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1월 2013-01-13   2346

[기획] 비가 싫어질 수도 있겠구나

참여연대 20년 20장면 Scene #05

비가 싫어질 수도 있겠구나

2004, 2010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UP 캠페인

 

차병직 변호사

월간 『참여사회』는 참여연대 창립 20주년이 되는 2014년까지 참여연대가 이루어낸 의미있는 성과들을 소개하는 <참여연대 20년, 20장면>을 연재합니다. 참여연대 창립 멤버인 차병직 전 집행위원장(변호사)이 참여연대 활동 기록과 관련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집필합니다. 이번호에서는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UP캠페인을 복기합니다. 

 

201301_참여사회
2004년 7월. 캠페인 장소인 하월곡동에서 최저생계비 뛰다를 모토로 포즈를 취한 캠페인 체험단

 

연재순서

#01 봄은 주총의 계절이었던 시절 – 1997 소액주주운동
#02 법원 하나를 날려버린 고발장 – 1998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03 거리의 신화, 시민불복종 – 2000 낙천낙선운동
#04 호루라기를 나눠 드립니다 – 1994~ 공익제보자 지원 운동
#05 비가 싫어질 수도 있겠구나 – 2004, 2010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UP 캠페인

 

 

포도밭 주인이 일꾼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이른 아침에 만난 일꾼을 농장으로 보내며 일당을 5만 원으로 정했다. 9시쯤 장터에서 만난 두 사람도, 점심시간에 길가에서 빈둥거리던 사람도 모두 그렇게 했다. 오후 5시가 되어 돌아오는 길에서도 혼자 서성대는 사내를 보았다. “당신은 왜 하루 종일 이렇게 지내는 거요?” “아무도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요.” 주인은 그도 함께 데리고 갔다. 해질 무렵 일이 끝나자, 주인은 모든 일꾼들에게 5만 원씩 지급했다. 일찍부터 일했던 사람들이 불만에 찬 목소리로 항의했다. 그러자 주인은 말했다. “당신은 5만 원을 받기로 했으니 당신 몫이나 받아 가시오.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똑같이 주는 건 내 뜻이오.”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의 의미를 기독교도들은 이르거나 늦거나 시간과 순서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으로 새긴다. 그러나 존 러스킨은 노동권이 생존권으로 이행돼야 한다는 현실적이고 실천적 의미로 해석한다. 누구든지 일할 수 있어야 하고, 일을 적게 한 사람도 생계에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이해한다.

최저임금도 그런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최저임금은 노동자가 손에 받아 쥐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 하나의 제도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이용하면 그 대가로 지급해야 할 최소한의 돈이 최저임금이다. 자본주의의 현실에 이론상 포도밭 주인 같은 사람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법으로 최저임금을 강제하여 노동자의 생존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법에 따라 노동을 착취하여 이윤을 확보하려는 사용자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려는 노동자 사이의 치열한 싸움에 정부까지 가세하여 매년 8월에 다음 해의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2012년의 최저임금은 시급 4,580원, 2013년에는 4,860원이다. 실제 임금은 최저임금을 최소한으로 사용자가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으로 하여 그 사이에서 결정되지만, 영세한 자본가들은 최저임금만 주면 합법의 이름 아래 안도한다. 이런 제도에서 노동자는 한 달에 209시간 열심히 일하면 대략 90만 원은 조금 넘고 100만 원에는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다. 그 돈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그 최소한의 수입조차 없는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것은 또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최저생계비다.

 

201301_참여사회2010년 희망UP 캠페인을 진행한 장수마을 전경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UP 캠페인
참여연대는 출범과 함께 권력 감시뿐만 아니라 구체적 정책 대안의 제시를 실천하기 위해 정책 기구로 사회복지위원회를 설치했다. 약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바로 다음 해 활동 기구로 전환한 사회복지위원회는 국민생활최저선 확보 운동을 펼쳤고, 그 노력은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우리 사회의 복지정책에 가시적 변화를 가져온 큰 성과였다.
기초생활보장법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일정한 돈과 물품을 지급하여 최저 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2000년 10월 1일부터 시행됐다. 그때 각종 급여의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 최저생계비다. 당시 계측된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의 경우 34만 9,000원, 4인 가구의 경우는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사회복지위원회로서는 법의 제정에만 만족할 수 없었다. 당장에는 최저생계비를 인상하여 현실화하고, 나아가 법을 개정하는 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그러한 의도로 고안한 것이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UP 캠페인’이었다. 생활보장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보건복지부장관이 공표한 최저생계비로 살아갈 수 있는지 직접 체험해 보기로 한 것이다.

2004년 7월 1일, 하월곡동의 방 세 칸짜리 집에 세 가구가 입주하였다. 김현정과 이대원은 각 1인 가구, 송정섭과 김미애는 2인 가구로 방을 하나씩 차지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집세를 내야 했다. 가구마다 최저생계비가 지급되었는데, 1인 가구는 36만 8,226원이었고 2인 가구는 60만 9,842원이었다. 그 돈에서 집세는 물론 식비와 교통·통신비 그리고 공과금을 내야 했다. 운세에 따라 의료비나 피복비를 지출할 수도 있었다. 세탁기와 냉장고는 한 대씩 비치돼 있어 공용이었다. 특히 왕큰이란 별명으로 불린 이대원은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교통비 지출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왕큰이는 세탁기에 수건을 널어  놓은 채 출근했다. 낮에 나갔다 들어오던 김미애는 그것이 걸레인 줄 알고 방문 앞에 깔아 놓고 빗물에 젖은 발을 닦는 데 사용했다. 퇴근한 이대원은 그것을 보고 화가 났다. 냉장고는 칸을 나눠 이용했다. 출퇴근으로 바쁜 왕큰이는 통조림을 선호했고, 나머지 세 여성은 직접 요리를 했다. 그러다보니 채소 같은 재료가 부피를 많이 차지해 왕큰이의 냉장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잦아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지곤 했다. 급기야 전체 일정의 절반을 넘기는 날 아침에 왕큰이가 냉장고 문을 발로 걷어차는 소동이 벌어졌다. 냉장고 문이 잘 닫히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이미 생활비 지출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낸 세 가구 네 사람의 가계부는 모두 적자였다.

 

생계와 생존, 그 경계에서
최저생계비 체험을 통한 희망UP 캠페인은 치밀하게 준비했다. 2003년 사업을 평가하고 다음 해 사업 계획을 수립하는 자리에서 안이 나왔고, 2004년 사회복지위원회 전체 회의가 공공부조팀의 주요 사업으로 승인했다. 체험의 형식은 한 달 체험, 릴레이 체험, 온라인 체험의 세 가지로 고안됐다. 한 달 체험은 실제로 방을 얻어 1인 가구부터 4인 가구까지 팀을 구성하여 최저생계비로 생활하는 것이었다. 그 밖에 운동의 홍보 효과를 높이고 폭넓은 관심과 지지를 모으기 위해 매일 한 사람씩 하루치 생계비로 하루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운동에 동참하려는 일부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최저생계비로 한 달을 보내며 온라인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5월이 되자 최저생계비 체험단을 모집하는 공고를 냈고, 간사 전은경은 장소 물색에 나섰다. 고생 끝에 하월곡동 산 2번지에서 햇살놀이방을 운영하던 빈민사목회 소속의 임아녜스 수녀를 만나 과제를 해결하게 됐다. 방을 얻고, 입주에 맞추어 쥐똥과 바퀴벌레를 치우는 대청소를 했다. 마치고 난 뒤에는 평가회를 가졌고, 정부에 최저생계비 인상을 요구했다. 이 운동은 꽤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10년에 똑 같은 방식으로 두 번째 캠페인을 벌였다.

2010년 행사의 체험 장소는 성북구 삼선동의 장수마을이었다. 옛 혜화문 밖의 삼선평이라 불리던 들판에 들어선 장수마을은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유명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안성호는 회사의 사회공헌팀에서 지역사회 취약 계층 돕기에 참여하게 됐다. 하지만 회사 홍보 차원에서 하는 그 일에서 별다른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마침 그때 참여연대의 체험자 모집 공고를 보고는 충동적으로 사표를 내고 그날 오후에 장수마을로 향했다. 1인 가구 체험자 안성호에게 지급된 돈은 37만 8,540원이었다. 2010년 1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50만 4344원이었지만, 집세와 냉장고 등 용품의 사용료를 공제하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루 1만 원 정도라면 7월 한 달 정도는 너끈히 넘길 것 같았다. 치밀하게 1일 지출 계획표까지 짜고, 헌책방에 들러 1,000원 주고 책도 한 권 샀다. 최저생계비란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법이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내면서 생계비는 생활비와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돈이 모자라면 먹는 것을 줄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못 가서 1일 지출 계획표가 무의미하단 사실을 깨우쳤다. 습기 때문에 생긴 피부병을 치료하러 동네 병원을 한 번 다녀오고 나서는 생계비의 관념이 생존비로 바뀌고 말았다. 1,000원의 책값조차 호사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임시로 설정한 현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심리적 위축을 경험했어요.”

릴레이 체험에는 학생과 시민은 물론 국회의원과 장관까지 참여했다. 2004년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24시간 동안 제대로 체험 일정을 보내지 않았지만,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여 호감을 샀다. 반면 한나라당의 차명진 의원의 이른바 황제 식단은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는 미트볼 한 봉지 970원, 야채참치 캔 970원, 쌀국수 970원, 쌀 한 컵을 800원에 구입하여 모두 3,710원으로 세 끼를 해결했다. 낮에 만난 극빈자에게 숙취 해소용 약을 사 주고는 “내 식대의 6분의 1을 할애해 사회복지 사업까지 했다”고 일지에 썼다. 그리고 저녁 간식으로 황도 통조림을 샀는데도, 다음날 떠날 때 하루 식비 6,300원에서 40원을 남겼다. 그의 결론은 “단지 돈 몇 푼 올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였다. 그러면서 “난 왜 크게 불편이 없었을까?”라고 덧붙였다. 알고보니 차 의원은 사전에 보좌관을 시켜 주변 마트에서 할인 판매를 하는 식품을 모조리 조사하게 하여 자신의 황제 식단을 꾸렸다. 낮에 동사무소를 둘러보던 중에는 핸드폰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전화를 해 모종의 조치를 요구하며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주승용 의원은 “현재의 최저생계비로는 기본적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며, “기초생활 수급자가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했다. 진보신당의 조승수 의원도 “4,200원으로 두 끼를 해결하는 데는 많은 포기와 결단이 필요했다”고 소감을 말하며, “오늘 새로운 숙제를 하나 가지고 간다”고 결심을 피력했다. 몇 시간의 같은 체험을 하였음에도 세상을 보는 눈이 이렇게 서로 달랐다.

 

201301_참여사회

 

 2010년 7월 1일, 참여연대는 두 번째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up 켐페인’ 돌입 기자회견을 열였다

생활과 사치 사이
희망UP 캠페인은 두 차례의 체험 운동을 통해 최저생계비의 존재와 문제를 동시에 알리는 데 성공했다. 행사 이후의 최저생계비 상승 비율은 전년도에 비해 항상 높았다는 것을 성과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최저생계비 문제를 정부보다 사유재산제도를 절대신처럼 받드는 가진 자들에게 인식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4인 체험 가구에선 낮에 할머니가 2만 원 주고 파마를 하고 나서 생활비에 비상이 걸렸다. 3,000원짜리 헤어젤을 산 청년이 비난을 받았고, 린스가 사치품이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여름철에 모기약도 필요한 만큼 구입할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 병원에 가기만 하면 예산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서 2인 가구의 송정섭은 문화오락비를 털어 소주 두 병을 마시며 동거인과 밤새 통곡했다. 비가 내리면 창을 열고 감상에 젖곤 하던 김진희는 2004년에는 3인 가구, 2010년에는 4인 가구의 일원으로 모두 참여했다. 반지하 방은 습기가 많이 차 곰팡이가 슬었고, 몸은 가려웠으며, 빨래는 마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속 그렇게 산다면 “비가 싫어질 수도 있겠구나”싶었다. 세상 자체가 비처럼 보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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