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도·감청 의혹, 대통령실과 미국 정부는 사실 관계를 명확히 밝혀라

핵심은 ‘문건 위조 여부’가 아니라 ‘도·감청 여부’

미국 정부의 도·감청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한국 정부의 대응이 매우 우려스럽다. 지난 4월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군 기밀 문서 유출 관련하여 미국이 한국, 이스라엘, 프랑스, 우크라이나 등 동맹국 동향을 감시하고 한국 국가안보실 구성원들의 대화를 도청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 정부의 도·감청을 비롯한 무차별적 정보 수집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넘게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문제이기에 더욱 심각하다.

대통령실은 ‘해당 문건의 상당수가 위조’됐고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은 거짓 의혹’이며 ‘앞으로 굳건한 한미정보동맹을 통해 양국 협력을 강화해나가겠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대응이다. 문제의 핵심은 ‘문건 위조’ 여부가 아니라 ‘미국의 한국에 대한 도·감청 여부’다. 용산 대통령실을 포함해 어떤 곳에서도 미국의 도·감청은 없었다는 것인지, 공개된 문건의 ‘상당수’가 조작됐다면 어떤 부분이 조작이고 어떤 부분이 사실인지, 국가안보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우회적인 무기 지원을 추진하거나 미국과 협의한 일 자체가 없다는 것인지, 대통령실의 공식 입장에서는 어떤 부분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정보 전쟁에는 국경이 없다’는 모호한 말로 문제의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된다. 한국 정부는 도·감청 의혹과 문건 유출 경위에 대한 정확한 해명을 요구하고, 미국 정부는 신속하고 성실하게 답해야 하며, 그 결과는 명확하게 공개되어야 하고, 마땅한 후속 조치가 이어져야 한다. 특히 미국은 타국 정부 기관 도·감청 문제에 관해 아무런 신뢰가 없는 국가이기에 구체적인 해명이 필요하다. 또한 유출된 문건에 담긴 우크라이나에 대한 우회적인 무기 지원 추진 경위에 대해서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지금 대통령실은 이런 합리적인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의혹을 부정하고 ‘한미동맹 강화’만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도·감청이 사실이라면, 미국 정부와는 호혜적인 외교나 협상이 불가능하다. 여러 난제에 대한 한국의 협상 전략이 이미 노출되었을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를 항의하고 바로잡는 것이 지금 윤석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2023년 4월 12일

참여연대

성명 [원문보기/다운로드]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