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1월 2012-11-05   1747

[특집] 식량위기, 이대로 좋습니까


식량위기, 이대로 좋습니까

윤병선 건국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싼 먹거리 시대의 종말

식량위기라는 악몽이 또다시 엄습하고 있다. 2008년의 식량위기에 이어서 올해 세계 여러 지역의 기상이변으로 주요 식량 수출국의 곡물 재고량이 위험 수준으로 낮아져 2013년에 중대한 식량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또한 올해는 세계 각지의 고온과 가뭄 등과 같은 기상이변으로 미국과 우크라이나 등 주요 식량 수출국의 수확량이 감소해 곡물 재고량이 1974년 이래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미국의 옥수수 재고율은 30년 만에 최저인 6.5%에 불과하기도 하다. 

  문제는 식량위기가 상시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의 세계적 식량위기 이후 ‘값싼 먹거리의 종말The end of cheap food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곡물 가격이 급등한 이후 잠깐의 소강상태를 거쳐 현재 곡물 가격은 FAO(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 United Nations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가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로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더욱이 최고가의 갱신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 최근의 식량위기 이전에는 지역 간 불평등으로 인한 상대적인 식량 부족이 존재하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볼 때는 식량이 남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 소비량의 증가를 생산량이 따라잡지 못하는 절대적 식량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0/2001 곡물년도부터 2009/2010 곡물년도까지 10년간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많았던 해는 4년밖에 없었으며, 나머지 6년간은 소비량이 생산량보다 많은 절대적인 부족이 나타났다. 이를 1990년대와 비교하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1990/1991 곡물년도부터 1999/2000 곡물년도까지 10년간 생산량과 소비량의 차이는 (+)2.5억 톤이었던 반면, 2000/2001 곡물년도부터 2009/2010 곡물년도까지 생산량과 소비량의 차이는 (-)2천만 톤으로 절대적인 생산량 부족이 확인된다. 이에 영향을 받아 국제 곡물가격은 급등세를 계속 유지하고 있고, 경상가격 기준으로 역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곡물가격 인상을 부추기는 세력

최근의 식량수급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식량위기의 주된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상기후이다. 실제로 이상기후가 식량공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상기후에 따른 수급불균형이 사회경제적인 구조적 원인에 의해서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제3세계의 경우, 식량위기를 항시적으로 겪게 된 과정이 세계 농식품체계로의 편입과 함께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주류경제학에서는 국제곡물시장이 극히 과점화되어 있다는 구조적인 특징에 대한 고려는 없이, 자유로운 시장의 완전한 작동이 이루어져 농산물의 완전한 자유무역이 이루어진다면 기아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자유무역으로 기아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과는 달리 식량부족 상황에 직면한 많은 곡물수출국은 자국의 국경을 봉쇄하는 조처를 했고, 자유무역을 통한 식량위기의 해소는 현실에서 불가능하게 되었다. 오히려 자유무역에 대한 환상이 식량위기를 부추기는 상황을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곡물 사용의 다변화도 식량위기를 야기하고 있다. 과거에는 곡물을 두고 사람과 가축이 각축을 벌이는 것에 그쳤다면, 최근에는 농산연료agrofuel의 생산 확대가 수요에 가세해서 곡물가격의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IFPRI(국제식량정책연구소)는 2000년부터 2007년에 걸쳐 곡물가격 상승의 원인 중 식물성 연료의 영향에 의한 것이 옥수수 39%, 소맥 22%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를 공표하였고, 가디언지가 입수한 세계은행 내부 보고서를 보면 식물성 연료가 세계 식량위기에 미치는 비중은 이전에 추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75%로 평가되었다. 식물성 연료 사용과 식량위기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논쟁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세계 곡물재고율이 바닥에 근접하던 시점에 곡물수출대국 미국에서 식물성 연료 정책이 계획되었다는 사실과 식량위기가 재점화되고 있는 올해의 상황에서도 미국이 자국에서 생산된 옥수수의 40%에 달하는 양을 150억 갤런의 농산 연료를 생산할 계획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곡물(옥수수)수출시장에서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의 정책은 즉각 국제 곡물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투기자금이 국제곡물시장으로 유입되면서 곡물가격을 상승시키고 있다. 세계적 금융위기에 따른 금융완화정책으로 인한 과잉유동성은 선진국의 저금리정책과 맞물리면서 많은 자금이 곡물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 곡물 선물시장은 금융상품시장이나 자원상품시장과 비교해 규모가 매우 작다. 따라서 과잉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투기자금에 노출되면 국제곡물시장은 쉽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06년 이후 헤지펀드를 비롯한 투기자본들이 끊임없이 곡물 선물시장에 유입되어 전체 거래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의 입으로 가야 할 곡물이 투기자본의 사냥감이 되어버린 것이다. 

            제목 없음


절망의 늪에 빠진 한국의 곡물자급률

국제곡물시장의 가격이 급등하더라도 우리의 자급력이 높다면 강 건너 불구경이 될 수 있겠지만, 현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얼마 전 농림수산식품부가 발표한 통계자료만 보더라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이 작년도에 사상 최저인 22.6%를 기록했고, 이는 1년 만에 자급률 수치가 20%(5%p)나 폭락한 것이다. 사료용을 제외한 곡물자급률도 역사상 최초로 45% 이하로 떨어져 버렸다. 작년만 하더라도 50% 중반을 유지했던 것이 44.5%로 추락한 것이다. 쌀 자급률은 83%로 추락했다.

  
  상황이 이처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정부는 아직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구호에 불과한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말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달성 방안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신 자급률 지표가 하락하자, ‘곡물자주율’이라는 희한한 지표를 가지고 현실을 왜곡할 요량인 듯하다. 국내에서 생산한 곡물뿐만 아니라, 한국 공·사기업이 국외에서 생산하거나 구매한 곡물도 포함하려는 곡물자주율이라는 개념은 모든 나라가 자국의 곳간을 챙기는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자급력 향상의 희망은 중소농가에

곡물 자급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유럽 제1의 농업국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곡물자급률은 170%를 넘고 있는데, 이처럼 높은 자급률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농업에 대한 보조금 정책의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2005년을 기준으로 보면 농업 수입에서 농산물 판매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불과하고, 보상지불이 72%, 환경지불과 조건불리지역지불이 각각 5%에 이른다. 미국도 농업소득의 26%가 직접지불금(쌀은 58%)이고, 농업 생산액 대비 농업 보조금 지원 규모(2005년)는 미국 14.6%, EU 22.3%, OECD 국가 평균 15.5%인 반면, 한국은 5.0%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농업에 대한 지원이 과대하다는 정부의 선전은 거짓에 불과하다. 

  국가 전체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품목별 자급률뿐만 아니라, 지역별 자급률도 높여야 한다. 지역 내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농산물을 동일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먹거리로 이용하게 되면, 유휴농지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고, 소규모 영농도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현재의 농식품체계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역농식품체계local agri-food system 또는 지역먹거리체계local food system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대규모 전업농의 육성에만 매진해 온 한국 농정은 이제 중소규모의 농가들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정책으로 변화해야 한다. 전체 농가 가운데 최저생계비 이하의 농가가 30%에 육박하는 기막힌 농촌 현실을 극복해 내기 위해서라도, 자급력 향상의 힘을 다수의 중소규모 농가로부터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농정의 중심축에 중소농가를 두는 정책으로 변화해야 한다. 

 

 

 

윤병선

건국대학교 경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 농식품 체계 하에서 나타나고 있는 농업지배와 그 대안에 대하여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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