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읽을거리 1999-08-20   4043

한국판 [제3의 길] , 잘 될 것인가?

조원희(국민대경제학부교수, 참여연대부설 참여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이번 대통령 8․15 경축사에 대해서는 환영과 긍정의 기조와 함께 그 실천 가능성, 개혁방향에 대한 회의와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아무리 좋은 구호도 내용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그 의의는 사뭇 달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보다 세밀한 평가는 예정된 각 소관부처의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본 후에 내려야 할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기본구도는 들어난 셈이다. 전체적으로 효율과 형평의 기준으로 볼 때 형평 쪽에 상당한 무게를 실은 점이 눈에 들어온다. 다만 단순히 소득과 부의 재분배가 아니라 구태여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려 한 것을 보면 여전히 시장에 대한 믿음을 깔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한가지 더 눈에 띄는 것은 대통령이 경제개혁 못지 않게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정부가 지금까지 주력한 경제개혁도, 정경유착이라는 한국적 현실을 고려한다면 사실은 정치개혁이 선행하거나 적어도 같이 갈 때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세계화, 시장원칙 적용으로 문제를 풀려고 했던 지금까지의 사고방식보다는 진일보한 듯도 하다.

그러나 이런 기본 기조의 이동과는 별도로 그 내용을 보면 솔직히 별로 새로운 것은 발견하기 힘든다. 구태의연한 내용에 비해 그 톤이 매우 강하다는 사실은 오히려 현정권이 상당한 위기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는가 라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는 가운데 정치력은 현저히 떨어졌고 경기를 선거 싸이클에 맞추어 적절히 조정해야 할 판에 대우사태가 터졌으니 아주 초조해진 것은 아닌지.  

대통령의 재벌개혁의지는 언론에서 재벌해체를 의도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기업구조조정에서 기존의 5대 원칙에 더해 제2금융권의 재벌지배 금지, 계열사간 상호 순환출자 금지, 상속에 의한 부의 세습 억제 등의 원칙이 그런 해석을 낳는 모양이다. 그러나 솔직히 투신사 등의 부실을 털어 낼 제2금융권 구조조정은 이미 정치 일정상 물건너 간듯하고, 투신사, 보험회사등의 재벌의 사금고 노릇을 중지시키려면 소유지배구조의 혁파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의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상호출자만 하드라도 현 정권출범이후 무한정 허용했기 때문에 문제가 악화된 것이며 대우사태가 터진 지금에 와서 억제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신나간 사람 널뛰기」라고 혹평을 들을 만하다.

일각에서는 만약 재벌체제는 더 이상 안 된다고 하면 그 이후에 국가 경쟁력을 확보해줄 어떤 체제적, 조직적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아직 한국경제는 소득 일만불에 턱걸이를 하는 정도의 수준이고 어느 정도 수준의 고성장을 앞으로도 최소 10년은 더 지속해야 하는데 순전히 미국식 시장경제 체제로 이 과제를 달성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국제 금융시장에 우리의 운명을 맡기고 항해를 하기에는 우리의 기초역량이 너무 취약하다. 뱁새가 황새 따라 가려다가 가랭이 찢어질까 걱정하는 것이다. 김태동 정책수석이 현재의 관료, 금융권의 상층부는 개혁의지나 역량이 부재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IMF 위기에 직접 책임이 있는 사람까지 중용한 대통령은 아무 책임이 없는가. 또 그런 사람들을 가지고 어떻게 그 어려운 개혁과제를 수행할 것인가.

작금의 대우사태는 그 규모가 국내로 축소된 것이기는 하지만 IMF 사태와 유사한 것이다. 진행과정도 유사하다. 당시 단기로 차입된 종금사의 외화자금이 급격히 이탈할 때  IMF가 들어와 진정을 시킨 것처럼, 현 사태도 단기로 조달한 자금을 금융권이 기업채권에 투자했다가 인출 사태가 우려되자 정부가 IMF식으로 지급을 보증하면서 그것을 막아보려고 안간임을 쓰고 있는 형상이다. 이제 와서 야단을 하는 정부의 행동은 과거 YS정권에 IMF사태 책임을 물을 때와 비슷하게 따지면 무어라 말할 것인가?

2-3년 안에 완전고용을 달성한다는 약속도 너무 현실과 괴리된 듯하여 공허하게 들린다. 채질개선이란 본래 기간을 가지고 철저히 해야 뒤탈이 없는 법인데 대충 올해 안에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고성장체제로 전환한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무리로 보인다. 더구나 최근 고용은 임시고, 일용고 중심으로 고용의 내용이 바뀌고 있는데 완전고용이 된들 내실이 있겠는가. 지나치게 조급한 지식산업, 벤쳐산업 육성도 마찬가지로 걱정이 앞선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는 것은 좋으나 너무 많이 담으려 하면 찢어지는 법이다.              

<주간 내일신문 1999년 8월 25일자 논단>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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