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활동✨100 1994-2014 2014-12-31   1415

[075] 제주 해군기지 건설 저지 운동 – “우리가 구럼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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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제주 강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울 대한문 앞에서 “이 정경 그대로가 평화”임을 한 목소리로 외쳤다.

┃ 배경과 문제의식 ┃

제주해군기지건설이 논란이 되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이다. 당시 화순항이 기지 후보지로 검토되었는데, 제주도민들의 압도적인 반대여론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군 측은 “해군기지를 반드시 건설할 것이다. 주민들이 반대한다고 취소할 사업이 아니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참여연대는 2002년 대선 후보 정책 평가사업을 경향신문과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대선 후보들에게 제주해군기지건설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당시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권영길 후보는 화순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반대 혹은 유보적인 입장을 밝히며, 무리하게 기지건설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제주도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노무현 후보 측은 “기본적으로 평화의 섬 제주의 이미지에 맞게 해결해야 할 문제임.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해군입장과 제주도민의 입장, 그리고 해양수산부의 입장을 충분히 검토하여 결정될 문제임”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기도 했지만, 정부와 해군은 화순에서 위미로 그리고 강정으로 후보지를 변경하며 기지건설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참여연대가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은 정부와 군이 현실성 없는 ‘대양해군’을 표방하며 군사력 확대를 꾀하고, 제주해군기지가 미국의 해군전략에 활용되어 동북아 평화를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 당시 군은 해군기지 건설 이후 공군기지도 건설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제주도가 군사기지화 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또한 정부와 군은 군사기지 건설을 강행하면서 주민들의 동의나 천혜 자연환경의 보호와 같은 가치들을 무시한 채 군사안보 측면만을 강조하는 등 일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강정마을 인근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강정 앞바다 연산호 군락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문화재이기에 보전의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면서, 강한 바람과 해류 때문에 대규모 군항시설이 들어서기에 부적합한 입지조건이었다. 이에 참여연대는 제주해군기지건설 강행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제주지역 단체들과 공동대응에 나서게 되었다.

┃ 주요 활동 경과 ┃

정부와 군이 제주해군기지 건설 후보지를 강정마을로 최종 확정짓기 전부터 참여연대는 이 사업의 문제점을 공론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매년 개최해오던 평화활동가대회를 2006년에는 제주도 서귀포에서 개최하여 제주해군기지건설 문제에 대한 평화운동의 관심을 높이고 제주지역 단체들과 공동으로 대응기조를 마련하기도 했다. 평화활동가대회 참석자들은 제주해군기지건설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과거부터 군사기지로 표적이 되었던 제주의 역사적 상흔들을 탐방하기도 했다.

2006년 12월에 참여연대, 녹색연합 등이 개최한 <‘평화의 섬 제주’ 해군기지 건설 타당한가?> 토론회에는 해군 측이 직접 참가하여 해군기지건설의 타당성과 계획을 밝히기도 했는데, 해군 측이 시민단체 토론회에 참여하여 입장을 밝힌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2007년 4월 김태환 당시 제주도지사가 해군기지 건설 관련 로드맵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이어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제주도청을 방문하여 해군기지와 공군 탐색구조부대를 건설할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부터이다. 정부의 기지건설 입장 표명 이후 제주도지사는 5월 여론조사를 통해 강정마을로 후보지를 결정하였다. 이에 강력히 반발한 강정주민들은 주민투표로 94%의 반대의사를 분명히 재확인하면서 정부와 제주도정, 국방부에 대한 항의를 이어나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참여연대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타당성이 없으며, 주민동의 없는 해군기지건설 강행에 반대한다는 요지의 의견서와 성명 등을 발표하고, 해군과 국방부에 질의서를 발송하는가 하면, 국회에 기지공사 예산 삭감을 촉구하는 활동을 펼쳐나갔다. 2007년 연말 국회는 강정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의 강한 반발에 결국 군사기지가 아닌 민군복합항을 건설하되 관련 예산은 크루즈 선박 공동활용 예비타당성 조사와 연구용역 결과 타당성을 확인한 후 집행한다는 부대의견을 달아 예산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무늬뿐인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을 건설하겠다며 해군기지 건설 의도에 맞춰진 연구용역 결과를 내놓았다. 군사기지 건설을 강행하기 위해 제주도정과 여당이 장악한 도의회는 절대보존지역을 편법적으로 해제하기도 했다. 강정마을회와 군사기지반대도대책위 등의 끈질긴 저항도 이어져 2009년에는 제주도지사 소환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2010년 해군기지 착공에 반대하던 주민 50여명이 경찰에 연행되는 등 현장에서의 충돌은 이미 격해지고 있었다.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 구성하여 본격적인 활동 전개

2011년 강정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 공사가 시작되면서 전국의 평화활동가들과 단체들이 강정마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공사에 저항하는 평화활동가들이 구속되는 등 강정마을에서 갈등이 심화되자 참여연대는 이 문제에 직접 개입해달라는 강력한 요청을 받게 되었다. 이에 참여연대는 2011년 5월 시민단체 대표단을 조직하여 구럼비 바위 등 공사현장을 방문하고, 주민들을 만나 상황을 청취했다. 방문 직후 참여연대는 밀어붙이기로 일관되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전국 차원의 관심과 대응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전국적 규모의 연대체 구성에 나서기 시작했다. 곧 바로 5월 30일, 44개 단체로 구성된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이하 전국대책회의)’가 출범하였고, 참여연대는 자연스럽게 사무국을 맡게 되었다. 더 많은 단체들이 속속 결합하여 전국대책회의는 120여개 단체들로 구성되었고, 본격적으로 국회의 진상조사와 예산삭감을 촉구하는 것은 물론 법률지원, 생태환경조사, 직접행동 등에 나서면서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전국적 이슈로 부상하게 되었다.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운동에 대한 내부의 합의와 결속을 다지기 위해 참여연대는 2011년 여름 제주에서 상근자전체워크숍을 열어 강정마을을 방문, 주민들과 단합대회를 갖기도 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참여연대는 성명과 논평 등 즉각적인 입장을 발표하는 것은 물론 각계인사들이 참여하는 시국선언과 국제연대를 조직하고, 정책토론회 개최, 현장방문 조직, 광고제작 활동 등을 펼쳤다. 때로는 독자적으로 정부와 국방부의 논리를 반박하는 이슈리포트와 의견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2011년 강정마을에 공권력을 투입하여 주민과 활동가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하였고, 이에 따라 제주해군기지건설 반대 여론도 고조되었다. 그러나 2012년 구럼비 발파 공사가 전격 이루어졌다.

 

2011년 7월 ‘일백 명이 띄우는 평화크루즈’로 시작한 ‘강정집중방문의날’ 행사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평화크루즈와 평화비행기라는 이름으로 2013년까지 18차례나 진행되었다. 연인원 수천 명의 시민이 제주도 전역과 전국을 돌며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알려나갔던 ‘강정생명평화대행진’도 2012년, 2013년 연속 진행되었다. 서울 시내에서도 수요촛불집회가 계속 되었고, 기지 공사에 참여하고 있는 삼성물산을 규탄하기 위해 인간 띠잇기 행사, 피흘리는 구럼비 퍼포먼스도 진행되었다. 2012년에는 쌍용자동차(S)·구럼비(강정,K)·용산참사(Y) 문제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스카이 공동행동(SKY ACT)에 나서기도 했다.

 

제주해군기지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국회를 움직이게 하는 일도 중요했다. 이를 위해 특히 참여연대는 강정주민들, 종교지도자, 시민단체 대표들과 정당 대표 및 국회의원과의 면담, 간담회 자리를 연이어 마련했다. 시민사회의 압박을 받은 야5당은 진상조사단을 구성하여 강정마을과 공사현장을 방문하고 양측이 참가하는 공청회를 개최하기도 했고, 결과보고서를 통해 기지공사의 즉각 중단과 정부의 갈등해결 노력을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참여연대, NCCK,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은 국회 예결특위 내 조사소위 활동을 끈질기게 모니터링하며 기지 설계상의 오류 등을 포함해 기지 건설의 문제점들을 제기하며 예산 전액삭감을 촉구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2011년 12월 마지막까지 논란이 되었던 2012년 제주해군기지예산은 95% 상당 삭감되기도 했다. 하지만 기지공사는 계속되었다. 2013년 국회에서 예산은 재차 논쟁의 대상이 되었는데, 결국 국회는 70일간의 검증 기간 동안 부대조건을 이행할 것을 조건으로 예산을 통과시켰다. 국회의 이러한 요구 역시 해군의 불법적 공사 강행을 막지 못했다. 부대조건 이행 여부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설계오류 등의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하는 전국대책회의 활동은 계속되었다.

 

해군기지공사 강행은 공권력의 폭력과 비호 아래 가능했다. 2013년 12월까지 기지공사에 저항하다 경찰에 의해 연행된 사람이 649명, 이 중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은 589명에 달했다. 총 38명이 구속되었고 부과된 벌금만 3억여 원이 넘었다. 해군기지의 건설과정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폭력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이다. 제주도정과 제주도의회가 해군기지건설을 위해 편법적으로 절대보존지역을 해제했다면, 문화재청은 조사가치가 높은 유구(遺構)들이 기지예정지에서 발굴되고 있음에도 부분공사를 승인하기도 했다. 이에 참여연대와 민변은 절차적 하자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주민 및 활동가들에 대한 구속, 폭행, 강제연행 등에 대응하는 법률지원에 나섰다. 2014년 3월에는 소송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각계인사들로 구성된 강정법률지원모금위원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이러한 저항들은 해외 학자와 활동가들의 연대활동으로 확대되었다. 참여연대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부당성과 군사기지화의 문제점 등을 해외에 널리 알리고, 해외인사들의 방문을 조직하는 활동에 나섰다. 특히 현장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인권침해와 과도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 유엔인권이사회와 국제인권단체에 알리는데 집중했는데, 유엔특별보고관의 특별한 관심과 방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2012년 제주에서 열린 세계환경보전대회,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 회의를 해군기지의 환경과 안보상의 문제점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계기로 삼기도 했다.

 

※ 세계교회협의회의 경우 2014년 7월 아태지역 해양의 군사화와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문제점을 지적한 공식 성명서(Statement towards a Nuclear-free World 07 July 2014)를 최종 채택하여 제주해군기지가 동북아 평화에 초래하는 문제들을 재확인했다.

┃ 성과와 의미 ┃

강정마을에 건설되고 있는 해군기지는 군사안보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생태환경의 파괴, 민주적 절차 훼손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안고 있다. 이에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저항하는 이들이 내건 구호는 “우리가 구럼비이다”였다. 군사적 안보만이 절대가치인양 주장하는 정부와 군 당국에 맞서는 대항논리가 생태평화와 인권, 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였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 저지운동은 군사안보 중심의 패러다임에 저항하고 뛰어넘고자 한 시민행동이다.

기존의 평화, 통일운동이 주한미군과 미군기지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에 비추어 본다면,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 운동 과정에서 평화운동의 의제는 보다 확장되었다. 군사력 확장을 꾀하는 한국군 기지건설 역시 저항의 대상된 것이다. 또한 군사기지 문제에 대해 국회와 시민의 감시와 통제가 작동하도록 요구하는 절차적 정당성 확보 문제도 중요한 의제로 다루어졌다. 나아가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운동은 공동체 해체 위협에 대응하고 주민동의를 포함한 민주적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공동체 수호 운동이자, 공권력 남용과 같은 국가폭력에 저항한 운동이기도 하다. 동시에 제주가 간직하고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호, 유지하기 위한 환경운동이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참여연대 평화운동이 주도해온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운동은 군축과 생명평화, 인권,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를 결합하는 운동으로 그 지평을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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