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23-07-11   1200

[중꺾정 12화] 비례대표제가 정말로 필요 없다고요?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들의 시각에서 오늘의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 이 칼럼은 오마이뉴스와 슬로우뉴스에 중복 게재됩니다.

비례대표제가 정말로 필요 없다고요?

이소영 (대구대학교 교수)

비례대표에 관심 없는 정치권과 유권자들

지난 5월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실시한 선거제도 공론조사 결과 참여자들의 숙의 전후 입장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화한 문항은 비례대표 확대에 관한 것이었다. 숙의 전에는 시민참여단 응답자 중 27%만이 국회의원 비례대표를 더 늘여야 한다고 응답했지만, 숙의 후에는 그 비율이 70%로 약 43%p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론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최근 논의에서 비례대표 의석 증원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비례대표 의석을 없애자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이 이렇게 공론조사 결과를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숙의 전 결과의 27%에서 알 수 있듯이, 선거제도에 대한 충분한 자료와 숙의를 경험해보지 않은 시민들은 비례대표를 늘리는 데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간 학계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비례대표 증원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 유권자들은 여전히 비례대표의 필요성에 동의를 못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갈등과 양극화의 늪에 빠져 유권자 눈높이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정치권의 행보를 보며 상당수의 유권자들이 의원정수 및 비례대표 축소를 원하고 있고, 이에 더해 유권자가 후보자를 직접 선택하지 않는 폐쇄명부형 비례대표에 대해서는 민주적 정당성마저 부여하지 않는 분위기가 일부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일부 언론이 이러한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현재 한국에서 운용되고 있는 비례대표 제도를 볼 때, 유권자들의 비례대표에 대한 불만과 축소 또는 폐지하자는 요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전체 300석 중에 47석에 불과하며, 그 47명마저도 초선들로서 연임 없이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 대표가 되기 위해 거쳐가는 자리로 인식되고 있어 그 존재감이 매우 약한 편이다. 또한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의 직접적 선택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공천 과정에서도 유권자의 선택이나 영향력이 전혀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민주적 정당성을 잘 인정받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비례대표 공천 과정은 상당 부분 당내 계파 간 할당의 과정도 포함하고 있어 실제로 절차적 정당성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국회의원 다수가 법조계, 관료 출신인데 비례대표제는 정말 필요 없을까?

유권자들이 선택한 후보자 중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지 못하여 발생하는 사표가 50%에 달하는 현행 단순다수 소선거구제 지역구대표 선거제도와 달리, 비례대표제도는 유권자들의 투표가 거의 대부분 그대로 의석으로 전환되는 비례성이 매우 높은 선거제도이다. 또한, 비례대표제도는 지역의 울타리를 넘어서 우리사회 각계 각층의 이익을 대변할 정치인들을 국회에 보낼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이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이익이 다변화된 오늘날의 사회에서 사회 모든 집단의 대표자들을 모두 국회에 진출시키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이익 추구로부터 극단적으로 소외된 집단이 존재하지 않도록 대표성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후보의 인지도에 크게 의존하는 지역구대표 선거를 통해서는 사회의 다양한 소수 의견들이 국회에서 대표성을 가지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 국회의원의 다수는 법조계와 관료들로부터 충원되고 있다. 이익이 극도로 분화된 사회에서 이해하기 매우 힘든 구조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이 지역을 넘어서는 국가적 의제들이다. 특히 환경문제와 같은 긴급한 과제는 때로는 지역의 이익과 상충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4차산업 혁명이라는 인류사의 거대한 변화 앞에서 기술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에 관련 영역의 전문가들 또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의정활동이 요구된다.

현재 지역은 국회의원, 광역의원, 기초의원 등 복수의 대표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방의회의 권한이 약하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지역의 대표성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 유권자들은 대다수 지역 관련 민원을 국회의원에게 제기하고 국회의원들은 이 민원을 해결하는 것을 다음 선거의 공천과 당선을 위한 중요한 과업으로 생각한다. 전국적 인지도와 더불어 지역을 위해 얼마나 일을 했는지를 내세우면서 재선에 임해야 하기 때문에 전국적 의제와 지역의 문제가 상충하는 경우 지역의 국회의원이 지역의 이익을 포기하면서 전국적 의제의 해결방안을 제시하거나 찬성하기는 매우 힘들다.

입법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은 상임위원회 활동이지만, 300명밖에 안되는데다 지역구 사안이 많은 국회의원들이 상임위원회 활동을 열심히 하기도 어렵다. 특히 선거를 1년 정도 남긴 시점부터는 국회의원들의 관심은 지역구 관리에 초집중되기 때문에 제대로된 의정활동을 하기는 더 어려운 상황이다. 지방의원들이 있는데도 지방의원이 해야 할 일 중 많은 부분을 국회의원이 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회 의정활동의 질이 좋을 리가 없다. 국회의원 중 적어도 삼분의 일, 또는 절반은 지역 문제의 해결을 넘어 국가적인 의제에 집중할 수 있는 국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비례대표제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까?

현재의 비례대표제로는 제도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는 힘들다. 먼저, 한국의 국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석을 늘릴 필요가 있다. 이해관계가 복잡해질수록, 그리고 풀어가야 할 국가적, 사회적 의제가 많아질수록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대표자들의 필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EU는 27개국 중 23개국에서 의원 전체가 비례대표로 구성되어 있으며, 독일을 비롯한 3개 국가는 지역구대표제(다수제)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한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아시아의 경우, 한국 외에 일본과 대만, 몽골이 다수제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한 혼합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비례대표 비율이 낮은 국가는 없다. 일본의 경우, 중의원은 지역구 대 비례의석 비율이 276석 대 189석이며, 참의원의 경우는 146석 대 96석이다. 대만 또한 73석 대 34석이다. 최근 30여 년간 선거제도를 바꾼 국가들 대부분이 다수제에서 비례대표제로 전환해 왔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 대학 연구소의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선거제도 중 정치적 포용 및 경제적 불평등 완화에 가장 효과적인 선거제도가 비례대표제라고 한다. 한국 정치의 상황과 정서를 고려할 때, 지역대표를 비례대표로 모두 전환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많은 비례대표 의석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둘째, 공천과 선출 과정에서 비례대표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비례대표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과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인정이 없이는 비례대표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비례대표의 민주적 정당성은 민주적 당내 공천과정과 유권자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개방형 명부제를 통해 확보할 수 있다. 정당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순번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례대표에 출마한 후보자들도 당내 민주적 공천 과정을 거치고, 공천된 후보자들의 순위는 투표 시 유권자들이 직접 정하는 형식을 통해 비례대표도 유권자들이 직접 선출하는 방식이다.

셋째, 이렇게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한 비례대표 의원들이 의정활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재선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지역구대표가 되기 위해 가상의 지역구를 관리하고 지도부의 눈치를 살피며 낮은 인지도를 극복하기 위해 때로는 정치적 갈등의 최전선에서 총대를 잡는 4년이 아니라, 전문성을 살려 국가적 의제를 해결하는 4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유권자들에게 다음 선거에서도 그 전문적 영역의 의제들을 지속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물로 인정받아 선택받을 수 있어야 한다.

비례대표 의석수가 늘어날수록, 그리고 비례대표의 역할이 커져갈수록 우리의 정치는 인지도를 중심으로 한 인물 중심의 정치에서 정당의 정책을 기반으로 경쟁하는 정책 중심의 정치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회가 특정 직업 출신들이 아니라 사회 각층의 전문가들과 다양한 이익을 대표하는 대표자들로 구성될 확률이 높아진다. 이에 더하여, 보다 많은 정당들이 국회에 진출하여 거대 양당이 대치하는 갈등적 정치를 극복하고 연합하고 합의하는 정치를 할 가능성도 커진다. 비례대표제 확대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이 반드시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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