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센터 칼럼(pi) 2012-05-08   3602

[칼럼]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없는 집회에 대한 해산명령은 위법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없는 집회에 대한 해산명령은 위법

 

박주민(변호사,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

 

 

자유론(On Liberty)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권력발동의 한계를 설정하면서 ‘권력은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해악을 가할 때에만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통상 ‘해악론’이라고도 하는데, 자유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해악론’을 표현행위에 대해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일반적으로 표현행위는 그 물리적 효과(해악)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표현은 듣는 사람의 반응이 있어야 비로소 효과가 나타난다. ‘저 집 창문에 돌을 던져라’라고 말을 하더라도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들은 대로 행동하지 않는 한 아무런 해악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행동은 직접적인 물리적 효과를 발생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해악론’은 표현행위에 대해서는 표현이 실제로 다른 사람 등에 해악을 일으킬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는 경우 즉 표현이 행위처럼 작동할 경우에만 규제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를 소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리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홈스 미연방대법관은 솅크 판결(Schenck v. United States)에서 징집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한 간첩법이 징집반대 선전물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를 다루면서, 표현이 성격상 그리고 정황상 실체적인 해악(substantive evils)을 발생시킬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이 있을 때만 처벌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때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이 있는 상황의 예시로서 홈스 판사가 든 것은 사람들이 가득 찬 극장에서 “불이야!”라고 소리 지르는 행위였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표현행위를 제한하는 국가권력의 한계를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리로 삼고 있고, 우리나라도 모든 표현행위에 대해 이 원칙을 존중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현행 집시법은 신고를 하지 않은 집회에 대하여 아무런 위험이 없더라도 바로 경찰이 해산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도 경찰은 미신고집회가 아무리 평화적으로 진행되더라도 기계적으로 해산명령을 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경찰의 「집회시위현장 법집행 매뉴얼」이 “미신고집회에 해당하면 평화적으로 진행되더라도 방치하지 말고 곧바로 미신고 불법집회임을 고지하고 종결선언·자진해산요청, 불응시 해산명령 등 엄정대응”이라고 미신고집회에 대한 대응방법을 정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딱 봐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법과 그 집행태도를 고치기 위해 그 동안 많은 시도들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신고집회의 실질적인 위험성을 가지고 미신고집회해산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판결은 나오지 않았었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독일집회법이 집회주최자에게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집회에 대해 해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만으로 해산명령을 할 수 없고, 공공의 안전과 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을 야기하는 경우에만 해산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런데 2012년 4월 26일 대법원은 “미신고집회라고 하더라도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질서에 실질적인 위험을 야기한 정도에 이른 집회에 대해서만 해산명령을 발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하였다. 대법원은 이와 같이 판단하면서 “신고의무는 원래 행정관청에 집회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여 질서유지에 협력하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인데, 미신고집회에 대해 기계적으로 바로 해산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하면 집회에 대한 사전신고제가 실질적으로는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허가제로 변질되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사전신고제 자체를 여전히 합헌적으로 보면서 미신고집회의 주최자에 대한 처벌의 정당성을 인정한 아쉬움이 남지만, 이 판결을 계기로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로 바로 해산하지 않고, 실질적인 위험성을 기준으로 해서 해산명령을 발하는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차벽을 설치한 것에 대해 위헌판결이, 신고된 집회의 내용에서 일정부분 일탈했다고 하더라도 바로 해산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어도, 경찰은 꾸준히 차벽을 설치하고, 신고된 내용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집회들을 해산시켜 왔다. 과연 경찰은 이 판결에는 어떠한 태도로 반응할 것인지가 무척 궁금하다. 여전히 대법원이 헌법재판소가 뭐라고 하든 나는 권력의 눈치만을 보겠다는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렇다면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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