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Front of Them (최전방에서)

판문점 평화기행기

“In Front of Them”은 캠프 보니파스의 구호이며 Them은 인민군을 뜻함

판문점으로 가는 길은 아주 가까웠다. 비가 오는 것이 번거로웠을 뿐, 그들 코앞에까지 가는 길은 불과 1시간으로 충분했다. 다만 달리는 차 안에서 분단 50년 세월을 새삼 되돌아보고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통일을 준비하자는 기획의도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지를 고민했을 뿐이다.

▲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왼편으로 흐르는 강이 임진강. 오른편으로 자유로가 보인다. 사진 아래쪽으로 조그맣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고당 조만식 선생의 동상.

오전 11시 45분.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도착하고 이시우 선생님(문예인. 전국노동자문화운동협의회, 8.15범민족대회 문예기획단 활동)의 첫 설명은 이번 기행이 단순하지만은 않으며 또한 우리가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적지 않음을 깨우쳐 주셨다.

고당 조만식 선생의 동상이 그 곳에 있는 까닭은 무엇이며 북쪽으로 뻗어 임진각에서 끝나는 자유로의 이름은 왜 ‘자유로’ 인가, 그리고 체제대립의 여지를 갖고 있는 자유·민주·인권이라는 일방적 통일원칙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강과 임진강이 맞닿아 서해로 흐르는 경관 좋은 곳에 자리잡은 원형 전망대는 비개인 북녘의 파스텔톤 하늘만을 보여주었다.

마침 밀물 때라 물은 강기슭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사실 공동민간어로수역(정전협정상 공식명칭: 한강하구수역)으로 누구나 자유로이 배를 타고 어로가 가능한 강은 우리가 그어놓은 선을 무심히 지우며 지난 50년간 그리하였듯이 자연스럽게 엉키며 함께 흐르고 있었다.

▲ 임진각 자유의 다리 최북단에서 기행단이 이시우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붙여놓은 통일을 염원하는 메시지들로 가득찬 철조망이 눈에 띈다.

손에 닿을 듯한 강 건너 그들의 땅을 바라보며 달리던 버스는 복잡하게 설정된 군사분계선을 따라 자유로의 끝, 임진각에서 멈추었다. 한낮의 열기에도 한적하다 못해 쓸쓸한 그곳에는 생뚱맞은 대형 놀이기구와 망배단과 끊어진 자유의 다리가 놓여있었다. 자유의 다리는 임진강을 가로질러 경의선이 달리던 ‘임진철교’가 파괴되어 휴전 후 포로교환을 위해 세워진 것으로 지금은 폐쇄되어 늙은 실향민이 삭힌 세월처럼 버석거리고 있었다.

이 곳에서 이시우 선생님은 경의선의 역사와 경의선 복원의 의미를 짚어주셨다. 1906년에 러일전쟁의 군수물품조달을 위해 급하게 지어진 경의선은 대한제국을 둘러싸고 휘몰아치는 열강의 대립 가운데서 시달리는 민족의 슬픈 운명을 보여주었으나 100년이 지난 지금, 이제 그 복원을 위한 노력은 외부의 힘의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우리의 뜻과 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더위와 무료함에 지친 듯한 중국인 관광객의 소란스러움을 뒤로 하고 잠시 호젓한 화석정으로 이동하였다. 한여름 매미소리로 먹먹한 그곳은 박정희의 친필 현각이 있어 유명한 곳이 아니다. 율곡 이이가 37세때 1년간 머무르며 주자성리학을 조선성리학으로 정리하고 성학집요를 집필한 곳이며 통일의 이념으로 한국적 민족주의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곳이지만 거의 매일 미군의 포병사격장으로, 전차훈련장으로 활용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확인해야 하는 곳이기에 화석정은 그 의미가 있다 하겠다.

▲ 높이 솟은 건물이 판문각. 하늘색 남측 초소와 회색빛 북측 초소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북측 초소건물의 오른편 바닥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선이 군사분계선.

4시. 캠프 보니파스. 늦여름 오후의 햇살이었지만 여전히 따가웠고 군사경계강화기간이라는 이유로 방문객을 수색하는 경비군의 경계의 눈빛 또한 날카로웠다. 캠프 보니파스는 주한 미군 소속 경비대대로 판문점으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청바지도, 깃이 없는 티셔츠도, 반바지와 샌들차림도 허가되지 않으며 판문점 안에서 일어난 어떤 돌발적인 사태에 대해서도 유엔과 한국정부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방문자서약까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그곳을 들어갈 수 있다. 검열하는 병사의 눈을 피하느라 버스의 커튼으로 반바지를 숨기는 어이없는 눈가림을 한 해프닝은 그 허탈한 웃음 뒤에 모두를 씁쓸하게 만드는 듯 했다.

▲ 군사정전위원회 사무실 안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있는 기행단 사람들의 모습

그렇게 해서 방문한 판문점. 영화를 통해 누구나 알고 있듯이 판문점은 UN군과 북한국의 공동경비구역이다. 전후좌우 800미터에 불과한 그 공간에서 군사정전위원회는 군사분계선을 상징하는 탁자 위 마이크 선을 경계로 하여 마주보고 앉아 반세기동안 본회의, 비서장회의, 공동일직 장교회의를 개최하여 왔다.

80년대 초등학교를 다니며 반복된 반공교육은 잊혀질 줄 알았지만 JSA를 방문해서 판문각에 정물처럼 서 있던 관찰병에게 눈길이 간 건 인간적인 호기심때문이 아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을 대하듯 그들을 보는 내 시선에 흠칫 놀라며 이곳이 혹시 양수리의 영화 셋트장이 아닐까 하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고 있었다. 통한의 민족 분단사를 증언하는 적막한 그곳에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나의 혹은 우리의 중심 잃은 감성을 그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어느새 썰물로 빠르게 바닥을 드러낸 임진강 하구는 그들과의 거리를 더욱 좁혔지만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멀어지는 판문점은 훨씬 까마득히 느껴질 뿐이었다. 내나라 땅인데도 그렇게 어색하고 낯설을 수 있을까…누구를 탓해야 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더 많은 숙제를 안고 돌아온 안국동은 여전히 부산스럽고 윤기흐르고 또한 냉랭했다.

▲ “돌아오지않는 다리”. 포로를 교환했던 장소로 한번 건너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의미한다. 영화 ‘공동경비구역’에 등장했던 장소다.

계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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