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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9.2. 시민예비청문회 - 우리는 이런 대법원장을 원한다

1999년 9월 신임 대법원장 임명시기를 맞아, 참여연대는 바람직한 대법원장 후보로 재야의 조준희 변호사를 공개적으로 추천했다.

 

 

┃ 배경과 문제의식 ┃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선고하는 판결과 결정 중에는 인권은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사회적 가치와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이 지나치게 보수 일변도 또는 비슷한 사회적 경험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한편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관은 법의 지배(rule of law)를 대표하는 인물인데, 이들을 뽑는 과정에 국민은 배제되어 있고 주로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는 법조계 인사들 중심으로 논의되거나 구성되다 보니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민주적 정당성은 매우 취약하다. 따라서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선임 과정에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기회를 마련하는 동시에 다양한 가치관과 사회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이들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구성하여야 한다는 것이 참여연대의 입장이었다. 대법원장 등에 대한 인사청문회도 없는 상황에서 국민이 원하는 대법원장, 바람직한 대법원장의 기준을 제시하고, 시민추천의 필요성 등을 공론화하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 민주적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서도 필요한 과정이었다. 특히 1999년 여름, 9월에 퇴임하는 윤관 대법원장의 후임자를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대법원은 이를 사법권 독립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할 만큼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사법의 민주화를 지향하던 참여연대의 입장에서 1999년 후임 대법원장 선임 과정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 주요 활동 경과 ┃

 

1999년 9월 참여연대는 신임 대법원장 임명시기를 맞아, 바람직한 대법원장 후보로 재야의 조준희 변호사를 공개적으로 추천했다. 서영훈, 이영돈 등 시민대표와 변호사, 법학교수 13명으로 ‘대법원장 후보추천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위원회가 ‘바람직한 대법원장 선정기준과 후보자’를 먼저 정했다. 이후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와 법학교수 36명에 의한 시민예비청문회를 거쳐 조준희 변호사를 최종 후보자로 추천하였다. 이 활동은 이후 최고 법관들에 대한 시민추천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최종영 전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하였다.

 

이듬해인 2000년 9월 신임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때였다. 참여연대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함께 헌법학자 50명, 변호사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거쳐, 한승헌 변호사와 조준희 변호사를 헌재소장 후보자로 추천하였다. 참여연대와 경실련이 제시한 기준은

  • 국민의 인권신장과 기본권 수호를 위해 헌신하고,
  • 공권력에 대한 통제의식과 민주적 소신을 갖춘 사람이어야 하며,
  • 헌법규범과 이론에 대한 지식,
  • 인품과 도덕성과 리더십을 겸비하고 국민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윤영철 전 대법관을 임명했다. 이렇게 김대중 정부 기간 중에 추진했던 두 번의 추천활동은 무위로 돌아갔다.

 

참여연대의 바람직한 대법관(대법원장)과 헌법재판관(재판소장) 추천운동은 사법개혁 기운이 무르익었던 노무현 정부 기간 중에 꽃피우게 된다. 2003년 6월 18일 참여연대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함께, 8월과 9월에 있을 헌법재판관과 대법관 임명을 앞두고 시민추천운동을 전개할 것임을 밝혔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환경, 여성, 인권, 노동단체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여 ‘이념적 다양성 확보’, ‘사회적 다양성 반영’, ‘충원구조의 다원화’, ‘진보적, 개혁적 소신’, ‘법률적 식견 및 전문성 확보’, ‘도덕성 및 청렴성 보장’을 인선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김상곤 전 민교협 공동대표, 박연철 전 대한변협 인권이사, 박영숙 여성재단 이사장, 최열 환경운동연합 대표, 최영도 참여연대 공동대표, 김진욱 민변 사무차장, 조국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이 참여하여 ‘대법관·헌법재판관 시민추천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시민추천위원회는 시민사회와 법조계로부터 추천받은 17명의 인물 중에 6명을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의 구분없이 시민추천후보로 선정하고 8월 1일 발표하였다. △재조(在朝) 후보 : 박시환 서울지법 부장판사, 이홍훈 법원도서관 관장 △여성 후보 : 김영란 대전고법 부장판사, 전효숙 서울고법 부장판사 △재야 후보 :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최병모 민변 회장이었다.

 

그러나 최종영 대법원장이 8월 12일에 열린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에 제시한 제청 예정자 3명은 대법원의 변화를 바라는 사회적 흐름에 부합하지 못한 인사들이었다. 이에 반발해 제청자문위원인 대한변협 회장과 법무부장관이 자문위원에서 사퇴하고, 박시환 서울지법 부장판사가 대법원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사표를 내는 사법파동이 발생하였다. 그러자 최 대법원장은, 신임 대법관에 자신이 염두에 둔 김용담 광주고등법원장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제청(8월 22일)하면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추천한 전효숙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관으로 8월 19일에 지명하는 타협책을 구사했다. 시민추천운동의 첫 번째 성공이었다. 

 

그 이듬해인 2004년 8월에는 조무제 대법관이 퇴임할 예정이었다. 참여연대는 다시 한 번 2003년에 추천한 6명 중 4명(헌법재판관이 된 전효숙 전 부장판사와 아름다운재단 박원순 상임이사 제외)을 대법관 후보자로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에 추천하였다. 이번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도 추천운동에 함께 했다. 변화의 흐름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최 대법원장은 김영란 부장판사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탄생하는 순간으로 50대 중반 남성 엘리트 법원장들이 대법관 자리를 채우던 대법원의 첫 번째 변화였고, 시민추천운동의 두 번째 성공이었다. 

 

2005년 10월에는 세 명의 대법관이 교체되었는데, 참여연대는 박시환 전 부장판사와 이홍훈 당시 수원지법원장을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에 추천했다. 최종영 대법원장의 후임인 이용훈 대법원장은 10월 19일 세 명의 대법관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제청하면서 박시환 변호사를 포함시켰다. 그는 법관 재직 내내 사법개혁과 사법부의 반성을 주창해왔고 인권의식도 탁월했지만 비주류였다가 법원을 박차고 나온 인물이었다. 참여연대가 추천한 적은 없지만, 비서울대 츨신이자 노동법 전문가인 김지형 부장판사도 제청되었다. 이 두 사람의 제청과 임명은 비주류의 진출이라는 점에서 첫 여성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의 연이은 탄생 못지않은 큰 의미를 가졌다. 

 

대법관 추천운동은 2006년에도 이어졌다. 참여연대는 2006년 5월 조용환 변호사를 포함해, 전수안 광주지법원장, 김상전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윤재윤 서울고법 부장판사, 이인복 서울고법 부장판사, 유원규 법원도서관장을 추천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6월 7일 5명의 대법관을 제청하면서 이홍훈 법원장과 전수안 법원장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2월 이후 참여연대는 더 이상 대법관 또는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았다. 추천할만한 인물을 새로 찾아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진보개혁 성향의 시민사회단체에 적대적인 이명박 정부 하에서 참여연대의 추천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참여연대의 추천명단이 배제명단 즉 ‘블랙리스트’가 될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 성과와 의미 ┃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추천운동은 마침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법원 내부의 사법개혁 요구 움직임과 대법원에 구성된 ‘대법관후보제청자문위원회’에 참여한 소신 있는 법조인들의 노력과 맞물려 그 효과가 극대화되었다. 참여연대가 추천한 박시환 변호사, 이홍훈 법원장, 전수안 부장판사, 김영란 부장판사가 대법관이 되었고 전효숙 부장판사는 헌법재판관이 되었다. 50대 남성, 서울대 출신, 법원장 출신으로 상징되는 엘리트 주류 법관만이 대법관이 되던 관행이 깨진 것이다.

 

참여연대가 추천하지 않았으나 김지형 대법관을 포함해, 2004년부터 2006년 사이에 대법관이 된 김영란, 박시환, 이홍훈, 전수안 대법관들은 ‘독수리 오형제’라고 불렸다. 13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 안에서 개혁과 변화의 흐름을 새로이 형성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실제로 이들이 대법관으로 있는 동안 전원합의체 사건은 과거에 비해 늘었고, 이들 다섯 명은 주요한 사건에서 전향적인 판결을 이끄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대법관 시민추천운동은 대법관을 제청하거나 임명할 때마다 대법원의 다양성이라는 것을 인선의 기준으로 고려하게끔 한 점에서도 성공했다. 비록 보수적인 정부가 연이어 집권하면서 대법원의 다양성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대법관 인선의 적절성을 평가할 때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 축소가 계속 거론될 정도에는 이르렀다.

 

그리고 이 운동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구성에 대한 사회적 공론을 형성하였고, 비록 추천에 그치는 것이지만 시민들의 추천이라는 절차를 마련함으로써 대법원 등의 취약한 민주적 정당성을 보충하는 데 기여했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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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차] 참여연대 빛나는 활동 100 (1994~2014)
  • [001] 내부 비리 제보자 보호 활동
  • [002] 부정부패추방캠페인 ‘맑은 사회를 열자’
  • [003] 부패방지법 제정운동
  • [004] 판공비 공개운동
  • [005] K1 전차 군납비리 진상규명과 예산감축 운동 - ‘자주국방’의 성역에 시민감시의 메스를 들이대다
  • [006] 청렴계약제와 청렴계약옴부즈만제 도입 운동 - 시민감시의 새로운 실험, 청렴계약제
  • [007]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활동 - 부도덕한 고위 공직자를 낙마시키다
  • [008] 국가회의록 남기기 운동 - ‘기록이 없는 나라’, 투명행정은 없다
  • [009] 백지신탁제 도입운동
  • [010] 튀직후 취업제한 실태 연례 보고서 발간 - 관피아를 막아라
  • [011] 의인상 제정과 ‘공익제보자의 밤’ 개최 - 양심의 호루라기를 분 당신은 ‘의인’입니다
  • [012] 최초의 국회 밀착감시, 국정감사모니터연대 활동 - 시민감시를 거부하는 국회, 2000년 낙천낙선운동의 도화선이 되다
  • [013]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 - 유권자들과 함께 만들어 낸 선거혁명
  • [014] 돈 선거 근절과 불법 정치자금 과세를 위한 시민행동 - 검은 돈과 차떼기 사건
  • [015] 대선후보 공약평가 활동
  • [016] 정치개혁 물꼬를 튼 정치관계법 개정운동
  • [017] 최초의 국회 감시 전문 사이트 <열려라 국회>
  • [018] 인터넷 선거운동 전면 허용을 이끌어 낸 시민행동
  • [019] ‘투표할 권리를 보장하라’ 캠페인 - 투표시간 연장 등 참정권 확대 운동
  • [020] <사법감시>지 발행과 판결비평 활동 - 판결도, 법관도 감시의 대상이다
  • [021] 사법개혁의 지침서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 발간
  • [022] 의정부 법조비리사건 대응 - 무너진 법조윤리, 변호사징계정보자료실 구축으로 이어지다
  • [023]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시민추천운동
  • [024] 로스쿨 도입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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