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기타(pd) 2003-03-15   1297

[분쟁지역현황] 북한 – 북한리포트 “내가 본 북한”

북한 리포트 “내가 본 북한”

다음 글은 97년 5월부터 99년 7월까지 2년 넘게 세계식량기구 평양사무소장으로 근무했던 캐나다 출신의 와인가트너씨 부부가 브리티시 콜롬비아주에 있는 빅토리아대학에서 99년 10월 15일에 행한 강연 내용을 번역 정리한 것이다.

남편인 에릭 와인가트너(Erich Weingartner)씨는 유엔세계식량계획(United Nations World Food Programme;WFP)의 평양 상주 사무소장이었으며, 북한에서는 장기주재 신분을 허가받은 최초의 비정부기구(NGO) 대표였다. 그는 비정부기구의 인도적 대북 원조 프로그램을 수립하고 2년 근무기간동안 총 10만톤의 식량(금액으로는 3천만불 상당)과 농산물, 의약품을 북한측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부인인 메릴린 와인가트너(Marilyn Weingartner)씨는 보건관리 전문가로 유엔국제아동기금(UNICEF)에서 컨설턴트로, 세계식량계획(WFP)에서는 보건기관 및 병원의 의료지원 전문가로 근무했다. 그녀는 북한에서 ▲의약품 생산시설을 향상시키는 일 ▲평양의약품공장에 의약품 원료를 공급하는 일 ▲병원과 진료소, 아동보호시설에 외국에서 공급된 의약품을 공급하는 프로그램을 지도하는 역할을 했다. 그녀는 1998년 유엔국제아동기금(UNICEF), 세계식량계획(WFP),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EC)가 공동으로 추진한 ‘북한 어린이 영양실태 조사’팀의 책임자이기도 했으며, 임산부와 유아를 키우는 어머니들에 대한 영양공급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육 프로그램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와인가트너 부부는 평양주재 기간 중 북한의 각 지방을 돌아보고 특히 유아원, 유치원, 학교기숙사, 고아원, 병원, 공장, 농장, 도시와 시골지역의 가정집 등을 방문하는 등 다양한 북한 체험을 하였다.

○ 북한에서 목격한 실상

1. 도로를 다니면서 본 모습

도로를 다니면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중요한 정보원이 된다. 북한에서 보낸 2년간 생활의 주요한 부분은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북한에는 두 개의 고속도로가 있다. 남과 북을 연결하는 ‘통일고속도로’라고 불리는 도로는 개성과 향산을 이어준다. 또 하나는 동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로 남포에서 평양을 거쳐 원산항까지 연결되는데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다. 지방의 도로상태는 매우 좋지 않다. 특히, 동해안지역의 도로가 좋지 않아 평양에서 청진까지 육로로 800㎞가량을 가는 데 최소한 3일이 걸리며 운전하기도 쉽지 않다.

고장이 나서 길가에 세워져있는 차량들이 많다. 대부분의 차량들은 매우 낡은 트럭으로 개인이 직접 제작한 부품을 달고 달린다. 일부 트럭들은 옥수수 껍질같은 연소성 물질을 태울 때 발생하는 메탄가스로 움직이도록 개조돼 있다. 녹이 슬어 있고 항상 늦는 버스와 기차는 창문에 유리가 없이 플라스틱이나 테이프로 막아져 있거나, 유리가 끼워져 있을 때도 볼트와 너트로 고정된 상태이다.

걸어서 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들고 있거나 바퀴 두 개가 달린 수레를 밀고 다닌다. 움직이는 운송수단마다 온갖 연령층의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때로는 목재부터 농작물까지 온갖 화물을 가득 실은 꼭대기 위에 사람들이 타고 있을 때도 있다.

최근에 두드러진 현상으로 자전거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자전거 사고도 그만큼 많아졌다. 김일성은 생전에 자전거를 금지했는데, 이는 중국처럼 도로가 자전거로 혼잡스럽게 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농부들이 생산한 농작물을 직접 파는 농민시장과 길거리 거래가 확실히 늘어났다. 물론 외국인은 그런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거나 사진을 찍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시골길 근처나 다리 밑, 담벽 뒤로 가끔씩 그런 시장을 볼 수 있었다. 점차 외부로 드러난 장소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특히 1998년 9월 사회주의 헌법이 개정된 후에 두드러졌다. 고속도로나 도심 주요도로를 가다보면 노점들을 볼 수 있는데, 과일부터 집에서 구워 만든 음식, 손으로 만든 가재도구와 심지어는 가구까지도 팔고 있었다.

논밭과 도로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군인, 공장노동자, 사무직일꾼까지 봄에는 모내기에 가을에는 추수에 동원된다. 대부분의 시골 도로들이 진흙과 자갈로 만들어져서 항상 보수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특히 비가 많이 오는 여름이나 눈이 오는 겨울에는 도로를 보수하는 사람들을 더욱 많이 볼 수 있었다. 모든 도로 공사는 인력으로 이루어진다. 높은 산악지대의 도로 작업 시 연료가 부족해서 매일 밤 노동자들을 집까지 데려다 줄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산 위에서 밤을 지낸다.

여자들도 중요한 노동력으로 농업, 도로공사, 건설, 경비, 경찰, 무거운 짐 운반 등 모든 분야에서 남자와 똑같이 일한다. 에너지 부족으로 급수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물이 있는 곳이면 강, 호수, 시내, 연못, 심지어는 도랑 어디서든지 빨래하는 여자들을 볼 수 있다.

도로를 다니면서 공업분야 또한 어려운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버려지거나 부분적으로 철거된 공장과 생산활동이 줄어들고 있는 징후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공업도시나 주변 지역은 우울할 정도로 한가한 풍경이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지은 아파트 가정집은 제대로 수리를 못한 채 위생상태도 나쁘다. 전기회선은 낡아 훼손되었고, 전선도 부족한 실정이며, 발전량조차도 모자란다.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은 수력과 화력발전량의 30%가 배전망을 지나가는 과정에서 손실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소규모 지역사회를 위한 에너지 생산을 증진시키기 위해 북한당국은 전국의 강이나 지류에 소규모 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의 산림훼손 상태는 아주 심각하다. 추운 날씨와 에너지 공급 부족으로 주민들은 나무를 잘라 난방과 조리용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과의 국경지역에서는 목재가 물물교환의 수지맞는 상품으로 종종 식량과 교환된다. 벌거벗은 산들로 토양 침식이 늘어나고, 기후의 변화를 가져와 한발과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가 늘어나고 있다.

2. 농업 실태

북한의 농업생산성이 만성적으로 낮아 식량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북한이 실제적으로 식량자급 능력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하면 다시 자급상태를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 상당한 논쟁이 있다.

북한이 안고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다.

– 산악국가로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 국가가 정책적인 단일재배로 쌀 생산만 장려해왔다.
– 과거에 화학비료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 토양이 황폐해졌다.
– 원료 부족으로 비료공장이 가동을 멈춘 상태이다. 농부들은 퇴비에 의존하거나 구호기관에 의해 제공되는 비료에 의존하고 있는데, 전체 필요량의 1/3밖에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 병충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살균제와 농약이 부족하다.
– 농기계들도 연료와 수리부품이 없어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 농장에서는 보유하고 있는 15대의 트랙터 중에 5대만 사용 가능한 상태라는 말을 들었다. 농사는 다시 노동집약적인 작업이 되었고, 경작과 물건 운반에 가축들이 사용되고 있다.
– 낮은 농업생산성을 만회하기 위해 북한 당국은 가파른 산등성이 경작을 허용했고, 이로 인해 삼림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땅들은 종종 공장 노동자들의 생계 수단이 되기도 한다.

북한의 모든 농장은 집단적이다.(북한사람들은 ‘집단’보다는 ‘협동’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집단농장체제를 운영하는 다른 국가와 같이 개인 동기 부여에 어려움이 있다. 북한 당국은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전통적인 동기부여 수단인 선무활동외에 소위 ‘텃밭[kitchen gardens]’이라고 부르는 개인 경작지 분배를 늘여가고 있다.

이러한 땅들은 농민들에게 생명줄이 되고 있다. 평균적으로 60제곱미터 정도 되는 이 텃밭의 생산성은 집단농장을 앞지른다. 텃밭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농민시장에서 유통되는 식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유아원, 유치원 그리고 고아원에서도 식량 자급을 위해 직접 농사를 짓고 있으며, 국제구호기관들은 이들의 농사를 지원하기 위해 온실시설 신축을 도와주고 있다.

식량증산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들을 시도해 볼 수 있다.

– 농토, 저수지, 제방의 복구 : 세계식량계획(WFP)과 같은 구호기관들이 이러한 작업을 지원하기도 함
–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에서 장려하고 있는 이모작 프로그램 도입
– 본래는 겨울 밀과 봄 보리를 경작해 왔지만 최근에는 감자생산에도 주력
– 작물의 순환 재배 및 수확량이 많은 교배종자의 수입
– 소규모 가축 농장 운영 : 염소, 토끼, 닭, 개, 돼지 사육
– 연못을 만들어 양어장 조성

이러한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식량 비축을 하지 못한 채 계속 예측이 어려운 날씨와 외국의 원조에만 의존하고 있다. 1995년부터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에 의해 실행되고 있는 년 2회의 곡물생산 평가 결과는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1999년도 북한의 곡물생산 평가는 다음과 같다.

– 총 필요량 : 476만 5천톤
– 총 수확량 : 347만 2천톤
– 필요한 수입량 : 129만 3천톤
– 외국으로부터의 식량지원 예상량 : 37만톤
– 수입 가능량(추정) : 30만톤
– 부족량 : 62만 3천톤

기상상태로 인한 지역적인 피해를 제외하면, 1999년도는 작년과 같은 평년작 수준이다. 이 곡물생산 수치는 북한의 농업회복이 장기적인 과제가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즉, 인도적 차원에서 볼 때, 북한이 장기적이고 만성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 북한에서 가장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긴급한 순서대로 말하자면 어린이들과 노인들, 임신부, 유아를 키우는 어머니들, 가족수가 많은 가정, 공업노동자 들이다.

3. 유아원과 유치원

북한은 대외적으로 자랑할 만한 사회보육시스템을 갖고 있다. 모든 어린이들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보육시설에 들어갈 수 있으며, 실제로 대부분이 다니고 있다. 그러나 식량 사정이 좋을 때라는 단서가 붙는다. 세계식량계획(WFP)에서 1997년에 유아원과 유치원을 우선 지원 목표로 정했을 때, 당시 어린이들의 실제 보육시설 등원율은 30%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비율은 세계식량계획(WFP)의 식량지원이 시작되면서 거의 전원 참석으로 높아졌다.

어린이 보육시설의 보모들은 헌신적이고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우리들은 보모들이 집에 식량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밤에는 어린 고아들을 집으로 데려가 돌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보모들은 돌보고 있는 아이들의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밭에 나가 일하거나, 산을 뒤지기 위해 종종 자리를 비운다.

식수와 위생은 어느 곳에서나 심각한 문제다. 어린이 보육시설에서 비누와 설사 치료에 도움이 될만한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렵다. 비타민 부족 때문에 생기는 증세인 피부발진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인원이 많고 난방이 충분치 못한 환경이라 호흡기성 전염병이 어린이들 사이에서 아주 빠르게 퍼진다.

우리들이 본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마르고 활동적이지 못했다. 보모들은 95년 대홍수가 발생하기 전에는 아이들이 훨씬 활기 찼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두 해 전보다 올해(1999년도) 더 건강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양상태에 대한 정밀한 조사 없이 외모만 보고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4. 주민 영양상태 조사

메릴린은 1998년 9월부터 10월까지 실시한 ‘북한 어린이 영양실태 조사’에 참여했다. 이 조사는 과학적 방법에 의해 실시된 최초의 전국적인 규모의 영양실태조사였다. 데이터 수집에는 유엔국제아동기금(UNICEF), 세계식량계획(WFP), 유럽위원회(EC: European Commission)가 참여했다. 북한측에서는 큰물피해복구위원회(FDRC: the Flood Damage Rehabilitation Committee)가 조사업무 지원을 맡았고, 어린이 영양연구소(Korean Institute of Child Nutrition)가 실제 측정에 나섰다.

조사대상은 8개 지방과 3개 도시지역의 생후 6개월부터 7세까지의 어린이들이었다. 통계적으로 북한 가정의 70%를 대표하는 총 1800가구를 방문 조사했다. 주요 작업은 어린이들의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유엔국제아동기금(UNICEF)에서는 보다 심층적인 복합요인조사인 MICS(Multiple Indicator Cluster Survey), 즉 철분부족으로 인한 빈혈, 어린이들이 섭취하고 있는 음식, 출생률과 모유에 의한 양육 실태, 예방접촉실태, 수도공급과 위생상태, 교육 기회 등에 대한 조사도 동시에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는 북한당국조차 놀라게 만들었다. 정밀한 검토과정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데 6개월이 소요되었다. 급성 영양실조 상태가 16%에 이르렀고, 만성 영양실조는 62%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만성영양실조에 관한 내용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지만 사실 더 중요한 사실은 급성 영양실조가 16%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 수치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제일 높은 수치이며, 아시아 전체로도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18%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것이다.

만성과 급성 두 수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성적인 영양실조 : ‘발육부진’이라고 하며, 어린이들의 나이와 신장을 비교하여 측정된다. 발육부진은 장기적으로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다. 북한 어린이의 62%가 해당 나이의 표준 수치보다 낮게 나타났다. 물론 이러한 수치가 단순히 영양 부족에 의해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도 있을 수 있으나, 결론적으로는 4년전 대홍수 그 이전부터도 북한아이들이 영양실조로 고통받아왔음을 말해준다.

급성 영양실조 : ‘쇠약해진 상태’라고 하며, 신장과 몸무게를 비교하여 측정된다. 발육부진과 관계없이 일정한 신장의 어린이는 신체를 정상적으로 활동하기에 적합한 몸무게를 가져야 한다. 만약 몸무게가 너무 적으면 그 어린이는 현재 충분히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급성영양실조 상태의 전체 평균이 16%인 점도 매우 심각한 문제이나, 연령별로 좀더 세분화하여 들여다보면 사태가 더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생후 12개월에서 24개월의 유아들은 이 수치가 30%로 높아져 적어도 3명중에 1명이 영양실조라는 말이 된다. 이 시기는 두뇌의 중요한 부분이 기능하기 시작하며, 운동신경이 발달하고, 면역체계가 완성되는 때다. 건강한 어른이라면 단기적인 영양부족에 큰 피해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나, 유아시기의 영양실조는 영구적인 신체장애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또 생후 12개월 미만 어린이들의 경우도 18%가 영양실조이다. 이것은 태아상태와 모유를 먹는 시기에 영양이 부족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임신을 하였음에도 임산부들의 몸무게가 늘지 않으며, 몸무게가 적은 아이를 낳고 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다른 시기에 태어난 같은 나이또래의 발육상태를 쫓아가기가 어렵다.

5. 영양실조의 원인

지난 4년간 북한에 지원된 식량규모와 그 주된 지원대상이 어린이였던 것, 그리고 이번 조사가 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점을 고려해 볼 때, 왜 이러한 수준의 영양실조가 계속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이러한 의문은 지원된 식량이 다른 곳에 사용되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현지 구호요원들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또한 이 조사결과는 북한당국을 당혹하게 만들어 1999년도에 예정된 조사작업을 무기한 연기시키게 만들었다.

이같은 영양상태 조사결과를 설명하는데, 지원된 식량의 전용 외에도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을 수 있다. 유엔국제아동기금(UNICEF)에서 주장하는 대로 식량부족이 영양실조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우선 캐나다의 식품 안내서에 잘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우리신체는 적당량의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식품을 필요로 한다. 세계식량계획(WFP)에서 규정하고 있듯이 적어도 3가지 종류의 음식이 공급되어야 한다. 곡물(탄수화물), 콩(단백질)과 기름(지방)이다. 지금까지 북한에 제공된 대부분의 식량은 옥수수나 밀 같은 곡물류이다. 기름과 콩은 가격이 좀 더 비싸기 때문에 지원하는 물량을 최대화하고 싶은 기부자들에게 인기가 없다.

또 수질 문제도 있다. 북한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공급되는 물이 급수에 적합한 기준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설사가 빈번하다. 설사는 소위 ‘대용식량’이라고 하는 풀, 나뭇잎, 나무껍질, 도토리 등을 먹으면서 생긴다. 설사 증세가 있는 어린이들은 섭취한 음식에 들어있는 영양소를 체내로 흡수하지 못한다.

북한은 캐나다처럼 추운 겨울이 찾아오는데 연료가 부족해 난방상태가 아주 좋지 못하다. 난방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가정과 보육시설에서 어린이들은 체내 에너지를 성장하는데 사용하지 못하고 신체의 온도를 유지하는데 써버린다. 약해진 체력 때문에 겨울에는 호흡기 질환, 여름철에는 설사와 같은 전염성 질환에 잘 걸린다. 신체는 병원균과 싸우느라 영양을 써버리고 그 결과 영양실조의 악순환 상태가 계속된다.

대부분의 가정이 국제기구의 식량지원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임산부나 젖먹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이 필요로 하는 요구가 제대로 충족되지도 못한다. 영양실태 조사를 통해 이들에 대한 지원을 우선 목표로 해왔으나, 기부되는 양과 시기가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상황과 일치되지 못하고 있다. 또, 임산부나 젖먹이를 키우는 여성들은 설사 자신을 위해 식량을 배급받는다 해도 다른 가족들과 나누어 먹어야하기 때문에 효과를 약화시키고 있다.

북한의 의료종사자들은 영양실조 문제를 다루는데 준비돼 있지 못하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서 영양실조는 사라졌었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한 경험과 지식이 다시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의과대학에서도 영양실조 치료에 대한 연구가 없었다. 북한 의료종사자들에 대한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인원수를 대폭 늘이는 것 또한 시급히 필요하다.

6. 병 원

북한은 전국 각지 시, 군, 면, 리 행정단위까지 상당히 많은 병원들을 세웠다. 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병원 건물들이 낡고 춥다. 난방부족으로 겨울철에는 환자를 받을 수 없다. 식량부족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제공할 식량이 있을 때는 환자가 찾아오는 비율이 높아진다. 어린이들이 아프면 어머니들이 간호를 위해 대개 병원에 머무르는데, 이들에게도 병원에서 식량을 제공해야 한다.

의료용품이 부족하여 병원들은 전통적인 ‘고려(한방)’ 약품에 의존하게 된다. 병원들은 일반적으로 자격을 갖춘 약사들이 있는 한방약품 담당 부서를 운영하고 있으며, 병원 안에 있는 정원에서 약초를 기른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의약품의 70%가 직접 기른 약초 치료제로 알려지고 있다.

병원에 종사하는 사람들(의사, 간호사, 조산원, 약사)은 매우 잘 훈련받았고 또 헌신적이다. 그러나 수술실, 출산실 등 의료시설과 의료장비, 의료기구들 같은 설비는 좋지 못한 상태이다. 의료기술도 15년에서 30년 가량 뒤쳐져 있다. 마취제와 항생제가 부족하기 때문에 수술은 매우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기조차 한다.

한때는 세계에서 최고 수준에 있었던 북한의 예방접종 프로그램이 최근에는 의약품 공급부족으로 거의 무력화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결핵, 홍역, 심지어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이 북한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지만 북한은 이러한 위험에 전혀 무방비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국제적십자사에서는 질병 예방 프로그램에 착수했고, 유엔국제아동기금(UNICEF)와 세계보건기구(WHO)도 어린이 예방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 북한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가?

우리들은 종종 북한에 체류했던 2년 동안에 어떠한 변화, 특히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는 희망적인 징후가 있는지에 대해 질문 받곤 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매우 어렵다.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외국인의 눈으로 간파하기란 쉽지 않다. 조그마한 변화에도 엄청난 의미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우리들이 알아볼 수 있었던 긍정적인 징후들은 다음과 같은 현상들이다.

– 농업분야의 회복이 눈에 띈다. 몇 가지 혁신적인 농업정책 방안이 실행되고 일부 정책의 수정이 있었다. 2모작의 성공, 소규모 가축농장과 비닐하우스 재배의 증가, 농민시장의 확대 그리고 자전거와 자동차가 전보다 많아졌다.

– 산림 녹화 작업이 다시 시작되었고, 에너지 사정이 약간 좋아진 듯 싶다. 올해(1999년도) 봄에는 환경 미화 운동이 실시되기도 했다.

– 어린이들이 전체적으로 좋아졌다. 적어도 1997년 우리가 처음 부임했을 때 보았던 것과 비교해서 나아졌다.

– 북한정부 기능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정상화된 것 같다. 구호기관들이 활동하는 여건도 개선되었다. 지원된 식량의 배급 경로를 추적하기 위한 현장 접근이 쉬워졌고, 일선 행정기관 및 연구소들에 대한 직접 접촉 기회도 많아졌다. 북한당국도 비정부기구(NGO)가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직도 비정부기구(NGO)의 개념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갖고 있는 듯싶다.

– 북한 당국자들과 구호기관 사이의 상호 이해가 증진되었다. 북한당국도 장기적인 해결책이 요구되는 복합적인 위기상황이라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북한당국은 영양상태조사 결과의 후속 조치로 영양상태 복구와 영양실조 예방 등을 도모하고 있다.

– 도, 군 단위에서도 국제구호기구와의 관계가 강화되었다. 구호기구가 주관한 연구회와 토론회가 도, 지방단위에서 이루어지고 여기에 지방정부 관리들과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 국제사회에서 새로이 생산설비를 설치하거나 복구하는 일을 지원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국수와 같은 식품 생산시설, 고단위 영양과자 공장, 원료를 제공받아 의약품을 생산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징후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외견상 전반적으로 음울해 보인다. 인도적인 구호활동이 매우 긴급히 필요하지만, 북한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구호기구들은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본다. 세계식량계획(WFP)이나 다른 기구들에 의해 대량 지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량부족 사태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에서 농업시설 복구와 환경보호를 위한 작업에 지원될 자금을 모으는데 성공한다 해도 농업생산의 불확실성은 계속될 것이다. 보건의료체계의 위기도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유엔국제아동기금(UNICEF)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속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될 것이다.

경제회복이 매우 절실하지만 공업생산이 그렇게 빨리 회복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라진·선봉지역과 같은 경제특구의 지정과 다국적 프로젝트인 두만강유역 개발계획에도 불구하고 몇몇 한국기업을 제외하고는 북한에 투자하려는 외국기업은 거의 없다.

북한은 점점 더 국제적인 구호에 의존하는 불건전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나, 현재 지원되는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일 조차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인도적 차원의 지원이 북한이 안고 있는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는 동북아 지역의 정치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4자 회담이나 남북간의 대화, 그밖에 북한이 포함된 다른 협상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어야만 한다.

○ 어떠한 상황 변화가 필요한가?

인도적인 지원은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힘겨운 노력과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은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데 인도적 지원에 더하여 대규모의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원은 북한이 고립 상태를 끝내고 잠재적인 교역 대상국들과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수반된다. 최근(1999년도) 미국의 대북제재 일부 완화 조치는 이러한 관점에서 고무적이다.

한반도내에서 군사대결의 종식과 남북한 사이의 화해를 서둘러야 할 긴급한 필요성이 있다. 남북한 관계의 진전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과 경제회복을 위한 문을 열어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 진행중인 평화 정착을 위한 협의과정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한반도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정의를 구현하는데 영향을 주는 유일한 지정학적인 요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러시아 모두의 이해가 한반도에서 일어날 사태와 직접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한국인들은 역사적으로 지역 세력들의 볼모였다.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의 동기, 심지어는 인도적 구호기구들의 동기에 대해서까지 깊은 의혹을 갖고 있다.

북한당국은 남한정부의 ‘햇볕 정책’과 미국의 ‘건설적인 포용 전략’을 보다 점잖은 것으로, 그래서 더욱 위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북한 인민들의 결속을 와해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침투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방어벽을 넘어 들어와 방심하고 있는 인민들을 감염시키는 ‘황색바람’을 경계하고 있다.

북한 김정일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제국주의자들은 적대국에 이념적인, 문화적인 침투를 통해 나쁜 병을 감염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며, 적대국을 허물어뜨려 그들의 지배와 통제하에 두려고 한다.”

강연 첫 부분에서 언급했던 “현재의 위기는 국가체제의 이념적인 토대를 와해시키는 위협이 되고 있다”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인식은 이해가 된다. 이제 미국은 북한에 대해 최대 원조국이며 남한도 북한의 최대 교역국이다. 만약 북한 주민들이 미국 국기가 새겨진 포대에 담긴 옥수수와 밀, 콩을 계속 받는다면, 그들은 왜 자신들의 정부가 가장 나쁜 적을 믿고 식량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지 않을까?

이러한 상황에서도 체제를 유지하려면 더욱 더 강한 통제가 필요한 법이다. 작년에(1998년) 헌법을 수정하면서 나타난 변화는 노동당에 비해 군의 힘을 강화시킨 것이다. ‘주석’이란 명칭은 이미 사망한 김일성에게 영원히 증정되었기 때문에 북한에서 최고 직위는 – 그의 아들 김정일에게 부여된 – 국방위원장 직위이다. 국방위원회는 군대가 가장 우월한 지위를 갖는 조직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경제적인 통제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군대에 대한 통제력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일까? 북한은 양자택일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통제를 강화하고, 교전충돌을 일으켜 결국 대외지원을 포기하든가 아니면 지원을 받아들이고 외국과 친구가 되는 대신 내부 통제력을 상실하게 될 수 있다. 군부 강경론자와 민간의 실무 행정가들 사이의 내부적인 갈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상상할 수 있다.

창조적인 해결책이 만들어져 재난을 피할 수 있게 될지 아니면 모든 창조력이 막혀버리고 재난이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지 긴장상태이다. 둘 중의 어떤 상황이 될 것인지는 상상에 맡길 뿐이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이나 책략에 외부세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그들의 내부적인 정책결정에 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우리들은 미국의 대북정책조정관인 윌리암 페리 보고서의 회유적인 목소리를 반기고 있다. 이 새로운 정책은 이미 첫 보상을 받았다. 북한이 금년(1999년) 여름 대포동 2호 장거리 미사일의 시험발사를 중지하는데 합의한 것이 그것이다.

미국과 한국 모두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있는 캐나다는 과거보다 더욱 더 적극적인 ‘정직한 중개자’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한국은 캐나다가 중개자로 개입하는데 대해 환영하는 암시를 하고 있으며, 북한도 캐나다와 비공식적으로 고위급 수준의 대화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 결 론

대북지원은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완전한 답은 아니다. 그러나 대북지원을 통해 기회가 마련될 수 있다. 지원을 통해 북한에 접근할 수 있으며, 북한을 이해하게 되고, 진정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대북지원은 문을 열고 관계를 맺고 상호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이것을 ‘평화구축의 사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대북지원은 숨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며, 장기적인 해결책을 구상하고 이를 테스트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갖게 해준다. 대북지원은 ‘연착륙’을 위한 활주로를 준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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