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칼럼(ip) 2013-06-14   1912

[칼럼] 인터넷 실명제는 살아있다

 

 

인터넷 실명제는 살아있다

 

이항우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 폐지를 포함한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공식 제출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인터넷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작년 8월 23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결을 받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 판결은 소위 `미네르바돴의 입을 막기 위해 동원되었던 전기통신법상 ‘허위사실 유포죄’의 위헌 결정과 함께 그동안 정치권의 사이버 여론 통제 작업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발상에 토대를 둔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던가. 

 

인터넷 실명제와 사실상 성격이 똑같은 선거게시판 실명제가 여태 살아있다니 참 이상한 일이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직후 선관위는 선거게시판 실명제 폐지 의견을 밝혔고, 작년 9월에는 진수미 민주당 의원이 그 폐지를 국회에 대표발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동안 모르쇠로 일관해온 대다수 정치인들의 행태에 비추어볼 때, 선거게시판 실명제가 이제 곧 순순히 폐지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선거게시판 실명제나 인터넷 실명제가 흑색선전과 명예 훼손이 만연한 사이버 공간의 특성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실명제가 우리사회에서 공론화된 것은 2003년 2월과 3월 사이였다. 그런데 ‘된장녀’와 ‘개똥녀’ 등 수많은 ‘OO녀’ 사건은 2005년 이후에 발생했으며, 최진실과 정다빈 등 유명 연예인의 자살 사건들도 대부분 2007년 이후에 일어났다. 

 

그러니 애초에 실명제를 고안한 정치인들의 머릿속에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개똥녀’도 ‘자살한 연예인’도 존재할 수가 없었다. 2003년의 한국 사이버 공간의 상황이 유별난 것도 없었는데, 왜 그 때를 전후하여 사이버 폭력이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었을까. 그 답은 ‘악성 댓글 때문에 실명제가 고안된 것이 아니라, 실명제를 위해 사이버 폭력이 활용된 것’이라는 점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인터넷이 선거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널리 확인되었던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 직후, 당시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인터넷에서 인신공격이 난무하고 북한의 심리전 활동매체로도 활용되는 문제점이 드러난다”며 실명제 도입의 정치적 동기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 실명제는 2006년 12월에야 입법되었는데, 선거게시판 실명제는 그보다 훨씬 전에, 그것도 총선을 바로 한 달 앞둔 2004년 3월에 전격적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선거와 관련한 시민들의 인터넷 여론을 통제하려는 정치인의 요구가 최우선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던 것이다. 이에 당시 많은 사람들은 선거게시판 실명제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반대했다. 실제로 2006년 5월 지방선거에서 선관위는 선거게시판 실명제를 위반한 총 26개의 인터넷 사이트에 이행명령서를 발부했고, 실명인증 시스템 설치명령을 따르지 않은 인터넷 언론 `민중의 소리돴에는 과태료를 부과했다. 

 

아직도 일부 보수 집단은 소수의 사람들이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여론을 좌지우지하고 편가르기와 정치적 행동을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주장은 시민들의 정당한 온라인 활동을 명확한 근거 없이 여론조작으로 몰았지만, 여론 조작을 시도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주체는 일반 시민이 아니라 이러한 정치권력 기관들이다. 

 

선거게시판 실명제가 인터넷 실명제와는 별도로 도입되었듯이, 그것은 또한 인터넷 실명제 폐지와 무관하게 계속 존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정치인들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겠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그만큼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침해하는 제도임이 분명하다. 국회는 선거게시판 실명제 폐지를 더 이상 미루지 말기 바란다.

 


* 이 글은 2013년 6월 14일 머니투데이에 게재됐습니다. (원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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