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290] ‘간호사 집단 유산’ 산재 인정의 의미: 유산과 선천성 심장 질환아 출산도 산업재해

 

[시민정치시평 290]

 

‘간호사 집단 유산’ 산재 인정의 의미

: 유산과 선천성 심장 질환아 출산도 산업재해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2014년 12월 산업재해에 있어서 의미 있는 판정이 내려졌다. 제주의료원 간호사 집단 유산의 근로복지공단 산재 인정과 선천성 심장 질환아 행정소송 승소판결이다. 2009년부터 시작된 제주의료원 간호사 등 여성 노동자들의 오랜 투쟁이 5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되었을 뿐 아니라, 800만 여성 노동자의 산재 문제에 경종을 울리는 중요한 판결이다. 

 

2009~2010년 당시 제주의료원 간호사 노동자는 불규칙한 교대 근무, 타 병원 대비 1인당 환자 수가 2~3배가 넘는 고강도 노동과 약제 조제 과정에서 화학물질 노출 등 열악한 노동조건에 있었다. 당시 유산율은 약 40%로 일반 인구의 2배, 선천성 심장 질환아 출산율은 일반 인구의 10배가 넘었다. 2012년 집단 유산 4명, 선천성 심장 질환아 출산 조합원 4명 등 총 8명의 산재 신청이 있었다. 역학조사, 산재 불승인, 행정소송 등과 민주노총·여성 단체의 중앙 지원 및 제주 지역의 공동 대책위 지원 활동이 있었고,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심리적 어려움에도 투쟁에 나선 당사자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의 산재 통계 역사로 보면 여성 노동자 산재 인정은 1987년 인천 진흥요업 여성 산재노동자 투신자살 사례로부터 시작한다. 1990년에는 시계 제조 사업장인 오리엔트의 수은 중독, 부산 고무 공장 여성 노동자의 유기용제 중독으로 인한 불규칙한 월경 주기, 1995년 양산 LG전자 솔벤트 사용으로 인한 집단 생리 불순이 역학조사로 업무 연관성이 드러나기도 했다. 또한, 1990년대 후반 VDT 증후군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2008년에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반도체 종사자 22만 명 대상 조사에서 조립 공장 생산직 여성 노동자의 악성 림프종 발병률이 일반에 비해 5.16배 높은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은 각종 직업성 암의 문제와 더불어 여성 노동자의 불임, 유산, 조산, 기형 태아 출산 등을 유발하게 된다.

 

서비스 산업의 증가로 유통 매장, 병원, 청소, 급식실, 보육, 간병 등 서비스업 여성 노동자 문제도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최근 4~5년 동안에는 ‘서서 일하는 여성 서비스 노동자’, ‘감정노동과 정신질환’, ‘급식실 조리사 근골격계 질환’ 등이 주요한 여성 노동자 산재 문제로 부각되었다. 또한, 2010년 국제암연구소가 발암물질로 지정한 ‘교대 근무 심야 노동’은 여성 노동자에게는 유산, 조산, 불임, 기형 태아 출산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제주의료원의 유산, 전남대 병원의 직업성 유방암 등 교대제 심야 노동을 하는 병원 여성 노동자의 집단 산재 발병이 그 결과이다. 그러나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2만여 명에 대한 조사에서 임신한 이후에도 야간 노동을 지속한 경우가 30%에 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 노동자의 산업재해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는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 질환의 문제이다. 2000년 처음 산재 인정이 되었고, 최근에는 성희롱 산재 신청 노동자에 대한 2차 피해 문제가 제기되면서 조사 지침이 개정되기도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12월 전체 취업자 2538만 명 중 여성은 1061만 명이다. 임금 노동자 통계에서는 2013년 3월 기준 전체 1774만 명의 임금 노동자 중 여성 노동자는 760만 명에 달한다. 전체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이 45%대이지만, 여성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57%대로,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다(2013년 국가 인권위, 비정규 여성 노동자 임금 실태조사). 국가별 비교에서 한국의 여성 노동자의 고용률은 여전히 낮지만, 여성 노동자,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증가 추세이다. 그러나, 산업재해 통계에서는 2013년 전체 산재 9만 1824명 중 여성은 8438명으로 20%에 불과하다. 현재 노동부의 산재 통계가 산재 발생 통계라기보다는 사실상 산재 승인 통계와 다를 바 없음을 감안한다면, 여성 노동자의 산재 예방과 산재 보상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산업재해가 사고성 재해 중심이고, 직업병 산재 인정이 취약한 가운데 여성 노동자 문제는 더욱더 취약한 구조에 놓이기 때문이다. 고령 여성 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은 업무 관련성보다 고령과 가사 노동의 문제로 치환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감정 노동으로 인한 정신 질환은 산재 인정 기준으로 정식화되지 못하고 있다. 유산의 경우 지난 기간 산재 인정 사례는 사고성 재해를 동반한 경우로만 한정되어 왔다. 심야 노동의 심각성으로 유방암을 포함한 특수건강진단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직업병 인정기준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전남대병원의 직업성 유방암 집단 발병과 산재 신청이 있었지만 아직도 수년째 투쟁 중이다. 한국의 여성 노동자에 대한 종합적인 직업병 연구조차 없는 현실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도 산재 신청에 대한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둘째, 산재 예방 측면에서도 여성 노동자에 대한 대책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임신 여성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근로기준법은 현장에서 무시되고, 여성 노동자의 부당한 해고와 퇴직 강요가 횡행한다. 그나마 산재 예방을 위한 사업장 고려가 있는 경우에도 남성 노동자를 기준으로 한 작업대, 작업 도구, 보호구, 중량 기준 등만 있다. 감정 노동이 수년째 제기되고 있지만 예방 대책은 아직도 법제도화 되어 있지 못한 실정이다.

 

제주의료원 집단 유산 및 선천성 질환아 산재 인정을 하나의 특이한 사례로만 한정하여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우선적으로는 이번 산재 인정 판결이 다시 법원에서 뒤집혀지지 않도록 되어야 할뿐 아니라, 광범위한 여성 노동자 산재의 현실을 반영하여 법제도적 장치가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2015년 노동부는 감정 노동에 대해서 예방과 보상 기준을 제도화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여성 노동자의 산업재해 예방과 보상을 위한 법제도화 대책 마련에 즉각 나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산재 인정을 계기로 여성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과 산재 인정 요구가 대폭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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