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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창립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2014.9.)

2014년 9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참여연대 20년 도전과 성찰 그리고 새로운 모색’ 주제로 20주년 창립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 배경과 문제의식 ┃

 

참여연대는 1994년 한국 민주화의 부침과 냉전의 해체 등 시대적 전환기에 창립되었다. 참여연대가 지향한 꿈은 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하지 않으며,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참여연대는 권력의 남용과 횡포를 감시하는 파수꾼이 되고자 했고, 이에 동의하는 학계, 법조인, 학생운동 출신 활동가들의 의기투합으로 탄생했다. 왕성한 활동으로 제도와 법을 정비하면서 활동영역도 확장해왔다. 상근자 20여 명을 포함한 300여 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참여연대는 20년 동안 규모면에서나 영향력 면에서 한국 시민운동을 대표하는 단체로 고도의 성장을 이루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참여연대는 끊임없이 지난 활동들을 성찰적으로 돌이켜보고,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세계변동과 한국사회 흐름을 조망하면서, 참여연대 운동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앞으로 도전하거나 개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를 조직 내에서 토론하고 합의해가는 과정을 밟아온 것이다.

 

 

┃ 1999년, 박원순 사무처장의 더반(Durban) 메모 ┃

 

창립 5주년이 된 1999년. 한국사회에서 NGO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었고 단체들도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있었다. 참여연대 역시 막강한 입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었다. 당시 참여연대는 창립 5주년행사로 세 차례의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첫 번째는 참여사회연구소의 『한국의 5대 재벌백서』 발간 기념을 겸해 재벌개혁 방향에 관한 심포지엄을 8월에 개최한 것이었다. 두 번째는 9월 4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1세기 시민운동의 대안을 찾아’를 제목으로 한 심포지엄이었는데, 한국 시민사회 대표적 시민운동가들과 이론가들이 대거 모였다. 이 자리에서 명망가 중심의 운동에서 벗어날 것과 서울 중앙을 벗어난 풀뿌리 시민운동으로의 전환, 재정 독립성 강화 등을 두고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다. 같은 날에 ‘21세기의 새물결, 공익법운동’을 내걸은 심포지엄도 열렸는데, 박원순 당시 사무처장을 비롯해 이찬진, 박찬운, 박주현, 백승헌, 김종길 등 변호사들과 황승흠 박사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주요 내용은 사회정의와 공익실현을 위한 변호사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그 일환으로 변호사들의 시민운동 참여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9월 10일 창립기념일에는 재정사업으로 기획되었던 ‘휘나리’ 공연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참여연대 내부적으로는 지난 5년의 활동에 대한 성찰과 혁신의 필요성에 관한 진지한 검토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는 1999년 10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 출장 중에 박원순 사무처장이 작성했던 메모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는데, 이 문서는 급성장한 참여연대 안팎에서 발견되는 위기의 징후에 대한 진단에서부터 활동의제와 활동방식에 관한 수많은 아이디어를 망라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사무처 개편방향과 운동가로서의 상근자의 상, 회원확대 방안, 인터넷 기반 활동, 회원과 자원활동가, 임원 등과의 소통문제, 향후 참여연대 공동체를 위한 계획까지 담겨져 있다. 애초 이 구상들은 참여연대 2000년위원회를 구성, 상근자들을 포함한 내부토론을 거쳐 2000년 총회 즈음에 제출할 계획이었으나,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못했다. 현재 이 자료들은 <참여연대-전망 2000>이라는 제목의 자료집으로 남아 있다. 당시 제기되었던 수많은 혁신과제들은 이후 각 부서 활동으로 채택되거나 반영되기도 했지만, 일부는 여전히 논의되고 있는 사항들이다.

 

 

┃ 2004년, 10주년 희망과 비전보고서 ┃

 

참여연대 장기비전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는 10주년을 준비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재벌개혁운동과 낙천낙선운동 등의 성과를 남긴 참여연대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참여연대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 등을 고려할 때 지난 10년의 활동평가와 앞으로 10년의 계획 논의는 보다 포괄적이면서 집중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참여연대는 2003년 총회에서 10주년 기념사업을 총괄하는 기구로 ‘희망과 비전위원회’(위원장 박은정) 구성을 선포하였는데, 구체적으로 10년 평가와 미래비전을 마련하기 위한 평가전략소위원회(위원장 차병직)와 10년의 활동자료집을 발간하기 위한 편집위원회(위원장 박원순), 장기 발전기금 조성을 위한 재정위원회(위원장 이선종) 등을 두기로 하고 그 외 각종 행사 등의 추진을 결의했다. 평가전략소위의 경우 ‘희망과비전보고서’ 발간을 준비하기 위해 총론 및 분야별 토론 등 8차례 토론을 이어갔다.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두 차례의 회원대토론회와 회원설문조사(총 939명 웅답)를 실시하기도 했다. 2004년 8월 26일 희망과비전위원회와 운영위원회 합동회의에서 승인받은 보고서는 9월 10일 창립기념식에서 최종 발표되었다.

 

보고서는 지난 10년 동안 전문성과 운동성을 결합한 실사구시적 활동을 했던 참여연대가 각종 개혁의 제도화, 권리주체의 발굴, 창조적인 시민행동 양식 개발, 그리고 자립재정 실현 등의 성과들을 이룬 것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쌍방향 소통이나 구조개혁운동에 미흡했던 한계도 짚었다. 민주주의의 불완전한 정착과 사회양극화에 따른 갈등의 심화, 지역과 지구적 과제의 대두 등의 조건 속에서 참여연대의 새로운 10년을 향한 5대 비전도 제시되었다. 참여민주주의 확대와 권력감시운동 전문화, 사회경제개혁운동 확대 강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민행동 본격화, 국경을 넘어선 참여와 연대, 그리고 쌍방향 시민참여를 확대하겠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감시운동을 전문화, 안정화하는 것을 비롯해 분배구조 개선을 위한 사회경제개혁운동, 평화군축운동 본격화, 아시아 국제연대 활성화, 3~5개 사무처로 계열화-분권화, 시민·회원참여와 사회교육 강화 그리고 적극적인 재정사업 등에 나서겠다는 실천방향과 중기실천계획을 밝혔다.

 

10주년을 맞아 대외적으로 선포한 <희망과비전보고서>는 향후 참여연대 활동의 기본 지침서가 되었다. 2003년 발족한 평화군축센터 활동이 본격화된 것 이외에 2007년 노동사회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사회경제분야 활동도 확장되었다. 2009년 아카데미느티나무가 재오픈한 것과 더불어 회원서비스도 강화되었다.

 

한편, 2003년 9월부터 참여연대 정책위원회는 창립 10주년을 맞아 참여연대 운동을 정리, 평가하고 새로운 운동방향을 모색한 내용을 어떻게 외화할 것인지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참여연대만의 고민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을 고민하는 이들과 함께 나누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단행본 출판과 토론회 개최라는 형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물로 기념논문집 『참여와 연대로 연 민주주의의 새 지평』(아르케)이 출판되었고(2004년 9월 8일), 참여연대 창립10주년 기념토론회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한국 시민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가 개최되었다(2004년 9월 9일). 이 날 토론회에서는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이 ‘희망과비전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대외적인 10주년 행사도 규모있게 진행되었다. 10월 16일에는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에서 ‘참여로 좋은 세상 만들기’ 시민한마당 행사가 김미화(방송인), 김범수(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되었는데, 이 행사에는 가수 이현우, 강산에, 레이지본, 권진원, 동물원, 남궁연악단, 참좋다 등이 출연하기도 했다. 이 날은 회원의 날 행사와 참여연대 10년 동안의 플랭카드를 전시하는 행사도 진행되었다.

 

 

┃ 2009년 권력감시운동 지속 강화와 정치적 독립성 재확인한 15주년 TF 논의 ┃

 

창립 15주년이 되던 2009년, 참여연대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있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 직후 미국의 광우병 위험소 수입을 결정하고, 강력한 반대여론에도 4대강 사업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에 대한 반발은 곧바로 시민들의 대규모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절차는 물론 시민들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정권의 역주행이 본격화되었고, 이에 저항했던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은 배제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2008년 광우병 대책회의에서 중심 역할을 했던 참여연대의 경우, 박원석 협동사무처장과 안진걸 팀장의 구속, 다수의 상근자들의 기소 그리고 사무실 압수수색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다.

 

이러한 2008년의 경험 속에서 참여연대는 2009년 15주년 논의를 시작하였다. 15주년 행사를 별도로 기획하기보다는 정부의 일방적인 국정운영과 시민들의 자발적 저항이 두드러지는 사회분위기에서 참여연대의 위치와 좌표를 점검하기 위한 논의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참여연대 임원과 전현직 간부들로 테스크포스(TF)를 구성했는데, 구성원으로는 김정인(상집위원), 김진욱(집행위원장), 이남주(상집위원), 이헌욱(집행위원), 신진욱(상집위원), 홍성태(상집위원), 홍일표(전직간부), 이승희(전직간부), 김민영(사무처장), 이태호(협동사무처장, 안식년 중), 박정은(정책실장), 박근용(시민감시국장), 안진걸(사회경제국장), 최현주(커뮤니케이션 팀장) 등이 참여했다.

 

TF 논의는 크게 두 가지 쟁점에 집중되었다. 하나는 심각한 민주주의 후퇴와 정권의 일방독주에 맞서 시민운동이 새로운 정치적 구심체를 형성해야 하며, 시민사회운동과 야당의 공조와 연대를 통해 정치적 재편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참여연대가 시민정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일종의 역할 변경론이었다. 관련하여 TF에서는 수차례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하지만 결론은, 정치적 독립성과 권력감시라는 참여연대 운동의 중심성을 견지하면서 그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그 권력과 정책에 대한 감시와 견제, 대안 제시 활동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박정은 당시 정책실장은 이러한 논의배경과 결과 그리고 활동가들의 동기부여와 활동력 강화를 위한 제안을 담은 15주년 TF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TF 논의사항 중 다른 하나는, 1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참여연대의 조직운영 상의 효율성을 기하고 회원들의 참여를 높이는 방안이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박영선 상집위원은 여러 가지 개선안을 제안했는데 그 중에 특히 실질적인 의사결정기구로서 운영위원회의 강화방안이 집중 논의되었다. 당연직 운영위원(현 집행위원)의 비중을 점차 축소하고 선출직 운영위원의 비중을 높이며, 선출직 운영위원의 50%는 호선 방식으로 선출하자는 제안이 검토되었다. 과도기적으로 당연직 운영위원, 추천 선출직 운영위원, 추첨직 선출직 운영위원의 비중을 각각 3:3:3으로 유지하되 장기적으로 당연직 운영위원제는 폐지하고, 회원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2010년 총회에서 이에 관한 정관개정 안건이 통과됨에 따라 전격적으로 이행되고 있는데, 그 결과 2011년 이래로 회원이 80%가 넘는 운영위원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14년 창립 20주년을 맞는 참여연대의 성찰과 비전 모색은 계속되고 있다. 이를 위해 2013년 총회에서 ‘20주년 성찰과비전위원회’ 구성하여 다시 한 번 지난 20년 활동을 평가하고 새로운 10년의 활동방향을 모색하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성찰과비전위원회 활동경과와 보고서 내용 참조)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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