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 2008-09-22   1217

[자료글] 남북관계의 변화와 시민사회


□  남북관계는 민족과 국가라는 두 개념에 바탕을 둔 조국통일의 관점이 지배해 왔으며, 최근 통일운동과 함께 ‘민간’과 ‘해외 겨레’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기본 관점은 여전히 큰 틀에서 유지되고 있음

– 조국통일원칙(1972년 7월, 7·4남북공동성명):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 남북관계의 기본 성격(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 “남과 북은 … 민족적 화해를 이룩하고 무력에 의한 침략과 충돌을 막고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며 다각적인 교류·협력을 실현하여 민족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며 쌍방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면서 …”

– 통일 방안(2000년 6월, 6·15남북공동선언):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 민간 주도의 남·북·해외 통일운동(2001년 8월, 2001년 민족통일대축전 공동보도문): “민족의 관심과 기대 속에 나라가 분열된 후 처음으로 남과 북, 해외의 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여 진행한 2001년 민족통일대축전은 6·15 남북공동선언에 따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통일을 실현해 나가려는 겨레의 절절한 염원과 확고한 의지를 알린 거족적인 통일행사였다. … 남과 북, 해외의 대표들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에 맞게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고 민족의 안전과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민간단체들이 적극 연대해 나가기로 하였다.”

– 남북관계 발전의 기본 방향(2007년 10월, 10·4선언):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


□ 조국통일의 원칙과 방안, 남북관계의 성격과 방향, 민간 주도의 통일운동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기본 관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해, 그리고 남북관계 발전에 대해 몇 가지 시사점을 얻고자 함

– 국가, 민족, 시민사회라는 세 개념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할 것임
– 4절에서는 남북관계 변화의 특징과 전망을 간단히 논의할 것임



1. 국가


□ 조국통일의 첫째 원칙인 자주는 외세 의존과 외세 간섭의 배격을 의미하며, 외세에 대응하는 자주의 주체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을 가짐

– 외세를 단순히 강대국으로 판단할 때,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가 자주 통일의 주체로 등장함

– 민족자결권을 방해하면서 분단을 가져왔고 고착화시켰던 제국주의 세력을 외세로 규정할 때, 자주 통일의 주체는 반제국주의적·민족주의적 경향을 전면에 내세우는 ‘민족 해방 세력’이 될 것임


□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를 자주 통일의 주체로 파악할 때, 통일의 당위성 또는 통일이라는 지향의 의미에 대한 논의가 어려운 과제로 등장함

– 원래 하나이던 조국이었기 때문에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근대국민국가의 분열과 통합의 역사에 비추어볼 때, 높은 설득력을 가질 수 없음

– 두 개의 국가가 하나의 국가로 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어야 함

–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에 부정적이거나 또는 두 국가 모두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가 제시되어야 할 것임

– 두 국가 사이의 평화 공존이라는 상태를 상정할 수 있다면, 평화 자체가 통일의 목적이 될 수 없으며, 통일을 통해서만, 또는 통일을 통해 쉽게, 달성될 수 있는 가치 체계가 제시되어야 함

– 남한과 북한이 불완전한 근대국민국가이기 때문에 통일을 해야 한다는 논리는 불완전성이 분단 때문에 오는 것이며 통일이 되면 불완전성이 소멸될 것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그러한 불완전성의 근거가 남한과 북한을 구성하는 ‘국민’의 ‘역사적 특성’이나 과거 ‘단일 국가’였던 두 국가의 ‘역사적 규정성’이 아닌 다른 무엇일 때 국가가 주체가 되는 통일이 의미를 가질 것임; 그런데 과연 그러한 무엇이 존재하는지는 의문임


□ ‘민족 해방 세력’이 자주 통일의 주체라고 한다면, 현존하는 남한과 북한은 아직 완전하지 못한 민족국가이며, 따라서 ‘민족 해방 세력’이 추구했던, 또는 현재 ‘민족 해방 세력’이라고 규정될 수 있는 세력이 추구하는, 자주 통일(즉, 독립된 단일 민족국가의 수립)을 어떤 국가가 실질적으로 이룰 수 있는지가 문제로 제기될 것임

– 민족 해방 세력임을 여전히 자임하고 있는 북한이 자주 통일을 주도할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임

– 또한 ‘민족 해방’이 단순히 외세로부터의 해방만을 의미하지 않고 현재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근대적 가치에 바탕을 둔 자유로운 민족국가의 수립을 의미한다면, 북한이 (만일 그들이 실질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면) 성취할 자주 통일의 결과가 현 단계 민족 해방 세력이나 대다수의 민족에 의해 수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임

–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근대국민국가로서 인정을 받고 있는 남한은 한반도 통일을 주도할 수 있는 상당한 역량을 갖춘 것으로 판단되지만, ‘민족 해방 세력’의 국가라고 규정할 수 없으며 또한 남북관계나 통일의 문제에서 외세 의존과 외세 간섭의 배제를 제한된 차원에서만 추구하고 있음

– 북핵문제 해결 및 최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관련한 남·북한의 전략과 정책은 ‘민족 해방 세력’의 국가라는 관점에서 남·북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음

– ‘민족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자주 통일을 바라볼 때, 남·북한은 제한적 의미에서만 통일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따라서 통일의 주체, 목적, 방법 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함


□ 조국통일이 하나의 ‘국가’를 만드는 일이고 또한 현존하는 내부 권력(세력)으로 남·북한 두 국가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통일 담론에서 국가는 반드시 중심 요소로 다루어져야 함

– 국가로서 남·북한이 주체가 되는 자주 통일의 지향이 불분명하고 또한 남·북한이 자주 통일의 주체로서 제한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조국통일은 남북관계를 현실적으로 규정하는 핵심 요소의 하나이고 또한 남·북한 정부도 여전히 남북관계의 핵심 당사자로서 기능을 하고 있음

– 통일 담론은 ‘왜 두 개의 국가보다는 하나의 국가가 한반도에 존재하는 것이, 분단을 끝내고 통합/통일을 이루는 것이 한반도 거주자에게 더 좋은가?’라는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함


□ ‘정치공동체로서의 국가’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통일은 이제 ‘역사로부터 주어지는 당위’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선택된 정치적 지향’으로 판단되어야 함 (*‘의식적으로 선택된 정치적 지향’은 정책, 전략보다는 추상수준이 높으며, 그 내부에 가치지향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음)

– 한반도와 지역의 평화·안정, 삶의 질 개선, 경제발전, 국제협력 확대, 자유와 인권의 확대 등이 통일 담론의 핵심 가치이자 목표로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하며, 남북관계 발전을 포함한 통일 방안 속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어야 함

– ‘민족 해방’ 또는 ‘민족 자결’이라는 가치도 위에서 제시된 가치 체계 하에서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아야 함

– 정치, 또는 국가 존재의 적극적 의미를 ‘정당화된 권력을 통한 이해관계 또는 갈등의 단순한 조정’이 아니라 ‘보다 나은 가치와 삶을 지향하는 공동체의 형성·발전’으로 본다면, 통일/통합은 남·북한 양국에게 핵심 국가 목표가 될 수밖에 없음(*통일과 통합을 동시에 사용하는 어법을 취할 때,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 등의 ‘선언’은 현재의 시점에서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정치적 의지의 표명’으로서는 매우 강력하다고 판단됨)

– 그동안 채택된 남북한 사이의 핵심 합의문들, 특히 남북기본합의서 전문에 나타난 남북관계 발전과 통일 지향에 대한 의지 표명은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판단되며, 필요한 경우에는 재해석을 할 필요가 있음



2. 민족


□ 조국통일의 세 번째 원칙인 민족대단결은 ‘민족 내부의 단결’이라는 차원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민족 외부에 대한 대응’을 의미해서는 안 됨

– “셋째,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는 7·4공동성명의 원칙은 ‘분단이 이념·체제·권력 대결의 산물이며 또한 체제경쟁의 차원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분단 극복을 위해서는 민족이 사상·이념·제도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함

–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6·15공동선언 1항을 ‘자주’에 방점을 두고 해석할 경우, ‘민족대단결’은 자주를 위한 하나의 과정·수단·필요조건이 될 뿐이며, 결국에는 ‘자주’가 민족대단결을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 될 것임

– 최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이라는 문구를 ‘민족 해방’이나 ‘외세 의존과 외세 간섭의 배격’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태도는 두 개의 원칙을 하나의 원칙으로 환원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임


□ 사상, 이념, 제도보다 민족을 강조하는 태도는 ‘이념 지향’이라기보다는 ‘현실 반영’이라고 해석되어야 함

– 민족공동체가 하나의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이념’으로서 ‘현실’에 반드시 강요될 수 있는 것은 아님

–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가 ‘하나의 민족’이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하나의 안정적인 정치공동체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민족’의 ‘단결’이 필요함

– 특히 분단과 전쟁의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민족 단결’은 현실적으로 평화라는 주요한 가치와 분리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

–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서로 다른 민족들로 구성된 정치공동체나 그러한 정치공동체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역연합체를 생각한다면, ‘민족 단결’은 한반도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음


□ ‘현실 반영’이라는 차원에서 민족에 의미를 부여하는 관점을 취한다고 해서, 민족이 지닌 ‘현실적 가치’를 부정해서는 안 됨

– 해외에서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수많은 동포들의 정체성 속에서 ‘민족’은 주요한, 어쩌면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음

– 남한 국민의 경우에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그러나 내세우고 쉽지 않은 한민족’이라는 관점이 무의식에 깔려 있지만, 한반도적 상황과 국가교육의 유산 때문에 남한 국민의 경우에도 ‘민족’과 ‘국가’가 쉽게 분리되지 않음

– 세계화의 시대에 개인의 정체성이 보편적으로 주어진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지구촌의 구성원들 대다수는 세계시장의 협상장이나 노동시장에서조차 여권의 색깔, 말의 어투, 먹을거리의 냄새로부터 자유롭지 못함

– 세계화가 ‘단일화’ 또는 ‘일체화’를 의미하지 않고 ‘보편 속의 특수, 특수 속의 보편’이라는 가치, 또는 교류되고 확산되는 문화다양성을 추구한다면, 민족은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또한 한반도의 역사에 자신을 연결시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현실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시민 모두에게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


□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민족 통일’ 또는 ‘민족 자결’이 갖는 적극적 의미가 풍부하게 제시될 때, 통일 담론에서 ‘민족 단결’이 갖는 의미도 강화될 것임

– 민족 단결은 현실 상황에서 한반도의 안정과 통일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민족 단결을 통한 한민족의 정체성 형성은 인류 문명을 풍부하게 만드는 요인들 중의 하나이며 또한 ‘한민족의 역사에 연결된’ 개인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풍부하게 해주는 요인들 중의 하나임(* ‘민족의 정체성’을 매개로 하지 않으면서 세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면, 그는 매우 강한 존재일 것이다. ‘민족의 정체성’을 매개로 하면서도 ‘진정한 세계인’이 될 수 있다면, 그는 세계 속에서 행복하며 또한 세상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일 것이다)

– 남북공동행사에서 흔히 쉽게 합의되어 추진되는 대일본 성명이나 행동의 경우에는 그 각각이 그 자체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통일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한반도 통일의 보편성이나 가치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는지 등을 잘 보여주어야 함

– 민족은 절대가치나 역사적 당위는 아니지만, ‘정치 지향’이라기보다는 ‘가치 지향’이라고 해야 할 것임



3. 시민사회


□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의 불균형, 민족과 시민사회 사이의 불균형은 현 단계 남북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인 통일 과정에서도 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큼

– 이러한 불균형은 단지 남북관계나 통일 문제에서만 나타나지는 않지만, 분단체제의 성격과 북한 체제의 특수성 때문에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음

– 남북관계는 국가 중심, 정치·안보·군사 중심의 변화를 겪어왔으며, 최근 경제협력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의 우위는 깨어지지 않고 있으며 또한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판단됨

– 최근 민간단체나 해외동포의 역할이 통일운동이나 남북관계 발전에서 부각되고 있으며 또한 정책결정에 미치는 영향력도 증대하였지만, 시민사회 자체의 역량보다는 ‘민족 통일’이라는 가치 하에서 집결된 세력/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판단됨

– 이러한 불균형은 남북관계나 통일과 관련하여 국가나 민족이라는 두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비추어볼 때, 제약으로 작용할 것임


□ 시민사회의 두 영역이 ‘거래·시장/경제’와 ‘협력·참여/도덕·윤리’라고 한다면, 국가나 민족에 대응한 시민사회의 의미·역할 강화와 함께 시민사회 내부의 두 영역에서의 균형도 필요함

– 시민사회와 국가·민족 사이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남북경협 및 대북경제지원에서 민간기업의 역할 강화가 반드시 필요함

– 나아가 남북경협 및 대북지원 등과 관련하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통일 논의와 연결시키려는 노력, 노사관계를 국제적 기준과 일치시키려는 노력, 대북경제지원이나 투자를 ‘권리에 바탕을 둔 발전’이라는 개념과 결합하려는 노력 등이 필요함

– 민간단체가 중심이 된 통일운동은 ‘정치적 통일운동’이라는 측면보다는 ‘사회·문화적 통일운동’과 ‘민족의식에 바탕을 둔 인도적 지원’이라는 측면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상당히 균형이 잡혀있음

– 하지만 최근 6·15공동선언에 바탕을 둔 대규모 남북공동행사가 민간통일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대하면서, 또한 6·15민족공동위원회가 주관하는 민족공동행사에서 6·15공동선언이 강조되면서, 시민사회와 국가·민족 사이의 불균형이 강화될 가능성도 존재함

– 남북관계 및 통일 문제에서 시민사회의 협력·참여/도덕·윤리라는 측면이 강조되기 위해서는 평화, 인권, 환경, 여성 등과 관련된 시민단체들의 더욱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됨


□ 남북관계 및 통일 문제와 관련하여 시민사회의 기능과 역할이 강화될수록 시민사회가 갖는 의미가 증대하고 풍부해지며, 또한 시민사회가 갖는 의미를 현실에서 실현하려고 할수록 시민사회의 기능과 역할도 확대될 것임

– 남북관계에서 아직도 정치·안보·군사적 측면이 일차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최근 경제협력이 특별히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의 기능과 역할의 확대를 무조건 요구할 수는 없음

– 북한 체제의 특성 때문에 남북관계에서 남한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특별한 영역을 개척하고 확대해 나가기도 쉽지 않음

–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 단계 남북관계, 동북아 국제관계, 세계 질서에서 남한 시민사회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론적 성찰이 필요함

– 남북관계에서 북측의 상대자가 ‘순수 민간’이라고 할 수 없더라도, 소위 시민사회의 의제(평화, 인권, 환경, 여성 등)를 논의하는 공간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북한 내부에서 ‘잠재적 시민사회’가 형성될 것임

– 남북관계에서 시민사회의 의제와 역할이 확대되면 될수록, 한반도 통일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주목을 받게 되며 또한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확대될 것임


□ 남북관계나 통일 문제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제에서 하나일 뿐이지만, 한국 사회 차원에서는 핵심 의제의 하나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음

– 시민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나 활동의 영역은 결코 한국 사회에 국한될 수 없으며, 세계 시민사회와 호흡을 함께 해야 함; 이런 점에서 북한의 인권이나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매우 중요함(*북한 인권에 관심을 기울이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잘못된 접근은 오히려 인권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항상 유의해야 함)

– 그런데 남북관계와 통일 문제가 국제질서 및 평화와 관련하여 세계 시민사회에 미치는 영향, 특히 한국 사회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한국 시민운동은 남북관계와 통일 문제에 주목해야 함

– 특히 평화, 인권, 인도적 지원 등과 관련된 한국 시민단체들은 현재에도 남북관계나 통일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남북한 각각의 평화와 인권이 남북관계와 통일 문제의 전개 과정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실천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더 심화된 접근을 해 나가야 할 것으로 판단됨



4. 남북관계 변화의 특징과 전망(*아리랑국제평화재단 7회 평화포럼(2008. 6. 27)에서 발표한 내용 중 일부임)


□ 1970년대 초반, 1980년대 후반에 나타난 한반도 분단체제의 동학, 또는 한반도 세력균형 변화 과정의 두 특징

– 한반도 분단체제를 규정하는 동북아 및 세계적 차원의 세력균형 변화에 남북한 지도부는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뛰어넘어, 남북한 직접 접촉을 통해 한반도 내부에서 새로운 균형을 형성하려고 노력하였음

– 한반도 분단체제는 동북아나 세계 차원의 냉전체제에 의해 단순히 규정되는 종속적 하위체제가 아니라, 때로는 동북아나 세계 차원의 냉전체제에 직접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체제 속의 체제’, 국제질서의 중심고리들 중의 하나였음

– 한반도 분단체제의 이러한 특징은 현 단계 이후의 동북아 질서 재편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날 것으로 판단됨


□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 한반도 정세의 이중성
– ‘적대적 체제 경쟁’에서 ‘체제 경쟁 속의 협력’으로: 한반도에서 세력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던 1980년대 중·후반부터 남북한은 직접 접촉을 확대·심화하면서, 상호 견제와 의도 확인, 교류협력을 통한 안정적 분단 관리를 추구하였음

– 대외환경 차원에서 세력불균형 극복을 위해 남북한은 주변 강대국과 관계정상화를 각각 추진하였으나,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에도 불구하고 남한만이 중국 및 소련과 국교를 수립하였음

– 남북한 사이의 ‘체제 경쟁 속의 협력’은 대외관계 차원에서 교차승인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해서, 한반도 분단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조건을 충분하게 만들어내지 못하였음

– 남북한 사이에 세력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상태에서, 남북관계와 대외관계의 불일치, 특히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할 교차승인의 실패는 1990년대 한반도 안보위기 발생의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됨


□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남한 주도의 한반도 평화과정

– 1990년대 중반 역시 북한의 경제위기, 군사력 약화, 외교적 역량 상실 등으로 한반도의 세력불균형은 심화되었으며, 북한 지도부는 체제 유지를 위해 군사노선과 폐쇄노선을 유지하였음

– 1998년 이후 한국의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에 대한 외교적 접근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였음

– ‘포용’과 ‘병행’을 기반으로 하는 화해협력정책은 한편으로는 북한 체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접촉/접근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접촉/접근의 확대를 위해 정치·군사 문제와 다른 문제를 분리하여 다루면서 핵문제 해결과 남북경협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것임

–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한이 주도하는 대북포용정책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면서,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와 ‘한반도 평화과정의 진전’이 시작되었음


□ 1차 북핵위기 전후 10 년의 교훈

– 구조: 한반도 평화는 남북관계와 한반도 대외환경이 동시에 안정구조로 변화할 때에 달성될 수 있음; 특히 세력불균형이 심화된 상태에서는 북한 체제의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국제질서가 필요함

– 행위자: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당사국들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당사국들의 내부 정치·경제 상황 및 지도부 정세 인식도 주요한 결정요인으로 작용함; 특히 안보딜레마가 작동하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 전통적 안보관 및 한미군사동맹은 긍정적 요인보다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음

– 한국의 역할: 안보 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역할은 위축될 수밖에 없으며, 남북관계를 통한 한반도 평화 구축은 한국 정부의 일관된 대북포용정책과 포괄적인 외교정책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음


□ 2차 북핵위기의 교훈

– 대북압박정책의 한계: 미국 행정부의 대북압박정책은 북한의 대미강경정책을 불러오고 또한 실질적 정책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무력충돌의 위험성만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태를 진전시킴

– 군사노선의 한계: 실질적 정책효과 측면에서, 북한의 비타협적 군사노선 역시 성과의 크기에서는 차이가 없고 성과의 실현 시기만을 늦춤; 경제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미관계 정상화의 지연은 북한 경제에 부정적 영향만을 미치고 인민의 고통과 가중시킴;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외교적 역량을 위축시키고 또한 중국과 한국이라는 경제적·외교적 협력국가들의 입지를 좁힘

– 제한된 한국의 역할: 한국 정부의 미국과 북한에 대한 적극적 또는 소극적 방식의 ‘설득’은 2차 북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였지만, ‘남북관계를 통한 북핵위기 돌파구 마련’이라는 ‘실험’은 이루어지지 못했음

– 6자회담의 성과와 한계: 6자회담을 통해 북핵위기가 해결의 가닥을 잡고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한반도 문제에 강대국들의 개입 여지가 확대되었다는 점은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음; 6자회담과 북·미 양자회담의 동시 진행이 실질적 성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앞으로 동북아 평화체제 또는 협력안보체제 구축이나, 경제·에너지·식량·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논의 틀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임


□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한민족의 생존과 발전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동시에 생각하고 추구해야 함

– 분단체제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평화 없는 통일’ 또는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지향하지 않는 통일’은 대안이 될 수 없음
– ‘통일 없는 평화’도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우리의 존재 방식과 사회 발전을 제약할 것임

– ‘통일 지향의 평화’는 현재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전망이자 목표임


※ 대안적 관점 1: 통일이 한민족의 최우선 과제이며, 민족공조만이 현 단계 한반도 전쟁 위험을 막는 유일한 방안이다.
※ 대안적 관점 2: 통일은 더 이상 한국의 국가목표가 될 수 없다. 한국 사회는 남북한의 평화공존을 일차적 목표로 하면서, 한민족의 통일보다는 동북아 지역협력을 실질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 대안적 관점 3: 북한 체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한국은 북한 체제의 변화를 압박하면서 통일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동북아와 지구촌의 질서에 연관된 문제이므로, 한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동북아 지역협력을 촉진시킬 전략을 추진해야만 함

– 지역 차원에서 상대적 약소국인 한국에게, 20세기 식민지배의 경험, 분단과 전쟁의 비극, 분단체제의 고통은 동북아 강대국 사이의 세력 갈등 및 패권 경쟁 때문에 강요된 측면이 있음

–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마주하고 있는 동북아에서 지역의 안정과 협력은 한반도가 안정적일 때, 그리고 한반도의 세력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서 세력 완충 또는 문명 매개의 역할을 할 때, 실질적으로 달성되었음

–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안정과 발전은 동북아 지역이 세력 갈등의 장이 아니라 하나의 느슨한 문명권 또는 문화권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할 것임

– 현재 동북아 지역협력을 저해하는 핵심 요인은 북·미 갈등, 민족주의와 역사 문제, 군비경쟁과 군사동맹, 영토 문제 등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국가들이 전통적 안보관이나 패권전략을 벗어나야 함

– 한국은 지역 차원에서 상대적 약소국이지만 지역협력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동맹전략보다는 평화지향의 균형외교를 추진해야 할 것임


※ 대안 1: 강화된 또는 포괄적 한미동맹에 기반을 두고, 또는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군사안보전략에 바탕을 두고, 미국과 함께 지역협력을 추진하는 전략
※ 대안 2: 한미동맹의 탈피를 명백한 국가전략으로 내걸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자주국방에 바탕을 둔 ‘비동맹 중립국’ 전략을 취하는 전략
※ 대안 3: 미국과 중국의, 나아가 일본이나 러시아의 패권주의적 경향을 고려할 때, 평화주의적이고 탈국가주의적인 지역협력을 추진하는 전략


□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또한 동북아 지역협력을 위해 적극적인 평화외교정책을 펴는 것은 단순히 ‘국가 차원의 지향’으로서만 가치를 지니는 것에 머물지 않고, ‘경로창조적 사고’에서 구상될 수 있는 ‘현실성 있는 국가전략’으로도 평가되고 추진될 수 있는 것임

– 전통적 안보관이나 현실주의적 외교안보전략은 ‘현실성’이라는 차원에서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관점’이라고 평가될 수는 있지만, ‘유일한 미래’는 아님

– 유럽 지역 차원의 국가연합 추진, 시민사회 발전에 따른 외교안보정책의 변화, 안보 딜레마나 국방력 딜레마에서 확인되는 전통적 안보관의 모순, 미국 국력의 역설적 쇠퇴 등은 현실주의를 뛰어넘는, 그리고 평화를 지향하는 외교안보정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음

– 국가 차원의 외교안보정책이 아니라 국제기구 차원의, 그리고 세계시민사회 차원의 정책과 운동이 세계질서 변화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개별 국가의 이미지 또는 정체성이 주요한 외교자산으로 활용되고 있음.


                                                       
                                                                  박순성 (동국대 교수,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 이 글은 한겨레평화연구소 창립식(2008. 7. 22)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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