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일은 무조건 따랐는데.. 사드 배치로 삶 짓밟혀

지난 5월 8일 서울행정법원에서는 성주, 김천 주민 396명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함께 외교부를 상대로 제기한 ‘사드부지공여승인처분무효’소송의 마지막 변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주민들은 주한미군에게 무상으로 소성리 사드 부지를 공여한 것은 위법이며 따라서 부지 공여는 무효라고 소송을 제기했죠. 2017년 4월 20일 외교부와 국방부가 사드 배치를 위해 주한미군에 31.8만㎡를 무상으로 공여한 것은 ‘국유재산특례제한법’ 시행 이후 타국에 국유재산을 무상으로 장기 임대한 첫 번째 사례입니다.

 

2011년에 제정된 국유재산특례제한법은 국유재산 사용 감면 등 국유재산특례와 그 제한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법률로, 별표에 규정된 법률에 따르지 않고는 국유재산 특례를 줄 수 없습니다. 즉, 타국에 국유재산에 대한 특례를 주기 위해서는 법을 개정하여 대상을 별표에 포함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드 부지 공여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관련 기사: 유승희 “사드 부지 무상공여, 명백한 위법”)

 

성주, 김천 주민들과 원불교 교도들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주민들의 일상과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주한미군 사드 철거를 위한 싸움을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청와대 앞에서 ‘임시 배치’된 사드 배치를 못박기 위한 기지 공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날 재판장에서 모두 진술을 한 박태정 김천 노곡리 이장의 진술문을 공유합니다. 최종 선고기일은 8월 21일입니다.


“나랏일은 무조건 따랐는데… 사드 배치로 삶 짓밟혀”

사드부지공여승인처분무효 소송 마지막 변론… 김천 노곡리 이장 “부디 올바른 판결을”

 

박태정 (김천 노곡리 이장 / 사드배치반대김천시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  김천촛불집회에서 발언중인 박태정 김천 노곡리 이장(사드배치반대김천시민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강현욱

 

 

“미군기지가 파괴한 우리의 권리, 누가 보장해 줍니까” 

 

 

▲  2020.4.26 사드 배치 3년을 맞아 성주군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주민들 ⓒ 소성리사드철회성주주민대책위원회

 

칠십 평생 나고 자란 이곳 김천은 자두와 포도를 비롯한 과수 농사에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행정구역상 월명리나 노곡리는 김천이지만 성주 특히 소성리는 옛날부터 서로 오가는 길이 같은 한 지역이나 다름없습니다. 무엇보다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만들어진 율곡동 혁신도시는 4, 5년 전부터 사람들이 이주해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때까지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으로 지지하고 따르며 살아왔습니다. 지난 몇 년간 이장을 맡으며 앞장서서 일해왔습니다. 그러나 사드가 배치되는 과정은 너무나 폭력적이고 불법적이었습니다. 주민들의 의사는 완전히 짓밟혔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일상이 깨지고 마음과 몸의 평화를 잃었습니다.

 

2018년도 전국 미군기지 오염 실태 조사에 따르면 미군 측에 공여 중인 54개 기지 가운데 25개의 주변 지역이 심각하게 오염되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이런 사례만 보더라도 우리 지역에 미군기지가 들어오면 주민들은 피해당사자가 될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사드가 배치되는 지역의 산자락에서 과수를 키우고 있는 저로서는 당연히 더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25개의 오염지역 가운데에는 임시 사드 기지의 모(母) 기지인 대구 캠프 워커와 물자를 대고 있는 왜관 캠프 캐롤이 포함되어 있으니, 그 우려는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헌법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제2장 제10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농사짓는 곳 상수원 지역에 미군기지가 생겨도 지역주민들의 의사 한 번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조약’으로서의 국내법적 절차(정부 대표 서명,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의결, 대통령 재가)도 거치지 않았습니다. ‘합의 건의문(2017.4)’과 소파 합동위 위원장의 승인만으로 졸속으로 미군에게 부지를 공여해 미군기지가 생긴다면 과연 국가가 헌법에 명시된 우리의 기본권을 보장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또한 사드 장비의 핵심인 X밴드 레이더(AN/TPY-2)는 최대 출력 410kW로 최고 2000km를 탐지할 수 있는 고출력 전자파를 발생시키는 장치로써, X밴드 레이더에 관한 미 육군 교범에서는 전방 3.6km 안에는 허가받지 않는 인원의 출입이 차단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전자파는 이미 세계보건기구에서 인정한 발암물질이며 휴대전화 전자파가 뇌종양에 영향을 줬다는 산재 판정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미 육군 교범에서 전자파 위험에 의한 인원 출입 차단지역인 전방 3.6km 안에 우리 마을을 포함한 3개의 마을에 3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항공기와 같은 전자파에 민감한 전자 장비의 배치 및 출입이 통제되는 5.5km 내에는 5개 마을 1만 45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특히 이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과수농가로서 농사에 큰 몫을 담당하는 벌은 전자파에 가장 민감한 곤충으로 고출력 전자파를 방출하는 레이다 배치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사드 배치 이후 사드 레이다를 시험 작동하던 초기에 5.5km 밖의 혁신도시에서도 소음은 물론 집안에서 TV를 보다가 화면이 꺼지거나 채널이 저절로 바뀌는 현상을 경험했다는 증언들이 나왔습니다.

 

현재 국방부는 8월 12일 환경부와 함께 진행한 레이더 100m 지역 전자파 측정에서 “모두 관계 법령(현행 ‘전파법’과 세계보건기구(WHO)의 안전기준)에서 정한 기준치 이하였다”고 밝혔으나, 상식적으로 410kW 출력으로 전자파를 방출하는 기계에서 휴대전화가 기지국을 찾을 때 나오는 전자파보다 적게 나온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당시 관계자는 레이더의 작동에 따라 출력이 다양하지만 ‘레이더를 끄고 켠 것만 협의했을 뿐, 출력 조정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미 지난 2017년 6월 평택의 주한미군, 오산기지 내 이동형 레이더를 평택시·시민단체, 전자파와 소음에 의한 이전 요구에 따라 이를 인정하고 이동한 사례가 있습니다. 당시 지역 주민들에게 나타난 집안의 전자 장비 피해 사례 또한 우리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높은 출력을 방출하는 레이더가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 일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주한미군이 사드 기지에 필요한 부지를 70만㎡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70만㎡ 중 32.8만㎡를 우선 공여한 이유는 ‘국방·군사시설사업에 관한 법률’ 제4조,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라 33만㎡ 이상 시설 사업에서는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피하기 위한 부지 쪼개기를 통해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려 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말도 안 되는 전자파 측정은 이 소규모환경영향평가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시작부터 정상적이지 않은 사드 배치는 이렇게 과정도 졸속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혁신도시에 사는 젊은 사람들도 사드 배치 과정의 불법과 폭력을 겪고 원래 살던 곳으로 다시 이사를 하거나 인근 대구나 구미에서 이사 오려던 사람들은 이사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농소면에 사는 우리는 자식, 손주들과 같이 사는 노후를 포기하거나 아들 며느리를 다른 지역으로 이사 보내고 주말이나 휴일에 찾아오는 것도 막아야 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가까운 농소면에 공공기관 직원들이 살기 위한 전원주택을 짓다가 공사를 멈춘 집터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도시에 살다가 귀농하여 집을 짓고 들어온 사람들은 집을 팔지도 못하고 도망가듯이 이사를 가버렸습니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온 마을의 생기가 찾아오자마자 사라져버렸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드 배치의 직접적 피해당사자였으나, 시작과 과정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 주민들의 건강과 안전, 재산 피해에 대한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는 절차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국방부는 나머지 부지조차도 같은 절차로 미국에 공여하겠다고 합니다. 만약 이 법정에서마저 우리가 사드 배치 피해의 원고가 될 수 없다고 한다면 대한민국에서 미군기지에 의해 침해당하는 우리의 기본권은 어디서, 어느 절차에서, 누구에게 보장받을 수 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부디 재판장님의 올바른 판결을 부탁드립니다.

 

▲  2020.4.26 사드 배치 3년을 맞아 성주군에서 피캣팅을 하고 있는 주민들 ⓒ 소성리사드철회성주주민대책위원회

 

▲  2020.4.26 사드 배치 3년을 맞아 성주군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는 주민들 ⓒ 소성리사드철회성주주민대책위원회

  

▲  2020.4.26 사드 배치 3년을 맞아 성주군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는 주민들 ⓒ 소성리사드철회성주주민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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