하고 싶어도 한 번도 못했어요. 투표하려고 배차 빼려면 회사 관리자는 ‘당신이 투표를 하든 말든 당선될 사람은 되고 안 될 사람은 안 된다’며 빼주지 않아요. 그래도 저는 투표하고 싶어요.” (황OO, 52세)

 

“저는 건설 노동자예요.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을 시작해 오후 6시에 끝나고, 9시까지 연장근무를 할 때도 있어요. 선거일이라도 쉬지 않아요. 일하느라 좋아하는 후보가 나와도 투표를 못하는 일이 많았구요.” (서OO, 41세)

 

“저는 양계장에서 일을 해요. 생물을 키우는 축산업계 노동자들은 하루도 쉴 수가 없어요.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해야 하는데 투표 시간이 연장되지 않으면 이번 대선에서도 투표하기 어려울 겁니다.” (이OO, 40세)

 

“약국은 약사 아닌 사람이 조제·투약 업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자리를 비우기가 힘들어요. 매번 투표일마다 간신히 투표했는데 투표 시간이 늘어나면 조금 더 마음 편히 투표할 수 있겠다 싶어요.” (안OO, 42세)

 

 

제목 없음

2012년 10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선거일 유급휴일 지정, 투표시간 9시로 연장’을 기치로 <투표권보장 공동행동>이 발족했다. <투표권보장 공동행동>은 민주노총, 참여연대, 경실련, 한국진보연대, 한국YMCA전국연맹, iCOOP소비자활동연합회, 투표시간연장2030공동행동, 광주전남시민행동, 경남연대회의, 2012부산유권자네트워크 등 전국의 노동,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결성한 시민사회의 연대 기구다. 지난 9월 18일, 국회에서 투표시간 연장안 처리가 무산된 이후, 자발적 온라인 서명과 1인시위, 촛불문화제 등 투표권 보장을 요구하는 여론이 지속되고 있다.

 

 

투표하고 싶어도 참여하지 못하는 유권자?

2012년 9월 18일, 그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새누리당 소속 소위원장의 고의적인 회의 지연으로 끝내 ‘투표시간 연장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 달이 훌쩍 지났고 여론이 들끓는데도 불구하고 국회의 법안 처리 전망은 아직 불투명하다. 오히려 ‘선거일은 공휴일인데 투표를 안 하는 것은 성의의 문제’라거나 ‘대선을 앞두고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는 근거 없는 반대 의견을 말하거나, 야당의 대선 전략에 시민단체가 호응하고 있다는 식의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까지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할 권리를 달라는데, 이해관계로 주판알을 두드리는 편협함이 안타까운 상황이다. 성의 없는 유권자를 탓하기 전에, 투표하고 싶어도 못하는 유권자의 현실을 살피는 것이 정치인의 도리 아닐까?

 

  어쩌면 생소할 수도 있겠다 싶다. 당장 내 주변에 투표장을 찾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스스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은 있어도 여건상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인용한 몇몇 이들의 사연은 제보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나타난 대표적인 사례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지난해 한국정치학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의뢰로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 투표참여 실태조사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총선 당시 비정규직이었던 678명의 응답자 중,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256명이었고, 그 가운데 64.1%가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응답했다. 세부 사유는 ‘고용계약상 근무시간 중 외출 불가능(42.7%)’, ‘임금이 감액되기 때문에(26.8%)’, ‘고용주나 상사의 눈치 때문에(9.8%)’ 등 주로 고용계약 관계에 인한 것이었다. 

 

  선관위가 매 선거 시기에 조사하는 유권자 의식 조사 결과에서도 유사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선거 이전에 실시하는 선관위의 1, 2차 의식 조사에서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의 경우, ‘투표를 해도 바뀌는 것이 없어서’ 혹은 ‘찍고 싶은 후보자가 없어서’ 등 정치 무관심과 관련된 대답이 1, 2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선거 이후 조사 결과에서는 사전 조사인 1, 2차 결과와 달리 ‘개인적인 일/출근 등’으로 참가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난다. 유권자가 ‘개인적인 일/출근 등’으로 투표하지 못한 경우는 19대 총선에서 39.4%, 2010년 지방선거에서 36.6%, 18대 총선에서 27.8%였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선거일에 일하고, 또 투표에 참여할 시간을 확보해줄 것을 요구하지 못해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목 없음              노동단체 및 시민사회단체 대표자, 시민사회 원로 등 각계 인사 230명은 10월 24일(수)
              오후 1시 ‘투표권 보장 각계 인사 선언’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각계 인
              사들은 대선을 앞두고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투표권 보장’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선거일을 유급 공휴일로!

우리의 상식은 ‘선거일=법정 휴일’이다. 우리나라의 법정 공휴일은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휴일에 관한 규정’으로 정해져 있고, 이에 따라 2006년부터 선거일은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사실상 선거일은 ‘관공서와 공무원들에게만 휴일’이다. 상당수의 사업장에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이 규정을 준용해 공휴일을 정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중소·영세 사업장 등 노동조합을 통해 권리를 요구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먼 얘기다. 백화점, 마트 등 직종에 따라 근무를 강제하는 곳도 있다. 지난 9월 26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올해 총선에서도 직장인의 절반이 출근했다고 응답했다. 현실에서 선거일은 공휴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현행 법률은 고용된 자의 투표 시간은 휴무나 휴업으로 보지 않도록 하고(공직선거법 제6조), 사용자가 선거권 행사를 위해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면 거부하지 못하며(근로기준법 10조), 이를 위반한 사업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근로기준법 110조)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조항으로 처벌한 판례는 단 한 건도 확인할 수 없다. 때문에 사용자의 보장 의무를 강화하고, 누구든지 위반자를 고발할 수 있도록 법 조항을 개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회사에 눈치가 보여, 행여 불이익이라도 당할까 주저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어떨까. 

 

  우리의 상식에 맞도록 선거일을 유급 공휴일로 지정하자. 그래서 출근 시간에 쫓겨, 회사 눈치가 보여 투표를 못하는 유권자는 없도록 해보자. 적어도 우리의 열악한 노동 현장의 현실이 선진국 수준까지 나아질 때까지만이라도 편하게 투표할 여건은 보장해 주자. 우리나라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2010년 기준으로 OECD 평균 연 1,692시간을 훨씬 상회하는 2,111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18대 국회에 이어 19대 국회에서는 정해진 공휴일 횟수라도 지켜 제대로 쉬자는 ‘대체공휴일제’까지 논의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선거일을 유급 공휴일로 하고 마음 편하게 투표에 참여할 자격이 우리 시민에게는 충분하지 않은가.

 

 
            제목 없음
             일부 정치인과 정당은 ‘투표는 성의의 문제’,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식의 정략적 관
                점으로 투표권 문제 해결을 미루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투표 시간은 9시까지!

그러나 선거일이 유급 휴일로 지정되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또 유급 휴일로 지정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근무해야 하는 이들이 존재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 상 주휴일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유급 휴일로 규정된 ‘근로자의 날’에도 출근하는 노동자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운수나 철도, 유통, 자영업자 등 업종별 특수성과 경제적 이유로 휴일에도 일하는 유권자들이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수십 년간 변하지 않고 있는 투표 시간이라도 우선 연장해 보자. 오후 6시, 7시에 퇴근하더라도 오후 9시까지 투표할 수 있다면, 선거일에 근무하는 상당수의 직장인들이 여유 있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지 않겠는가. 

 

  투표 시간의 연장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투표율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다. 1998년 이후 투표 시간을 2시간 연장한 일본의 경우 10% 가량의 투표율 상승 효과를 봤다. 한국의 경우도 재보궐 선거에서 오후 6시부터 8시 사이에 해당 선거 전체 투표자의 10%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낮은 투표율이 초래하는 민주주의 위기를 걱정하면서, 투표율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외면하는 것은 모순 아닐까. 적어도 투표할 시간은 보장하면서 ‘유권자의 성의’를 기대해야 한다.

 

1인 1표 보통선거권을 행사하기 위한 21세기 참정권 운동

10월 16일,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투표권 보장 공동행동>을 결성하고, ‘선거일을 유급휴일로 지정’하고, ‘투표 종료 시간을 오후 9시로 연장’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국 각지의 유권자들의 서명을 모아 11월 1일 국회에 국민 입법청원하고, 대선 전에 여야와 대선 후보가 결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1월에는 다가오는 대선에서 소속 노동자의 투표권을 보장할 것을 약속하는 ‘개념 기업’을 칭찬하고, 투표권 보장에 소극적인 ‘무개념 기업’을 찾아내 감시하는 활동을 벌일 것이다. 이를 위해 제보센터도 개설할 예정이다. 

 

  지난 19세기, 20세기가 1인 1표의 보통선거권을 얻기 위한 기나긴 싸움이었다면, 이제 보통선거권을 제대로 행사하자는 21세기판 참정권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치권의 변화는 결국 시민의 손으로 끌어내야 한다. 입법 촉구 서명, 라디오 공익광고 모금, 투표권 침해 기업 제보 등 동등한 투표권 보장를 위한 여정에 함께 해주시길 기대한다. 

 

 


“투표권 보장 운동, 참여는 이렇게!”


투표권 보장 공동행동 상황실 

02-725-7104        everyvote9@gmail.com 

입법 촉구, 웹에서 간편하게 서명하기 

nodong.org/everyvote9

라디오 공익광고를 위한 모금 참여하기 

농협 302-0614-8912-61 (예금주 김현식)

황영민

의정감시센터에서 5년간 국회를 지켜보며 ‘좋은 정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연락은 자주 못해도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구요, 올해 4월,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전보임 간사와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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