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칼럼(pi) 2012-02-24   2705

검찰의 박경신 교수의’ 검열자 일기’기소, 사법부가 ‘이정표’ 세울 기회

사법부가 ‘이정표’ 세울 기회

홍성수 숙대 법과대학 교수



검찰이 결국 박경신 교수를 기소했다. 그가 블로그에 성기 사진을 게재한 것이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유포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위원으로 활동했던 그의 처신이 적절했는지의 논란이라면 몰라도, 그의 행위가 형사법정에서 다퉈져야 한다는 것은 비극보다는 희극에 가깝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외국의 사례나 학문적 이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우리 현행 판례의 입장에서도 범죄가 될 수 없다. 


법조문에 등장하는 ‘음란’이라는 용어 자체가 워낙 모호해서 그 자체로 위헌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지만 법원이 음란을 판단하는 기준은 꽤 구체적이다. 판례는 음란을 “사회통념상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으로 정의하면서, ①단순히 성적 흥미에 관련되어 저속·문란하다는 느낌을 넘어설 것 ②성적 흥미에만 호소 ③문화적·예술적·사상적·과학적·의학적·교육적 가치가 없음 ④인간의 존엄 가치의 훼손·왜곡 ⑤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판단 ⑥전체적인 내용을 관찰해서 평가 ⑦건전한 사회통념에 따른 객관적·규범적 평가 등을 음란에 대한 판단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박 교수의 행위는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할 때 이러한 음란물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의 행위는 느닷없는 돌출행동이 아니었다. 그는 표현의 자유를 일관되게 옹호하는 실천을 전개해왔으며, 본인의 블로그에 ‘검열자 일기’라는 코너를 마련해 방심위 위원으로서 인터넷 심의를 꾸준히 문제삼아 왔다. 


박 교수가 성기 사진을 게재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방심위의 삭제조치가 정당한지를 블로그 방문자들에게 물어보고자 하는 것이었으며, 삭제조치당한 사진과 다른 예술작품을 비교해가면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가는 매우 진지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게다가 방심위의 심의는 공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회의 방청객들은 이미 그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결국 그의 행위는 이미 공개적으로 진행된 심의과정을 자신의 블로그라는 조금 더 넓은 마당에서 다시 한 번 펼쳐 보인 것에 불과하다. 


박 교수는 본인 스스로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열렬히 옹호해온 학자이다. 그는 미네르바 사건, PD수첩 사건, 방심위 심의 문제, 언론소비자운동 등과 관련한 다수의 논문과 칼럼을 쓰고, 법정진술을 하기도 했으며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으로 있으면서 표현의 자유 문제를 공론화하는 작업을 주도해왔다. 특히 그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 검찰의 문제점을 강하게 질타해왔는데, 이번에는 본인이 당사자가 되어 검찰에 기소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설사 그의 행위가 음란물유포죄에 해당한다고 가정해도 통상적인 다른 음란물유포행위들과 비교할 때 그 죄질이나 해악 수준이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는데, 검찰은 약식기소도 아닌 정식기소를 함으로써 엄벌의지를 내비쳤다. 


이 대목에서 “만약 문제의 주인공이 박경신 교수가 아니었어도, 검찰은 동일한 법의 잣대를 적용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음란물에 대한 우리 사법부의 입장은 여전히 보수적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진일보한 판례를 선보이고 있다. 최근 판례에서는 ‘음란성’에 관한 논의가 “국가형벌권이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개입하기에 적절한 분야가 아니라는 점”을 천명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에도 국가형벌권이 개입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놓고 판단해 본다면 문제는 그리 복잡하지 않을 것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국민적 지지와 신뢰를 받는 방법은 국가권력의 남용을 통제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옹호하는 것밖에는 없다. 이번 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사법부가 현명한 판단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역사적 이정표’를 세워주길 기대한다.

* 이 글은 2월 23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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