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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를 넘어서

작성자
남상휘
작성일
2023-10-04 00:03
조회
248

녹색평론 - 오염된 바다, 흔들리는 민주주의

 

1) 후쿠시마 오염수를 넘어서

처음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일본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에 포함된 삼중수소는 미국이나 중국, 한국에서 방류하는 삼중수소의 양보다 적다는 점을 강조했다. 너도나도 바다에 방사능물질을 버리고 있는데, 왜 후쿠시마 오염수만 갖고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것이었다. 2020년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오염수 방류에 대해 “국제 관행에 부합한다”라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려온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1946년 미국은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약 50km 떨어진 패럴론제도에 핵폐기물을 버렸다. 핵무기 실험실과 각종 연구실에서 나온 핵폐기물이었다. 1970년대까지 이곳에는 약 4만 7500배렬의 핵페기물을 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관행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구소련, 영국, 스위스,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1993년까지 바다에 핵폐기물을 버렸다. 핵폐기물을 버린 장소로는 대서양과 북극해가 가장 많고, 미국 동부와 서부 해안, 우리나라 동해와 일본 동해, 오호츠크해와 베링해 등 북반부 해안선을 따라 거의 모든 지역에 걸쳐 있다. 이 중에는 중저준위 핵페기물도 있지만, 핵 추진 잠수함의 원자로나 사용후핵연료도 포함되어 있다. 최소 16기의 핵 추진 잠수함 원자로가 해양투기되었다고 IAEA 인정했다. IAEA에 보고되지 않은 해양 핵폐기물 투기나 보고는 되었더라도 핵종이나 전체 방사선량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어서 실제로는 더 많은 해양투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3년 러시아가 백서를 발간하면서 공개된 우리나라 동해 핵폐기물 투기처럼 뒤늦게 해양투기 사실이 알려진 경우도 있다. 구소련은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 동해에 액체와 고체 상태의 핵폐기물을 버렸고, 그 양은 2만t 정도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핵폐기물 해양투기가 알려지자 한국과 일본 정부는 강력히 항의했다.

1975년 런던협약이 발효되어 고준위 핵폐기물 투기는 금지되었지만, 중저준위 핵폐기물 해양투기는 금지되지 않았다. 그사이 국제협약은 개정되어 지금은 모든 핵폐기물의 해양투기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 오염수 사태에서 드러나듯 이것으로 완벽하지 않다. 런던협약과 그 개정 의정서에서 핵폐기물의 ‘투기’는 금지되어 있지만, ‘배출’은 허용되어 있다. 런던협약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부터 주요 쟁점은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석유시추선 같은 해양인공구조물에서 폐기물을 바다로 버리는 행위를 막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핵폐기물 드럼통을 바다에 던지는 행위이다. 현재 오염수 방류는 육상시설에서 터널을 통해 바다에 방류하고 있어서 이는 ‘배출’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일본정부의 논리이다. 더 나아가 이런 행위는 전세계 핵발전소와 핵처리시설에서 진행되고 있기에 “모두가 다 하는 행위를 왜 우리만 못하게 하느냐”는 향변까지 함께 하고 있다.

일본정부의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면서 국제사법재판소 등을 통해 오염수 방류 터널이 ‘해양 인공구조물’에 해당하는지 등에 대한 오랜 법적 공방이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현재 국제협약에 이번과 같은 오염수 방류를 막기 위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장 오염수 방류를 막는 것이 우선이겠으나, 과거 일본정부가 국제 여론을 바탕으로 런던협약 개정을 이끌었던 것처럼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오염수 방류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작업이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 밝힌 2022년 액체‧기체 핵폐기물 배출 현황을 보면, 우리나라 5개 핵발전소 부지에서 지난 1년간 총388TBq의 액체‧기체 핵페기물을 배출했다. 일본정부가 희석을 통해 배출하겠다는 삼중수소의 양이 매년 22TBq 정도이니 삼중수소의 양만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액체 삼중수소의 양이 훨씬 많다.

2) 방사능 피폭, 누가 어떻게 규정하는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 7월 4일 ‘후쿠시마 제1원전 ALPS 처리수의 안전성 평가에 관한 IAEA 종합보고서’를 공개했다. IAEA는 스트론륨-90, 삼중수소 등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능 핵종들이 해양생테계에 축적되고, 인체 조직에 침착될 경우 미칠 영향을 ‘무시해도 좋을 정도’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이것이 곧 ‘과학적’ 검증결과라고 강조했다.

IAEA는 오염수에 포함된 핵종의 방사선 영향을 평가하며 ‘유효선량당량’ 개념을 썼다. 이 개념은 핵무기 생산이나 핵발전 관련 시설의 운용 필요성을 군사‧정치‧사회‧경제적 이유로 인정하고 방사선에 쪼이며 일하는 노동자, 시민들에게 피폭을 감당하게 만들기 위해 국제기구, 정부가 정한 피폭한도 기준의 핵심이다. 이 기준을 충족하면 안전하다는 것이다. 또한 IAEA는 아무리 방사능 피폭 가능성이 있어도 그것이 허용기준 이하이고, 이러한 핵 활동으로 인해 얻게 되는 사회, 경제적 이익이 더 크다면 정당화된다고 했다. 이러한 논리 뒤에는 방사선 피폭과 관련한 ‘과학분야 국제적 권위의 결집체’라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라는 조직이 있다. 그런데 ICRP는 객관성, 공정성을 담보한 기관일까? 일본의 과학기술자 나카가와 야스오는 자신의 저서 《방사선 피폭의 역사》에서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 책은 ICRP의 역사가 ‘내부피폭’, ‘저선량피폭’을 외면해온 역사임을 보여준다. 내부피폭은 음식, 물, 공기 등을 통해 방사성핵종이 체내에 유입돼 세포조직에 붙어서 세포가 파괴되고, DNA에 이상이 생기는 것 등을 의미한다. 저선량피폭은 핵무기 사용이나 핵발전 사고 직후의 급격히 높은 방사능이 아니라 일상적 작업환경에서 오랫동안 낮은 정도의 방사선에 노출되는 것을 말한다. 핵산업계와 많은 정부가 내부피폭과 저선량피폭의 위험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러지 않고는 안전비용 상승으로 인해 핵무기든, 핵발전이든 추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ICRP는 이번 IAEA 후쿠시마 보고서에서 유효선량당량 개념을 이용해 스트론륨-90 등의 내부피폭 위험성을 평가했다. 유효선량당량은 골수, 갑상선, 유방 등 신체 장기별 피폭 민감도를 고려해 가중치를 두고 복잡한 계산을 거침으로써 피푝의 신체 영향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유효선량당량은 실제로는 내부피폭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피폭의 효과를 과소평가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저자는 “과학적 조작을 복잡하게 실행할 뿐, 사실상 속임수”라고 비판한다. ICRP가 유효선량당량 방식을 도입하면서 공기 중이나 수증 방사능 농도 기준은 그 이전에 비해서 대폭 완화됐다.

그래서 ICRP는 내부피폭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핵산업의 경제성 때문이다. 저자는 “방사선의 인체 영향에 대해서 지금은 과소평가가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과학적 기준에 근거를 두면 향후 피해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깊어지면서 피폭기준도 점점 엄격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핵발전산업은 붕괴한다”고 했다. 핵산업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논의를 방사선의 인체 영향이라는 과학적인 것에서 비용 대비 편익이라는 사회, 경제적인 것으로 변경해야 했다.

ICRP가 원래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1951년만 해도 “모든 유형의 전라방사선 피폭을 가능한 최저 수준으로 낮게”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비키니 핵실험, 스리마일섬과 체르노빌 사고 등을 거치며 방사선 피폭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높아지며 각국의 핵 추진 비용이 증가할 조짐을 보이자 인체 영향보다 경제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ICRP는 비용 대비 편익 개념을 도입해 핵산업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또는 정치적 이익이 방호, 안전 비용이나 생명, 건강에 미칠 위험보다 클 때 방사선 피폭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취지의 문장을 1965년 권고에 넣었다. IAEA가 방사능 물질의 안전성을 평가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정당화’와 ‘최적화’ 원칙은 이렇듯 생명의 가치를 경제성의 관점으로 바꾸는 철학에 기반해 있다. 이것은 사회, 경제적 이익과 인간의 생명과 건강이라는 비교 대상이 아닌 것을 비교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ICRP의 역사를 보면 “방사선 피폭이 큰 사회문제가 될 때마다 반드시 학계가 등장했고, 그때마다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나타났다.” 저자는 “과학자를 중심으로 전면에 나서지만 실제적인 내용은 무대 뒤 정치인들과 은밀하게 합의하며 그 대가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확대하는, 한 마디로 정치무대를 이용하는 소위 ‘정치꾼 과학자’가 등장해서 분탕질한다는 교훈을 잘 새겨애만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가히 국가-자본-과학자의 담합구조라 할 만하다.

우리는 다시 물어봐야 한다. 핵개발로 인한 사회, 경제적 이익과 생명과 건강의 손실의 균형을 잡는 것이 애당초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 이익이 과연 누구에게 돌아갔고, 생명과 건강의 손실은 누구의 몫이었을까? 결국 피폭을 강요당하는 노동자, 일반시민, 그중에서도 방사능에 더 취약한 여성과 어린이의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 균형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참고문헌]

 

1) 이헌석, 후쿠시마 오염수를 넘어서, 『녹색평론』, (183, 2023년 가을호)

2) 손재민, 방사능 피폭, 누가 어떻게 규정하는가, 『녹색평론』, (183, 2023 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