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7-03-05   1106

<안국동窓> 힘있는 자의 오만함 : 삼성 교육 자료를 통해 엿본 삼성의 언론관

지난 27일 <미디어오늘>은 삼성전자의 홍보 전략을 기술한 교육자료 문건(이하 교육자료)을 입수 공개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최근 삼성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기사가 대개 그러하듯이, 다른 언론들의 별다른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이내 다른 기사에 파묻혀버렸다. 물론 취재나 다른 자리를 통해 ‘삼성맨’들을 접촉해본 기자들에게는 이번 기사의 내용이 새삼 새로울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에는 교육자료 문건의 일부 내용이 딱히 문제를 삼을 수 없는 내용, 즉 기업 홍보의 일반론을 담고 있다는 점도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보도된 교육 자료는 삼성그룹의 언론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보여주는 문서라는 점에서 평소 삼성그룹의 언론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삼성의 대 언론관(對言論觀)이다. 교육자료에는 삼성의 언론관은 ‘회사가 이익을 내고 적자를 내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국민들에게 호의(好意)를 잃으면 회사가 없어지기도 하더라’라는 ‘(이건희) 회장의 홍보철학’으로 대치되어 있다. (우선 ‘사소해 보이는 것’부터 짚는다면 왜 ‘삼성그룹의 홍보철학’ 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의 홍보철학’일까.) 이를 통해 우리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 여론- 교육 자료에는 국민으로 표현되었지만 실제로는 ‘권력’이라고 읽는 것이 더 정확한 것으로 보이는데-에 민감해야 한다는 삼성그룹의 총수의 언론관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언론관은 전임 이병철 회장의 언론관과도 일치한다.

다소 길지만 이를 잘 보여주는 삼성그룹의 다른 문서를 인용해보자. “1960년대 초 두 차례의 사회적 대변혁을 겪으며 선대회장(이병철 회장-필자주)은 기업을 통한 사업보국이라는 평소의 신념에 흔들림이 있어 한때 정계투신을 결심하기도 하였다…(중략)… 그러나 현실은 이런 기업인의 사회적 공헌이 전적으로 무시되고 오히려 정치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이 선대회장이 정치 투신을 고려하게 된 배경이며, 동시에 우리 사회 모든 기업인의 공통된 고뇌였다. 그러나 선대회장은 정치의 길로 나서지 않았다. 정치란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것이 목적이며, 정치가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나갈 때 그것을 막고 유도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언론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삼성 60년사』 82쪽).

여기서 ‘정치의 희생양’이란 표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 이는 자유당 정부 시절 이병철 씨가 불법 정치자금 제공, 국유재산 부정 불하, 세금포탈 혐의로 5.16 군사정부에서 조사를 받은 것을 말한다.

실제로 이승만 정권시절부터 이후의 거의 모든 정권에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제공하였고, 그로 인해 총수가 정권교체기마다 사법처리의 위험에 노출되었던 삼성그룹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이처럼 총수일가가 언론을 정치권력과 사법처리로부터의 ‘방패막이’ 로 인식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교육 자료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삼성의 또 다른 언론관은 언론을 일방적인 관리 혹은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도구주의’적 관점이다. 울트라 에디션 기획 동영상 사례나 기흥구의 행정구역 변경 사례처럼, 기사에 소개된 삼성의 홍보 성공 사례에서 나와있는 언론의 역할은, 사회적 ‘공기’(公器)로라기보다는 기업의 ‘기획의도’대로 기사를 작성해주는 홍보 대행업체에 가깝다.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 신입사원 언론 홍보교육’이 신입사원 교육과정에 포함된 것은 MBC에 있다가 삼성으로 자리를 옮긴 전직 언론인의 제안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그가 삼성그룹의 이러한 언론관을 어떻게 생각할지 무척 궁금하다.

사실 사회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필자도 일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자를 접촉할 기회가 많다. 그런 이유로 몇 번 후배 간사들에게 교육자료 문건에 나와 있는 것과 유사한 내용-예컨대 기사의 ‘이런 것들이 기사가 된다’는 항목에 나와 있는 내용들-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과 필자의 언론을 바라보는 생각의 차이는 이렇다. 시민단체는 사실을 전달할 권리를 갖고, 언론은 이를 해석하고 보도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즉 언론은 그 의도가 아무리 선하다할 지라도 사실보도의 경계를 넘어설 수 없고, 반대로 시민단체 역시 기사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부정할 수 없는 언론 고유의 역할이 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삼성의 교육 자료에는 바로 이러한 내용들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사에 소개된 삼성의 교육 자료를 읽으며 필자가 느낀 것은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는 축소나 삭제할 수 있고, 원하는 방향의 기사들은 언제든지 ‘제조’할 수 있다는 거대 기업의 오만함이었다. 물론 이러한 오만함은 삼성의 막강한 경제력, 즉 광고 집행능력으로부터 나온다. 2005년 참여연대가 발간한 삼성보고서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한국의 기업집단 중 가장 많은 광고비인 약 3007억원을 지출하는 기업이었다. (2004년 기준) 3007억원이라는 액수는 4대 매체(TV, 라디오, 신문, 잡지) 광고비 총액 4조 6,695억원의 6.4%에 해당하는 것으로 현대그룹보다는 3.5%p(금액으로는 약 571억원), SK그룹보다는 2.1%p(약 465억원), LG그룹보다는 0.3%p(2003년 기준, 약 6.6억원) 더 높다.

오늘날 적지 않은 사회단체와 뜻있는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시사저널> 사태’ 역시 사실 거대 경제권력 삼성그룹의 오만한 언론관이 빚어낸 작품이다. 이처럼 ‘자본권력’이 오늘날 우리사회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제 1의 요인으로 한, 우리사회의 민주주의의 진전은 요원하다. 보다 많은 사람이 <시사저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야할 절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한수 (경제개혁연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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