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활동✨100 1994-2014 2014-12-31   1602

[083] 회원캠프 ‘뜨거운 참여, 불타는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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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캠프 징크스가 되었던 ‘비’, 1997년 여름캠프 첫날 폐교 운동장에서 막 시작했던 ‘미니올림픽’은 해를 가릴 목적으로 빌려왔던 천막을 다 같이 둘러쓰고 장대비를 헤치며 숙소로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 개요 ┃

1994년 창립당시 304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참여연대의 회원 수는 이듬해 104명이 순증하는 등 작은 시민단체로서는 결코 적지 않은 성장추이를 보였다. 그럼에도 회원증대를 통한 활동 기반의 물적.질적 성장은 조직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1996년 회원통신지에는 ‘회원, 확대합시다~’ 캠페인이 매월 게재되고 있었다. 동시에 회원들이 참여연대와 가까워지도록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래서 마련된 회원참여 프로그램이 ‘여름캠프’였다. 참여연대를 아끼는 회원과 일반 시민, 그리고 상근자가 한 자리에 모여 서로 격의 없는 시간을 나누는 행사를 통해 참여연대 회원으로서의 적극성과 자부심을 갖기를 기대했다. 1996년 제1회 여름캠프 ‘뜨거운 참여, 불타는 연대’를 시작으로 매년 진행되었던 여름캠프는, 1999년 이후 급증하는 회원 수에 비해 여름캠프 참여자의 수가 점점 줄어들어든 반면,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한 기획이 요구되면서 2002년 7회 행사 이후 열리지 않았다. 이후 회원여름캠프는 2014년 참여연대 20주년을 맞아 12년 만에 부활되었다.

┃ 회원과 함께 만든 여름캠프 ┃

1996년 2박 3일 여름캠프를 처음 준비하던 활동가들의 마음은 기대 반 걱정·부담 반이었던 듯하다. 회원 가운데 몇 명과 상근활동가들이 함께 구성한 여름캠프 준비위원회(위원장 이상철 회원)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으로 회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나눌지에 대한 고민이 수차례 계속되었다. 여름캠프의 각 부분별로 주 진행자는 회원이 맡고, 상근자들은 보조 진행을 맡기로 하는 등 참가 회원들이 단순 손님에 머물지 않고 여름캠프를 함께 만들어가기로 했다.

두 달여 수차례 회의를 통해 여름캠프 준비위원회는 8월 3일~5일까지 덕유산 자락에 있는 한길사 연수원(전북 장수 천천면)에서 제1회 여름캠프를 개최하였다. 상근활동가 23명을 포함하여 총 104명이 참가하였다. 당시 사무실 근처였던 용산역에서 단체버스로 출발하였는데, 따로 출발하는 분들을 위한 안내문에는, 핸드폰이 드물던 시절이었던 만큼 연수원의 유선전화번호와 동네 이장님 댁의 전화번호가 같이 나와 있었다. 그 해 7월 회원소식지에 게재된 여름캠프 참가광고에는 “19번 국도는 산을 4개 넘어야 하는 것이 단점, 경치는 좋고 차량통행 적음” 이라고 길안내 돼있었다.

2박 3일 동안 참가자들은, 조별 미니올림픽과 토론,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과 함께하는 유적지(논개사당, 천반산) 탐방, 물놀이, 캠프파이어와 대동놀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하는 행사니만큼 행사 진행의 미숙한 점과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못해 비회원의 회원가입률이 예상보다 저조했다는, 지극히 실무자다운 평가도 있었지만, “내년에 또 가자”가 대세였다.

1997년 2회 여름캠프는 8월 1일부터 2박 3일간 정선 아오라지 옥산장에서 열렸다. 여름장마도 이미 끝난 시기였지만 3일 내내 비가 내려 준비했던 야외 프로그램을 축소하거나 진행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첫날 폐교 운동장에서 막 시작하였던 ‘미니올림픽’은 해를 가릴 목적으로 빌려왔던 천막을 다 같이 둘러쓰고 장대비 속을 헤치며 숙소로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참가자 전원이 대형천막 하나를 우산 삼아 걸으면서도 함박웃음이 넘치는 사진 한 장이 추억으로 남았다. 마지막 날 함백산 들꽃산행도 갑자기 쏟아진 비로 서둘러 마무리되어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는 아쉬움이 가득하였다.

다음해 같은 기간 강원도 홍천군 밤벌유원지 일대를 찾았던 3회 여름캠프에서도 비는 그치지 않고 시시때때로 쏟아졌다. 다행히 ‘우리의 꿈은 무엇인가’ 조별 토론과 장기자랑, ‘꿈은 이루어진다’ 김희운 선생(여성사회교육원) 특강 등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서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7월 31일부터 2박 3일간 진행한 제4회 여름캠프에서도 북상하는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그치지 않았다. 비는 참여연대 여름캠프 징크스가 되는 듯하였다. 준비했던 프로그램 대신 즉석에서 우천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회원의 가족으로 참여한 아이들은 수영장에 풀어둔 송어잡기에 나섰고, 어른들은 수중 축구, 수중 족구에 이어 수중 산책까지 풀세트를 만끽하였다. 오락가락하는 빗속에서 아이들이 감자밭 흙강아지가 되어 캐온 폭신한 햇감자를 다 같이 쪄먹은 오후에는 마음도 푸근해졌다. 전체 참가자 150명 가운데 아이들 수만 60명, 명실상부한 참여연대 가족캠프로 자리 잡게 되었다.

매년 여름캠프에 자녀들과 함께 오는, 일명 ‘캠프회원’들이 늘면서 아동프로그램과 온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점점 많아졌다. 심야 야외 영화관람, 누워서 별보기, 자생식물원 관람, 천체관측, 사교댄스 배우기, 고승의 법문듣기, 사생대회 등 프로그램이 다양해진 것이다. 캠프는 회원들이 잘 준비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소통하며 쉴 수 있는 행사로 정착되어 갔지만 프로그램 준비단계에서 기획이나 진행에 적극 참여하는 회원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기획과 준비, 실행이 오롯이 상근활동가들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2001년에는 행사 일주일을 앞두고 예정지였던 강화도 일대에 말라리아 경보가 내려지면서, 담당부서에서는 짧은 시간 내 장소 확보와 그에 따른 프로그램 조정 작업 등으로 철야 근무를 해서야 간신히 일정을 맞출 수 있었던 일이 벌어졌다.

한편 참여연대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시민운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1998년 3000명 남짓했던 회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99년 한 해 동안 회원이 두 배로 증가하여 6100명에 이르렀고, 2000년 낙천낙선운동 이후 참여연대는 1만 명 회원시대를 열게 되었다. 2001년 한 해만 약 4000명의 회원이 순증하였다. 이렇듯 기하급수적으로 회원이 증가하면서 회원들과의 소통과 공동체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참여프로그램과 회원교육, 신규 회원모임 결성 등에 대한 요구도 커졌다. 회원관리 안정화와 회원 서비스 확대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급증하는 신입회원들에 비해 여름캠프 참가자는 큰 변동없이 고정돼 있었다. 캠프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높았으나, 전체 회원 수에 비해 극히 소수 회원이 행사에 참여했고, 행사규모에 비해 비용이나 시간투자의 비중은 커져갔다. 2박 3일 동안 진행되는 여름캠프 참가비를 여러 사정상 실비 기준으로 책정하지 못해, 매번 후원금과 후원물품으로 전체 지출비용의 절반 이상을 충당해야 했다. 반면 회원정보 관리시스템 구축과 더불어 다양한 연령과 직업군들을 전체적으로 포괄할 수 있는 회원서비스 및 회원참여 프로그램에 대한 요구는 더욱 높아졌다. 이러한 사정으로 여름캠프의 존속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에 2002년부터는 전체 회원 가운데 70%에 해당하는 서울·수도권 거주 회원들이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회원행사(봄산행, 답사기행, 영화관람, 시사특강 등을 ‘회원한마당’이라는 행사로 정례화)를 월별로 기획하였고, 회원행사인 회원대동제를 보다 확대하는 방향으로 회원참여프로그램 기조가 전환되었다. 신입회원들을 초청하여 참여연대 활동을 소개하는 행사로 ‘신입회원한마당’을 열기도 했다. 2003년부터는 서울 중심 회원행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 회원행사를 열거나 지역회원 사이버커뮤니티 구축을 지원하는 등 더욱 많은 회원들과 만나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하는 데 보다 중점을 두게 되었다. 이러한 회원사업의 기조 변화로 여름캠프는 2002년 제7회를 마지막으로 열리지 않다가, 2014년 창립 20주년을 맞아 7월 19일~20일 1박 2일 동안 140명에 가까운 회원, 상근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충북 괴산 이화여대 수련원에서 다시 열리게 되었다.

┃ 여름캠프(1996~2002)에 도움을 주신 회원 (직함없이 가나다순) ┃

강송식 강우창 강일우 강호달 고훈 권영직 기우봉 길동성 김남근 김선희 김수진 김영태 김용사 김용휘 김정아 김정현 김종찬 김준묵 김지현 김창국 김창준 김철명김칠준 김형국 나미숙 나병식 나인수 남궁호 노수진 느티나무 동루골식당 막사발명연파 문준식 박경자 박상증 박용만 박은정 박재균 박재훈 박종례 박진숙 박호성박희경 배삼준 백경식 백승헌 백종만 법무법인다산합동법률사무소 법무법인산하법주사 설병진 손성태 손혁재 송학선 송현종 숙년회 시천주식당 신광식 신일이미지신중기 안경환 안영도 양길승 양선영 양영태 오재식 유명종 유순신 유중원 윤영오이광석 이기명 이길연 이동형 이명호 이상철 이상출 이상훈 이상희 이석범 이옥숙이은영 이재관 이정옥 이찬진 이찬희 이춘형 이해숙 이혁 이현숙 이형진 임성택 임종대 임채성 저선 정낙섭 정성훈 정영수 정의엽 조승희 조정래 조현성 조희연 차명례 차병직 참좋다 채성숙 청년마을 최상구 최영도 최원식 최윤호 탁현민 포럼참여사회 하승수 하우원상 한승호 한정훈 한창규 홍완기 황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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