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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소리] 대통령의 말이 법이 되는 시대
며칠 전 과거 회귀의 경찰 폭력이 일어났다. 5월 25일과 26일 비정규직이제그만 공동투쟁과 금속노조가 주최하는 대법원 앞 문화제와 1박2일 노숙 투쟁을 막기 위해 참가자의 세배가 넘는 경찰을 동원했다. 평화로운 문화제를 경찰의 물리력으로 막아섰다. 집회 주최 측이 무대 및 음향차량을 이동시키겠다고 했으나 교통경찰이 막고 견인했다. 그리고는 부당한 공무집행에 항의하던 문화기획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연행했다. 처음에는 공무집행방해죄라고 했으나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려면 폭력이나 협박이 있어야 하니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바꾸었다. 불법체포임을 스스로 실토한 셈이다.
경찰의 물리력이 발생하게 된 것은 장소가 이례적이거나 위험한 곳, 또는 주최자들의 폭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기존 판례가 많음에도 시간만 끌고 있는 대법원에 불법파견 재판을 빨리 개최하라는 문화제였다.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화제와 노숙농성은 몇 년간 매주 진행됐다. 그런데 5월 23일 윤석열 대통령이 건설노조의 노숙농성을 문제 삼고 경찰의 강경진압을 주문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9년 헌법재판소가 야간집회 금지는 헌법에 반한다고 헌법 불합치 판결한 이후 사라졌음에도 윤 대통령이 문제 삼으니 위법한 일이 된 것이다. 기가 막힐 일이다. 대통령의 말이 곧 법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자칭 헌법주의자의 반헌법적 집회시위 탄압
자칭 헌법주의자라는 윤 대통령이 헌법 21조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은 무엇을 뜻할까. 대통령이 말한 헌법주의자란 헌법을 따르겠다는 뜻이라기보다 ‘짐이 곧 국가’라는 중세식 사고를 뜻하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나아가 그가 말한 법은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법조문을 입맛대로 해석하는 법기술자가 많은 ‘검찰의 무기로서 법’을 뜻하는 것인지 묻게 된다.
아무리 대통령이 행정수반이라고 하더라도 경찰청은 독립적인 행정기관인 만큼 법 집행은 경찰이 정책적 검토를 하고 실태를 파악한 후에 그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경찰의 공권력은 물리력을 직접 시민에게 행사할 수 있는 만큼 더 독립적이고 신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일본의 식민지나 독재정권 시절처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민중을 탄압하는 몽둥이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그날 밤 경찰은 법에 어긋난다며 폭력을 사용했다. 경찰은 “대법원 앞은 집회·시위 금지 장소이고 문화제와 노숙 농성이 불법집회로 변질될 수 있다”며 자의적이고 위헌적인 법 집행을 했다. 야간문화제를 막으려는 경찰의 탄압은 해산과정에서 특히 드러났다. 경찰 여러 명이 사지를 들어 끌어내기도 했고 경찰의 의도적인 성추행과 성폭력이 있었다고 참가자들은 증언했다. 대통령의 말이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지 확인하는 참담한 시간이었다.
문화제를 경찰이 집회로 간주하더라도 강제로 해산할 수는 없다. 2012년 대법원은 아무리 미신고 집회일지라도 명백한 위험이 없는 한 해산 명령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집회의 자유가 가지는 헌법적 가치와 기능, 집회에 대한 허가 금지를 선언한 헌법정신, 신고제도의 취지 등을 종합하여 보면” 행정관청의 역할은 공공질서 유지에 협력에 필요한 것이지 집회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21조는 집회는 허가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헌법 조문을 만든 것은 독재에 저항한 민중이다. 법학자들이나 판사나 검사 등과 같은 법조인이 아니다. 87년 민주항쟁을 거치며 집회시위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근간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경찰, 그리고 검찰권력의 계보를 이어가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집회시위의 자유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라며 비슷한 말을 했다. 국민의힘도 집회시위의 권리를 제한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하고, 경찰은 백남기 농민 사망 이후 사라진 집회 해산 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실행했다. 이미 윤 정부는 국회에서 의결된 법안에 대해 계속 대통령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3권 분립도 의미 없게 만들며 국회 위의 권력으로 군림하며 민주주의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곧 있으면 6.10항쟁 기념일이 온다. 어느 때보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집회시위의 권리 행사가 필요한 때이다. 이제 양회동 열사와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의 죽음에서 드러난 민주주의의 위기를 살아남은 우리가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